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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봉호(避獐逢虎)
노루를 피하다 범을 만난다는 뜻으로, 작은 화를 벗어나려다 큰 화를 당한다는 말이다.
避 : 피할 피(辶/13)
獐 : 노루 장(犭/11)
逢 : 만날 봉(辶/7)
虎 : 범 호(虍/2)
노루는 성격이 온순하고 겁이 많다. 작은 무리를 지어 잡초나 나무의 어릴 싹, 잎을 주식으로 한다.
중국이나 만주 아무르 지역에 두루 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 노루에 관련된 속담이 많다. 한자로 번역한 것도 제법 된다. 재미있는 몇 가지만 보자.
타장지장(打獐之杖)은 글자대로 ‘노루 때린 막대기’다. 어쩌다 노루를 잡은 막대기로 늘 잡을 수 있다며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獐毛曰長 幾許其長)’는 보잘 것 없는 재주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을 비웃는다.
덩치가 1m가 넘게 제법 크고 빠른 질주력을 가져 엉겁결에 만나면 깜짝 놀랄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 노루를 피하면(避獐) 이번에는 호랑이를 만난다(逢虎)를 쓴다.
노루 피하니 범이 온다는 속담을 한역한 것으로 일이 점점 더 어렵고 힘들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풀어서는 피장이거 내반우호(避獐而去, 乃反遇虎)가 된다. 피장봉호(避麞逢虎)도 마찬가지다.
같은 뜻의 속담으로 어려운 느낌은 덜하지만 ‘조약돌을 피하니까 수마석을 만난다’가 있다. 수마석(水磨石)은 물결에 씻겨 닳아서 반들반들한 돌을 말한다.
나쁜 일이 연이어 일어날 때 더 알려진 말로 ‘여우 피해서 호랑이를 만났다’거나 ‘귀신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다’라는 말도 있다.
한 가지 위험을 피하려 전력으로 질주하는데 더 큰 위험이 버티면 진퇴양난이다. 이 경우가 전호후랑(前虎後狼)이다.
원(元)나라 문인 조설항(趙雪航)이 ‘평사(評史)’에서 후한(後漢) 초기 정치의 난맥상을 묘사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외척의 발호를 겨우 막으니 환관이 설친다는 것을 전문거호 후문진랑(前門拒虎 後門進狼)으로 표현했다.
부단한 노력으로 어떠한 일을 성취했을 때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럴 때 노루를 빗댄 교훈이 있다. 장수견몽(獐睡犬夢), ‘노루잠에 개꿈이라’는 말은 아니꼽고 같잖은 꿈 이야기나 격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다.
달아나는 노루 보고 얻은 토끼를 놓았다의 분장고 방획토(奔獐顧, 放獲兎)란 말대로 욕심을 내다가 모든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 避(피할 피)는 ❶형성문자로 辟(피)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辟(벽; 한쪽으로 기울다, 피)으로 이루어졌다. 부딪치지 않게 피하여 지나가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避자는 '피하다'나 '벗어나다', '회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避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辟(피할 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辟자는 사람과 辛(매울 신)자를 함께 그린 것으로 '피하다'라는 뜻이 있다. 한자에서 辛자는 주로 노예와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避자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죄수가 잡힐까 두려워 길을 피해 다닌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천민들이 상전들을 피해 골목으로 다닌다는 해석이다. 조선 시대 때 말을 타고 종로를 행차하던 양반들을 피하고자 서민들이 다니던 길을 '피마골(避馬골)'이라 했으니 避자의 대략적인 의미가 이해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避(피)는 ①피(避)하다 ②벗어나다, 면(免)하다 ③회피(回避)하다 ④떠나다, 가다 ⑤물러나다 ⑥숨다, 감추다 ⑦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망할 도(逃), 숨을 둔(遁)이다. 용례로는 선선한 곳으로 옮기어 더위를 피하는 일을 피서(避暑), 재난을 피해 멀리 옮아감을 피난(避難),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옮김을 피한(避寒), 몸을 숨기어 피함을 피신(避身), 난리를 피하여 있는 곳을 옮김을 피란(避亂), 더위를 피함을 피서(避署), 세상을 피해 숨음을 피세(避世),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하는 말을 피사(避辭), 병을 앓는 사람이 있던 곳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요양함을 피접(避接), 병을 피하여 거처를 옮기는 일을 피병(避病), 꺼리어 피함을 기피(忌避), 몸을 피하여 만나지 아니함을 회피(回避), 도망하여 몸을 피함을 도피(逃避), 위험이나 난을 피하여 기다리는 일을 대피(待避), 면하여 피함을 면피(免避), 어떤 일 따위로부터 꾀를 써서 벗어남을 모피(謀避), 세상에 나가 활동하기 싫어 숨어서 피함을 둔피(遁避), 사양하고 거절하여 피함을 사피(辭避), 등지거나 피함을 배피(偝避), 당연히 피하여야 함을 응피(應避), 책임이나 맡은 일을 약삭빠르게 꾀를 써서 피함을 규피(窺避), 혐의를 논변하여 피함을 논피(論避), 서로 함께 같이 피함을 통피(通避), 노루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작은 해를 피하려다가 도리어 큰 화를 당함을 이르는 말을 피장봉호(避獐逢虎), 흉한 일을 피하고 좋은 일에 나아감을 이르는 말을 피흉취길(避凶就吉),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말을 사차불피(死且不避), 귀신도 피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단행하면 귀신도 이것을 피하여 해롭게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귀신피지(鬼神避之), 피하고자 하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을 회피부득(回避不得), 맞부딪치기를 꺼리어 자기가 스스로 슬그머니 피한다는 말을 오근피지(吾謹避之) 등에 쓰인다.
▶️ 獐(노루 장)은 형성문자로 麞(장)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章(장)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獐(노루 장)은 노루(사슴과의 포유류)를 뜻하는 말이다. 용례로는 노루의 새끼를 장고(獐羔), 노루의 굳은 뿔을 장각(獐角), 노루의 털을 장모(獐毛), 노루의 가죽을 장피(獐皮), 노루의 피를 장혈(獐血), 노루의 간을 장간(獐肝), 노루고기로 만든 포를 장포(獐脯), 노루의 앞다리가 몸뚱이에 붙어 있는 안쪽의 오목한 곳에 난 털을 장액(獐腋), 돋아 나와서 채 다 굳지 아니한 노루의 뿔을 장용(獐茸),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는 제구를 장족(獐足), 열병을 일으킬 만한 독기 있는 숲을 장림(獐林), 말린 노루 고기를 건장(乾獐), 살아 있는 노루를 생장(生獐), 털 빛이 온통 흰 노루를 백장(白獐), 자줏빛의 노루를 자장(紫獐), 고라니를 이르는 말을 보장(甫獐), 꼬리가 짧은 개를 이르는 말을 장자구(獐子狗), 털이 붙은 노루 가죽을 모장피(毛獐皮), 다뤄서 녹신녹신하게 만든 노루 가죽을 숙장피(熟獐皮), 노루 친 막대기라는 뜻으로 한 번 우연히 물건을 주우면 항상 요행을 바라게 된다는 뜻의 속담을 타장장(打獐杖), 노루잠에 개꿈이라는 뜻으로 같잖은 꿈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을 야유하여 이르는 말을 장수견몽(獐睡犬夢), 궁노루 즉 사향노루는 사납고 날쌔므로 단단히 묶어야 한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대해 주면 버릇 없이 굴게 되므로 단단히 단속해야 한다는 말을 여박궁장(如縛宮獐), 노루를 쫓다가 토끼를 잃는다는 뜻으로 먼 데 있는 것을 가지려고 하다가 이미 가진 것조차도 잃어 버린다는 말을 주장낙토(走獐落兔), 노루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작은 해를 피하려다가 도리어 큰 화를 당함을 이르는 말을 피장봉호(避獐逢虎) 등에 쓰인다.
▶️ 逢(만날 봉)은 ❶형성문자로 逄(봉)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夆(봉)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逢자는 ‘만나다’나 ‘맞이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逢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夆(끌 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금문에 나온 逢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廾(받들 공)자가 더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길가에 있는 나무에 당도한 누군가를 향해 양팔 벌려 환영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나무는 만남의 장소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逢자는 목적지로 찾아온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夆자가 발음역할을 하게 되면서 본래의 의미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逢(봉)은 길에서 만나다의 뜻으로 ①만나다 ②맞이하다, 영접(迎接)하다 ③크다, 크고 넓다 ④매다(=縫) ⑤영합(迎合)하다 ⑥점(占)치다, 예측(豫測)하다 ⑦북소리 ⑧성(盛)하고 많은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만날 우(遇), 만날 조(遭)이다. 용례로는 만나서 부닥침을 봉착(逢着), 변을 당함 또는 남에게 모욕을 당함을 봉변(逢變), 욕을 봄을 봉욕(逢辱), 풍년을 만남을 봉년(逢年), 남의 뜻을 맞추어 줌을 봉영(逢迎), 만남과 이별을 봉별(逢別), 복을 만남을 봉복(逢福), 남의 돈이나 물건을 맡음을 봉수(逢受), 때를 만남을 봉시(逢時), 우연히 서로 만남을 봉우(逢遇), 실패를 당함을 봉패(逢敗), 도적을 만남을 봉적(逢賊), 점검을 받음을 봉점(逢點), 화를 당함을 봉화(逢禍), 구타를 당함을 봉타(逢打), 남에게 돈이나 재물을 맡김을 봉수(逢授), 봄을 맞이함을 봉춘(逢春), 서로 만남을 상봉(相逢), 다시 만남이나 다시 만나 봄을 갱봉(更逢), 다시 만남을 재봉(再逢), 거듭 만남을 중봉(重逢), 좋은 운수를 만남을 운봉(運逢), 잠깐 서로 만남을 잠봉(暫逢), 물에 뜬 개구리밥처럼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만난다는 뜻으로 우연히 만남을 이르는 말을 평봉(萍逢), 사람을 만나는 족족 이야기하여 세상에 널리 퍼뜨림을 봉인즉설(逢人卽說), 아무 때나 어떠한 자리든지 닥치는 대로 한시를 지음을 봉장풍월(逢場風月), 공교롭게 아주 못된 때를 만남을 봉시불행(逢時不幸),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지껄이어 소문을 퍼뜨림을 봉인첩설(逢人輒說), 바람 부는 날 가루 팔러 가듯이라는 뜻으로 하필 조건이 좋지 않을 때에 일을 시작함을 이르는 말을 매설봉풍(賣屑逢風),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서로 만난다는 뜻으로 남에게 악한 일을 하면 그 죄를 받을 때가 반드시 온다는 말을 척교상봉(隻橋相逢), 울려는 아이 뺨치기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불평을 품고 있는 사람을 선동함을 비유한 말을 욕곡봉타(欲哭逢打), 우레처럼 만났다가 번개처럼 헤어진다는 뜻으로 잠깐 만났다가 곧 이별함을 이르는 말을 뇌봉전별(雷逢電別), 소금을 팔다가 비를 만난다는 뜻으로 일에 마魔가 끼어서 되는 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매염봉우(賣鹽逢雨), 노루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작은 해를 피하려다가 도리어 큰 화를 당함을 이르는 말을 피장봉호(避獐逢虎) 등에 쓰인다.
▶️ 虎(범 호)는 ❶상형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갑골문의 호(虎)자는 머리는 위로 향하고 꼬리는 아래로 향하며 몸에는 무늬가 있다. 중국인들은 호랑이의 머리에 왕(王)자가 크게 쓰여 있어서 호랑이가 바로 동물의 왕이라고 생각하였다. ❷상형문자로 虎자는 '호랑이'나 '용맹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호랑이는 예나 지금이나 용맹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신비의 영물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문자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虎자가 쓰인 글자 대부분은 '용맹함'이나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다. 갑골문에 나온 虎자를 보면 호랑이의 몸집과 얼룩무늬가 그대로 표현되어있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획이 변형되면서 지금의 虎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참고로 虎자는 폰트에 따라 다리 부분이 儿자나 几자가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虎(호)는 虍(범호 엄)부수로 ①범, 호랑이 ②용맹스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범의 꼬리를 호미(虎尾), 용맹스러운 장수를 호장(虎將), 호랑이와 이리를 호랑(虎狼), 털이 붙은 범의 가죽이라는 호피(虎皮), 범에게 당하는 재앙을 호환(虎患), 범의 위세란 뜻으로 권세 있는 사람의 위력을 호위(虎威), 매우 용맹스러운 병사를 호병(虎兵), 범과 같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 봄을 호시(虎視), 사나운 범을 맹호(猛虎), 큰 호랑이를 대호(大虎), 엎드려 앉은 범을 복호(伏虎), 다른 산에서 온 호랑이를 객호(客虎), 용맹스럽고 날래다는 비유를 비호(飛虎), 소금처럼 흰 눈으로 만든 호랑이를 염호(鹽虎), 범이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도 죽은 뒤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말을 호사유피(虎死留皮), 범이 먹이를 노린다는 뜻으로 기회를 노리며 형세를 살핌을 비유하는 말을 호시탐탐(虎視眈眈), 용이 도사리고 범이 웅크리고 앉았다는 뜻으로 웅장한 산세를 이르는 말을 호거용반(虎踞龍盤), 범과 용이 맞잡고 친다는 뜻으로 영웅끼리 다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호척용나(虎擲龍拏), 범에게 고기 달라기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어림도 없는 일을 하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호전걸육(虎前乞肉), 구사 일생으로 살아 남은 목숨을 일컫는 말을 호구여생(虎口餘生), 잡았던 범의 꼬리를 놓기가 어렵다는 뜻에서 위험성이 있는 일을 비롯한 바에 그대로 나가기도 어렵고 그만두기도 어려움을 가리키는 말을 호미난방(虎尾難放), 범의 꼬리와 봄에 어는 얼음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험한 지경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호미춘빙(虎尾春氷),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의 새끼를 잡는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큰 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큰 수확을 얻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호혈호자(虎穴虎子), 호랑이같이 예리하고 무섭게 사물을 보고 소같이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함을 이르는 말을 호시우보(虎視牛步), 매우 위험한 참언이라는 뜻으로 남을 궁지에 몰아넣는 고자질이나 헐뜯는 말을 이르는 말을 호구참언(虎口讒言),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는 뜻으로 비슷한 상대끼리 맹렬히 다투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용양호박(龍攘虎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