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와 해녀(海女)
그리스 시대의 시인 호메로스는
장편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남겼다.
일리아스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을 그린 거라면
오디세이아는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의 노래다.
그런 과정에 인간의 지혜와 운명,
그리고 의지를 보여준다.
그중 놀란 감독이 오디세이아를 각색해
영화 오디세우스를 내놔 흥행을 이루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마치고
갖은 역경은 있었지만
아내와 아들이 있는 이타카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로 마쳤다.
그러나 단테는 神曲에서
오디세우스가 지옥에 있다고 썼다.
과도한 열망과 기만으로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썼다.
많은 군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여러 가지로 변주되는데,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었던 김성우는
유럽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돌아가는 배>를 썼다.
마치 오디세우스의 출향을 은유하는 듯했다.
특파원 시절, 홀몸으로 원 없는 서구 여행을 하면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썼다.
그러니까 취재전쟁이 아니라 출향의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쉰 살에 귀국하면서
"싱글은 미친 짓이다"라고 외치며 결혼했다.
태어난 고향인 욕지도에
간이 결혼식장 겸 거처를 마련하고
50명의 벗들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었다.
50년 산 와인을 50병 주문해
각 테이블에 세팅하고 담소를 나눴다.
마치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은유하는 듯했다.
그런 다음에 떠나간 배가 돌아온 배가 되었다면서
산문집 <돌아가는 배>를 집필했다.
결국 출향(出鄕)과 귀향(歸鄕)을 그렇게 노래한 거였다.
삶이란 출향과 귀향의 연속이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도 그렇거니와
멀리 여행길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것도 그러하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한평생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도 그러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나 영화 오디세우스는
고향을 떠나 전쟁터에 나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장 20년 세월의 서사다.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게 삶이었던 거다.
고향엔 여성들이나 가족이 있고
고향을 떠난 전쟁터엔 남성들이 있었다.
전쟁을 잘 마치면 귀향하는 거지만
전쟁의 과정도, 돌아가는 과정도 순탄치가 않다.
그게 삶이요, 호메로스나 영화는 그런 걸 그렸다.
과연 고향 또는 귀향이란 무엇인가...?
나의 고향 나들이를 꺼내본다.
고향 나들이
내 고향 서낭당 고개 돌무덤에 돌 하나 올려놓고 떠나온 뒤 여러 해 만에 다시 그 돌무덤을 찾는다. 고향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나서 자란 곳이 고향이라면 거기엔 어머니가 있거나 있었음을 떠올린다. 거기엔 푸른 들판과 그를 가로지르는 시냇물, 그리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산하가 있음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우린 어머니의 젖과 산천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며 자라난 것이다. 그러기에 고향은 탄생과 실존의 근원이라 하겠다.
우리에게 고향은 무엇인가? 고고성(呱呱聲)을 울리며 어머니의 자궁을 이탈할 때 우리는 고향을 맞음과 동시에 이미 떠나감이 예감되어 있었다. 고향은 떠나감을 내포한다. 신체적 탯줄을 끊어버림은 이탈이기 때문이다. 타향에서 보는 것이 고향이며 멀리 떨어져 그리워함의 대상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고향은 붙잡아둠의 의미이기도 하다. 태어나면서 신체적 탯줄은 끊었으되 정신적 탯줄은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적 탯줄은 우리를 고향에 붙잡아두게 하거나 머리나마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향이나 어머니는 우주 인력의 근원이며 구심력과 원심력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물체 질량의 제곱에 비례하고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고자 함은 욕망의 크기에 비례하고 고향에 되돌아가고자 함은 귀소본능의 크기에 비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고향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고향을 시발점과 종점으로 하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떠나감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돌아옴의 길이다. 하나는 가지 않은 길이요 개척의 길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미 가본 길이요 뉘우침의 길이다. 하나는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길이라면 다른 하나는 옛 서라벌의 회소곡(會蘇曲)이 내려 깔리는 길이다. 하나는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의 길이라면 다른 하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길이다. 고향은 단거리 경주의 출발선이고 마라톤의 회귀점이며 개선과 회한의 보따리를 풀어놓는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고향은 무엇인가? 서낭당 고개 돌무덤에 돌 하나 올려놓고 떠나온 지 여러 해, 이제 그 돌무덤에 돌아와 서성인다. 빈 하늘을 바라보다 돌 하나 더 얹어볼 뿐, 고향은 내게 넌지시 말한다. 두 어깨 내리누르고 있는 저고리 벗어 팔에 걸쳐 보라 한다. 단단히 매여 있는 넥타이도 느슨히 풀어 보라 한다. 와이셔츠 사이로 스미는 서늘한 바람이 나를 반긴다. 서녘 하늘의 저녁놀은 발그레 웃어준다. 아, 나의 고향은 여기 이렇게 역력하구나.(2000. 9. 28.)
그 적 바라볼 땐
하늘이었어
시리디 시린 파아란 하늘
그러다가 바라본 건
무지개였어
하늘 수놓을 일곱 빛 무지개
아, 이제 바라보노라니
깃발뿐이야
황진(黃塵)에 찌든 개선장군 깃발
다가갈수록 꿈은 작아지는 것
그런 줄 알았으면
꿈에나 살 걸. / 졸 시 ‘서낭당’ 전문
다시 고향마을에 가만히 들러본다. 옛날 같으면 여기쯤 다다를 때면 산마루 넘어 학교 운동장에선 뻐꾹 왈츠소리도 들리곤 하련만 빈 들에 쌓아놓은 시래기 더미 위에 까마귀 떼만 두리번거리는구나.
까막까막
깍 까악
고시 패스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리라던 내 친구 의구. 그래서 이름조차 義求라 지었다던 내 친구. 이제 몰골이 흉흉한 채 시궁창에 뒹굴던 이야기나 꺼내며 손사래 친다. 의구 병태! 한몫 크게 잡아 고향에 아스팔트길을 내리라던 내 친구 병태. 그래서 이름조차 秉太라 지었다던 친구. 이젠 속까지 다 긁어내고 病胎가 되어 다 갖다 바치고 뜯긴 이야기나 꺼내며 양미간을 찌푸린다. 의구 병태! 그럴 줄 알았으면 고향에서 농사나 짓고 살걸 그랬다는 내 친구,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한둘뿐이랴.
그래도 물장사하던 제 어미 치맛자락 붙잡고 자란 내 친구 봉이. 이젠 산전수전 다 겪고 어딘지 호프집을 차렸다는데 한강 물 팔아먹는 김선달 흉내만 아니 낸다면 나 이제라도 거기에나 마지막 투자를 해 호프(Hope)를 팔아먹고 사 먹고 하련만 그게 어디쯤이련지 아는 이 누구던가?
까막까막
깍 까악
다시 찾아본 고향마을엔 정적만 감돌뿐 서낭당 가는 길도 막혀버리고 그 아래 옹달샘도 파헤쳐져 수렁이 되어버렸으니 고향하늘 한번 서울하늘 한번 올려다보다가 “의구 병태”를 되뇌며 돌아설 뿐이구나.
제주의 아우라 님이 해녀 이야기를 썼다.
여중생 시절부터 해녀 어머니를 따라
물질하는 현장에 가봤다 한다.
더 커서는 물질도 해봤던 모양인데,
고무옷이 나오기 전엔 홑무명적삼과
물소중이를 입고 물질 했다 한다.
깊은 바닷속 바위에 단단히 붙어있는 전복을 보면
두 손으로 잡아도 떨어지지 않기에
비창으로 눌러 떼내지만
떨어지지 않을 땐 일단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단다.
쉬이 이~~~, 이때 바다 여기저기 숨비소리를 냈을 게다.
그러다가 물숨 마시고 죽는 사람,
상어에 물려 죽는 사람,
아마도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사람도 있었을 게다.
오디세우스는 한번 출향해 20년 만에 귀향했다지만
우리들은 아침에 출향해 저녁에 귀향하고
해녀들은 그 주기가 빈번해
순간순간 잠수와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삶을 산다.
오디세우스도, 우리도, 해녀도,
욕망이라는 망사리를 들고 다니지만
무엇을 얼마나 담을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첫댓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인생철학(人生哲學)을
선배님의 올려주신 博學하신 글로서
많이 배워봅니다
하기사 인간사 떠나는 남녀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ㅎ
이영화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웅장함과 집중력에 매료되어 관람했습니다 ㅎ
새로운 한주 힘차게 굿럭하시고요
단 결~!!
놀란감독도 촬영에 공을 많이 들였다 하데요.
그러니 웅장할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원전의 은유를 제대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었던것 같데요.
도반님의 긴~글 잘 읽었습니다
오디세이 주인공은 첩보영화에 잘 나오는 멧데이먼과 악마는 프라다를입는다의 주인공 앤 헤서웨이로 제가 광팬입죠.7년전에 읽었던 오디세이아의 독후감을 다시 확인해봣더니 영화내용과 일치 했습니다.언제나 교감가는글로 카페 팬들을 불러모으시니 존경을 보냅니다
(댓글을 조금 수정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잘하셨어요.
道伴 님.
젊었을 땐 "팔자는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코웃음 쳤지요.
'자기 하기 나름' 이라고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큰소리 쳤는데
역시 지 팔자 만큼 살다 죽는 것 같아요.
오디세이는 20년을 헤매다 고향으로 가고
저의 할아버지는 새파란 청춘에
일본에 밀항해서 60여 년을 방랑하다
죽을 때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와 죽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고향의 품을 잊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요즘 그리스와 이타카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네요.
그렇군요.
우리네의 최종 꿈은
금의환향이라 하지요.
그게 저마다 그렇게 쉬운것도 아니니
호메로스가 그런 서사를 남겼겠지만
놀란감독도 결말을 어떻게 맺을지 고심을 많이 했을겁니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배우라 더 몰두 했답니다 롯데시네마
편안한 좌석에서 3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관람했어요
그랬군요.
혹시 같은 시간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ㅎ
4D로 볼까
2D로 볼까
고민중입니다.
네에.
저는
도반님쓰신 글처럼
도반님 고향 떠나오실때
서낭당 고개 돌무덤은 아니더라도
신작로에 잘생긴 미루나무가
있었던 고향이 생각납니다
그길로
고향 사람들이
많이들 떠나갔었지요
도반님 말씀처럼
떠나온. 저와 그들도
욕망이라는 망사리를. 들고는
다니지만
무엇을 담을지
아직도 헤메는것 같습니다
도반님의 뜻깊고 소중한 글귀들
담아 두겠습니다
아이구우
부끄러운 글인데
일정부분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아보니 결국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어느철학자의 말을 따라온것 같은데요
그중에서도 지나친 욕심이 이런저런 후회를 낳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