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산방에서
강명신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이 어릴 때 살던 철원의 고가를 헐어 가져다 지은 집이다. 1946년 월북하면서 이 집을 두 누이에게 남겨주었다. 1988년 월북문인 해금 조치가 있기 전까지 이 집 이름은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1998년 누님 외손녀인 조상명이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겹처마에 기와를 얹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된 사철나무가 보인다. 2015년을 기준으로 수령이 70년이다. 지금은 그 나이 팔십이다.
앞뜰에는 비비추와 봉선화를 비롯하여 갖가지 꽃과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비비추는 아래부터 연한 보랏빛 꽃이 피다 보니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가녀리다. 다홍빛 미소를 머금은 봉선화 꽃잎들이 속삭인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꽃나무들 그늘 사이로 부레옥잠이 보인다. 네모난 돌확 안에 담겨있다. 사랑스럽다. 잘 다듬어진 여느 정원의 단아함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본채를 바라보니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건넌방, 오른쪽에 안방, 그리고 안방과 연결된 누마루가 보인다. 곳곳에 현판들이 걸려있다. 현판의 향연이다. ‘기영세가’(耆英世家), ‘수연산방’(壽硯山房), ‘죽간서옥’(竹澗書屋), ‘문향루’(聞香樓). 빛바래 희미한 현판들. 추사 김정희 서체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다. 보면 볼수록 빛을 발한다. 수연산방 뜻은 ‘오래된 벼루가 있는 산속의 집’이다. 상허는 이곳에서 대숲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누마루에 앉아 맑은 물소리 향기를 맡으며 살고 싶었나 보다.
댓돌을 딛고 대청마루에 오르니, 중앙에 걸린 가족사진이 눈길을 끈다. 6‧25 때 소실된 ‘상심루’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러 해 별러 초려(草廬) 한 칸을 지어놓고 공부할 책권(冊卷)과 눈을 쉬일 서화 몇 폭을 걸어놓고 상심루(賞心樓)란 현판을 얻어 걸어놓은 지 이미 7, 8년. 그러나 하루를 누(累) 없이 상심낙사(賞心樂事)한 적이 별로 없다.” <난(蘭)>중에서
상심낙사를 꿈꾸며 지은 초려 앞에서, 아내 이순옥과 5남매와 함께 사진을 찍는 상허 입가엔 즐거움이 머물러있다. 다른 한쪽 벽면에는 월북 후, 1950년 1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정부 인사와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상심루 앞에서 찍은 사진과는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이다. 무표정 뒤에 감추어진 진실은 무엇일까. 회의(懷疑)에서 비롯된 슬픔일까.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두 장 흑백사진 속에는 삶의 “정말 즐거움”과 “정말 슬픔”의 표정이 깃들여져 있는 것 같다. 그의 생애에 즐거움의 시간보다 고통의 시간이 훨씬 길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벽면에 기대어 서 있는 고가구 탁자 위에 명예졸업패가 놓여있다. 그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1994년에 휘문고에서 수여한 졸업장이다. “1904년 11월 4일생인 이태준이 1921년 4월 휘문고교 전신인 휘문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1924년 6월에 중퇴하였으나, 1925년 7월 소설가로 등단한 이래 1930년대 한국 문단을 실질적으로 이끌었고, 후진 양성은 물론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한국 현대문학을 빛냄과 동시에 모교 명예를 드높였다.”라는 내용이다.
건넌방으로 안내되었다. 누마루에서 마셔보고 싶지만, 세 사람 이상이어야 앉을 수 있다. 메뉴가 다채롭다. 문경 오미자차, 진심말차, 인삼마차, 발효황차, 유기농청차, 유기농백차, 지리산 야생유기농 작설차, 구기자국화차 …. 문경 오미자차 맛은 오묘하다.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매운맛이 하나로 빚어낸 오묘함. 곁들여 나온 유과와 어우러지니 그 맛이 일품이다. 차향을 음미하며, 가슴에 품고 간 《무서록》을 순서 없이 읽는다.
“내가 조선집을 지음은 이조 건축의 순박, 중후한 맛을 탐냄에 있으리라. 그런 전통을 표현함에는 돈보다 일에 정을 두는 이런 구식 공인(工人)들의 손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임으로 ……중략…… 이들의 손에서 제작되는 우리 집은 아무리 요새 시쳇(時體)집이라도 얼마쯤 날림기는 적을 것을 은근히 기뻐하며 바란다.” <목수들> 중에서
상허가 공들여 지은 수연산방.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했던 공간에서 《무서록》을 읽으니, 고고한 선비 모습이 읽히는 듯하다. 오늘 하루, 누(累) 없이 상심낙사하였으니 나도 행복한 사람이다.
이조 건축의 순박함과 중후한 멋이 깃든 조선집을 지어놓고 당호를 ‘수연산방’이라 하였는데, ‘오래된 벼루’는 보이지 않는다. 경쾌한 쇳소리 나는 돌로 만든 벼루였을까. 아니면 도자기나 옥, 은, 동, 철, 나무 등으로 만든 벼루였을까.
좋은 벼루에 먹을 갈면, 먹이 곱게 갈리면서 먹물에 윤기가 난다. 내가 노경(老境)에 접어들어 만난 상허 문학은 크기를 잴 수 없는 거대한 수연이다. 그 위에 나의 상념 조각들을 곱게 갈면서, 천천히 익어가며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상심낙사(賞心樂事) : ‘마음으로 감상하는 즐거운 일’이란 뜻이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南朝)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천하에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 이 넷은 아울러 갖기 어렵다(天下良辰美景賞心樂事, 四者難并)”라고 한 말에서 기원한다.
- 강명신 수필가
브런치 작가
에세이강남문학회 회원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문화예술위원
첫댓글 섬세하게 잘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