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없는 여자
아내가 심각한 복통 때문에 찾았던 병원에서 쓸개(담낭 : gallbladder) 절제 수술을 받았다. 쓸개 없는 여자의 지아비가 된 심사는 묘한 느낌으로 편편치 않다. 통증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혼란에 빠져 일각이 여삼추 같이 길었던 불안의 연속이었다. 몇 십 년 동안 똑 부러지게 아이들 건사하고 손주 잘 키웠으며 지난 섣달에는 새 아파트를 매입해 무사히 이사까지 하고나서 그에 따른 보상을 잘못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던 이사 뒤 끝에 몸살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며 며칠 호되게 앓다가 벼랑 끝으로 몰려 움치고 뛸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꼴이 되어 진동한동 응급실로 향했었다. 무지몽매함 때문이었을 게다. 단순히 위염이나 위경련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검사가 잇따르면서 중병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잔뜩 움츠러들고 혼란스러웠다. 최종 검사결과는 쓸개(膽囊)에 생긴 돌(담석)이 원흉으로 판명되었다. 이 담석 때문에 간(肝)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아져 그를 다스린 다음에 쓸개 절제 복강경 시술을 했다. 그런 연유로 첫 입원일로부터 23일 만에 쓸개를 절제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며칠이나 더 기다려야 퇴원할지 어림짐작도 할 수 없다.
지난해 섣달 중순(12월 16일) 했던 이사와 그 뒷마무리에 무리가 따르면서 된통 몸살을 앓는 것쯤으로 여겼었다.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던 아내가 경자년 정월 첫 금요일(1월 4일) 외출에서 돌아오면서 온 몸이 쑤시고 간헐적으로 몰려오는 통증과 오한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며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별일 아닐 것이라고 예단하고 집에 있던 감기약을 복용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되어 주말 내내 식음을 전폐한 채 끙끙 앓았다. 그리고 월요일(1월 6일) 아침 약간 좋아지는 것 같다면서 동네의 단골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으며 링거까지 맞고 돌아왔다.
진정되기는커녕 병증이 되레 극도로 심해져 오후에 서둘러 종합병원을 찾았다. 소화기내과에서 진찰을 받고나서도 통증이 지속되어 화급하게 X-Ray,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마치면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즉각 입원 조치했다. 이튿날인 화요일(1월 7일)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CT촬영을 했다. 그 결과가 오전 중에 나왔다. 위(胃)는 지극히 정상인 상태로 판명되었다. 그렇지만 쓸개에 커다란 돌(담석)이 생긴 것으로 판독되어 소화기내과에서 외과로 옮겨져 병동(病棟)과 입원실을 바꿔야 했다.
주치의(主治醫)의 말이다. 당장 수술을 해주고 싶단다. 그러나 쓸개에 생긴 담석으로 인해 간에 문제가 생겨 당장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향후 치료를 통해 정상으로 수치를 낮춘 다음에 수술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간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대충 2~3주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수술은 이달 말경쯤이 되지 않을까 라고 예측했다. 한편 입원 셋째 날(8일)에는 레이저를 이용해 담낭에 호스를 꽂고 담액(膽液)을 빼내는 시술을 하여 오른쪽 옆구리에 비닐 팩(pack)을 차고 있다.
입원한지 열흘 되는 날(15일) 담액을 빼내는 비닐 팩을 찬 채로 임시 퇴원을 했다. 입원을 계속해도 특별한 치료가 없기 때문에 일단 귀가하여 집에서 병원의 처방에 따라 가료(加療)하다가 일단 그 다음 주일 월요일(20일) 외래로 접수해 상황을 점검했다 그 결과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28일) 재입원하여 그 다음날(29일) 핵심적인 시술인 쓸개 절제를 했다. 강낭콩 정도의 담석 3개를 적출해냈다. 담석이 엄청나게 커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CT촬영 결과 자궁 쪽에 미심쩍은 이상 징후가 보인다는 소견에 따라 산부인과에서 초음파검사를 비롯하여 만약을 위해 암 검사도 추가로 받았는데(30일) 결국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정 되었다*.
담석증도 유전인가? 장인어른이 지금 아내 나이 정도일 때 담석 제거 수술을 했었다. 그 당시 둘째 사위인 내가 수술비를 전액 부담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공교롭게도 친정아버지처럼 담석 문제로 끙끙 앓는 아내 모습에서 그 옛날 장인어른이 데자뷰(deja vu) 되었다.
병명과 대응 과정은 이미 정해진 셈이기에 지루한 시간과 밀당을 해야 하는 싸움이 연속될 뿐이다. 도저히 회피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마음 편히 먹고 현실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보상을 신청했다가 잘못되어 엉뚱하게 병원으로 휴가를 온 것으로 여기자고 했다. 긍정의 에너지 때문인지 시술로 유발되는 통증을 비교적 쉽게 극복했을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얼추 평온을 되찾아 가고 있다. 그럴지라도 쓸개 없는 아내와 입원실에서 마주보고 앉아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쓸개 없는 여자라니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아내의 입원으로 손주를 제대로 보살필 여력이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내 문제에 매달리는 까닭에 유진이에 대해 제대로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내가 집에 붙박이로 머문다면 아내 대신 식사문제나 외출 채비를 야무지게 챙겨 줄 수 있을 터인데. 또한 집안의 청소는 아예 포기했다. 그 뿐이 아니다. 음력으로 섣달 열이레 날(11일)은 내 일흔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생일잔치는 고사하고 삼시 세끼도 거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아울러 설날(25일)에 간신히 떡국만 끓여놓고 차례를 모시는 시늉만 내는 불경죄를 자청했다. 제수를 장만할 사람이 없어 택한 차선책이었지만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큰아들이 고등학생이고, 작은아들이 중학생일 때의 일이다. 그해 여름 아내는 지인들과 함께 한 달 가까이 유럽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두 아이의 교복(하복)을 깨끗이 빨아서 입히고 도시락도 매일 4개(두 아이의 점심과 저녁용)씩 싸주면서 내가 맡았던 일도 너끈하게 해냈다. 그런데 이번에 아내가 입원하면서 거기에 모두걸기를 하다 보니 가정사가 엉망진창이다. 손주에 대해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가 하면 내 생일은 아예 건너뛰었고 설날 차례까지도 엉터리로 얼렁뚱땅 모셨다. 한마디로 모든 게 뒤죽박죽으로 뒤틀어져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으로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다. 평상시에 아내의 소임을 사답잖게 여겼던 잘못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되지 싶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경험을 통해 어쩌면 내가 조금 더 철이 들지 모른다는 객쩍은 생각에 쓴웃음이 절로 났다. 그리고 드러내 놓고 내색을 않지만 아내가 일각이라도 빨리 퇴원해서 자기 자리로 귀환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뿐이다. 왜냐하면 아내의 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하거나 함부로 폄하할 수 없이 크고 막중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니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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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이번에 1차로 1월 6일 ~ 15일까지 10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하여 간의 수치가 내려가도록 기다린 후에 다시 2차로 1월 28일 ~ 2월 5일까지 9일 동안 입원해 수술 및 치료를 받고 퇴원함으로써 모두 19일을 입원했으며 병과 지루한 드잡이는 자그마치 한 달을 훌쩍 넘긴 셈이다. 한편 1, 2차 병원비 총액은 9,993,657원이었다. 이 중에서 의료보험공단 부담액을 제외한 환자개인부담액은 3,867,579원으로 만만치 않았다.
2020년 2월 1일 토요일
첫댓글 쓸개없는 여자와 사는 것이 아니라.
쓸개없이도 살 수 있는 여자와 사시는 것이니
어찌보면 한 층 업그래이 한 삶이지 싶습니다.
앞으로
교수님과 사모님 삶에 꽃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싱그런
아침만이 연속이기를 기원합니다.
교수님 사모님께서 편찮으셔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내의 자리가 그런가봅니다
평소엔 티가 나지 않아도 몇 일만 없어도 모든이들이 불편해 하는..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건가 봅니다.
사모님의 빠른 쾌휴를 빌어봅니다.
속히 쾌차하시길바랍니다~^.~
저도 담석수술 서울아산병원에서
염증 간수치가 높아서 파티마병원에서 서울아산병원에
후송되어 개복수술을 했답니다~
계란크기만한 사리?를 빼내고
살이 좀 빠지더니 지금은 살이 더 찌고 잘 먹어요~~
2년전에 새벽에 통증이 심해..
그래도 담낭암으로 가기전이라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보험이 가입되어있어 큰 보험금으로
유비무환했답니다~~
쓸개가 없어도 향후에는 아무 이상없으니 안심하셔도됩니다~
예쁜사모님 속히... 쾌차하시길바랍니다~~⚘🌷
교수님 수고많으십니다 ^^
글속에 아내에 대한 애틋함이 넘치는것 같습니다 ~
그렇게 ~~~
사랑은 물들어 가는군요~^^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ㅡㅡ
<마님운동과 머슴운동>에 이어
사모님과 관련된 수필을 두 번째 접합니다.
"쓸개 없는 여자"와 사신다고 농담으로하신 말씀이 이렇게 멋진 수필 한 편으로 탄생이 되네요
큰 일을 겪으시고도 담대하셨고, 따뜻하고 긍정적이셨던 교수님을 존경합니다.
사모님 병간호하신다고 너무나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젠 교수님 건강이 염려가 됩니다.
아침햇살같이 밝고 따뜻한 글 감사히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