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산에 올라
지난 주말에 이어 이번 주말도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은 가을 끝자락인 십일월 넷째 토요일이다. 수능이 코앞에 다가오는데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서다. 수험생이 감염되지 않아야 함은 당연하지만 교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경남에서도 하동에 이어 창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하고 진주에서는 제주도 연수를 다녀온 이장들이 집단으로 감염되어 세간의 입방아에 올라 곤혹을 겪고 있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산행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퍼지는 즈음인데 와실 밖을 나서니 기온이 제법 쌀쌀했다. 연사 정류소에서 고현으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터미널 근처서 김밥을 마련해 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고현에서 얼마간 떨어진 상동은 문동과 함께 새로운 택지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지역이다. 상동에서 고자산치로 올라 계룡산에서 건너온 선자산으로 올라가볼 요량이다.
계룡산은 두 차례 올라 봤다. 올가을 계룡산에서 거제면으로 향하다가 고자산치로 내려섰다. 치(峙)는 고개를 한자로 이르는 말이다. 상동 포스코아파트 입구에서 고자산치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올랐다. 북사면 응달을 따라 오르니 나뭇가지 사이로 고현과 상문 일대 아파트들이 드러났다. 임도는 잘 정비 되어 산책 삼아 걷기에 알맞았다. 두 아낙이 아침 일찍 고개를 올랐다가 내려왔다.
고개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고개를 넘어가면 거제면 명진마을이었다. 거기는 문재인 대통령 생가가 있는 곳이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계룡산이고 왼쪽이 선자산 가는 능선이었다. 선자산을 향해 가니 산등선은 한동안 흙살이 많은 육산이었다. 계룡산은 대부분 암반이 드러난 골산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산행객이 없는 호젓한 길을 걸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아름다울 숲길이었다.
육산이 끝나자 골산이 이어졌다. 거제 일대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선자산은 거제의 한복판에 해당할 듯했다. 북으로는 바다 건너 진해와 진동의 아파트도 아스라이 보였다. 주변을 에워싼 눈에 익은 산들은 내가 모두 올라가본 곳이었다. 서쪽으로는 통영 시가와 미륵산이 보였다. 남쪽으로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여러 섬들이 떠 있었다. 동쪽으로 옥녀봉 너머는 탁 트인 대한해협이었다.
거제의 산들도 여러 곳을 올랐다. 주중 내가 머무는 곳에서 가까운 앵산과 굴제봉을 올랐다. 옥포의 옥녀봉과 가조도와 칠천도 옥녀봉에도 올랐다. 올봄에 국사봉에도 올라 작은 국사봉으로 내려오면서 딴 자생 곰취는 몇 끼 찬으로 잘 먹었다. 두릅을 따 동료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올가을에는 거제에서 제일 높은 가라산을 올랐고 지난주 망산에 올라 남녘 해안 절경을 완상한 바 있다.
정상을 앞두고 전망정자가 나왔다. 정자에 오르니 삼성조선소와 고현 일대가 훤히 다 보였다. 정자에서 내려오니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한 무리 산행객을 비켜 보냈다. 낙엽이 지니 주변 조망이 좋았다. 낙엽활엽수 숲이 우거진 여름 산행에서는 녹음으로 전망을 볼 수 없을 듯했다. 정자에서 정상까지는 산등선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야 했다. 정상 표석엔 해발이 507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곁에는 선자산 지명유래와 고자산치를 소개해 놓았다. 거제면에서 바라보면 뒷산이 부채 모양이 선자산(扇子山)이라 불렀다. 고자산치는 근친혼을 경계한 전설이었다. 용산에서 명진으로 고개를 넘어가던 남매가 비를 맞은 누이 모습에서 욕정을 발동한 남동생이 자신의 양물을 돌로 찍어 고자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건너편 문동폭포에서 아주로 넘는 울음재도 유사한 전설이 서려 있었다.
정상을 비켜 바위무더기에서 가져간 김밥을 비웠다. 고자산에서 동부면으로 향했다. 산길을 사람들이 적게 다녀 희미했다. 잘록한 산마루에 이르니 임도 갈림길이 나왔다. 동부면 방향으로 길고 긴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산양마을이 나왔다. 텃밭에는 가을비를 맞은 채소들이 싱그러웠다. 면 소재지 거리는 한산했다. 시골 반점이 보여 굴이 들어간 우동을 시켜 먹었더니 저녁으로 갈음되었다. 2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