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 조미숙
일요일 밤이 되도록 무엇을 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가진 것도 없고 재능도 모자라 늘 자격지심에 시달리다 못해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질투의 화신인데 쓸거리가 없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막막할 때는 각종 핑곗거리를 찾아본다. 그냥 쓰지 말까?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며 다들 이렇게 멋지게 쓰는데 나만 처지게 될까 봐 자판을 두드린다.
어제는 오랜만에 주부의 역할을 다했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시장에 다녀왔다. 지난번에 제철인 갈치를 한 짝 사다 냉동실에 나누어 두고서 하나씩 잘 꺼내 먹었다. 이번에도 병어 철인 것 같아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비싼 횟감용만 많이 보였다. 그냥 조림해 먹으려고 여섯 마리에 3만 원 하는 것을 샀다. 열무김치 담을 재료와 머윗대 한 다발과 적양파 두 덩이를 샀더니 짐이 산더미다. 사장님께 차까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나머지를 양손 무겁게 들고 따라갔다.
딸과 차에서 짐을 옮겨 놓으니 거실에 가득하다. 먼저 육수 재료를 준비해 가스 불에 올려놓고 열무와 얼가리를 다듬었다. 한 단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잔 것을 숨겨 놓았고 다른 것은 안과 밖이 고르게 굵다. 다 다듬고 나니 허리가 뻐근하다. 소금물을 내어 뿌리고 양념을 준비했다. 삶은 감자와 빨간 고추와 양파, 사과, 배 여기에 새우젓을 넣어 갈았다. 양념을 섞다 보니 감자가 조금 덜 갈렸다. 그래도 그냥 버무렸다.
열무가 절여지는 동안 머윗대 껍질을 벗겼다. 사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시장 모퉁이에서 삶은 것을 샀는데 김칫거리 파는 데서 머윗대를 삶아 말려 두고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덜컥 만 원 주고 한 단을 또 챙겼던 것이다. 처음에는 통통해서 벗기기 쉬웠는데 시간이 흐르니 죽을 맛이다. 여러 번 분질러서 까고 또 그것을 가늘게 갈라서 삶아야 한다. 그래야 삶는 시간도 절약되고 말리기도 쉽다. 한 시간 반을 꼬박 바닥에 앉아서 하고 나서도 큰 냄비가 없어 삶는 데 시간이 또 걸렸다.
김치를 담고 나서 내가 매일 쓰는 교재를 두는 곳을 정리하고 청소기도 돌렸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옷을 구분해서 봄옷은 집어넣고 여름옷을 전부 꺼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많다. 그래도 해마다 입을 게 없다고 투덜거린다. 헌 옷이 환경 쓰레기로 문제가 된다고는 하지만 아직 생태적인 삶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한숨을 토하고 나니 어느새 손목은 쑤시고 몸은 녹초가 된다.
5월부터 오전 유아 숲 체험 지도를 시작했고 지난주부터는 교육청에서 기초 학력 부진 아이들을 만나는 오후 일이 이어지고 거기에 세 군데 지역아동센터에서 전래놀이까지 해야 해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 같다. 아이와 내 일정이 맞지 않아 하루에 세 군데 학교를 돌고 나서 지역아동센터에 간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는 하지만 주차난에 허덕이며 정신없이 뛰어야만 소화해 낼 수 있다. 나름 생각해서 한 학교에 세 명을 준 곳도 있지만 형편이 맞지 않으니 발에 땀이 나야 한다. 무리가 돼도 끌고 나갈 수밖에 없다. 애써 배정해 준 일을 거절하기도 난감하다.
주중을 이렇게 보내야 하니 이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주말에는 등한시했던 집안일도 해야 한다. 물론 완벽한 커리어우먼을 꿈꾸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흉내는 내야 하기에 마음이 몹시 바쁘다. 오랜만에 나도 누군가의 질투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이 많은 것이 자랑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면 기쁘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인지 의구심이 든다. 일이 없어서 일복이 터진 이들을 얼마나 질투하고 시기했던가? 난 왜 능력도 행운도 없는지 비교하다 보면 어느새 우울해진다. 또 그걸로 내가 욕심만 많고 그릇이 작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런 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해야 하는데 또 그렇지 못하다.
바빠도 가능하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천아트도 토요일로 옮기고 운동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사실 피로에 절어서 그냥 눕고만 싶은데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고 즐겨하는 운동인데 그것마저 손을 놓으면 난 평생 질투만 하다 끝날 것 같다. 나도 남과 다르게 꾸준히 노력해서 한 가지라도 남의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를 받아야 할 것 아닌가? 건강하려고 운동한다는 미명 아래, 이거라도 내세우려는 마음이 더 큰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김치 담는 것도 취미라고는 하지만 밑바탕에는 그런 점이 있지 않을까? 너무 다른 사람 잣대에 눈치를 보고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란 존재가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 어찌할거나? 나를 더 단단히 키울 수밖에.
첫댓글 글만 읽어도 선생님 바쁘신 게 느껴지네요. 토닥토닥.
아이 키우기가 더 바쁘죠.
고맙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사시면서도 글도 쓰시고 대단하십시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조 선생님은 지금 잘 살고 있어요.
어느 날엔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고 말할 수 있는 느긋한 시간이
올 겁니다. 선생님 글은 늘 좋습니다.
선생님 글이 더 좋아서 항상 부러워합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질투 응원합니다. 역량이 날로 커져가시는 선생님 부럽습니다. 화이팅!
고맙습니다. 힘 낼게요
선생님의 글솜씨를 제가 부러워한답니다. 충분히 질투해도 될만큼요.하하.
하하! 고맙습니다.
일할 수 있을 때가 행복한 시간입니다. 없을 때를 생각하면 그게 더 힘든 시간이더라구요. 열심히 사는 조미숙 선생님 항상 응원합니다.
우와, 만능이시네요. 글도 잘 쓰시고, 부럽습니다.
선생님 하시는 일이 다 대단해서 질투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숲에 가면 나무, 꽃, 새 등 모르는 것이 없고, 김치도 맛있게 잘 담그고, 음악에 맞춰 운동 동작도 잘 따라하고, 전래 놀이 지도까지 저는 못하는데 선생님은 잘 하는 것들이 많아 부러워요. 저 질투하는 것 너무 표 났나요?
재주 많은 조미숙 님을 저는 질투합니다.
기초학력, 숲 해설사에 글 쓰는 여자에다 천아트까지.
충분히 멋지지 말입니다.
곧 작가가 되실 분도 글쓰기 고민을 하는군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