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기자의 미인별곡
월간중앙에 이상국 기자의 미인별곡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자기가 관여하고 있는 것에 더 관심이 간다고 제가 월간중앙에 산행기를 연재하니까 더 월간중앙에 관심이 가고 애정이 갑니다. 보통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하면 교과서 크기에 두툼한 잡지를 연상하게 되는데 월간중앙은 크기도 일반 월간지 크기로 확대하고 기존 월간지들의 촌스로운 디자인과 편집에서 벗어나 산뜻하여 읽기에도 편합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내용도 알찬데, 그중에 저는 역사섹션을 재미있게 보고 있고, 또 그중에서는 이상국 기자의 미인별곡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1. 진옥과 정철
이번 12월호에는 전라 기녀 진옥(眞玉)과 정철 이야기가 나옵니다. 송강 정철이 55세에 평북 강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정철의 詩文을 사모하던 진옥이 찾아옵니다. 시인은 시인을 알아본다고 둘 사이에는 시담(詩談)이 오가겠지요. 이런 정신적 교감은 육체적 교감으로 나아가고 둘 사이에 오가는 걸쭉한 육담시(肉談詩)가 재미있습니다. 먼저 정철이 농을 겁니다.
옥이 옥이라커든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다듬지 않은 변변찮은 번옥인 줄 알았더니 진짜 옥이네!' 하면서 자기 살송곳으로 한번 뚫어보겠다고요. 이걸 보니 예전에 술자리에서 젓가락 뚜들기며 부르던 노래가사가 생각나네요. '앞산에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 뚫는데, 옆집의 00는 있는 구멍도 못 뚫네...' ^.^;; 진옥이 가만있겠습니까?
철이 철이라커늘 석철(錫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품질이 떨어지는 주석 부스러기인줄 알았더니 진짜 철이네!' 하면서 자기 골풀무로 흐물흐물 녹여주겠다고 하네요. 깔~깔~깔~~~ 유배가 풀린 후 이런 진짜 옥을 정철은 서울로 가져가고 싶으나 - 정철 부인이 직접 데려오라고 권했다네요 - 이제 인생에서 한창 빛을 발할 나이의 진짜 옥이 어찌 한양의 깊은 대감집 규방에서 갇힌 생활을 할 수 있겠어요? 진옥은 정철과의 짧은 사랑을 간직하며 홀로 살겠다고 하지요.
2. 부용과 김이양
9월호에 실린 평안도 성천 기생 부용과 함경감사 김이양의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김이양이 호조판서가 되어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부용을 기적에서 빼내 정식 부실로 삼고는 훗날을 기약하며 먼저 한양으로 갔죠. 그런데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애가 탄 부용은 피를 토하는 듯한 애절한 시를 써서 인편으로 보냈으니, 이것이 아름다운 '부용상사곡'이라는 보탑시(寶塔詩)입니다. 왜 보탑시라고 하면 2행마다 한 글자씩 늘어나 18자까지 되는 36행의 문자탑이기 때문이죠. 이를 전부 인용하면 너무 기니까 탑 꼭대기 일부만 보여드리겠습니다.
別
思
路遠
信遲
念在彼
身留玆
紗巾有淚
雁書無期
香閣鍾鳴夜
鍊亭月上時
依孤枕驚殘夢
望歸雲悵遠離
.......
어때요? 18글자 2단으로 탑 기단을 만들면 멋진 문자탑이 되겠죠? 이상국 기자가 부용과 김이양이 처음 만나 얘기하는 것을 적은 것도 좀 끈적끈적합니다. 서로 몸을 만지며 얘기를 하는 것인데, 어디를 만지며 얘기하는 것일까요?
김이양 : 너를 만져보니 벌써 봄날 물이 연못에 가득 찼구나(春水滿四澤).
부용 : 대감도 만져보니 벌써 여름날 구름이 삐쭉삐쭉 솟았습니다(夏雲多奇峰)
3. 매창과 촌은 유희경
부안 기생 매창과 천인시인인 촌은 유희경과의 사랑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지요? 이상국 기자는 10월에서는 이들의 사랑에 대해 다루었군요. 저도 언제 한 번 매창의 흔적을 찾아 부안을 가고 싶은데, 여기서는 촌은이 매창을 처음 만나며 쓴 시와 매창이 떠나간 촌은을 그리워하며 쓴 시 한편 감상하시죠.
남국의 계랑 이름 몇 번이나 들었네
시와 노래가 서울에까지 울려 퍼졌네
오늘 마주하여 진면목을 보게 됐도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닌지 어찌 의심하지 않으리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여라
4. 홍랑과 고죽 최경창
홍랑과 고죽의 사랑 이야기도 유명하지요? 고죽이 죽자 홍랑은 아예 자신의 얼굴을 긁어 다른 남자들이 흑심을 품지 못하게 하고 고죽의 묘 앞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지요. 그렇기에 고죽의 후손들은 고죽의 묘 옆에 홍랑의 묘도 같이 쓰고 지금까지도 같이 받들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기자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8월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별하면서 홍랑이 고죽에게 바치는 노래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예 시빕곳 나거든 나린가도 녀기쇼셔
이에 답하는 고죽의 노래
마주보며 흐느끼다 난초를 주노라
이제 하늘 끝 가면 언제 돌아오리
함관령의 옛노래를 부르지말자
지금 구름비 청산을 까맣게 물들였네
5. 소춘풍과 성종
성종은 조선의 문물제도를 완비하여 죽은 뒤에 성종이라는 시호를 받지만, 밤의 행사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습니다. 궁궐 담을 넘어가 어우동과 사랑을 나누던 성종은 나중에는 소춘풍과도 한바탕 어울리지요. 성종이 37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것도 낮에 그렇게 정사에 시달리면서도 밤에 쉬지 않고 또 그렇게 밤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한 원인일 것입니다. 이기자는 11월호에서는 성종이 소춘풍 찾아 월담하여 정사를 나누면서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성종 : 세상에 이런 천국이 있었다니... 나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일세
소춘풍 : 이서방님, 제가 드릴 말씀이옵니다. 큰일을 하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방면에서 큰일을 하셨을 분입니다.
성종 : 웅크리고 펼치는 것이 고양이처럼 날렵하구나.
소춘풍 : 연자방아 돌리는 힘 센 마소도 이토록 잘 돌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성종 : 내가 마소라는 말이지? 이서방보다 그게 더 멋지게 들리는구나.
6. 옥봉과 조원
6월호에는 옥봉과 조원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요, 이봉이 기생첩 초월에서 얻은 딸 옥봉이 7살 때 초승달을 보며 쓴 시는 과연 이 시가 7살짜리가 썼을까 할 정도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옥봉의 어머니 초월은 이봉의 하인과 염문을 뿌린다는 억울한 얘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데요, 옥봉은 초승달을 보면서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를 생각했겠지요.
곤륜산에 있는 옥돌을 누가 캐갔을까요?
솜씨 좋게 다듬은 반달 얼레빗
엄마와 헤어지고 난 뒤
근심에 미칠 듯하여 하늘에 내가 던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시재를 발하는 시인이었으니 옥봉의 시는 중국에서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부실 이옥봉’이 쓴 시집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네요. 이기자는 중국에서 이런 시집이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옥봉의 만괵시(萬馘詩, 만 사람의 귀를 베는 시)에 감동받은 한 왜인이 옥봉을 일본으로 납치하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옥봉은 ‘조선 선비 조원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이미 죽었소. 저 종이에 쓴 것들은 귀신이 흐느끼며 쓴 시들이오. 부디 저 시들로 내 몸을 산 채로 염해 한강에 던져 주시오.’라고 했답니다. 옥봉의 시에 감동받고 왔던 왜인인지라 옥봉의 소원대로 해주었는데, 이 나룻배는 한강을 떠내려가 황해를 건너 중국 용만에서 발견되었답니다. 그리고, 이를 발견한 중국인이 옥봉의 시신을 두른 종이를 풀어내어 시집을 냈다는 것이죠. 글쎄요~ 옥봉의 시가 워낙 유명하니 이런 전설이 생겨난 것 아닐까요?
7. 미실
이기자는 신년호에서는 요즈음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떠오르는 미실에 대해서 썼더군요. 미실이라는 인물은 정사에는 나오지 않고 화랑세기에만 나옵니다. 김부식이나 일연 스님이나 자신들의 붓으로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낯 뜨거운 미실의 행적을 글로 옮길 수 없었나봅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진흥왕 - 동륜태자, 진지왕 - 진평왕에 이르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왕가 3대에게 색공을 펼치는 천하의 요부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좀 그런데 유학자들의 눈에는 이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겠죠. 다음의 시를 보면 미실은 그때 그때 자신의 사랑에 충실했던 여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미실은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전선으로 떠나는 화랑 사다함을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아 불더라도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아 치더라도 임 앞에 치지 마라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야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그런데, 사다함이 돌아왔을 때 미실은 진흥왕의 동생 세종전군에게 가버렸습니다. 이때 사다함이 눈물을 흘리며 부른 노래 청조가(靑鳥歌).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물렀나
파랑새야 파랑새야 나의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 구름 위로 가버리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나 말지 또 갈 것을 왜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고 마음 상해 여위어 죽게 하는가
노래를 읊어보니 사다함의 애통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다함은 이런 애통함에 친구 무관랑의 죽음까지 겹쳐 친구가 죽고난지 1주일 만에 죽고 맙니다. 이기자의 미인별곡을 읽기 전에 이기자를 비롯한 월간중앙의 기자들과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자그마한 체구의 이기자에게서 이런 호탕한 미인별곡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미인별곡을 읽으면서 이기자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이기자는 조선시대 사랑을 노래한 일곱 시인에 대해 쓴 [눈물이 빗물처럼]을 썼고, 그 외에도 [옛공부의 즐거움], [추사에 미치다],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라는 책을 냈다고 하는데, 저도 사서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이기자와 함께 술 한잔 나누며 저자의 입을 통해 선조들의 연애비사를 듣고 싶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