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서 외 1편
강영희
만리나 가려는 향기는 너무나 진해
만리향보다는 천리향이라는 꽃집 주인의 넉살
두 손 앞으로 둥글게 모으는
너는 언제부턴가 공손한 식물학교 학생
칭얼대는 갓난아이 따윈 내 인생에 없어요
아이 대신 번쩍 들어
네가 껴안은 천리향 둥근 화분
나는 천리향 대신
어린 너를 번쩍 들어
천리향으로 키웠는데
초여름의 잎사귀들은 떫은 맛을 냈다
햇살이 열기구처럼 내려앉던 여름 지나
돌고 돌아 골목은 길섶 쑥부쟁이 잎에 가을을 부려놓았다
만리향보다는 천리향이야
천리향보다는 칭얼대는 갓난아이야
꽃집 주인의 넉살이 없는 나는
경쾌한 너의 확신을
단지 바라만 보고 있다
노고단 정상에서
어디를 둘러봐도
산, 산, 산
저 멀리 무등산
바로 앞 월출산
산은 마음이 두 개다
땅에서 멀어져 하늘에 닿으려 하고
하늘에서 멀어져 땅에 닿으려 한다
산을 닮은 사람들이
산의 마음을 밟고 올랐다가
산의 마음을 밟고 뿔뿔이 내려간다
어디에 모두 다
녹아들었을까 산은
길의 가닥가닥 모아쥔 손에 힘을 풀어보는데
내려가는 길이 조금 편평해지는데
한 번에 두 개의 길을 가지 못하고
한 번에 산의 두 마음을 밟지 못하고
압축된 한 획을 걷는 인생들이
노고단으로
무등산으로
월출산으로
-《심상》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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