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바다
십일월 넷째 금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아침밥을 해결했다. 좁은 와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느니 날이 어두워도 새벽길을 나서기로 작정했다. 다섯 시 반이 지날 무렵 와실을 나오니 바깥은 캄캄했다. 가로등이 없는 어둔 골목은 자주 다녔기에 어림짐작으로 발을 조심스레 디뎌 연사 정류소로 나갔다. 고현을 출발해 지세포를 거쳐 구조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승객을 나 혼자뿐이었다.
송정고개를 넘어 옥포를 지나 아주에서 아낙에 뒤이어 사내가 탔다. 장승포를 비켜가는 아주터널을 지나니 곧바로 지세포였다. 아침 첫차는 손님이 적어 두모고개에서 장승포와 마전을 거치지 않고 단축 노선으로 다녔다. 지세포를 지날 때도 포구는 캄캄해 부두에 켜둔 보안등 불빛만 보였다. 와현고개를 돌아 구조라로 갔다. 대개 거기가 종점인데 첫 운행버스는 양화마을까지 갔다.
아주에 탄 사내는 구조라 삼정마을 회관에서 내리고 모래 결이 고운 해수욕장을 지나 윤돌마을과 양지마을을 지났다. 아주에서 타고 온 아낙은 망치마을에서 내렸다. 망치 일대는 해안 경관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라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바다 전망이 좋으니 펜션이나 카페도 성업을 이루었다. 아까 아주에서 타고 와 내렸던 아낙도 펜션이나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싶다.
나는 양화마을을 지난 펜션촌까지 갔다. 기사 양반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이른 새벽 종점까지 가니 정체가 궁금한 듯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이 버스가 언제 되돌아가느냐고 물었다. 삼십 분 후에 출발한다고 했다. 이 버스를 타고 갈 텐데 잠시 내려도 되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좋다고 했다. 연사에서 캄캄할 때 길을 나서 종점 양화에 닿아도 날이 덜 새어 어둠이 가시지 않았더랬다.
나는 구조라와 양화 일대는 해안선 트레킹을 몇 차례 다녀 지형지물이 낯설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날이 덜 밝아서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국도를 따라가니 점차 날이 밝아왔다. 구조라 반도의 수정봉 전망대가 보였다. 그 바깥은 내도와 외도였다. 학동으로 돌아가는 산모롱이에 가려 해금강은 보이질 않아도 공곶이에서 뻗어나간 서이말등대는 불빛이 깜빡거렸다.
날이 밝아오는 남녘 바다에는 간밤 밝은 불을 켜고 아침을 맞는 선단이 보였다. 갈치인지, 뭔지 모를 어종을 그물로 걷어 올리는 어부들은 밤을 새워 조업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낮은 구름이 끼어 날씨가 흐렸다. 망치 앞바다에는 무인도인 윤돌도가 안산처럼 떠 있었다. 구조라는 택지에서는 나오는 불빛이 비쳤다. 거제의 산 가운데 꽤 높은 북병산은 남녘 바다를 병풍처럼 에워쌌다.
국고 14호선은 남부면 소재지 저구에서 학동과 지세포와 옥포를 돌아 거제대교를 건너 통영에서 해안 따라 마산을 돌아 포항에 이르는 길이다. 국도 갓길 조경수로 심었는지 절로 자라는지 몇 그루 동백나무가 보였다. 그 동백나무가 맺은 꽃봉오리는 송이송이 선홍색 꽃잎을 펼쳐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애기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바야흐로 동백꽃도 제철을 맞았다.
정한 시각이 되자 버스 기사는 멈추어둔 시동을 걸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망치마을과 양지마을과 윤돌마을을 지났다. 왔던 길은 어둠 속에 지났는데 되돌아가는 길에는 날이 밝아와 주변 경관이 드러났다. 윤돌마을을 지날 때는 외도 바깥 해금강 일대도 시야에 들어왔다. 구조라에 닿으니 선창에는 어선들이 보였다. 와현고개에서 지세포로 내려서니 일터로 향하는 승객이 더러 탔다.
장승포에서 두모고개를 넘으니 아주 대우조선소였다. 근로자들이 본격적으로 출근을 하는 시각이 아니라 출입문은 한산했다. 옥포에서 송정고개를 넘으니 내가 사는 생활권이 점차 가까워졌다. 평소 아침은 연사들녘을 둘러 교정으로 들었는데 여느 날과 달리 새벽 첫차 시내버스로 어둠 속에 구조라를 지난 양화마을까지 둘러왔다. 여명의 아침에 남녘 바다를 보고 출근하는 셈이었다. 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