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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mahāsati kathā
봄봄 추천 0 조회 184 22.08.20 14:28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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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8.21 08:29

    첫댓글 한쪽에서는 지속적으로 <알아차림>
    한쪽에서는 반복적으로 <기억>

    .....................................................

    남방에서 공부하신 수행자들 다수는 <알아차림>.
    북방에서 혼자 공부한 넘^^은 아닌 것 같은데? ^^;;

    각자의 몫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법수이여서
    같은 재료 같은 내용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편집한다.

    소용이 있으려나?

  • 작성자 22.08.21 08:34

    강까지는 데려가도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 것은
    지 마음.

    아니다.... 소마음...... 말마음^^

    그러나
    귀한 전승을
    엉터리로 훼손하는 것은
    최소한 불자라면
    경계방송을 지속적으로 발송.

  • 22.08.20 21:48

    봄봄님...^^
    해맑은은 ....
    sati 가 <기억>이 아니라는 의미로
    <알아차림과 탐진치>라는 글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혹시 오해하셨나해서요...^^

    남방불교 수행처에서는
    sati를 알아차림으로 표현하지만...
    그 속 내용은 <지금 상황에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리세요... = sati 하세요... >를 달고 삽니다.
    자기 탐진치에 속지마시고 정신차리세요... 가 <sati>의 역할(?) 같아요...

  • 22.08.21 06:09

    대림스님은 '아나빠나 사띠'를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에,
    그리고
    각묵스님은 '사념처'를 네가지 마음챙기는 공부에.. 책을 기술하셨네요...

    이래도 아나빠나 사띠이나 사념처에서의 '념'의 사띠가 마음에 챙기는 바가 아닌가요?
    ...

    사띠念에 대한 수행에서 반듯이 부딪히게 되는 실사례가 A6.61 입니다.
    수행이 하고 싶을 겁니다. (분별 識이 반야 지혜가 되거든요!)

    A6.61 majjhesuta 에서,
    1) 촉과 촉.집의 두변에서 촉.멸을 사띠念으로 마음에 챙기고
    2)과거나 미래 들의 두변 가운데 현재를 사띠念으로 마음에 챙기고
    3)고통스러움 이나 즐거운 느낌들의 두변 가운데 비고비락을 사띠念으로 마음에 챙기고...

    윗 A6.61 감각접촉처럼
    멸滅을 감지하고 이 순간에 지키는 바가 sati이지요.

    근데도
    행주좌와에서 멸滅을 느끼지않고 자신의 몸에서 찰나 滅을 경험하지도 앓고
    그저 시나부로 말로서 사전을 꺼내들고는 (그 사전은 부처님의 정견을 담을까? )
    S12:2의 취(사견)을 많이하네요...

    호흡명상은 지금 여기에서 마음이 지켜지고 수관(아누빠시)이 되어지므로
    이 사띠의 正念에 사선정을 나아가지요.
    A6:61경문은 수행시 사띠의 경험을

  • 22.08.21 06:38

    @붓다명상mindsati 연기 분석경 S12:2 에서 취取의 설명입니다.
    ‘‘Katamañca, bhikkhave, upādānaṃ?
    Cattārimāni, bhikkhave, upādānāni – kāmupādānaṃ, diṭṭhupādānaṃ, sīlabbatupādānaṃ, attavādupādānaṃ.
    Idaṃ vuccati, bhikkhave, upādān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취착[取]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취착이 있나니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취착이라 한다."
    라고.. . .,

    사전 따위의
    견해에 대한 취착[사견]은
    . . . 아쉽게도. . .
    . . . 사견은
    분명히 집성제(소위 유전문)의 取에 해당하지요?

    경험없이 주장하는
    견해에 대한 집착의
    사견이 무서우니까 12연기 취의 4가지 중의 하나에. ..

    그래서 감관 단속에 방일하지 말라고! sati를 당부하시죠.

  • 22.08.21 06:19

    @붓다명상mindsati 초기불전연구원 (초불)이 이사를 했군요.
    요기 -->
    http://m.cafe.daum.net/chobul/Rddg/1332?svc=cafeapp

  • 작성자 22.08.21 10:54

    A의 유의어로 B가 쓰이고 B의 유어로 C가 쓰일 때
    A가 C의 유의어로 쓰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범주의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C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Z까지 가게 되면
    A와 Z는 전혀 공통점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마치 입모양 보고 단어 릴레이 하여 단어 맞추기 게임처럼.

    //sati를 알아차림으로 표현// - //정신을 바짝 차린다// - 이것이 //sati의 역할//
    <정신 차리는 것>이 <알아차림>이라는 의미라고 말씀하신 취지는 알아들었습니다. ....만
    우리말에서 [기억]과 혹은
    <정신 차리는 것>과 <알아차림>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나요?

    단 하나 찾으라면 본문에
    [‘satiṃ, ayyaputta, upaṭṭhapehi, mā vippalapī’”ti?
    '주인님, 마음챙김을 확립하십시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
    헛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려라.>와 <satiṃ upaṭṭhapehi>가 연결되기는 합니다만
    딱 이런 좁은 공통점으로는 유의어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수녀님과 어머님은 mother로 바로 연결이나 되지.....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 작성자 22.08.21 08:25


    말하는 자가 요령껏 잘 말해야 하겠지만
    듣는 자가 말귀가 어두우면

    성자가 말씀하셔도, 성자가 말씀하신 경문을 보여주어도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없는 것을
    경에서는 봉사이고 귀머거리라고 한다.

    이것은 육체적 장애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정신적 장애에 대한 표현이지 싶다.

    아마 위와 같은 내용을
    주변의 선생님, 혹은 스승에게 넌저시 물으면
    <계에 대해서 조언하거나,
    자신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십시요.-라는 등의 취지의 말로서>
    거의 마이동풍식으로 대할 것이지 싶다.

    하여튼
    지금까지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일길래
    놓지 못하고 꽉쥐고 있는지.....
    재가나 출가나 다르지 않지 싶다.

  • 22.08.21 09:43

    sati에 감관의 단속 기능念이 없다고 반박을 하시야 기억이 그 주된 역활이 되겠죠.^^
    언설(사전)따위
    "백문불여일견"
    이게 적절한 사전식 해석이겠군요.

  • 작성자 22.08.21 11:10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말하면

    일단 화가 나서 부정하고 본다.
    그래도 안되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회피하고 본다.
    그래도 안되면 표현만 다르지 진리는 같다고 우긴다.
    그래도 안되면 나쁜 놈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간다.
    그래도 안되면 겁박하거나 회유한다.
    그래도 안되면 왕따시킨다.

    학파라는 것도 순기능이 없지는 않겠지만
    끼리끼리 뭉쳐서 자기들의 논리만을 증폭시키는
    학맥이라고 자위하는 집단은 아닐까?

    정치판ㅠ이나 재가나 출가나 다르지 않지 싶다. ^^;;

  • 작성자 22.08.21 11:20

    본문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念 - 作意의 흐름에 유의하십시오.
    그나마 이것이 유용할 겁니다.

  • 22.08.21 12:15

    어떤 것이 念處(sati-paṭṭhāna)의 수행인가? 身(~法)에서 ‘集하는 法을 따라 隨觀하며(samudaya-dhamma-anupassati)’ 지내고, 身(~法)에서 ‘소멸하는 法을 따라 隨觀하며(vaya-dhamma-anupassati)’ 지내고, 身(~法)에서 ‘集하고 소멸하는 法을 따라 隨觀하며(samudayavaya-dhamma-anupassati)’ 지낸다.… [SN. vol.5. p.183]

    念處(sati-paṭṭhāna)는
    집멸의 법수관을 마음에 챙깁니다(dhamma-anupassati).

    근데 여기다

    집멸의 법수관을 기억합니다(dhamma-anupassati).????
    이게 뭔말이 되나요?
    집멸'을 놓치지 마세요.(집멸은S56:11 꼰단냐 집법즉멸법 법안 증득에. . .)

    '멸'은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에 경험되는 문지기 역활(감관단속)입니다.
    글구요.
    이 念處(sati-paṭṭhāna)는
    아위자님 그토록 강조하신 경문이기도하지요.

  • 22.08.21 12:19

    @붓다명상mindsati 이 글들은 화자들외에
    후학님들도 꼽십어 보시길 바랍니다. 단 S12:15 에서 세상의 일어남에 대한 정견과 같이 살펴보시길.. .
    연기 이치를 증득 하리다!

  • 작성자 22.08.22 14:39

    [해맑은 님]의 <정신 차려라!>를 차용하여
    일부 첨삭 변경하였습니다.

    2022.08.22. 14:40

  • 22.08.22 19:23

    불교를 잘아는가 어느 누가 물을 때의 그 대답은 자신의 감관의 단속(육근)에 얼마나 능숙한 가에 달려있다.
    육근에 대한 오염원을 없애야 마음이 청정하게 된다.
    근데, 근.경.식 들중에서 왜 육근일까?
    이 몸에 감각기능의
    根이 없다면 그 대상 境을... 갈애에 상요자나될 때의 분별識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는다.
    근데, 이러한 이치의 육근을 모르고 있다.
    왜냐면,
    사람들은 감각기능을 무시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은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서야 명근命根처럼 감각기능根이 다했음을 안다.
    그 전에는 근根을 알고 싶어하지 않고
    태어난 이후 동안에 교육(세뇌)받아 훈습된 되로 편안하게 이전의 識에 의존하고 살고 싶어한다.
    버리기에 아깝고
    왜 살아 왔는지가 너무 허무하거든...
    즉, 자신의 습習에 같힌다...
    그걸 세속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편안함을 버린다는 게 출리出離이다.
    出家의 의미이다.

    <지복한 밤의 경>에서 지복한 밤에 수행하는 자에게는 감각대상 육경이 다가와도 분별識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즉, 밤이나 이른 새벽에 수행하는게 좋다.

    육근六根에서 근根의 의미는 마음을 통제한다는 기능에 있다고 <빠띠삼비다막가>는 말씀한다. sati는 根의 단속이다.

  • 작성자 22.08.23 18:02



    [馬耳東風, 牛耳讀經]
    kathaṃ paribhoti, kathikaṃ paribhoti, attānaṃ paribhoti,
    vikkhittacitto dhammaṃ suṇāti, anekaggacitto ayoniso ca manasi karoti.
    imehi kho, bhikkhave, pañcahi dhammehi samannāgato suṇantopi saddhammaṃ
    abhabbo niyāmaṃ okkamituṃ kusalesu dhammesu sammattaṃ.
    대화를 얕잡아 보고, 말하는 자를 얕잡아 보고, 자신을 얕잡아 보고, 흩어진 마음으로 법을 듣고,
    마음이 집중되지 않고 지혜롭지 않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구족한 자는 정법을 듣는다 하더라도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른 길인 도에 들 수 없다.

  • 22.08.25 03:42

    왠 말이죠? 주제어 sati를 벗어난 희론을 . . .

    SN35.23 Sabbasutta(일체경)
    sabbaṃ? Cakkhuñceva rūpā ca, sotañca saddā ca, ghānañca gandhā ca, jivhā ca rasā ca, kāyo ca phoṭṭhabbā ca, mano ca dhammā ca—idaṃ vuccati, bhikkhave, sabbaṃ. Yo, bhikkhave, evaṃ vadeyya: ‘ahametaṃ sabbaṃ paccakkhāya aññaṃ sabbaṃ paññāpessāmī’ti, tassa vācā­vatthu­ ka­mevassa; ... Yathā taṃ, bhikkhave, avisayasmin”ti.”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mano)와 법,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만 떠벌릴 뿐이다. ...중략...그것은 그들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 작성자 22.09.04 17:38


    [동아일보]

    마음챙김은 고대 인도어인 팔리(Pali)어 ‘sati(사띠)’에서 유래됐다.
    불교에서 명상을 통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다.
    ‘기억’ ‘주의’ 등을 의미해 동아시아에서는 한자 ‘염(念)’으로 설명한다.
    1881년 영국에서 영어 불교사전을 펴내며 sati를 ‘mindfulness’로 번역했고,
    이 영어 단어가 1980년대 국내에 들어오면서 ‘마음챙김’으로 번역됐다.

  • 작성자 22.09.19 10:30


    본문 [adhimattasatimanto evaṃ adhimattagatimanto evaṃ adhimattadhitimanto
    마음챙김과 보존과 암송과 최상의 통찰지에 의한 총명함을 갖추어 ]

    ♦ 220. ... satimantānaṃ yadidaṃ ānando.
    4-2. “마음챙김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 221. ... gatimantānaṃ yadidaṃ ānando.
    4-3. “총명한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113)
    113) “한 구절(eka pada)을 통해서 6천의 구절을 수지하면서 스승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모든 구절들을 알기 때문에 총명한 자(gatimā)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한다.”(AA.i.287)
    “아주 큰 지혜를 가진 자(atisayā ñāṇa-gati)를 '총명한 자(gatimā)'라 한다.”(MAȚ.ii.237)

    ♦ 222. ... dhitimantānaṃ yadidaṃ ānando.
    4-4. “활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114)
    114) “부처님 말씀을 파악하는 노력(uggaṇhana-viriya)과 반복해서 익히는(sajjhāyana) 노력과 호지하는(dhāraṇa)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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