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 님께서 올리신 '물 숨'을 읽었다.
댓글 서너 줄로 海女들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하여 서툰 글이나마 감히 올려본다.
午島는 말 그대로 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하여
우도라 부른다.
우도에 사는 해녀 친구가 있어 몇 번 갔다온 적이
있었다.
섬 중에 섬이라 척박하기도 하지만 섬사람들 특유의
강인한 생활력으로
'우도 사람들 앉았던 자리는 풀도 안 난다.'는 말도
있다.
어머니도 상군 해녀로 90세에 돌아가셨다.
70대에 들어서 이미 뼈가 녹아내려 물질을 그만
두었다.
딸도 해녀로 키우려 했지만 중 3 때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와
"지 밥벌이라도 하게 고등학교에 보내자"는 여러
차례의 권유로 새끼 해녀였던 나도 중 2때 물질을
멈췄다.
고무옷이 나오기 전에는 홑무명 적삼과 물소중이를
입고 물질했으니 쇠왁이(물벼룩이나 해파리)에 물리기도 하고 겨울에는 북풍 바람에 휘청거리며 무거운 망태기를 등에 지고 뭍으로 올라오는데도 몆 번을 돌 위에 주저앉기를 했다.
원시인의 삶 그대로였다.
'물 숨'먹고 죽는 해녀도 있었지만 상어에 물려 죽는
경우도 있었다.
물 위에서는 전복이 보이지 않는다.
물속으로 들어가 해초를 헤치며 바위에 붙은 소라와 전복을 잡는다.
전복은 물살이 세게 드나드는 좁은 엉덕 아래 붙어
있다.
한번에 전복을 떼지 못하면 전복 떼기는 힘들다.
좁은 바위 틈에 붙어 있어 두 손으로 힘을 합쳐
떼기도 힘들거니와 비창으로 눌러 떼지 못하면 일단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고 해서는 절대
안된다.
이외로 전복이 이를 악물면 쇠붙이인 비창도 힘을
못쓴다.
태왁 위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내려가야 한다.
전복은 힘이 좋고 기어 도망가는 것도 빠르기 때문에
해녀들이 조바심으로 충분히 숨을 고르지 못한 채
무리하여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 참변을 겪는다.
해녀들의 죽음을 가져오는 여러 원인 중에
그물에 걸려 죽는 일도 허다하다.
물 속이 어두운 서해 바다에서 어머니도 그물에 걸려 물숨을 다 먹고 죽을뻔했다고 말했다.
해녀의 목숨은 바다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저승의
문턱을 밟는 것인지 모른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간다' 는 말이 나온 이유다.
들숨, 날숨을 고르며 욕심을 버리고 바닷속
용왕神에게 기원하며 자기 분수를 지키면 탈은 없다.
바다는 무한한 은혜를 베플지만 성난 바다는 오딧세이의 세이렌처럼 유혹의 손짓을 하기도 한다.
"아기 낳고 삼일 만에 바다에 갔다"는 작은시어머니
를 보면 그 조급함과 욕심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느 쪽 바닷속에 가면 전복과 소라가 붙어 있는 게
훤히 보여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함에 이해는 한다.
'人命在天' 이라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첫댓글 원래 불보다 물이
무섭다는 말도 있잖아요?~ㅎ
남자들이 편하려면
제주에 가고 여자들이
편하려면 미국을 가라는
옛말이 있었던것 같아요^^
대단한 섬생활의
생생한 서사를 들었네요~~
그런가 봅니다.
네팔 홍수 사태도 보면.
제주 해녀들은 기스(상처)나 팔지 못하는
전복은 서방님 밥상에 올렸지요.
오로지 지아비를 섬기는......
거친 바람과 돌 自然環境으로 濟州人들은
陸地와는 다른 生活文化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 여 년의 歷史를 갖고 있는 濟州 海女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高麗 文宗때(1053년) 耽羅國에서 큰 眞珠를
王에게 進上했다는 기록도 있고朝鮮 成宗때(1470년)
文科에 及第한 高台弼은 평소 보아온 濟州海女들의
삶을 國王에게 直揀하고 이를 정상적인 生業으로
인정해 달라는 上疏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1890년대에 이르러 江原道 束草를 중심으로
黃金漁場을 처음으로 開拓한 것은 濟州島에서
건너간 出嫁海女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강한 생활력과 호락 호락하지 않는
성품에 육지의 뭇 남성들의 로망(Roman)이 되고
말았다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속초에서 1년 물질했지요.
제가 여고를 마치고 금방 취업이 안되어
어머니를 따라 갔어요.
뙤약볕에 앉아 성게를 까고 성게알은 어촌계에
갖고 가 무게를 달고 했지요.
속초 설악산 입구에 있는 대포항이었는데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비바람으로 작업을 못하면 설악산으로
낙산사로 쏘다녔지요.
슬픈 첫사랑의 추억도 있었습니다. ㅎ
해녀와 전복과 물숨과 오딧세이의 세이렌이 하나로 연결되네요.
욕심을 아니 낼 수도 없고요.
그래도 신기하기만 했을 중학생 때
물질하러 따라다녔을 때엔
많은 추억이 쌓였을 것 같네요
저는 중학시절, 12 킬로를 걸어 학교다니면서
먼것도 모르고 그냥 영어단어 외우면서 가고 오고 했는데요..
네.道伴 님.
요즘은 엄마 아빠가 차로 태워 다니지만
옛날에야 몇 리 길도 걸어다녔지요.
걸어오다 보면
처녀가 목 매달아 죽은 소나무도 있고.
할미꽃, 제비꽃도 보며 행복했지요.
그땐 겁도 없었죠. ㅎ
선배님 잘 지내시지요?
선배님 글을 뵈니 선배님 뵌듯
반갑습니다.
제주 해녀 박물관을 다녀 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건강하시고 시간 되면 연락드리고 뵙겠습니다
아이구~ 동미 아우님.
너무 오랜만에 보네.
여전히 건강하시고?
우리 제주에서 참 행복했었는데
응도 회장님과 함께.
@아우라 벌써 오래 된 추억이 되었네요.
저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아기 낳고 삼일만에 바다에 갔다...''
''이미 저승의 문턱을 밟은것..''
''물숨을 다 먹고 죽을뻔...''
오래전부터 의아한 것 ㅡㅡ 아직도 의아한 체로
남아있는데
''제주의 남정네들은 뭘 하고 살았는지''
''눈만 뜨고...붕어처럼 입만뻥끗?''
''지금 생각을하여도 답을 얻지못함''
예전에는 제주도 남정네들이
팔자 좋다고 했지요.
해녀 마누라가 물질가면
아이들이나 돌보고
밀감 심어 귤 수확으로 돈 벌기 시작했지요.
농약 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랍니다. ㅎ
제주해녀들의 거친 삶을 봅니다.해남도 있더군요.차차 해녀들도 삶속에서 사라지리라 봅니다.마치 영화를 보듯한 글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친척 중에 92세 해녀가 있지요.
아직도 상군 해녀로 건강하답니다.
로봇이 해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ㅎ
찡하는 울림도있고 흥미진진 하기도한 해녀들의글
잘읽었네요.
제주에서 강원속초까지 원정을 간것도 흥미롭구요..
대포항.낙산사.설악산.속초.자주다녔다니 재밌습니다..
제주 해녀는 원정 출가 해녀가 많답니다.
벌이가 훨씬 좋거든요.
서해 보다는 물 맑은 동해로 자주 가는데
방학 때마다 어머니 일하는 곳을 찾아
갔답니다.
초딩 5학년부터
겁이 없었죠.
울진, 삼척, 원덕, 기성, 주문진 바다 등등.
농업종사 소득보다
해산물 채취업이 부가가치가 높은가봅니다.
(제주해녀들은 제주도안에서만 작업을하는줄 여지껏 알고있었는데.의외네요..)
@방골신사 제주 해녀들이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가서 작업을 했다고 문헌에
남아 있다네요.
일본은 많이 갔지요.
어머니도 못 간 것을 후회하더라구요.
벌이가 훨씬 좋았으니.
'물 숨' 글을 올린 리오임다.
아우라님이 올리신 '볼리비아 할머니'의 답글을 올린
'청록..'의 또 다른 계정(청록)이기도 하지요.
볼리비아 할머니의 삶과 제주 해녀의 삶이 일맥상통하는,,,
海女들의 처절한 삶의 궤적을 알려주신 아우라님의 글에 또 다시 숙연해 집니다.
이제 무더위도 한풀 꺾입니다. 건강 하세염~^^
아아!
청록 님의 글이셨구나.
글을 많이 올리지는 않은데
저에게 글의 소제를 주셨군요.
어머니가 해녀라서 쉽게 쓸 수 있었습니다. ㅎ
한낮은 아직도 덥군요.
건강 조심하세요.
물을 무서워해서
첫수영을 학생때부터 배우고 40~50 때도 했는데 지금은 10m
도 못가네요 ㅎ
다들 알수 없다고 한답니다 해녀들의 삶이 고달프고 힘든줄 아는데 가끔방송에서 보면 생각보다 수입도 괜찮고 서로 친목도 ~
바다속엔 무궁한 보물도 있지만 생사가 엇갈리기도 하네요
해산물이 비싸니 해녀들 수입도 좋은 편이죠.
외국인 해녀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깊은 내륙이 아니라
삼면이 바다이니 얼마나 은혜 받은 나라일까요.
어렸을 적에는 바닷돌 위를 날아다녔는데
이제는 엉금엉금 기어갈 것 같습니다. ㅎ
낮에는 아직도 덥네요.
행복한 날 보내세요.
아주 깜찍한 샛별처녀가
황토빛 갈옷을 입고
무사 안왕시니
방언으로
구올릴때,
바닷가에서 갈옷은 슬프다
갈옷 이야말로 제주도의.
내핍과 근면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40대때 제주도 여행시 느꼈던
제주도 기행문(?)의 한귀절 입니다
아우라님의 지난했던 삶에 비하면
내는
마땅히 부끄러위해야 하지요.
우리 할머니들, 어머니들의 삶은
너무나 비참하고 머슴처럼 일만 했지요.
오죽해야
'소로 태어나지 못해 여자로 태어났다.''고
할 정도였으니.
아마 전국에서 제일 억척스럽고 근면한 여인들은
제주도 어멍들일 겁니다.
친척 중 92세 해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