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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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 이 왕가에 악생(아악생)양성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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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완공
뉴욕주의 재원으로 1929년 기공식을 치르고 14개월 만인 1931년 4월 30일, 뉴욕 맨해튼 34번가에 102층ㆍ381m 높이의 엠파이어 스테이트(이하 엠파이어) 빌딩이 준공됐다.
이 건물은 1년 전에 지어진 319m의 크라이슬러 빌딩을 제치고 세계 최고(最高) 빌딩 자리에 올라 1973년 뉴욕에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세워질 때까지 40여년간 세계 최고 마천루(摩天樓)의 영예를 이어갔다.
엠파이어 준공식은 후버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전원스위치를 눌러 빌딩 전체에 불이 들어오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라디오는 그 순간을 미 전역에 생중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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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안창호, 윤봉길 의거와 관련 혐의로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검거됨 🌱38년 양기탁, 중국 강서성에서 죽음(1871∼) : 독립 운동가·언론인. <대한매일신보> 창간. 🌱44년 임시정부, 임시헌장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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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 애인 브라운과 함께 집무실에서 자살
1945년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 아내와 함께 자살
나치스의 지도자이며 인류역사상 가장 끔직한 전쟁을 유발시킨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1945년 4월 30일 패전이 분명해지자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이틀 전에 결혼한 그의 애인 에바 브라운도 그 옆에서 음독자살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가 세운 독일 제3제국도 인류에 고통 만을 남겨둔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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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국회통과, 개성지사' (9월28일) 인천지사' (10월1일) 조직완료. 🌱50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국립극장 개관 🌱57년 2차대전의 한국인전범, 일본동경에서 전원석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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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 정부, 가톨릭계 야당지 경향신문에 여적 필화 사건으로 폐간 명령 4.19혁명 이후 복간됨
1959년 4월 30일, 이승만 정권, 경향신문 폐간명령
경향신문은 자유당 정권에 대해 어느 신문보다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국민들에 대한 영향력이 높았을 뿐 아니라 자유당의 정적(政敵)인 민주당 장면을 지지하는 당파성을 가지고 있어 ‘야당의 대변지’로 불릴 정도로 정부 비판 논조의 기사를 실었다. 정부는 당시 가장 격렬한 야당지였던 `경향신문`에 대해 미군정법령 88호를 적용해 1959년 4월 30일에 폐간명령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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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미곡 4만톤 일본에 수출 확정 🌱75년 김종필 총리, 지스카르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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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월남정부, 공산측에 무조건항복, 베트남전쟁종결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 월남 패망
베트남 전쟁은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되었다. 닉슨의 국가안보 자문이었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ger)는 북베트남의 레득토(Le Duc Tho, 1911-1990)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해 8월 합의에 도달한다. 그러나 북베트남이 협정내용을 공표하자 닉슨은 북베트남이 기문전술을 사용한다고 비난하면서 협상을 중단한다. 이후 1972년 12월 18일부터 29일까지 하노이와 하이퐁을 무차별 폭격하였는데 이로 인해 북베트남은 경제에 큰 타격을 입고 다시 협정에 나오게 한다.(중략)
4월 30일 아침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군이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을 3개 방면으로부터 진공해 들어가자 오전 10시30분 남베트남 대통령 두옹 반 민이 무조건항복을 결정, TV를 통해 정부군 병사에게 전투 중지를 명령했다. 오전 11시, 소련제 T-54 전차가 대통령궁의 철제문을 박차고 들어와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두옹반민 대통령을 체포했다.
정오가 조금 지난 12시 45분, 월맹군 병사와 여성 베트콩 게릴라가 국기 게양대에서 월남 국기를 끌어내리고 임시혁명정부 기를 게양했다. 사이공 거리에서는 베트콩들이 메가폰을 잡고 “사이공은 해방됐다”고 목청껏 외쳐댔다. 이로써 30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고했다.
그 시각 미국으로의 망명을 거부하고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우던 베트남군 제2군단장 반푸 소장, 제4군단장 웬꼬아남 중장, 특별부대장 반또 소장, 제5사단장 레웬비 준장, 제7사단장 웬반하이 준장 등 5명은 권총 자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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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내무부, 매월 마지막날을 반상회 날로 지정
▶1976년 매달 말일을 반상회날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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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정부, 12해리 영해법 공포.발효(대한해협은 3해리로 규정) 🌱83년 국제의원연맹이사회(헬싱키), 제70차총회 서울서 개최키로 확정 🌱84년 남북한체육회담 재개되었으나 성과 없이 끝남 🌱86년 전두환대통령, 노태우민정당대표. 이민우신민당 총재. 이만섭 국민당 총재등 3당대표와 회담 🌱86년 올림픽공원(50만평, 6개경기장. 회관등) 완공 🌱87년 노동부, 86년 산업재해사상자는 142,000여명 으로 집계 🌱89년 세계노동절 100주년기념 한국노동자대회」 (여의도),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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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여사별세. 향년 88세.
1989년 4월 30일,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의 미망인 이방자 여사 별세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왕(영친왕) 이은의 왕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 4월 30일 창덕궁 내 낙선재에서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여사의 죽음은 파란 많은 조선왕조 5백년 역사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왕녀로 태어나 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로 눈을 감은 이방자 여사의 88년 인생은 이 여사가 평소 즐겨쓰던 문구처럼 ‘대공무아(大公無我)’ 한 것이었다.
이방자 여자(李方子, 마사코, 1901년 11월 4일 ~ 1989년 4월 30일)는 메이지 천황의 조카이자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 守正)와 그의 부인 이쓰코(伊都子)의 2녀 중 장녀로 토쿄에서 태어났다. 결혼 전의 이름은 나시모토 마사코 (梨本方子)였다.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이마사코가 되었고 한국식 발음으로 이방자이다.
1989년 4월 30일...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의 미망인 이방자 여사 별세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비, 의민황태자(영친왕)비 이방자 여사 영결식.
일본인으로 태어나셨지만 한국인으로 살아가신 이방자 여사. 極樂往生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