[전생(前生)] ㅡ kjm / 2023.7.31
혹시 지난 생을 믿으시나? 전생이 있다는 걸 믿으시나?
전생에서 저질렀던 행위들을, 업(業 카르마)으로 쌓인 것이라 한다. 그 업이 인과를 일으켜 현생에서 그에 응당하는 댓가, 즉 응보를 받게 된다는 논리다.
전생을 믿지 못하는 건 기억의 문제다. 즉,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생(現生)은 현세(現世)라고도 한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았기에, 지나온 과거의 반은 기억하고, 남은 미지의 반은 기억에 조차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세(來世)는 있어도 내생(來生)은 없는 것이 된다.
전생을 믿는다는 건, 곧 윤회(輪廻)를 전제로 삼는다는 것으로, 生이 돌고 돈다는 순환적 역사관을 뒷받침해준다. 한참을 이 생과 저 생으로 돌다보면 마침내 제자리가 되겠다.
용한 무당이 점을 보며 과거를 잘 맞춘다는 건 익히 다들 아시는 바이며, 미래를 점치는 일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린다. 미래는 아무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점 보는 일이란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부터 유추해 내는 일이니까.
어쨌거나 전생을 기억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과거로부터의 회귀나 환생에 대한 관심들이 많기에 소설이나 드라마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신비한) 현상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에.
일례로, 김용운 한양대 수학과 교수가 여러 책들을 냈었다. 깊이 있는 연구서도 아니고 맥락을 가진 수학사를 다룬 것도 아니고 흥미 위주의 에피소드로 얼기설기 엮은 책들인데,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교도소 담을 넘어 탈출한 죄수가 교도소로부터 멀어지려고 밤새 죽을 힘을 다해 달렸는데, 아침 햇빛에 보니 자기가 도달한 곳이 원래 출발한 교도소 앞으로 되돌아왔다는 일화다.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는 것이고, 사람은 본래 자기는 앞으로 직진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오른쪽으로 기울어서 걷는다는 것이고, 빨리 뛰면 오른쪽으로 회전각이 커진다는 것이다.
수학적 설명은 아니고 경험 통계상 그렇다는 것이고, 여기서도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순환론이 등장한다. 노자의 유명한 "반자, 도지동"이라는 도의 원리 설명도 이와 유사한 순환론이다. 전생에 악업을 쌓으면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는 뜻.
문제는 기억이다. 마치 '레테의 강'을 건넌 듯, 전생에서 현생으로 넘어오면서 모든 기억을 까맣게 잊는다는 것이다. 전생에서 쌓은 재물을 단 1도 가지고 넘어오지 못한다. 얼마만큼의 재물을 가졌었는지조차도 기억을 못한다.
그러니 현생에서 한없는 욕심으로 감당조차 못하는 재물을 얻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쌀 한 톨 조차도 내세로 가져갈 수도 없겠건만.
그러니 아마도 전생을 믿지 않기에 내세도 믿지 않기에 그리도 욕심을 부리겠지 싶다. 그 한없는 욕심에, 맹렬한 부지런함에, 부지런하게 살았다고 칭찬을 해줄까? 아니면 어리석다고 비웃어줄까? 그저 측은해 할 뿐이다.
만일 神이 있다면, 영혼이 불멸하는 것이라면, 그러지 말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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