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사랑이 있는 정말 아름다운 밤입니다! 2006.6.25.
멀리 부산에서 오늘의 행사를 위하여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수녀가 보내온 나태주님의 시 한 편을 읊으며 이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구석이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지구 한 구석이 아름다워졌습니다
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구석이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센추럴시티 6층 밀레니엄홀(이름 자체는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지만). 20일 늦은 6시30분. 장애우를 위한 뮤지컬 ‘With Love’ 기금마련 디너쇼가 열립니다. 한 테이블에 10명씩 모두 70테이블이 꽉 찼습니다. 성우(Voice Talent) 권희덕님이 기획하고 주관하는 행사인 듯 합니다. 오늘의 디너쇼는 21세기에도 ‘전설과 신화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 처음부터 끝까지 흐뭇하고 감동의 물결이 파도쳤습니다.
1998년도 KBS ‘야망의 전설’(최수종 채시라 유동근 염정아 출연)을 연출한 김영민PD가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시청률이 46%를 기록할 정도였고 김PD는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감독이었습니다. 2000년 7월 포상휴가로 받은 미국 두 달간의 여행 중 시카고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사를 오갑니다. 오죽하면 네 달이 넘게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으로 있었겠습니까. 요추 1번 흉추 18번 손상으로 인하여 뇌까지 손상되었다지요. 살아 있다는 것만도 기적이라고 합니다. 치료비 10억을 죽을 때까지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지요. 피눈물나는 재활훈련은 그를 결국 일어서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학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인간승리현장입니다. 비록 지팡이를 두 개나 짚으며 띄엄띄엄 걷긴 하지만, 머리만 온전하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불멸의 드라마 제작, 영화 연출을 목메이게 바랐지만, 아무도 그에게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김PD가 AD(조연출)시절, 당시 잘 나가던 성우 권희덕님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하여 찾아와 “한국 최고인 선생님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그 말과 맘이 기특하여 오랫동안 그 친구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고소식을 듣고 애를 태우다 살아남에 감사를 하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한 끝에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답니다. “김영민PD에게 일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게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 장애우들을 위한 뮤지컬 ‘with Love'를 만들 기금을 마련해 김영민PD에게 주자. 그 친구는 일을 해야 살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마련된 오늘의 디너쇼 ’New Love & With Love'입니다.
거의 1시간에 걸친 즐거운 저녁시간입니다. 입추의 여지없이 꽉 메운 넓은 홀엔 서빙하는 친구들만 해도 수십명입니다. 일사불란합니다.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자릅니다. 입장료만 해도 무려 15만원입니다. 말 잘 통하는 여기자와 단 둘이 이런 곳에서 식사하는 재미가 너무 좋습니다.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초대해준 후덕한 권희덕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습니다. 이해인수녀의 시 15편을 낭송한 CD집을 샀습니다.
권희덕이 누구냐고요? 20년은 안되었나요?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최진실의 CF, 그 목소리를 더빙한 ‘천의 목소리’을 가진 여자입니다. 3살부터 80살 할머니까지 목소리를 내는 데 언제나 자유자재인 여자. 잊을만하면 한번씩 ‘열린 음악회’에 출연하는 ‘가수’. 1976년 동아방송 성우로 출발하여 3000편이 넘는 CF, 1천편이 넘는 외화 더빙, 슈퍼보이스탤런트 선발대회를 만들어 수익금으로 심장병 어린이 11명에게 새 생명을 찾아준 여자.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보람된 일을 찾는 여자. ‘마음으로 듣는 시’ 1집부터 3집까지 낸 여자. 96년 한국방송대상 라디어 연기부문 대상을 수상한 여자. ‘목소리도 디자인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책까지 낸 욕심많은 여자. 최근에는 유학간 아들에 감화를 받아 종교를 가진 여자. 구약, 신약 전체를 두 달동안 낭송해 CD 100장에 옮긴 엄청난 여자. 문화, 예술, 방송, 기업계, 정계에까지 한두 사람만 거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여자 마당발’. ‘노사모’전에 이미 ‘권사모’(권희덕을 사랑하는 모임)의 주인공이 된 여자. ‘소리사냥’이라는 전문 스튜디어을 처음으로 차리고 CEO까?! ? 자처하고 나선 여자.
그가 있어 오늘이 가능했습니다. 김영민PD는 자기를 위하여, 자기에게 보람된 일거리를 주려고 오늘의 컨서트를 만든 권희덕님이 속으로 얼마나 고마울까요? 우정도 아니고 애정도 아니고 단지 인간적인 사랑 하나만으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그 이삭을 주워 ‘장애우를 위한 한국 최초의 뮤지컬 With Love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야망의 전설’에 이어 ‘김영민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당시 주연인 채시라씨가 여전히 고운 자태와 몸매로 단상에 올라와 김감독님을 꼭 붙잡고 그의 ‘병상일기’를 또박또박 읽습니다. 그 일기를 듣고 냉가슴인 사람은 정말 사람이 아닙니다. 황인용 아나운서도 편하게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모임의 사회를 본다는 게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김PD는 말합니다. “세상은 감사한 것 투성이”라고 말입니다.
채시라도 너무 좋아합니다. 대체 ‘S라인’ 몸매관리는 어떻게 하는 걸까요? 그리고 진짜 몇 살이나 됐을까요? 감독님과 다시한번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불러만주면 언제든 달려오겠다고. 김PD는 유머감각이 대단하더군요. “생각해보겠다. 심각하게 고려해보겠다”고 합니다. 황인용PD는 카메오출연을 자처합니다. 김PD는 “나중에 보자”며 거드름을 피웁니다.
이윽고 한국의 대표적인 장애인가수 ‘클론’의 강원래가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병원 동지’입니다. ‘쿵다리 사바라’를 휠체어춤을 추며 부릅니다. 강원래친구는 복이 정말 많더군요. 그의 옆에는 항상 사랑하는 아내 ‘김송’과 멤버이자 친구인 ‘구준엽’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강원래는 절망을 넘어 인간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이 밀레니엄홀은 강원래가 김송과 결혼식을 올린 자리라 하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친구 구준엽은 친구와 공연을 같이 하고자 휠체어춤을 1년동안 몰래 연습하여 친구앞에 나타났다지요. 들으면 들을수록 숙연해지고 감동적인 이야기뿐입니다. 세상은 이래서 살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앵커출신 박찬숙 국회의원이 한복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시를 낭송하고 대한민국 연극의 대모 박정자님도 이해인님의 시를 낭송합니다. 이정섭님은 특유의 기억력으로 한국 성우사(聲優史)를 읊어대고 김영민PD와의 에피소드를 공개해 뭇사람들을 웃깁니다. ‘전원일기’의 일용이 박은수님은 조용필의 ‘상처’를 열창합니다. 노래솜씨가 프로를 뺨칩니다. 세상에, 믿을 수 없게도 그가 올해 환갑이랍니다. 만년청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럼 사회를 보는 황인용님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언제적 이야기입니까?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젊게 살며 얼굴관리는 어떻게 할까요?
‘그때 그 여인’ 심수봉님이 나왔습니다. 매니저로부터 이 모임의 취지를 듣고 “그럼 가야지” 했다지요. 그도 어느덧 지천명이 되었답니다. 사랑만큼 소중한 덕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자기를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고 누구에게든 가서 벗이 되겠다”고 말하며 ‘백만송이 장미’를 부릅니다. 본인이야 힘이 들겠지만 듣는 사람들은 ‘어쩌면 저렇게 힘들이지 않고 노래를 잘 부를까’ 의아합니다. 그의 출연이 저로서도 고맙게 느껴집니다.
역시 세상은 ‘생각과 뜻이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거기다 바로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책속에 파묻힌 ‘책상물림’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정치인들은 진실로 뉘우쳐야 합니다. 좋은 일에 돈쓸 줄 모르는 ‘천박한 졸부’들은 눈을 떠야 합니다. 삶은 살면서 자기가 가진 특기로 베풀어야 합니다. 노래로, 시로, 연극으로... 정치로, 신문으로, 경제로도 세상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양희은처럼 편한 ‘가수’ 권희덕님이 아이와 함께 올라와 이해인수녀의 시를 김희갑님이 작곡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를 부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랩속의 의미도 만만찮습니다. ‘향수’보다 더 긴 시를 저렇게 아름답게 노래로 꾸미는 부르는 사람들은 마음도 따뜻하겠지요. 너무 좋았습니다. 3시간이 넘어가는 데도 지겹지가 않습니다. 장애우가 되고만 실력있는 젊은 후배에게 일할 자리를 주려고 만든 그미의 마음은 또 얼마나 예쁩니까?
역시 사랑이 최고입니다. 가수 김종환님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마무리를 합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모르는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손에 손을 잡고, 하트모양으로 예쁜 짓도 하면서 황인용, 권희덕님과 무대에서 연거푸 4곡을 부릅니다. 모두 모두 훌륭합니다.
이 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악몽을 핑계대고 오지 않은 아내가 약간 미워졌습니다. 감동의 여운이 집에 올 때까지 내내 따라왔습니다. 모모한 인사들의 멘트와 시 구절도 떠오릅니다.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지워주십시오. 우리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각도가 틀리면 모든 게 달라 보입니다” “세상은 감사한 것 투성이입니다”
역시 이해인수녀의 ‘새롭게 사랑하기’라는 시입니다.
우리는 늘 배웁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찾아내서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숨어 있음을,
물방울처럼 작은 힘도 함께 모이면
깊고 큰 사랑의 바다를 이룰 수 잇음을
오늘도 새롭게 배웁니다
우리는 늘 돕습니다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어버이 마음, 친구의 마음, 연인의 마음으로
성실한 책임과 친절한 미소를 다해
하찮은 일도 보석으로 빛내는 도우미로
자신을 아름답게 갈고 닦으렵니다
우리는 늘 고마워합니다
사랑으로 끌어안아야 할 우리나라, 우리 겨레,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이 곁에 있음을,
가끔 잘뫃가고 실수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과 용기가
우리를 재촉하고 있음을 고마워합니다
우리는 늘 기뻐합니다
서로 참고, 이해하고, 신뢰하는 마음에만
활짝 열리는 사랑과 우정의 열매로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나는 축복을,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은혜를
함께 기뻐합니다
우리는 늘 기도합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사랑을 거스르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걸림돌이 아니라
겸손한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말만 많이 하는 이론가가 아니라
묵묵히 행동이 앞서는 사랑의 실천가가 되도록
깨어 기도합니다
우리는 늘 행복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이 길에서
메마름을 적시는 자비의 마음,
어둠을 밝히는 사랑의 손길이
더 많이 더 정성스럽게
빛을 밝히는 세상에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
그래서 힘겨운 일들 우리에게 덮쳐와도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고 노래하렵니다
이웃은 사랑스럽고, 우리도 소중하다고
겸허한 하늘빛 마음으로 노래를 하렵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축복해주십시오
새롭게 사랑하는 기쁨으로
새롭게 선택한 사랑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
하얀 빛, 하얀 소금 되고 싶은
여기 우리들을...
그렇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이 길에서 새롭게 사랑하는 기쁨으로 여기 우리들은 같이 갑니다. 2007년 4월 김PD가 연출한 뮤지컬 ‘With Love'는 반드시 좋은 작품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김영민PD의 건강과 발전을 빕니다.
우천 합장
*그렇게 좋은 일을 하던 권희덕 님이 지난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여 한 편의 졸문으로 추모했습니다<http://cafe.daum.net/jrsix>. 이 사이트에서 ‘권희덕’을 검색하면 관련글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