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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누구든보내버릴줄알아
1. 유방은 덕이 많고 인자한 성품으로 인하여 천하를 거머쥔 황제다?
아니다.
유방은 신분이 미천한 시골 출신에 입이 험한 동네 건달이였다.
하루는 친구 하후영과 칼장난 하다가 상처를 내어 잡혀갈뻔 했는데 하후영이 위증하여 유방을 변호했다.
이 둘은 그 이후로 쭉 친구가 되었다.
2. 유방의 이름의 뜻은?
유막내, 즉 유씨집안의 막내라는 뜻이다. 신분이 미천한 출신인지라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보면 된다.
허나 미천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상은 타고났다고 하여 여치의 아버지 여공은
유방의 출신성분 상관없이 황제가 될 관상 하나만을 믿고 여치를 유방에게 시집보낸다.
3. 유방은 처음부터 우두머리로 추앙받았는가?
아니다.
사실 유방이 친하게 지내던 소하, 번쾌, 하후영, 옹치 등등이 있었는데
당시 진광과 오승의 난이 일어나긴 했지만 진나라의 세력이 강세할때인지라 모두들 우두머리의 자리를 꺼려했다.
이때 우리의 유방은 인생은 한방이란 마음으로 우두머리를 올랐다고 보면 된다.
4. 유방은 전쟁 유형은?
유방은 항우의 정공법과는 달리 아주 야비하고 생존력이 끈질긴 지구전을 선택했다.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모사 '진평'을 통해 간첩과 모략질을 펼쳐 초나라의 내부사정을 이간질 시키는 것은 물론
부하 장이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장이와 비슷한 자의 목을 잘라 상대를 속이기도 하였다.
5. 유방의 가족 사랑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는 황제가 되기 위해서라면 부모, 처자식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진정한(?) 사나이 중 사나이였다.
팽성전투 당시 항우의 3만 군대에게 농락 당한 뒤 팽성에 부모와 아내 여치를 버려두고 도망갔다.
호위무사 하후영과 마차로 도망가는 도중에
우리의 유방은 아들과 딸이 도망가는데 지장을 준다고 판단하여 마차에서 던져 버리기까지 하였다.
의리의 호위무사 하후영은 유방이 아들, 딸을 버릴 때마다 마차를 세워서 다시 태우곤 했다.
이를 본 유방이 화나서 하후영을 죽이려 하였고 하후영은 따끔하게 유방에게 한마디 했다.
"아무리 목숨이 위급하더라도 자식을 버리고 가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6. 유방이 팀킬을 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나라 진영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항우와 대적했다.
유방이 있는 본진과 여러 제후국을 치러 가기 위해 만든 한신의 부대.
한신 없는 유방은 장량과 진평, 왕릉등으로 항우와 대적했지만 천하장사 항우를 막을 힘이 도저히 없었다.
허구한날 털리자 유방은 한신의 부대를 몰래 잠입하여 한신의 병부권, 즉 한신의 군사 소집권을 빼돌렸고
한신은 소수의 군사만을 남겨둔 채 대부분 군사를 유방에게 강제로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명장 한신은 그 소수의 군사로 결국 마지막 제나라까지 완벽히 정복한다.
7. 한나라가 유교를 국교로 선언하기 전 모습은 어땠을까?
유방이 한나라 황제 고조로 즉위한 후 논공행상을 행하였는데
몇몇 무인들이 자신의 공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황제 앞에서 기둥에 칼을 찍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연히 술판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우리의 유방은 가만히 볼수밖에 없었다.
허나 유학자 숙손통에 의하여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였고
신하들의 행동모습들이 예전과 같이 무례하지 않고 가지런하자
유방은 비로소 자신이 황제가 된 기분을 알겠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8. 유방은 최후의 승자였나?
아니다.
당시 한나라를 가지고 놀았던 흉노가 있었다.
흉노가 나은 최고의 군주 묵특선우의 지도하에 한나라를 유린하며 살아왔고 결국 승리하여 형님으로 대접받았다.
유방은 묵특선우에게 관광당하며 겨우 돌아왔고 자신의 딸 노원공주를 바치기로 하였다.
허나 여태후는 극구 반대하였고 결국 가짜 공주를 위장해 시집보내었다고 한다.
9. 유방의 황제가 되기 전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 있었을까?
그는 황제가 되기전 공부를 여전히 게을리하여 부하 '육가'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듣고 공부하였다.
육가 曰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수 있지만 말 탄채로 천하를 다스릴수 없습니다."
그리고 유방은 황제가 되고나서 항상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자신이 처음으로 봉기할 때 먹었던 소와 사슴의 내장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10. 유방의 최후는?
유방은 영포가 난을 일으켜 진압하는 도중에 화살을 맞게 되었다.
자신이 화살을 맞음으로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것을 직감했다.
유방은 치료받기를 거부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사나이답게 고향 땅에 놀러가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최측근 심복인 의리의 상징인 번쾌를 의심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는 끝내 의심만 하다가 죽었다고 보면 된다.
1. 항우는 과연 무식하게 힘만 세고 예의범절 모르는 성격 더러운 장수였을까?
사기에 의하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공경스럽고 자애로우며 말투가 부드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아플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슬픔을 함께 했다고 한다.
명문가 귀족 출신 다운 면모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
2. 배수진 전법의 원조는 한신인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배수진의 원조는 한신으로 알고있지만 사실 배수진의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은 항우이다.
항우는 숙부 항량의 죽음으로 진나라 장수 장한을 치러가는 길에 밥을 지을 솥과 건너고 온 배를 모두 태웠다.
그리고 간지나게 한마디 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모두 죽고 달랑 세 집안만이 남는다고 하더라도 진나라를 멸하는건 초나라다."
아마도 한신은 당시 초나라에서 함께 싸웠던 항우의 이 전략을 보고 배수진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혹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3. 항우는 늘 정공법을 고집하였나?
항우의 장기, 힘을 극대화시키려면 정공법이 최선이였지만 가끔 인질을 이용하기도 했다.
유방의 유능한 신하인 왕릉을 꼬실려고 왕릉의 모친을 인질로 섭외했으나
왕릉의 모친은 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자결하였고 항우는 화가나 시신을 가마솥에 삶아죽이는 부관참시를 행하였다.
그 후 왕릉은 쭉 유방 밑에 있게 된다.
그리고 유방의 항복을 받으려고 유방의 아버지를 가마솥에 삶아죽인다고 하였지만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 유방은 아버지를 죽이면 국 한사발 끓여오라는 패드립까지 쳤다.
그렇게 항우의 인질협박전술은 실패했다.
4. 항우의 최후는?
마지막 결전인 해하전투에서 패배후 항우가 퇴각 도중에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다.
하지만 농부가 가르쳐 준 길은 늪이였고 민심이 돌아선 것을 느꼈고 이를 천명이라 여겨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한신이 가둬놓고 패다보면 삼대영은 기본인 전술로 항우를 줘팼지만
우리의 항우는 끝까지 적에게 죽지 않고 자결하였다.
허나 그의 시신은 온전치 못하였는데 유방이 항우의 시신을 가져오는 자에게 상금을 준다고 하여
그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겨지고 말았다.
허나 유방은 훗날 황제가 되고 나서 항우의 사당을 지어 명복을 빌어주곤 했다.
1. 한신은 멸망한 나라의 왕족, 귀족 출신이다?
근거없는이야기다.
사기에서나 한신의 이야기를 담은 회음후열전에서는 그가 멸망한 나라의 왕족과 귀족이란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유방의 진영 중에서 유일하게 귀족 출신은 장량 단 한명이다. 나머지는 평민이거나 천민 출신인 것이다.
2. 한신은 장량에 캐스팅에 의해 소하에게 추천받은 뒤 유방에게 천거받았다?
故 고우영 선생님의 초한지에서 각색된 부분이므로 사실이 아니다.
사기에 의하면 한신은 초나라 집극랑에서 한나라로 귀순하여 말단직을 하사받았는데
군법을 어겨 사형에 처해질 뻔 하였다.
자신이 죽을 차례가 오자 호위무사 하후영을 발견하고는
"왕께서 천하를 취하실려면 이 인재를 거둬주시옵소서" 라고 말했다.
하후영이 이 말을 듣고 소하에게 한신을 데려갔다.
소하는 한신에게 정세를 물어보었고 한신이 대원수감인 것을 알아차려
유방에게 천하를 취하고 싶거든 한신을 거두라고 추천했다.
3. 한신의 정치적 행보는 어땠을까?
여러 나라를 정복한 한신은 초나라를 제외한 마지막 나라인 제나라와의 결전을 준비하는 도중에
유방이 보낸 사신 역이기가 제나라와의 평화 협정을 맺었다라는 소식을 들었다.
한신은 자신의 공이 역이기에게 돌아갈까봐 언짢게 여겨 양국간의 평화 협정을 파기하고 제나라를 멸망시켰다.
사신 역이기는 한신의 공로 욕심에 의해 죽는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유방이 항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한신을 소집하였지만
유방의 이중적인 모습과 자신을 고생시켰던 것때문에 소집에 응하지 않고
제나라 민심 평정을 이유로 소집에 불응하였다.
유방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한신에게 권력과 명성을 보장해주었고 그제서야 한신은 출정했다.
훗날 유방은 한신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때문에 한신을 제거하기에 이르렀다.
4. 한신의 최후는?
유방이 한제국을 건설 후, 정치 안정화를 위하여 제후들을 하나 둘씩 제거하고 있는 도중에
전쟁의 신, 한신을 무력으로 진압하기가 역부족이였다.
그 이유는 한신도 있거니와 당시 초나라의 최고 장수였던 종리매가 한신의 밑에서 은둔해서 살았던 것.
유방은 한신에게 종리매를 숨겨준 죄로 한신에게 압박했고
한신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종리매를 죽이려 하였다.
종리매는 자신과 한신 둘이라면 유방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하였지만
한신의 마음이 변치 않자 한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자결하고 만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들고 유방을 맞이하였으나 결국 포박당하였고
유방에 의해 초나라 제후직을 파직당한 후 여치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유방에게서 유일하게 토사구팽 당하지 않은 신하는 소하다?
아니다.
소하도 유방의 의심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소하의 인생 위기 3가지가 있었는데
1. 한신을 처리한 공을 인정받아 유방에게 땅과 호위병을 하사 받았었다.
허나 지인이 그건 호의의 선물이 아니라 감시의 선물이라고 하자 사양하였더니 유방이 그제서야 안심을 했다고 한다.
2. 영포의 난 때 유방이 출정하고 나서 민생에 힘을쓰자 전쟁터에 있던 유방이 소하의 안부를 자주 물었다고한다.
그 이유는 소하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소하는 유방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백성들을 갈취시켰더니 유방이 그제서야 안심했다고 한다.
3. 유방이 영포의 난을 진압하고 나서 도성에 복귀 후 소하의 평판이 떨어진 것을 묻자
소하는 그제서야 유방에게 충언을 하였다.
"백성들을 위해서 폐하의 사냥터를 농업용지로 바꾸시는게 어떠십니까?"
유방이 이를 기분 나쁘게 여겨 소하를 며칠동안 감옥에 가두고 말았고
1등공신 소하도 어쩔 수없이 유방의 의심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면 유일하게 의심을 받지 않고 천수를 누리다 간 신하는 누구일까?
바로 진평이다.
진평은 장량과 더불어 유방이 신뢰했던 모사였고 유방과 출신성분이 비슷하여
유방은 진평이 어떠한 계책을 쓰던간에, 어떠한 비리행위를 저지르던간에 그를 지지해주었다.
진평은 유방 사후 여태후 정치 체제에서도 승상의 자리를 이어가며 권세를 누리다가 평화롭게 죽었다고 한다.
유교를 한나라 국교로 채택하게 만든 숙손통은 어찌 유방의 눈에 들게 되었는가?
숙손통이 섬겼던 주인은 유방까지 총 6명이다.
진시황-호해-진승-항량-항우-유방
유방에게 찾아왔을 당시 유방이 입었던 고향 옷을 입고 오자 유방이 이를 기쁘게 여겨 부하로 삼았다고 한다.
숙손통의 주인은 6명이나 바뀌었다지만 숙손통은 의외로 기개가 있었던 인물이다.
유방이 태자 자리를 장남인 유영에서 자신이 총애하던 차남 유여의로 바꾸려고 하자
숙손통이 이건 도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정 바꿀거면 자신의 목을 치거든 바꾸라고 하였다고 한다.
여러분들이 몰랐을 것 같은 초한지 사실에 대해 몇가지 적어봤습니다.
사실 삼국지에 비해 초한지가 덜 알려진게 있지만 이야기 구도를 보자면
개인적으로 삼국지가 더 극적이기도 하고 재미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댓글로 초한지 입문 서적을 여쭤보시곤 하는데
만화책으로는 故 고우영 선생님의 초한지 시리즈 8권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구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책으로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권 시리즈를 추천드리겠습니다.
제가 추천한 책 이외에도 나머지 자세한 부분은 구글에서 검색하셔서 찾아 보시면 유용한 정보가 많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이 중에 내가 모르는 내용은 하나도 없는데... 오히려 이 글이 좀 문제가 있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뭐, 원래 흥미위주 글이란 게 다 이렇죠.
문제가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학살을 밥먹듯이한 항우는 남자다운 사람이고 자기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 유방은 죽을때까지 의심한 사람인가요?
유방이라는 이름이 유씨집안의 막내라는 뜻이아니라 본래 자가 계로 유계라고 불렸는데 그게 유씨집안 막내라는 뜻이라고 알고있는데 말입니다
중국에서 아들을 나면 첫짼 맹(백), 둘짼 중, 셋짼 숙, 넷짼 계, 다섯째 부턴 숙으로 불림.. 유방의 자가 계임으로 넷째이거나 혹은 막내일수 있습니다. 유방의 집안이 낮은 신분인 관계로..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지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데 사기에서 유태공(유씨 할아버지) 유온(유씨네 할머니)라고 기록이 되어있음
유방은 항우의 정공법과는 달리 아주 야비하고 생존력이 끈질긴 지구전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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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야비한게 어딨지? 살아남는자가 장땡이지라
항우는 과연 무식하게 힘만 세고 예의범절 모르는 성격 더러운 장수였을까?
사기에 의하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공경스럽고 자애로우며 말투가 부드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아플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슬픔을 함께 했다고 한다.
명문가 귀족 출신 다운 면모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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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녀자의 용맹 필부의 인정: 항우에 대한 한신의 평가
한신의 항우에 대한 평가는 필부지용 부인지인, 필부의 용기와 아녀자의 인정입니다.
용맹하지만 쉬이 만용을 부리고, 남을 아낄 줄은 알지만 그 대상이 한정될 뿐더러 감정적이고 편협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당시 기준으로)아녀자와 같은 정을 가진 인물이라 평가했죠.
@Diogenes 앗 햇깔렸다 ;;
-_- 진광과 오승은 또 누구여;;;
진광과 오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흥미위주...
하긴, 성째로 묻어버리고 수십만씩 파묻는 건 온화한 행위긴 하죠.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처리하는 건 잔혹한 행위고 말이죠.
;; 허헠
아들 딸버리는건 ㄹㅇ
그래도 한고조 유방 이면은 중국 탑 명군 클라스에 들어가겠죠? 건국자 정치력과 소위 성군과는 좀 다른가..?
이 글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유방의 단점과 항우의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정말 많네요...
개인적으로 유방은 격은 한참낮은 사람이지만 대단한 인물이라 봅니다.
항우의 최대 실책은 논공행상을 엉터리로 한 것, 그 때문에 각지에서 반란이 끊이질 않아서 유방을 제대로 상대할수가 없었죠. 만약 이 논공행상을 제대로 해서 반란같은게 일어나지 않고 각지의 제후가 합심하여 항우를 도와 유방을 상대했더라면 초 대신 한이 들어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겠죠.
이런식으로 따지면 유비도 마찬가집니다. 유비도 시작은 탁현 뒷거리를 주름잡는 깡패집단 대장이었거든요. 솔직히 그냥 유방을 폄하하려는 글로밖에 안보이네요. 유방의 정치적인 식견이나 용인술 등에 대해선 언급도 안하니. + 옹치가 언제부터 유방과 친하게 지냈나요?
글이 편파적이고 문제가 많네요.
오바 심한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