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오후에는 날이 흐려진다고 합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동녘에 반갑게 떠오는 태양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만물을 생육하는 이 태양의 고마움은
이 지구 상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인듯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왕과 왕비의 운명 제5탄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참으로 구구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왕과 왕비가 많았습니다
임금이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참으로 참혹한 일도 있었고
아버지가 딸이 왕후가 되어 별 볼일 없던 사람이 일거에 공경대부로 출세하나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아 그일이 화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던지
나중에 정치적 격변으로 자식이 왕후인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일가가 몰락한 가문도 많았습니다
또는 어머니에 대한 정이 사무쳤던지 자신의 어머니를 왕후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죽였다고 여기에 관련된 자를
모조리 도륙내기도 하는 일도 있었고
또는 이런 왕도 있었으니
삼촌이 조카가 나이가 어리고 유약하여
한 나라를 다스릴 왕으로 부족하다 하여 왕의 자리를 넘겨달라고 해서
사실상 뺏아가는 일이 발생한 적도 있었습니다
예 모두가 아시는 그 임금님이지요
12세에 임금이 되었으나 왕으로 재위한 기간은 고작 3년도 못되었던
참으로 가련하다고 해야할지 비참하다고 해야할지 그런 심정이 들게 만드는 분인데
그 과정이 참으로 문자 그대로 운명이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 운명이란 것을 혹자는 해석하기를
숙명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운명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니라 하기도 하였으나
우리가 통상 운명이다 팔자다 할 때 그 의미는 사실 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속내가 들어있는 것이니
이 임금님도 자신의 사주에 암시된 운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그 운명 그대로 따라가버린 참으로 안타까운 분입니다
조선조 제6대 임금 단종
○ 丁 丙 辛
○ 巳 申 酉
63 53 43 33 23 13 03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丑 寅 卯 辰 巳 午 未
한번 사주를 보겠습니다
신월에 정화 정재격이네요
재는 신신유로 재다요 재강인데
월주 비겁은 절지요 일간도 사화에 통근이나
일견 재다신약의 모습으로 보이는군요
다시 또 재다신약의 얘기가 대두가 되겠는데
다시 한번 간략히 살펴본다면
이 재 財 란 것은 일종의 상징 기호로서
일간인 내가 관리하고 통솔 통제 이용하는 대상물의 상징인데
구체적으로는 남자에게는 여자 처 첩 (애인) 부친 백숙부
또 경제적인 대상물 즉 금전 부동산 증권
또 관리의 대상물 즉 일거리 주어진 임무 등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주는 재성이 기신이 되니
처첩이나 부친 백숙부의 덕을 얻을 수 없다고 예상이 되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첫째 숙부인 수양대군 (세조임금)에게 자리를 찬탈당하고
자신은 영월로 유배가 생을 마감하였으며
그 처와 또 생이별을 하였으니 사주의 암시대로 되었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주의 암시가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운을 봐야하겠는데
단종은 1452년 임신년에 천간에 정임합으로
득관이 되니 임금에 등극하였는데
무릇 사람의 일이란 그 결말을 보아야 가부를 알 수 있다 하였으니
이 일이 길일지 흉일지는 그 최후에 따라 결정이 되겠는데
사실 이 단종임금의 아버지는 세종임금의 큰아들인 문종임금인데
문종임금이 병약하여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 단종임금이
겨우 12세에 임금자리에 올랐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비록 지존의 임금자리라도 자신이 너무 어려
정사를 행할 수 없을 경우에는 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거나 하는데
이 단종임금은 모친은 산후통으로 돌아가시고 할머님도 이미 돌아가셨기에
그럴 형편이 안되었던 것이니 이것도 운수소관으로
만약에 모친이나 조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황표정사라고 해서 세종임금때부터의 명신이요 유신들인
김종서 황보인 등으로 하여금 실제정사를 수행하게 하고
단종임금은 결재만 하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정치를 실행하였던 모양입니다
여기에 수양대군이 신권이 강하고 왕권이 약해진다는 명분으로
왕의 자리를 넘보게 되었던 것인데
다음해인 1455년 계유년 소위 계유정란이 일어나
수양대군이 일종의 단종임금의 보호막인 김종서 황보인 등의 세종때 유신들을
전부 제거하고
자신이 영의정 및 각종 고관직을 겸직하면서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에 이르릅니다
계유년이니 단종임금의 사주로 보면
재다신약인데 재생살운이니 사실 목숨도 위험한 운이었다 보아야 합니다
단종임금이 화성을 희신으로 삼는데
계유년이면 화성은 절멸지지라 아주 위험한 운이겠지요
단종임금은 계속되는 생명의 위험 속에서
세조임금에게 자리를 양위하고 상왕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비정한 것이니
정치란 힘이 있을 때 겨뤄야 하는 것이지
내가 가드를 내리면 상대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입니다
해서 때는 1457년 정축년에 이르니
그 전에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 등이 일어나고 해서
불안에 시달린 세조는 아예 화근을 뿌리뽑기로 작정하고
단종의 장인 등이 상왕복위 음모를 꾸몄다 하여
전부 사사시키고 단종임금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갔다가 사사됩니다
정축년이면 정화가 축토에 입묘하니
단종임금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지자인 비겁이 전부 입묘요
정화 자신도 입묘니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길을 가고만 것입니다
지난번 글대로 올해도 기축년이니
정화 병화 또 경금 신금을 희신으로 쓰시는 분들은 각별히 살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해 전인 병자년에 소위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이 일어났었는데
아시는대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이 체포되어 전부 사형당한 비사인데
병자년이면 자방에 병화 정화 단종의 비겁은 전부 사절지니
이때 일을 행하면 무조건 비명에 갈 수밖에 없는 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참으로 희한한 일이 숨어있었으니
그것은 이 단종복위운동 소위 역쿠데타는
원래 성삼문 박팽년 등 외에 김질이라는 사람이 끼여있었는데
중국사신 접대자리에서 세조임금과 그 세자를 암살하려 했던 것으로
단종임금 입장에서는 불행히도
세자가 참석하지 않는 바람에
왕은 암살해도 그 세자가 살아있으면 또 왕위계승이 문제가되므로
세자까지 암살하려 했던 것인데 세자가 안오니
이를 놓고 거사를 하느냐 마느냐 하다가
위에 언급한 김질이라는 자가 이를 고해바치는 바람에
사육신이 전부 잡혀가고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도 전부 몰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미신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김질의 성은 金으로 그야말로 금성의 피해를 당하는 단종의 운명이니
어찌하여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하겠는데
그러면 단종임금 본인의 사주에서는 그렇다치고
과연 임금의 부인 즉 왕후의 사주에서도 그러한 가슴아픈 사연이 나타났겠는가
해서 그 부인인 정순왕후의 사주를 또 살펴보겠습니다
○ 辛 己 庚
○ 未 卯 申
62 52 42 32 22 12 02
壬 癸 甲 乙 丙 丁 戊
申 酉 戌 亥 子 丑 寅
묘월의 신금으로 편재격입니다
편재격은 신강하면 비겁을 대기 大忌합니다
그것은 편재는 개인이 근로하고 근검절약하여 모은 비교적 적은 재물이 아니고
여러사람의 재물이 덩어리 형태로 뭉친 큰 재물이라 노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왕후의 사주에는 연간에 지금 비겁이 록지에 포진한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그러면 운을 보아하니
첫운 무인운은 재왕운이니 좋다고 보고
그 다음 운이
아뿔싸 ! 정축운이라고 ?
정화 남편이 축토에 입묘되고 말겠구나 !!!
그런데 단종임금이 돌아가신 해가 바로 정축년이 아닌가 !!!
그런데 또 정축년이 왕후의 사주에서 정축대운이 아닌가 !!!
이리 하여
왕후의 사주에서
일지 미중 정화 남편 단종임금은
정화가 입묘되는
정축대운 정축년에 돌아가시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니 운이 이리 나쁘게 되면 어쩌면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다고 간명하여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겠지요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이요 설상에 가상이니
이것은 도저히 인력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운명이요 숙명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정순왕후께서는 불행히도
그 아버지도 역모에 가담되었다 하여 교형에 처해지고 역시 친정이 몰락하였으니
살성이 입묘하면 연간에 비겁이 날뛰니 역시 재성이 약해지는 연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한편의 이야기가 숨어있으니
사실 이 정순왕후의 아버지인 송현수는
세조임금의 죽마고우이자 나중의 심복으로
실은 세조임금이 배필이 없던 단종임금을 자기편 사람에게 장가들여
확실하게 해둘려고 자신의 친구 딸을 간택하게 압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즉 어찌보면
이 정순왕후는 세조임금의 주선으로
일국의 왕후가 될 수 있었고 아버지도 미관말직에서 고관대작으로 출세하였으나
바로 그 세조임금 때문에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가 죽고
자신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단 3년으로 끝나고
그 후로 수십년을 청상과부로 청룡사라는 절에서 비구니로 살다가 82세에 돌아가셨으니
그야말로 사람의 운명이요 인연이란 이런 것입니다
운은 오르락내리락이요
인연은 한때는 선연이 나중에는 악연이 되기도 하니
참으로 사람을 정신없게 만드는 것이요 어찌보면 운명의 여신이 있다면
아마도 감정이 메마른 자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요
운명의 여신 입장에서는
이미 그렇게 써있는 것을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나는 법에 충실했을 뿐이다 라고 항변할 법도 합니다
한번 법이 만들어지면 설사 그 법을 만든 자라 하더라도
그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듯 운명이란 어찌보면 가혹하고 어찌보면 자신의 의무에 충실한 것으로
어떨 때보면 정해진 대로 착착 가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이 정순왕후에게는 그 뒷사연이 많은데
사실 말이지 결혼생활은 단 3년이요 남편이 돌아가고
당시 왕가에서 과부가 되거나 또는 아이를 낳지 못한 후궁 들이
모여살던 절이 있던 모양인데 당시에 그 절이 청룡사라는 절입니다
지금의 동대문 외곽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 절에 비구니로 수십년을 살면서
그 절 뒷편에 암벽이 하나 솟았는데
여기에 날마다 올라 남편이 계신 동쪽을 바라보고 매번 곡을 하였다 하여
동망봉 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하고
또 이 정순왕후가 처음 청룡사부근으로 거처를 옮겼을 적에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처지를 동정한 인근부녀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자
나라에서 금하니
남자는 들어올 수 없는 시장을 가장하여 계속 도와주었다는 이른바 금남시장의
일화도 전해지고
또 정순왕후가 생계를 위해 자줏빛으로 염색을 들이는 업을 했는데
그 일화로 자줏골이라는 지명도 전해온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렇게 힘든 운을 맞이한다면 그 사람에게 무어라고 말을 해주어야 할 것인가
참으로 이 물음은 쉽사리 답이 안나오는 질문이겠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오면서 마땅한 답이 생각나질 않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드시는가요
어쩌면 이 물음과 대답에 명리학의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남주작님 의견에 공감듭니다. 말슴 주신내용대로. 단종의 사주가 재다신약사주인데 임신년 재관이 왕한 시점에 왕에 봉해진거 . 왕이돼엇으니 좋아 보일수잇지만.. 운은 지나봐야..즉 결과가 나와봐야 그 운의 희기가 판정이 돼는경우가 많더군요.
. 임신년 재관이왕한 운이라 기신운으로 보이는데 왕이 돼엇으니 외견상 희신운이다. 고 볼수 도 잇지만 현실은 그 일로 ㅇ인해 죽음에 이르럿으니 결과적으로 기신운이 맞을듯합니다.
기신운에 감투를 쓴 경우. 본인은 승진해서속칭 죽어라 일에 치어 힘들어 하거나... 못견디고 내쫒기거나... 혹은..그런대로 버틴다 싶은 경우는 그 해당조직에 문제를 발생. 수장이 기신운일 경우 해당조직을 말아먹는 듯하더군요. (명박이.. 생각나네요...)
한편의 역사소설을 읽듯 가슴아프게 배우고 갑니다. 단종께선 시는 모르지만 종격은 아닌지 ..
금수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 남주작님,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