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에 5:9-14
9 그 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나
10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친구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11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12 또 하만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13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하니
14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더 5:9-14 / [하만의 망상과 복수심] 바로 그날 하만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궁중에서 나오던 참이었는데, 궁궐의 대문에서 모르드개를 보는 순간 속마음이 뒤집혀 버렸다. 모르드개는 대궐 문에 앉아 있다가 하만을 보고서도 일어서기는 커녕 몸을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만은 모르드개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으나 10) 화를 꾹 참고,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자기의 아내 세레스를 불러들였다. 11)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의 영광을 자랑하였다. 재산도 많고 아들도 많으며, 특별히 왕의 총애를 받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떵떵거리며 자랑하였다. 12)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하였다. `더욱 놀라운 일이 또 있소. 에스더 왕후께서 손수 잔치를 준비해 놓으시고, 오늘 나만 임금님과 함께 그 잔치에 초대해 주셨지. 내일도 나는 임금님과 함께 왕후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소. 13) 그런데 단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다네. 왕궁의 대문으로 드나들다가 그곳에 유다인 모르드개가 앉아 있는 것만 보면, 내 모든 자랑과 보람이 갑자기 분노와 불행으로 바뀐단말이야!' 14) 그러자 아내 세레스는 남편의 친구들과 함께 이런 조언을 하였다. `그런 사람은 되도록 세상에 널리 알려서 부끄럽게 하도록 기둥에 매달아 죽여야합니다. 지금 당장 통나무로 약 23미터쯤 되는 교수대를 세워 놓고, 내일 아침 왕궁에 들어가시면 그것부터 임금님께 말씀드리세요! 유다인을 진멸시키도록 이미 허락해 주셨으니, 한 사람쯤이야 문제도 없어요! 그리고 즉각 모르드개를 그 기둥에 달아버리세요. 그런 다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금님과 함께 왕후의 잔치에 나가세요!' 하만은 이 말을 좋게 여기고, 즉각 교수대를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모르는 하만의 교만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다른 이를 함부로 대하려다가 하만 자신이 그 함정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하만을 두려워하지 않은 모르드개(9) 다른 경비병들은 하만이 나오자 모두 일어나 무릎을 꿇어 절하였으나 모르드개는 일어나지도, 경의를 전혀 표하지도 않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비롯한 유대인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만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만의 자랑과 교만(10-13) 하만은 자기 자랑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자신의 정치적인 지위의 높음과 왕후가 베푼 잔치에 귀빈으로 초청받은 특권을 자랑합니다. 하만이 언급한 물질, 지위, 자녀의 복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성공의 지표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만은 자신이 가진 것과 받은 축복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는데, 자신을 향한 모르드개의 불경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치명적인 문제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사소한 것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사십시오.
하만의 모르드개에 대한 증오(14) 하만은 모든 유대인을 전멸하겠다고 이미 확정해 둔 상태였지만, 특별히 모르드개를 나무에 매달기 위해 22.5미터의 교수대를 설치하자는 아내와 친구들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하만은 두 번째 잔치에 나아가기 전에 모르드개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로 하고도 즐거운 잔치에 참석하려고 했던 하만입니다. 나도 미워하고 악평하고 보복해야만 비로소 즐거움을 얻는 사람은 아닙니까? 다른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입니다.
적용: 하만은 언짢은 기분에 따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습니다. 많은 경우 당신도 상황과 환경에 휘말려 잘못된 실수를 하게 됩니다. 주위 사람의 반응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한 특정한 민족을 택하여 자신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으며 그는 의로우시며 거룩함을 원하신다는 것을 - 수 세기에 걸쳐 그들의 머리에 심어 주셨습니다. 그 민족이 바로 유대 민족입니다. 어두운 권세’는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을까요? 자아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갖게 되는 순간,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앞세울 가능성 - 스스로 중심에 있고 싶어 할 가능성, 사실상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할 가능성 - 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지은 죄였고, 사탄이 인류에게 가르친 죄입니다.
< 설 교 >
파멸에 이르는 비결
에 5:9-14절 이정선목사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어쩌면 그렇게 성품이 악하고 못돼 먹었는지, 악한 일을 많이 해서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원한관계나 혹은 이해관계 때문에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원망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투사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가 훨씬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과연 누가 악한 사람들인가, 혹은 누가 악하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질문에서 우리 자신이 결코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매우 악한 사람 하나를 만납니다. 하만입니다. 이미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다가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이 돼서 모르드개의 동족 유다인 전체를 말살하기로 작정하고 일을 꾸밈으로써 그가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 바 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하만은 그 악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는데, 어떻게 그 악한 성품이 발달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군요.
이 날 하만은 마음이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왕비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비가 내일도 잔치를 열 것인데 또 초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왕비의 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왕을 위한 그 잔치에 특별히 자기 혼자만 초대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종종 우리가 다른 집에 초대를 받아 가는 수가 있습니다. 나 혼자 초대를 받은 줄로 알고 가서 보면 다른 사람들도 역시 초대를 받아서 와 있습니다. 그러면 김이 약간 새지요? 다른 사람들도 올 거라고 미리 얘기를 해 줬으면 기대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혼자만 초대를 받았다는 것과 여러 사람들 중의 하나(one of them)로 대접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차이가 있지 않아요?
그런데 하만은 왕비가 왕을 위해 마련한 잔치에 다른 신하들과 함께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혼자만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말이지요. 왕비로부터 one of them이 아니라 혼자만 특별한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하만을 한없이 높여주었습니다. 하만은 이미 왕으로부터 높임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서 권력과 세도를 맘껏 누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아름다운 왕비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되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왕비가 왕을 위해 특별히 잔치를 베풀고 초대를 했다는 것은 긴요하게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히 중요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왕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면서 말하라고 하니까 왕비는 또 뜸을 들이면서 내일 말하겠다고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내일도 꼭 하만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비가 뭔지 모르지만 그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왕에게 말해야 하는 자리에 하만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하만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또 그만큼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왕비가 하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만이 자신을 얼마나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겠어요?
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 즉 교만하다는 것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말하기를 교만이 오면 욕(치욕)이 뒤따라온다(잠 11:2)고 했고, 또 교만은 패망의 선봉(16:18)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특히 교만함을 미워하신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 있고, 그래서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망령된 자라 한다(잠 21:24)고 했습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지껄이거나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만은 필요 이상으로, 혹은 사실 이상으로 자신을 높이고 존중하게 되는 교만에 빠지게 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그를 파멸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언제 교만해집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잘 나갈 때입니다. 그래서 크게 성공하고 큰 업적을 이루었을 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저는 돈 많이 번 사람이 교만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교만한 것을 이해할 수 있어요. 얼굴이 예쁜 여자가 교만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마음 착한 사람이 그 착함 때문에 교만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고 교만할 수도 있을까요?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았다고 교만하게 되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들을 낳지 못해 멸시를 당하고 서러운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게 된 한나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7). 우리가 높아지고 잘 나갈 때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의 능력과 업적으로 생각하면 마땅히 교만해져야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하심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만하게 되어도 이해가 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인정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믿음 좋다고 교만해지고 교회 봉사를 많이 하고 성경공부 많이 했다고 교만해진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만약 우리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를 만큼 의롭게 되었다면, 그 구원은 전적으로 우리의 성취이고 우리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자랑할 일입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라 내가 이룬 구원이 되겠지요. 하나님께 감사할 것도 없지요. 하나님보다 내가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성취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득도의 종교가 될 것입니다.
교만은 자신을 파괴시키고 형제를 파괴시키고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특히 교회 안에 교만이 횡행하게 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여기 저기 병이 들고, 지체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 기초를 놓는 단계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기초를 잘 세워서 절대 우리 교회에는 교만이 자리를 잡지 않도록 우리가 서로 노력하고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인 저부터 결코 교만하지 않도록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겠습니다. 만일 저에게 교만한 모습이 보이면 여러분이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교만한 모습이 보이면 제가 책망하고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파멸의 교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만이 얼마나 교만으로 자신을 파괴시키고 있는지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모르드개를 보았는데, 역시 언제나처럼 자신에게 절하지 않고 심지어는 일어서지도 않는 것을 보고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입니까? 왕비로부터 단독으로 초대를 받은 사람입니다. 왕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부여받았고, 또 그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왕비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몸인데, 감히 저 유다인 놈이 자기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몹시 상한 것이지요. 지금까지 자신을 존중하고 대단하게 생각했던 하만은 크게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자존심이 컸건 것에 비례해서 상처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없이 높아졌던 하만의 마음은 상처난 자존심으로 인해 한없이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그 추락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하만은 극히 악한 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친구들과 아내 앞에서 자기의 영광을 뽐내고 왕비의 잔치에 혼자서 초대받은 사실을 자랑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모르드개가 그 모든 것을 망쳤다는 것이지요. 왕비의 잔치에 초대받으면서 높아진 하만의 허영심은 한시라도 모르드개의 꼴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내일 모레면 칼을 맞아 죽게 될 놈이 대궐문에 앉아 공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도무지 못마땅합니다. 그랬더니 유유상종이라고 하만의 아내와 그 친구들이 오십 규빗이나 되는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당장 모르드개를 잡아다가 죽여 거기 매달자는 것입니다. 왕비의 잔치에 나가기 전에 꼴보기 싫은 모르드개를 처치해 버리고 기분좋게 왕비의 잔치를 즐긴다는 것이 정말 좋은 생각이라면서 그 악한 무리는 높이 나무를 세웁니다. 사자는 사냥한 고기를 나누고 악인은 노략한 죄악을 나눕니다. 잔치를 즐기기 위해서, 즉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파괴시킨다는 이 악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우리의 생각은 방향성이 있습니다. 한번 교만으로 방향을 잡은 하만과 그 무리는 잔혹함을 즐기면서 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가는 길이 어디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왕비의 잔치를 기분좋게 즐기기 위해서 처참하게 죽이려는 모르드개가 그 왕비의 오빠라는 것도 이들은 모릅니다. 왕비가 특별히 하만을 초대한 것은 그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세운 나무에 하만이 달리게 되리라는 것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악한 생각으로 눈이 멀고 양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벧전 5:5).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악과 함께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만의 악함과 교만함을 살펴봤습니다만, 내 속에 숨어 있는 하만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교훈과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입니다. 내 속에도 높아지고 잘나가게 되면 솟아날 수 있는 교만이 숨어 있고, 나를 대적하는 사람을 향한 분노와 잔인함도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곳에 감춰져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것들이 숨어 있을 뿐,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들을 극복하고 제거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셔서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셨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사심으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시의 즐거움에 빠져 교만하지 말라
에스더 5:9-14
1. 하만은 모르드개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합니까?(9절)
2. 하만은 아내와 지인들에게 모르드개에 대해 어떻게 말하며, 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13~14절)
3. 하만은 왜 왕의 잔치에 초대받았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모르드개를 죽일 음모를 꾸밉니까?
4. 자만과 교만에 빠져 의기양양한 하만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5. 하나님의 큰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잠시의 즐거움에 빠져서 교만했던 적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하나님 안에서 분별력을 갖고 겸손하게 행동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겠습니까?
왕후의 성대한 잔치에 왕과 함께 초대받은 하만은 자신을 바사 제국의 2인자로 여기며 교만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눈엣가시였습니다(9절). 그래서 하만은 집에 돌아와 아내와 친구들에게 왕과 왕후에게 인정받은 자신의 지위를 설명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모르드개를 살해하려고 계획합니다(14절). 하만은 자신의 지위가 올라갔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거만한 마음을 품게 됐고, 이것이 분노로 표출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만은 자신의 마음 가운데 거만함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위를 이용해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마음만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하만은 교만에 빠져 시야가 좁아짐에 따라,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만 채우려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성도는 이런 하만의 모습을 보면서, 교만이 패망의 선봉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어느 자리에서든지 항상 겸손함을 지키는 성도가 됩시다.
행복의 조건
에 5:9-14 / 장산지기
에스더서가 다른 성경과 다른 독특한 점은 ‘하나님, 여호와’라는 명칭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석가 매튜 헨리는 에스더서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의 이름은 없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더서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세상의 역사 한 가운데 실제로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더욱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기에 정말 귀한 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바로 그런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스더서는 포로 시대에 유대 민족이 멸절을 당할 뻔했던 한 사건에서 구원 받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에 도구로 쓰인 사람은 책의 제목이 된 에스더 왕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은 그의 사촌 오빠 모르드개와 그를 죽이려는 바사 왕국의 2인자 하만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려 합니다.
바사 왕국에 하만이라는 왕 다음의 세력을 가진 대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권세가 하도 높아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어 절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하만이 단순한 상관의 예를 갖추는 이상의 신적인 추앙을 받으려 했기에 그의 신앙이 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교만이 극에 이른 하만은 모르드개와 마주치기만 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의 민족이 유다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그의 민족을 죽이려는 계획으로 자신의 재산을 국고에 헌납하면서 왕에게 유다인 말살 조서를 허락 받습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민족의 멸망 앞에 금식하고 왕후에게 민족의 위기를 알립니다. 에스더 역시 3일을 금식한 후에 왕에게 나아갑니다. 당시의 법은 왕이 특별히 부르지 않으면 왕후라고 할지라도 왕에게 나갈 수 없었고, 혹 부르지 않았음에도 나가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왕이 에스더를 찾지 않은 날이 30일이나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가지고 왕에게로 나가갑니다. 3일을 금식하고 왕에게 나갔음에도 왕후를 본 왕은 그 아름다움에 빠져버립니다. 왕은 왕후에게 “무엇이든 요청하면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말합니다. 에스더는 왕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으니 신하 하만과 함께 참석해 달라고 합니다. 왕이 하만을 급히 부르고 왕후가 마련한 연회에 참석합니다. 다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소청이 무엇이냐고. 그 어떤 것이든 다 들어주겠노라고.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해도 다 주겠노라고. 이때 에스더는 다음에 또 연회를 베풀고 초청하겠으니 하만과 함께 오시면 그때 자신의 청은 말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연회를 마치고 나오는 하만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오늘 본문은 시작합니다.
1. 하만의 행복 조건
“그 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9a)
왕보다 더 행복해 하는 자는 바로 하만이었습니다. 왕후가 왕을 위하여 베푼 잔치에 자신까지 초청해 주었으니 그보다 더한 인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는 것마다 잘 되고 지위는 점점 더 높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 같습니다. 11-12절에 그의 자랑을 봅시다.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하만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바로 이것이 하만의 행복이요, 하만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하만은 스스로 성공한 사람으로 자신을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목록에는 자식복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세상 권세의 복입니다. 세 번째로 물질에 대한 복입니다. 하만이 가진 것 중에 하나만 우리에게 있어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재산이 있든지, 재산이 없어도 좋으니 세상의 권세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인정받고 살 수 있든지, 이것도 저것도 없다면 자식이라도 잘 되어 자식 자랑하는 재미로 살든지…
그러나 여러분, 이것만 있으면 행복 100%입니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을까요?
우리는 이 답 역시 오늘 본문의 하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하만이 모르드개라는 하급 관리 한 사람으로 인해 만족이 없습니다. “그 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나”(9)
삭이지 못한 이 분노는 돈으로 왕의 허락을 받아서 한 민족을 다 죽여버리겠다는 엄청난 살인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도, 자식도, 권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진정한 행복자라면 일개 하급관리의 시선에 이렇게 마음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만이 얼마나 자존감이 없는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그의 시선은 항상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면 기분이 업(up)이 되었다가 무시하는듯하면 바로 다운(down)되는 것입니다.
2. 모르드개의 행복
이제 또 다른 한 사람, 하만의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 모르드개를 봅시다.
모르드개는 별 권세도 없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사 왕국의 힘없는 소수 민족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죽을지도 모를 사람입니다.
여러분, 권력자 하만이 지날 때 모든 사람이 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합니다. 그럴 때 혼자 꼿꼿이 서 있는 모르드개의 모습 생각해 보십시오. 결코 쉬운 행동이 아닙니다. 죽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모르드개의 이 행동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뭘 믿기에 이런 행동이 가능하냐 말입니다. 그것은 오직 그가 믿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 자신의 행복과 안전은 하나님의 구원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행복의 근거도 하나님께 둡시다.
재물이 많으면 없는 것보다는 좋지만 재물 그 자체에 가치를 두어 나의 행불행을 좌우하게 만들지 맙시다. 자식들 다 잘 되는 것은 복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만 가지고 속상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을 맨 듯 신앙생활 하지 맙시다.
세상의 재물에 내 마음이 빼앗기면 나의 신앙보다는 돈벌이가 우선이 되고 맙니다. 돈벌이가 되는 것이라도 나의 신앙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들의 출세에 내 마음이 빼앗기면 자식들의 신앙생활은 뒷전이고 그냥 세상에서 잘 되기만 하면 됩니다. 공부 잘해서 망한 사람들 많습니다. 공부 잘 시켜놓고 불효자 만듭니다. 아니 나중에 원수같이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인정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시험들 일이 많아집니다.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에스더서를 새벽과 금요기도회에 보고 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자신의 집에 높이 세운 장대에 결국 하만 자신의 목이 달리게 됩니다. 잘 나가던 하만은 하루아침에 죽게 되었고, 시한부 인생이었던 모르드개는 승리했습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고 고백했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의 안전의 구원, 즉 우리의 행복은 주님께 있습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더욱 결단력 있는 신앙생활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됩시다.
☞ 대림절기에 나의 행복의 조건과 기초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조건과 비교해 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회개의 기도제목으로 삼고 기도합니다. 세상적인 행복 추구의 심령에는 주님이 거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만족함이 없는 분노
에스더 5:8-14 / 이진수목사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살려 달라고 청원하기 위해 삼일간 금식하며 기도하고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를 사랑스럽게 보았고 나라의 반이라도 내어 주겠다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할 때 에스더는 왕 앞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두 번이나 하만이 동행한 잔치에 초대합니다.
첫 번째 에스더 왕후의 초대를 받아 왕과 함께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였고 내일도 왕후가 자신만 왕과 초대하는 저녁 잔치를 받자 하만은 마음이 흐뭇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내용이 11-12절입니다. “자기는 재산도 많고, 아들도 많으며, 왕이 여러 모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여 주고, 자기를 다른 대신들이나 신하들보다 더 높은 벼슬자리에 뭇혔다면서, 그들 앞에서 자랑하였다. 하만은 덧붙여서 말하였다. “그것뿐인 줄 아는가? 에스더 왕후께서 차린 잔치에 임금님과 함께 초대받은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네. 왕후께서는 내일도 임금님과 함께 오라고 나를 초대하셨다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하만은 자랑할만한 수많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재산, 많은 자녀, 더 나아가 왕의 총애를 받는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그리고 왕만이 아닌 왕후까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 왕과 함께 잔치에 청함을 받은 것. 얼마나 큰 축복이고 명예이고 자랑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만은 그 많은 축복과 명예,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단 한 사람 모르드개로 인한 분노였습니다. 9절입니다. “그 날 하만은 마음이 흐뭇하여, 아주 즐거운 기분으로 대궐을 나섰다. 대궐 문을 지나는데, 거기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모르드개는 일어나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서, 하만은 그만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집으로 돌아갔다”모르드개 한 사람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일어나 인사하지 않은 것 한가지로 인해 하만은 3장 5절에 크게 분노하여 모르드개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고 모르드개 한 사람이 아닌 그가 유대인이기에 유대 민족 전체를 말살하기고 마음 먹고 왕의 마음을 얻어 그 악한 계획에 도장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가 왕후의 초대로 잔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여전히 모르드개가 살려달라고 엎드려 애원해야 할 상황에서도 여전히 인사하지 않는 모습에 분노하였고 자신의 모든 명예와 부와 축복들이 만족스럽지 않게 여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대궐 문에서 근무하는 모르드개라는 유다 녀석만 보면, 이런 모든 것이 나에게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네”
하만의 입장에서 볼 때 모르드개는 낮은 직분의 공무원이었습니다. 볼품없는 식민지 백성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인해 온통 마음에 분노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가 누리고 있는 수많은 축복들과 명예, 재산과 부요함에 감사함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그 분노함을 이기지 못하고 해서는 안되는 악한 일을 계획합니다. 모르드개를 죽이는 일, 그의 민족 유대인들을 모두 도륙하는 일, 더 나아가 자신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마음에 걸림이 되게 한다고 본문을 보면 그를 목 매달아 죽이기 위해 높이 쉰 자짜리 장대를 즉 70 feet 높이 장대를 세웁니다.
우리가 볼 때 참으로 미련하고, 속 좁고, 악한 모습이라고 혀를 차게 되지만 조금 더 깊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 우리도 하만과 같은 마음과 모습,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만족하고 감사할 수많은 축복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사람으로 인해 마음에 분노와 미움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모르드개에 대해 가족들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험담하는 비난과 정죄하는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돌아보면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불쾌하게 한 것을 보면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인사하지 않았다는 것 같은 작고 사소한 주관적인 것들이 아닙니까? “내 맘에 들지 않는 말을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투, 인상을 썼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참으로 유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만의 모습과 태도로 누군가 한 사람에 대해 마음에 품고 “만족하지 못한다” 라고 살아갑니다.
믿는 우리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들로 인해 늘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고 내 마음을 불쾌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바로 살펴서 인간적이고 주관적인 내 마음과 원함, 기준에 맞지 않는 모습일 때라면 넘어가고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신앙, 잘못된 말과 행동이라면 성령의 온유함으로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호크마 주석
=====5:9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 이와 같은 하만의 '즐거움'은 많은 신하들중 오직 자신만이 왕후로부터 잔치에 초청을 받은 연고였다. 모르드개가...일어나지도...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 - 여기의 '일어나지도'는, '모르드개'가 자신의 고유한 직무와 관련하여 대궐문에 앉아 있었음을 시사한다(2: 19, 21 ; 3:2, 3 ; 5: 13; 6: 10). 아무튼 이것은 앉아있던 사람이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취하는 최초의 동작이다. 한편, 움직이지도'(* , 주아)는 원래 '두려워하다' 혹은 '떨다'의 의미이다(전12:3). 모르드개는 유다인 학살 계획의 원흉인하만과 대면하고서도 조금도 두려운 내색을 하지않았으며 도리어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심히 노하나 - 3:5에서도 '하만'에 대하여 이 관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금번에 하반은 오직 자신만이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초청을 받음으로써 극도의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상황에서 모르드개의 불경한 태도를 목격했기 때문에 그분노가 이전(3 ; 5)보다 더욱 컸을 것이다.
=====5:10
참고 집에 돌아와서 - 이것은 그때 하만이 어쩔 수 없이 취했던 태도였다. 비록 모르드개가 하급 관리였지만(2:9), 왕의 승락도 없이(14절) 그를 죽이는 일은 곧 자신에게 오히려 화(禍)를 초래할 수 있었다. 즉, 만일 하만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지않은 일로 모르드개에게 감정적 보복을 할 경우, 그사실이 왕에게 알려질 것이고, 왕은 이에 따라 하만의 유대인 대학살 제안(3:8, 9 )이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 원한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간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만은 극심한 불쾌감에도불구하고 모르드개에 대한 사형(私形)을 자제해야만 했다.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 하만도 왕처럼(1:14) 자신의 주변에 모사들을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3:7). '그 아내 세레스'도 하만의 모사 역할을 했던 것 같다(Paton). 하만이 같은 사람들로부터 모르드개에게 적절히 복수할 계책을듣기 원했을 것이다(14절). 한편, '세레스'는 바벨론의 여성 주신(主神)의 이름'시리스'(Siris)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 듯하다(Jensen).
=====5:11
참고 집에 돌아와서 - 이것은 그때 하만이 어쩔 수 없이 취했던 태도였다. 비록 모르드개가 하급 관리였지만(2:9), 왕의 승락도 없이(14절) 그를 죽이는 일은 곧 자신에게 오히려 화(禍)를 초래할 수 있었다. 즉, 만일 하만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지않은 일로 모르드개에게 감정적 보복을 할 경우, 그사실이 왕에게 알려질 것이고, 왕은 이에 따라 하만의 유대인 대학살 제안(3:8, 9 )이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 원한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간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만은 극심한 불쾌감에도불구하고 모르드개에 대한 사형(私形)을 자제해야만 했다.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 하만도 왕처럼(1:14) 자신의 주변에 모사들을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3:7). '그 아내 세레스'도 하만의 모사 역할을 했던 것 같다(Paton). 하만이 같은 사람들로부터 모르드개에게 적절히 복수할 계책을듣기 원했을 것이다(14절). 한편, '세레스'는 바벨론의 여성 주신(主神)의 이름'시리스'(Siris)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 듯하다(Jensen).
=====5:12
본 절에 대해서는 4절과 9절 주석을 참조하라.
=====5:13
모르드개가...대궐 문에 앉은 것 - 모르드개가 살아 있어서 하만에 대한 경배를 계속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9절 ; 3:2).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 '이 모든 일' 은 하만이 11, 12절에서 늘어놓았던 세 가지의 특별한 자랑 거리들을 가리킨다. 한편, '만족하지 아니 하도다'는3:8에서는 '무익하니이다'로 번역된 바 있다.
=====5:14
오십 규빗 - 약 23m 정도이다.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 왕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모르드개를 처형시키도록 하라는 조언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르드개'를 무려23m나 되는 높은 나무에 매달아 놓으려고 한 까닭은, 모든 사람에게 '모르드개'가 거기에 못박혀(2:23) 비참히 죽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 의도때문이었다. 물론 하만은 '모르드개'가 비참히 죽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복수심으로 이글거렸던 자신의 잔학성을 만족시키려한 것도 분명하다.
즐거이 잔치에 나아가소서 - 이것은 하만이 잔치에 참석한 후 기분 좋게 대궐 문을나오다가(9절)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아니한 모르드개로 인하여 그 좋았던 기분이 잡쳐졌던 사실(9,13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명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 하만이 이처럼 모르드개의 일을 왕에게 알리기도 전인그 당일에 '나무'를 세운것은, 모르드개를 죽이겠다는 자신의 뜻이 왕에 의해 반드시받아들여질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1) 하만은 모르드개가 왕후 에스더의사촌 오빠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2) 수 많은 유대인 학살 계획까지도 승인해줄정도로 잔인한 아하수에로 왕이, 일개 하급 관리 한 사람을 죽이게 해달라는 하만의요청을 거절할 까닭이 없었다. 더구나 하만이 죽이게 해달라고 요청한 모르드개는머지 않아 집단 학살되게끔 결정되어 있는 유대인이 아니었던가 ! 아무튼 이에 따라모르드개는 그 다음날이면 꼼짝없이 나무에 못박혀 죽임을 당할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