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상태를 보려고 송광사로 간다.
11시에 도착했으니 서두르면 선암사의 꽃도 보고 올 수 있겠다.
청량각을 지나는데 보살님이 내려오며
"공양이 11시 20분 부터이니 점심들고 가세요!" 한다.
부지런한 절사람들은 그 때쯤이 점심이겠지만 아침을 8시에 먹은 난 아직 아니다.
절밥을 먹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걸어 보리밥집에 가 막걸리에 먹는 것이 내겐 낫다.
실은 맨입으로 절밥 얻어먹을 염치가 없는건지도 모른다.
홍매는 피어 져 가는데 영광루 앞의 산수유는 아직은 활짝 피지 않았다.
대웅보전 앞의 매화는 아직이다.
범종루 아랠 지나면서 월간 송광사와 무료 보시 책을 줍는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에서 나온 불교학보 제2집은 1964년 간이다.
불교학자와 스님들의 논문이 한자가 섞인 작은 활자본인데 읽어지려나 모르겠다.
한국불교학 제 115집은 2025년 8월간이다.
1997년 1월호 불교춘추도 든다.
월간 송광사 3월호는 더 얇아졌고, 통도사의 축산보림은 두툼하다.
문화재가 되었다는 침계루를 보고 산길로 접어드니 11시 30분이다.
바람없지만 삽상한 기운이 감도는 숲은 상쾌하다.
겨울 숲은 정갈하고 가지들은 차가운 하늘에 손을 내밀어 흔들리면서 안으로 더 깊어지는 지 모른다.
겨울산의 조망을 보거나, 아직 가시들이 날뛰지 않은 산길을 걸으려면 요 시기에
더 산에 가야하는데 갈수록 게을러진다.
하긴 꼭 산에 가야만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도 억지다.
아직 꽃은 보이지 않는다.
송광굴목재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멧돼지가 목욕한 흔적이 있는 물이 질척이는 곳에 다가가 동의나물 싹이 났다 봐도 안 보인다.
앞에 한 젊은 여성이 나의 인기척을 내고 달리듯 빠르게 내려간다.
산길에서 모르는 남자가 따라오면 겁이날까 이해하며 말을 걸까 하다가
그도 또 겁나게 하는 일일지도 몰라 간격을 두고 따라간다.
12시 40분이 지나 조그만 화단에 노란 서양꽃이 피어있는 윗보리밥집에 닿는다.
막걸리 반되에 보리밥 하나를 14,000원을 결재한다.
막걸리를 따뤄놓고 절에서 넣어 온 책을 뒤적이며 밥을 먹는다.
느긋하게 밥을 다 먹어가는 사이 한 사나이가 부억으로 들어가며 도토리묵과 보리밥을 시킨다.
도토리묵이 많을텐데 하고 있는데 같이 먹자 말을 건다.
난 다 먹고 선암사에 가려는데 같이 먹자하니 그러자 한다.
막걸리를 한잔 드리니 내 먹을 것이 부족하다.
막걸리 반되를 더 사 온다.
그는 순천이 고향인데 이 산은 처음이란다.
고향 친구들에게 물어 윗 보리밥집을 소개 받았단다.
명함을 주시는데 경기 안산의 어느 교회 장로이며 17대 국회의원 경력도 있다.
시민운동하다 시민추천 몫으로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을 했다는데 이름을 들은 듯 만듯하다.
한달 중 20일은 캠핑카로 떠돌며 10일은 집에서 지낸다 한다.
캠핑카 타고 고향 부근이나 시골 마을 다니기 어색해 르노 마스터를 개조했다 하신다.
상사 초곡 출신으로 중학교 졸업 후 서울가서 여러 일을 해 보았다 한다.
박사이며 대학원도 3개를 다녔다 하고, 학원에서 행정법 등을 강의하여 돈도 벌었다 한다.
돈이 있어 부인이 자식에 투자를 많이 하였으나 게임중독에 빠졌다는 애기도 하신다.
TV에도 여러번 출연했다한다. 할 애기가 많은 분과 앉아 있다보니 선암사 갈 길은 포기한다.
그는 장군봉에 천천히 들러가겠다 해 나도 장박골 골짜기를 따라가다가 연산봉 사거리 입구에서 헤어진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내려오며 미안하다고 한다.
봄이니 더 싱그럽게 들리는 암반 사이의 물줄기를 지나 연산사거리로 오른다.
길을 가로막는 썪은 나무들을 넘어 긴 길을 내려온다.
출입금지라는 폭포에 들러 내려가는 물줄기를 보고 온다.
템플 스테이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다시 송광사 안으로 들어간다.
많은 전각들은 두고 매화 보오리와 산수유 노란 꽃을 보고 우화각 아래 돌다리를 건넌다.
비림에 들어가 다송자 금정보명 스님인가의 비를 찾는데 안 보인다.
광원암 뒷쪽이라고 했던가?
염재와 성당의 글씨를 보며 그들의 하나로 집중하는 모습에 날 반성한다. 해 봤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