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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란?
예배의 5대 요소(要所)
예배학
기독교인의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예배(禮拜)란?
사전에서 말하는 예배
예배(禮拜) : 신이나 부처에게 공손한 마음으로 절하는 일. <한글사전>
예배란 worship. 인간이 절대자에 대해 숭경(崇敬)심을 표현하는 일체의 행위.
성경상 예배의 최초의 형태는 희생 제사(창4:3-5)였는데 이 형식은 기원 후 70년 성전 붕괴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 제의적 예배는 점차 내적인 면을 중시하는 사상이 등장하면서 영적인 예배 개념으로 발전했고(시40:6. 50:12) 예수는 내적인 요소에 우위를 두셨다(요4:24).
즉 외적인 관습은 내적 신앙의 표현이어야 한다(롬14:5)는 것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언제, 어디서 행하여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요4:23,24).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성경사전>
예배란 worship. 인간이 절대자에 대해 숭경(崇敬)심을 표현하는 일체의 행위.
이것은 종교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를 결여하고 있는 종교는 있어도, 예배를 가지지 않는 종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예배의 양식과 정신은 종교에 따라 아주 다르고, 같은 종교에서도 시대와 풍토와 민족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있다.
성경에 있어서의 예배의 가장 최초의 형태는 희생(제사)이었다.
이것은 가인과 아벨의 사적인 것이라든가 노아의 사적에도 보여지는데 이것은 그 후 히브리 종교의 주요한 예배양식이 되었다(이하생략). <기독교사전>
예배란 worship. 일반적으로는 존경하는 대상에 대해 공경의 뜻을 표시하는 일.
종교에 있어서는 인간이 절대자(絶對者-神)에 대해 숭경(崇敬)심을 표현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종교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를 결여하고 있는 종교는 있어도, 예배를 가지지 않는 종교는 거의 없다(이하 생략). <성서대사전>
worship : 1) (신성한 것에 대한)숭배, 예배
2) (일반적으로) 존경, 경로. <영한사전>
예배의 5대 요소
말씀 선포 : 고전14:8
고전14;8「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성도의 교제
행2: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기독교인의 고귀한 품위와 고상함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 초대교회에는 사랑이 있었다.
고귀한 사랑이 있었다.
초대 교회에는 또 공적인 예배가 있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였다.
성령을 받으면 사랑이 나타난다.
성령을 받으면 통곡하고 울게 된다.
회개하게 된다.
가치관이 달라진다.
물질관에 변화가 생긴다.
고귀한 품위와 고상함을 회복하는 것은 이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에는, 2,3세기에는 교회에 고상함이 넘쳤다.
그러나 4세기 이후에 교회가 타락을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초기에는 고상함이 있었다.
1907년 평양 교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먼저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온 나라가 다 회개하였다.
일본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주기철 목사가 순교를 했고,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가 공산당에 의하여 순교했으며, 1913년 교회신보에 의하면 당시 인구 1200만 명에 신자의 수는 불과 1만 명에 불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교회는 사랑을 가지고 역사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자기만 구원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이 생각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다.
그러나 자부심을 벗어나 자만심을 가지면 안 된다.
누구에게 하던지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다.
사랑의 마음으로 누구에게든지 최선을 다하여 하여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나만 믿는 다는 것이 아니다.
신22:8절에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 흐른 죄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라는 말씀이 있다.
남을 배려하라는 것이다.
또 신4:6절에는 “지켜 행하라”라고 명령하시고 계신다<서울 교회. 이종윤 목사>.
기도
행2;42(성도의 교제 참조)
찬양
시22:22「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예물
고후8:1-15「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배 중심
골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죄의 뿌리를 뽑자.
승리하는 방법은 예배 중심, 기도중심이 되어야 한다.
예배 중심은 곧 말씀중심이다.
아무리 말씀을 공부해도 죄의 뿌리가 뽑히지 않으면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다.
율법은 깨닫게 하기 위해서 있다.
깨닫고 하나 하나 빼어내기 위해서이다.
율법은 사람의 사악한 본성까지 빼놓을 수 없다.
씨 뿌리고 싹만 내어서는 안 된다.
열매가 있어야 한다.
열매에는 성령의 열매, 사랑의 열매, 말씀의 열매, 기도의 열매가 있다.
그림자(율법)를 따라가는 자는 탐심 때문에 사망의 길로 간다.
탐심이 있는 곳에 악이 함께 하여 우상 숭배를 하게 한다.
그러므로 탐심을 버려라.
또는 죽이라.
멀리 하라 하신다.
탐심이 없으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길을 가지 않게 된다.
갈2:18 : 만일 네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나를 죄인으로 만듬이다.
수6:26 : 여리고 성을 재건축하면 저주받음.
왕상17:34 :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두 아들을 잃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계명을 따르면 예수 믿고도 지옥 간다.
목사가 말씀에 소경이니 사람의 계명을 크게 전한다.
성도도 소경이라 아무 것도 모르고 무조건 ‘아멘’하며 따라 간다<골3:5-10>
예배학
예배학의 과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예배의 형식을 연구하는 것이다.
주와 그의 백성과의 언약의 교제에서 하나님은 그의 교회에 규칙적인 만남을 허락해 주신다.
이 만남에서 교회는 인도자의 인도 아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의 은혜를 찬양하고, 예물을 드리며,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생각하며, 성찬식을 거행하고, 새로운 지체들을 몸 된 교회에 접목하는 세례를 베풀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이 교제 생활은 서로 간의 교제의 기초가 된다.
현재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요4: 21-24절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곳이 된다.
예배(leitourgia)란 말은 성전에서의 제사장적 기능에 대한 구약적 명칭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이 말은 예배와 관계가 없고, 공동생활에서의 공적 봉사 행위를 지칭한 말이다.
그러나 70인 역에서 이 말이 성소 안에서의 제사장적 봉사와 관련되어 사용되어졌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예배와 관련하여 ‘섬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아주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것은,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육체를 드리므로 구약적인 제사장 봉사를 이루시고, 영원한 새 언약의 새롭고 결정적인 질서를 만드셨다는 것이다.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봉사가 새 언약의 참된 봉사(liturgy)이다(히8:2,6).
참된 봉사(섬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교리문답 교육은 가정예배로부터 이해되어 져야 한다.
왜냐하면 교리문답교육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참여하도록 이끌어 가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가르치는 이야기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예배적 관습으로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 것으로 이끌어내게 된다.
아들이 큰 절기에 의식을 보았으나 이해하지 못한 것과 관련하여 속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기독교인의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본성의 빛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과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선하시고 만물에 대해 선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의지하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하나님 자신이 정해 주셨다.
하나님을 사람의 어떤 상상과 의향이나 사탄의 유혹에 따라서 예배하거나, 또는 어떤 볼 수 있는 표현과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예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계시된 자신의 뜻만 따라서 예배하도록 제한하셨다.
기독교의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오직 그에게만 드려야 하며, 천사에게나 성도들에게나 그 밖에 어떤 피조물에게도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는 중보자 없이, 또는 어떤 다른 중보자를 통해서 예배를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드려야 한다.
기독교 예배의 요긴한 부분인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기도이다.
기도가 용납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이해와 존경과 겸손과 열성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도움을 얻어 성자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약 소리를 내어서 기도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한다.
기도는 이치에 합당한 모든 사물과 현재 살아 있는 자나 앞으로 날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할 것이고,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할 것은 아니다.
또 죽음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이 알려진 사람을 위해서도 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독교의 일반적 예배의 요소는 경건한 성경 봉독과, 건전한 설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해와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시편을 찬송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례를 합당하게 실시하고 합당하게 받는 것이다.
이 밖에 종교적 맹세와 서원과 금식과 절기를 따라 드리는 예배가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여러 번 여러 절기에 따라 거룩하고 종교적인 방법으로 행할 것이다.
오늘날 복음 시대에 있어서는 기도나 그 밖의 기독교 예배에 어떤 부분이든지 그 예배는 장소나 그 향할 방향에 얽매이지 아니함으로 해서 그러한 예배가 다른 예배보다 더욱 기쁘시게 받을 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는 어디서든지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한다.
각 가정에서 매일 드리든지, 혼자서 은밀한 곳에서 드리든지, 엄숙히 드리고 혹 공적 모임에서는 더욱 더 엄숙히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이나 섭리에 의해 공동 예배에 부르신 것이니, 부주의하게, 또는 경솔하게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일반적으로 시간의 일부분을 구별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항구적인 명령으로써 모든 시대의 사람에게 명령하셔서 특히 하루를 안식일로 하여 하나님께 거룩한 날로 지키게 하셨다.
이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일주간의 마지막 날을 지켰고, 그리스도의 부활 후부터는 일주간의 첫날로 변경하였는데,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른다.
이 날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계속될 것이다.
안식일을 신자는 마음으로 잘 준비하고, 미리 모든 일을 정돈해서 주님께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 날에는 하루 종일 거룩하게 쉴지니 모든 일이나 말이나 생각 그리고 세상적인 고용이나 오락을 그만 두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쓰며, 필요한 의무와 자비를 베푸는 일에 바칠 것이다. <신앙고백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롬9:4「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예배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제사 제도는 우상 숭배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포함하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 제도에 계시된 구속사적 의의를 망각하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기에 예수께서는 그것을 반대하시면서 예배의 본질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데 있음을 가르치셨다(요4:23) <호크마>
요4:23,24「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 라 아버지께 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찿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 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예배하는(프로스퀴네오) : ‘절 한다’, ‘꿇어 엎드린다’는 뜻.
참 예배란 하나님 앞에서 전인격이 꿇어 엎드려 지는 것임<주석성경.호크마>
신령(神靈. 프뉴마) : ‘성령, 바람, 영(靈)’의 뜻.
가장 고귀하고 진실한 마음을 의미<큰성경>.
여기서 신령은 ‘순수하고 영적인 자세’로 해석 할 수 있다<빅파워성경. 한영해설성경>
신령과 진정으로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로 직역 하면 ‘영과 진리로’ 또는 ‘영과 진리 안에’를 의미한다.
대부분 학자들은 본 구절의 ‘프뉴마’가 ‘성령’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높고 깊은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알레데이아’는 ‘성실’이나 ‘정직’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부합되는 것으로써 예수 안에 계시된 진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영과 진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즉 전치사 하나에 두 단어가 함께 연결 되어 두 단어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내용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외적인 형식(장소, 시간, 예배 제도)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되며 진리의 영(14:7)으로 인도되어 오직 영이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 가운데서 예배 해야 한다.
즉 예배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자가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느냐에 따라 참과 거짓으로 구별될 것이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형식이 본질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지도자들은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호크마>
진정(眞正):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에 일치하여 예배해야 함을 뜻한다 <한영해 설성경>
예배하는 자들을 찿느니라 : ‘찿다’로 번역된 동사 ‘제테오’는 ‘원한다’, 또는 ‘요구 한다’의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1)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되기를 강하게 열망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집 나간 탕자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의 심정 을 엿볼 수 있다.
2) 또한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찿으신다.
잃어버린 양을 찿는 목자의 심정으로 하나님은 참 예배자를 찿고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찿는 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만의 새롭고도 독특한 사고 방 식에 속하는 것이다<호크마>
찿으시느니라 :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찿고 계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을 그와 같은 예배자들로 만들기 위해 열망을 품고 계시다는 뜻이다<한영해설성경>
하나님이 영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육신을 지닌 사람과는 달리, 영이신 하나님은 어떠한 장소에 제한되거나 또는 하나 의 특정 나라나 민족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시다.
온 우주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온 우주의 어디에든지 하나님이 계신다(시 139:7-12)<QA 성경>.
어떻게 우리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가?
참되고 순수한 예배는 사실과 신앙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먼저 진리로 예배 드리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경에 계시된 그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영(靈)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참된 예배란 단순히 외향적인 예배의 행동 이상 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내적인 순종이다(롬12:1)<QA성경>.
하나님은 영이시니 :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묘사하는 네 가지 은유적 표현 중의 하나이다.
다른 셋은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 1:5).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16) 그리고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이심이라’(히12:29) 등이다<주석성경. 호크마>
’영’으로 번역된 ‘프뉴마’ 앞에 관사가 없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많은 영들 가운데 하나의 영이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은 바로 영이시다’ 라는 의미로 무관사의 ‘프뉴마’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 관한 네 가지 표현 중의 나머지 셋은 다 음과 같다.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16)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분이시다(히12:29)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하나님의 행동과 활동 양식 및 속성을 묘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이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하신다’ 또는 ‘하나님 께서 세상을 통치하는 원리는 사랑이시다’ 는 것을 의미하는 바와 같이 1) ‘하나님은 영이시다’는 말은 ‘하나님은 영적인 방법을 통해서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한다’ 또는 2)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제한된 존재가 아니다’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 절은 예배에 있어서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교제에 대한 진술이므로 1)의 해석을 따라야 할 것이다 <호크마>
진정(眞正) : 진리에 재한 참된 지식을 갖고 예배 드려야 함을 강조 <큰성경>.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에 일치하여 예배해야 함을 뜻한다 <빅파워성경>.
진정으로(엔 알레데이아) : ‘진리의 안에서’란 뜻.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갖고서 예배에 임해야 됨을 교훈함<주석성경. 호크마>
예배(禮拜) : “-에게 경의를 표하다”의 뜻.
종교적인 존경. 사랑, 감탄을 동반한 찬양의 행위를 의미함<큰성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제사 제도는 우상 숭배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포함하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 제도에 계시된 구속사적 의의를 망각하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기에 예수께서는 그것을 반대하시면서 예배의 본질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데 있음을 가르치셨다(롬9:4) <호크마>
영적 예배
롬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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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1절의 몸을 육체적인 몸으로 보고 2절의 ‘마음’과 대조되는 것으로 해석하기 쉬우나 이것은 잘못이다.
1절에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한 것과 2절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라고 한 것은 직결되어 있다.
우리의 인격 전체를 구약 제물처럼 죽여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살아서 드리는 ‘삶의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이다<빅파워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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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제사 : ‘살아있는 희생의 뜻’.
생명이 있는 채로 드리는 제사로 생활 전체를 제사로 드리라는 의미임<큰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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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예배 :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하지만 여기서 ‘영적’에 해당되는 ‘로기캔’을 ‘합당한’, ‘올바른’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큰성경>.
<옮긴글>
[출처] 예배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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