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파(救援派)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기독교계 신흥 종교 중 특정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어서 대한민국의 개신교 주요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목한 교파들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1962년경 대구에서 창설된 기독교복음침례회(基督敎福音浸禮會)가 있다.[1][2]
구원파라는 용어는 단일 교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같은 외국인 독립 선교사로부터 교리를 배운 권신찬(權信燦, 1923년~1996년)-유병언(兪炳彦) 파, 이복칠(李福七)파, 박옥수(朴玉洙)파 등 3개의 다른 교파에 대한 통칭이다. 각 교파간에는 교류가 있지는 않으며, 각 교파는 침례회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침례교(기독교한국침례회)와는 관련이 없다. 또한 구원파라는 명칭은 해당 교파에서 스스로 일컫는 칭호가 아니라 탁명환이 구원에 대한 성경해석의 차이에 대해 구분적으로 일컫는 칭호였던 것이 현재는 개신교 주요 교단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기존 교단과 성경해석의 주요 차이는 성경을 기준으로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가 사해져 이를 믿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으로 기존 교단의 부단한 회개를 통하여 천국에갈 수 있다는 해석과 대별된다. 성경중 논쟁의 중심이 되는 부분은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믿는 자에게 영원한 속죄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아담과 하와의 원죄만 사한 것인지이다. 또한 성경을 통해 오직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의 확신이 오면 구원을 받는 다는 해석과 인간 스스로의 계속 회개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게될 것이라는 성경해석의 차이가 있다. 기존 기독교계로 부터 한번 구원받으면 평생의 죄가 사해진 것이므로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되는가? 라는 공격을받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하나님의 죄사함을 깨달은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고 마음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예수를 닮은 정결한 삶과 더욱 가까워진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플리머스 형제단의 한 분파에 소속된 신도 자격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한 독립 선교사들인 네덜란드인 케이스 글래스(Case Glass)와 미국인 딕 욕(Dick York)이 1960년대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교리를 강습하면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권신찬이 케이스 글래스와 딕 욕의 교리를 배움으로서 시작되었고 역시 이에 참여, 활동하던 전라남도 목포 출신의 이복칠(일명 이요한)이 권신찬의 사위인 유병언이 교회 자금으로 사업을 하는 것을 비판하여 갈등을 빚게 되는데 권신찬이 유병언을 지지하면서 이복칠은 생명의말씀선교회(또는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측)라는 교단명으로 서울중앙교회를 설립하여 분파해 나갔다. 생명의말씀선교회는 현재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으며, 기독교복음침례회와는 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케이스 글래스의 설교를 듣고 딕 욕에게 교리를 배운 경상북도 선산 출신의 박옥수는 이들과는 별개로 기쁜소식선교회(또는 대한예수교침례회 기쁜소식측)를 설립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와 함께 마인드강의를 통한 청소년선도 및 해외봉사활동으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의 두 교파와 달리 기존 교계의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등의 직급을 가지고 있다. 최근 기성 개신교계 일부 인사들로 부터 이단이 아니라는 주장과 더불어 또 다른 개신교계 인사에 의한 이단이라는 주장이 혼재되어 있다. 한편 박옥수 목사는 청소년 선도 및 사회공헌으로 한국일보 선정 '2005 신한국인대상'에 선정되었으며, 2008년에는 건전한 마인드 형성을 위한 정신교육 등으로 경찰청장으로 부터 감사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또한 중고등학생 들의 대안학교인 링컨스쿨를 설립하고 매년 아프리카지역에 한국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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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기독교복음침례회
[ 基督敎福音浸禮會 ]
정의
: 1962년 대구에서 시작된 개신교계 교단.
내용
: 미국인 독립선교사 딕 요크(Dick York)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신자 권신찬과, 네덜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래스(Case Glass)에 의해 입교한 유병언에 의해 시작되었다. 1963년 이들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결별하여 독자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장인-사위의 관계였던 권신찬과 유병언은 대구·안양·서울·인천 등지로 활동무대를 넓혀나갔다.
이들의 주장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권신찬 목사가 1964년부터 극동방송의 전신인 국제복음주의 방송에 방송목사로 부임하여 행한 설교 때문이다. 권신찬은 방송목사로, 유병언은 방송부국장으로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를 진행하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런 연유로 이들의 교단은 세칭 구원파로 알려져 있다. 권신찬은 기성교회에서 행하는 예배 의식, 십일조 헌금, 장로집사 제도, 주일성수, 새벽기도 등이 율법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율법과 죄책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이 설교는 한편으로는 청취자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신교계 여러 교단들이 방송국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져 1974년 7월 30일까지 권신찬의 측근 11명이 극동방송국에서 해임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 청취자들을 중심으로 1969년부터 1982년까지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교단의 형태를 갖춘 것은 1981년 11월 21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 서울교회당에서 전국의 책임자 248명이 모여 변우섭을 책임자로 선출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문공부에 등록하면서부터이다. 유병언은 목사이자 사업가로 변신하여 삼우트레이딩과 주식회사 세모를 운영하였다.
교리는 기존 개신교회가 대부분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라는 가르침을 펴는 것과는 달리, 이미 예수의 보혈로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용서받았음을 깨달을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일성수, 십일조, 과중한 직분을 지우는 예배당 건물 위주의 유형교회를 거부하고 무형교회를 강조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교단은 주류 교단들로부터 신학적인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교단 조직은 총회 산하에 사무국과 총회 운영회를 두어 중앙집권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주요 활동을 보면 월간 ≪새길≫, 월간 ≪만나≫, 연간 ≪새순≫, 그리고 월간 ≪코너 스톤 Corner Stone≫을 정기발행하고 있으며, 녹색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환경보존운동을 벌이는 등 사회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해외포교에 눈을 돌려 많은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데, 1996년에는 제20회 유럽수양회, 제11회 일본지역수양회, 제17회 미주지역수양회 등을 개최하였다.
1997년 현재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교세는 208개의 교회, 42명의 목사에, 교인의 총수는 11만 명 정도라고 한다. 현재 교단의 대표는 총회장인 김성일 목사이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조사연구보고서』(한국종교연구회, 1996)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 외,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 『한국종교연감 1996∼97』(한국종교사회연구소, 1997)
닭년도 저기서 의원질 했더랬지...
첫댓글 근데 유병언의 출생지는 일본....어렸을때 건너와서 대구에 정착 (이런 이상한 변명글 같은거 쓸때는 나도 반드시 집안에 고담시와 관련이 직, 간접적으로 있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임...예를 들면 외갓집 같은거)
내가 1980년대 중순에 구원파 개독이었는데....당시에 난 박옥수란 존재를 몰랐었고...
권신찬과 유병언은 만난 적이 있고... 그들로부터 교리도 배웠었고...
내가 무술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 저곳을 나올 즈음부터 시작해서... 특히 검도를 졸라 익혔는데, 이유는 검도에서 단증을 가지면 진검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당시 난 나를 찾아내서 해를 가할려고 하면 같이 죽더라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
뭐, 덕분에 호신술 익혔으니... 아쉬운 점은 당시 나오면서 여친을 그곳에서 못 데리고 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