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용29 친구들 잘 있는지....
안부 겸 학교시절 추억거리 하나 적어본다.기억하는 친구도 있을텐데 짬날 때 한번 보시라.
나이 70을 눈앞 저기에 두고 있는 이 시점, 여지껏의 인생 제1막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인생 남가일몽, 일장춘몽... 말 그대로인데 장수시대 덕에 아직도 이 한 웅큼 꿈이 끝나지 않았으니 하늘의 축복이라 해야 겠지. 뭔가의 짜여진 틀, 규격에 맞춰 쫒기듯 살았던 여지껏과 달리 앞으로 남은 생에서는 뭘 하면서 어찌 더 잘 살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자꾸 음악 쪽으로 생각이 돌아간다. 나는 전문 음악인은 아니지만, 한평생 일상생활 속에서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가까이 두고 살아왔다. 몇 년전에는 계룡예술의전당에서 창작 무용극의 피아노 반주를 맡아, 일종의 공식 데뷔 비슷한 경험도 했다. 물론 실력은 여전히 아마추어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꿈을 하나 꼽으라면, 언젠가 제대로 된 연주를 해서 리사이틀, 콘서트를 한 번 해보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괜히 피아노를 만지작거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고등학교 때 경험했던 밴드 활동이다. 낭만이 철철 넘치던 그때 스치듯 꿈처럼 있었던, 블랙 스파이더(Black Spider)라는 이름의 밴드다. 마침 내 국민학교 동창 중에 기타를 기가 막히게 잘 치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한번 그룹 사운드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그 말에 우리 용고 선수 몇몇과 작당을 해서 덜컥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 구성은 단순했다. 퍼스트 기타이자 리드싱어는 내 골목친구 H, 드럼은 내 또다른 친구 L, 키보드는 유충식, 플루트 노민, 그리고 나는 베이스 기타이자 두 번째 싱어. 베이스를 제대로 치는 법도 잘 모르면서 이것도 ‘기타’려니 하고 턱 맡아버렸다.
곡은 지금 생각해도 꽤 야심 찼다. 비틀즈의 “Let It Be”, 비지스의 “I Started a Joke”, “Without You”, 무디 블루스의 “Nights in White Satin”, 킹 크림슨의 “Epitaph”, 그리고 롤링 스톤즈의 “Angie” 등등... 지금 생각해도 수준이 상당한 곡들을 골라서 무대에 올렸다. 경험도 거의 없고 연습도 충분히 못 한 상태에서, 그냥 “해보자” 하고 무대에 올라가 소리를 냈다. 인이어도 없고, 모니터도 변변치 않아서, 베이스 치던 나는 소리가 제대로 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채 아래 화음만 깔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그날 무대는 우리 입장에선 하나의 파티였고, 젊은 날의 성대한 소동이었다.
공연은 유신 시대 한복판이던 76년, 명동 ‘코스모스 홀’이라는 곳에서 했던 기억이다. 학생의 밴드 활동이 금지된 시절이어서, 일요일에 몰래 홀을 빌려 공연을 했다. 문제는 그 다음 주, 우리 다음에 공연하였던 다른 팀이 휴일 소음신고로 발각 나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었다. 이 선상에서 “우리도 걸리는 것 아니냐” 하고 숨죽이며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언론사에 근무하던 친구 형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겼던 기억도 있다. 어쨌든 우리의 공연장은 우리 용고 친구들로 빽빽하게 찼다. 임종언, 공중표 친구들이 표도 팔아주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열심히 도와준 덕분에 여학생들도 많이 오는 등 공연은 더 성황이었다. 밴드에 직접 참여한 건 우리 몇 명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용고 전체의 잔치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여담인데, 공연이 끝나고 나니, 나를 찾는 여학생이 있었다. 나를 보자고 해서, “드디어 나한테도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는 구나”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나갔다. 홍익대 앞 집 근처 빵집에서 만났는데, 머릿속은 온갖 상상이 있었으나 여학생 만난 경험이 없는 쑥맥인터라 별로 할 얘기도 없고 해서 몇 번 만나고 그냥 끝났다. 그래도 “밴드 하고 나서 여학생이 빵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는 사실 자체는 꽤 오랫동안 낭만의 기억으로 남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인연은 퍼스트 기타를 맡았던 내 친구 H 쪽으로 이어져, 둘이 대학 시절까지도 같이 다니고 사귀었던 걸로 기억한다.
뒤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 우리 친구 조문수도 같이 밴드를 하고 싶어 했는데, 사정상 그때는 미처 함께 하지 못했다. 문수는 나중에 대학에 진학해서 대학을 대표하는 그룹 사운드의 보컬을 맡게 되었다는데, 그 중후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당시에도 참 매력적이었다. 흙속의 진주인 격인데, 진주를 제때 알아보지 못한 게 지금도 조금 아쉽게 남는다. 밴드 멤버 중 키보드를 맡은 유충식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그때 모 방송국에서 각 학교를 돌며 하는 가곡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우리 용고 차례가 됐을 때 유충식이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유충식은 다시 내가 보기에 발군의 피아노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대로 된 악보를 보고 한 것도 아니고, 거의 즉흥에 가깝게 반주를 했는데, 심사위원으로 왔던 한 여자 소프라노분이 마지막에 이런 평을 했다. “오늘 반주한 학생, 악보대로 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나름대로 아주 잘 즐기며 잘 쳤다.” 그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결국 그는 증권회사 이사를 하면서도 재즈 피아니스트의 길을 꾸준히 걸어 지금은 국내에서 꽤 알려진 재즈 피아니스트가 됐다. 가끔은 나도 계속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이어져서, 블랙 스파이더는 내 인생 1막, 청춘기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최근 세종에서 전설적인 그룹 사운드, ‘부활’ 공연을 보면서 “아, 밴드 사운드는 저런 거지”하는 걸 다시 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뭔가 공연이 기대 이하라는 느낌도 들었는데, 이러한 감각도 따지고 보면 블랙 스파이더 경험 덕분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아, 밴드는 이런 거구나” 하는 감각을 몸으로 겪어본 셈이니까.
어떻게 하다 보니 행정수도 이전 때문에 2013년부터 세종에서 살게 됐다. 세종에서 다시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트라이앵글Triangle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게 됐다. 세종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45층짜리 빌딩, 카페 메타45에서 석 달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카페의 대표 밴드로 공연을 했다. 색소폰이 두 대나 들어가고, 나는 키보드와 기타를 맡았다. 45층 테라스에서 석양과 함께 울려 퍼지는 색소폰 소리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작지만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반응도 좋았다. 나는 내 손이 이미 많이 녹슬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키보드를 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반응한다”는 말이 딱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문득, 명동에서 검은 거미를 내걸고 서 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우리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건강도 그렇고, 메타45 카페도 잠시 쉬는 바람에 트라이앵글도 쉬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재개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우리 용고 친구들을 꼭 초대하고 싶다. 블랙 스파이더 같이 했던 친구들이든, 그날 명동에는 못 왔던 친구들이든, 세종의 작은 공연장에 한 번씩 놀러 와서 같이 낭만을 이어가면 좋겠다.
우리 용고 친구들도 각자 인생 1막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면서, 2막 준비를 같이 해보면 좋겠다. 이 글은 그냥, 그런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블랙 스파이더 이야기 한 토막이다. 우리 모두의 건승평안, 즐거운 인생2막을 위하여 파이팅!!
2027년 7월 21일 우천식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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