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들에게 주는 글 ......................... 마광수
내가 아직 아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 르겠다. 하지만 나도 어린 시절을 겪었고, 어머니에게 영향 받은 바가 크며, 또 주변에서 많은 젊은 엄마들을 만나보게 되기 때문에 나 나름대로 느낀 점을 써보려고 한다.
어머니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경우 제일 먼저 명심해두어야 할 사항은 우선 아이가 아이 스스로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아이는 전적으로 타의에 의 해 이 세상에 던져졌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된 사람들은 무조건 ‘희생적으로’ 아이를 기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보답을 기대한다거나 흔히 말하는 ‘효도(孝道)’를 바라선 안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부모는 그들 나름대로의 필요에 의해 아이를 낳은 것이다. 부부간의 애정유지의 수단으로서든, 종족보존의 본능 때문으로든, 또는 늙은 뒤의 외로움 때문에서든, 어쨌든 부모는 아이를 이 땅에 태어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끝까지 잘 길러줄 책임이 있다. 게다가 요즘처럼 피임방법이 개발된 시대에는 아이를 얼마든지 안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책임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요즘 주변의 젊은 엄마들,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어머니들을 보면 예전에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 묻혀 가사일에만 전념했던 여인들보다 더욱 자기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를 통해서 대신 이루려고 하여, 계획된 교육 플랜에 의하여 음악이다, 무용이다, 또는 스포츠다 해가면서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어떤 고정된 틀에 맞추려고 애쓴다. 내 생각엔 교육이란 그저 자기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재능을 자연스레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정도의 역할이 전부라고 본다.
내 자식만은 꼭 일류 의과대학을 졸업시켜 의사로 만들겠다거나, 재능도 없고 또 하기도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연습시켜 제2의 정경화 나 강동석으로 만들겠다는 따위의 부모의 허영심은 자칫하면 자식의 장래를 망쳐놓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그저 자연의 생명력에 의하여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다. 엄마는 사랑을 베풀어 주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공급해주며, 아플 때 위로하고 외로울 때 벗이 되어주는 정도의 선에서 그 역할을 그쳐야 된다.
지나치게 자식을 출세시키려고 애쓰는 엄마일수록 종 당에는 무언가를 자식에게서 받아내려고 애쓴다. 그래서 “난 널 이렇게 고생해서 키웠는데 왜 넌 그렇게 부모의 은공을 모르느냐”는 식의 푸념이 나오기 마련이다. 누가 키워 달라고 했는가? 낳은 사람이 자식을 키우는 것은 생태계의 법칙이다. 자식들도 또 그들의 자녀를 낳아 무조건 주기만 하는 ‘내리사랑’을 베풀 것이다. 자식에겐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운명이 있다. 그 운명까지도 부모가 조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몇년 전에 나는 「효도에」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참고가 될 것 같아 여기 그대로 인용해보기로 한다.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나으셨나요?
또 기르시고 싶어서 기르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대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린 서로가 어쩌다 얽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히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이런 말씀일랑 말아주세요.
어차피 저도 또 늙어 자식을 낳아
서로가 서로에 얽혀 살아가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모든 동정으로, 연민으로 이 세상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진정 어머닐 사랑해요, 어차피 우린 참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잖아요?
위의 시에서 썼듯이, 자식에 대한 애정에는 보편적인 휴머니즘이 전제되어야 한다. 내 자 식만 예쁘고 내 자식만 반드시 잘되어야 한다는 식의 편협한 가족이기주의는 결국 여러가 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 쉽다. 젊은 어머니들은 모든 생명들을 측은히 여기는 넓고 포용 력 있는 자비심으로 무조건의 ‘내리사랑’을 자식에게 베풀어야만 할 것이다.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