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는 시의 중요한 특질중의 하나이다. 시는 설명하지 않고 묘사를 통해 보여주는 것으로써 사건과 정황을 드러낸다. 물론 시인의 감정 개입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정서적 거리라 부르는 미적 거리가 달라진다. 시인의 감정이나 사고가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경우 미적 거리가 가까운 것이고 감정개입이 적을수록 미적 거리는 멀다.
시인의 정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주관 묘사라고 하며 감정개입이 없는 경우를 객관 묘사라고 한다. 주관 묘사의 경우 표면적으로 시인의 감정 개입이 없는 듯해 보이지만 시를 읽어보면 모든 정황판단이 시인에 의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김기택의 [재채기 세 번]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재채기 세 번 / 김기택
가날픈 몸에서 그렇게 우렁찬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늘 시체처럼 조용하던 그가 소리 내어 웃는 일조차도 거의 없던 그가 발자국 소리가 없어 옆에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던 그주변 사람들이 다 놀라도록 그렇게 박력 있게 포효할 줄은 몰랐다 이 느닷없는 천둥소리와 함께 그의 입과 코에서는 세차게 침방울 콧물이 튀어나왔으며 단전에서 품어져 나오는 폭풍의 힘에 밀려 눈물은 눈알을 밀어낼 듯 쏟아져 나왔으며 역류한 피는 일시에 얼굴과 눈을 벌겋게 덮었으며 허리는 쓰러질 듯 기역 자로 꺾이었다
재채기 세 번,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5초가량의 폭풍이 휩쓸고 간 그의 몸은 잠시 그 여진을 견디느라 부들부들 떨긴 하였으나 다시 시체처럼 조용해졌다 벌겋게 달아올랐던 얼굴도 곧 하얘졌다 주위를 제압하던 공기도 바로 안면을 바꾸었다 두 눈은 이렇게 큰 소리가 나온 제 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잠깐 휘둥그래졌다가 좌우로 눈동자를 굴려 본 후 이전처럼 작아지고 무표정해졌다 별게 사람을 다 놀래킨다는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노려보다가 참는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관찰력과 묘사력이 뛰어난 김기택은 시 [재채기 세 번]에서 재채기를 하는 사내의 인상이나 표정과 주변의 반응에 초점을 맞춰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항상 없는 듯 조용하기만 하던 소시민인 그가 폭풍 같은 재채기 세 번으로 잠시 그의 존재를 드러냈다가 멀쑥해져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이 희극적인 시속에서 시인은 소시민의 내적 풍경을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이 시에서 정황 묘사는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독자가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또한 언 듯 보면 시인의 감정 개입이 적은 듯하지만 모든 상황에 시인의 판단과 시각이 개입되고 있다.
단단한 뼈 / 이영옥 *2005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작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이영옥의 [단단한 뼈]는 냉정한 객관묘사로 시종일관한다. 시인은 묘사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 한 치의 감정개입이 없는 이 시의 객관적 묘사는 죽음을 더욱 비극적이게 한다. 이영옥은 의도적으로 현대의 소외된 삶과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냉정한 정서적 거리를 선택한다. 어설픈 감정의 표출보다 냉정한 묘사가 시적 전략으로 성공한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