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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젊은이들에게 이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꼰대들이 많이 미안해........
그리고 개국본 카페에서 쓰는 마지막 글 입니다.
눈팅으로 이제는 응원을 하겠습니다.
내글은 https://cafe.daum.net/bumba2017
앞으로 여기에 쓰겠습니다.
내글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 링크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꼰대’ 노릇할까봐 걱정이 되죠.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하지만,
우리의(80년대학번) 옛날 그 나이 적 모습과
지금의 젊은이들을 비교하곤 합니다.
그래 이전 우리 젊었을 적과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러면 멋모르고 젊은이들을 이해 못하고
괴롭히는 일을 피할 수는 있겠다 싶어서죠.
그런데 기억속을 정리를 하면서,
어느 순간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저 ‘꼰대’ 짓을 피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80년대 학번이면서 남자인 경우,
터무니없는 혜택을 누렸고 누리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당시에는..모든게 뭐같구나 였지만..)
그러면서도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온갖 데서 행세를 햇었구나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동시대 여성들이나 우리 아래
젊은이들에게 거의 기생하는 수준으로
살아온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를 자랑스레 떠들어대고,
현재를 주무르려는 우리 세대 남자들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우선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부터 한번 짚어
보면...
80년대 중반에 대학 들어간 관계로
70년대는 생략함..
대학 가기가 참 좋았다..
80년대에는 무엇보다 진학에서 선택지가
아주 넓었습니다.
내가 살던 서울은 조금 틀렸지만..
지방의 경우는..
일단 고입과정에서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서
우수한 학생 상당수가 상고나 공고 쪽으로 빠져나갔죠.
반에서 5등 이내 아이들 중 상당수가 이리로 빠졌죠.
서울은 인문계고(일반고)를 가난해도 무리해서 부모가
보내기도 했지만..
대입의 경우도, 지방 국립대에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 대개가 서울대
진학이었죠.(대학친구들 지방출신이 많음)
형편 좋은 집안 친구들이 연고대를 들어갔죠.
부산 같은 대도시의 지방학생이..
성균관대나 한양대로 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습니다. 그 비슷한 성적이면 대개
부산대로 들어갔지요.
아마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청년 실업? 그게 뭐지.....?
이렇게 진학이 분산됐다는 것은 그만큼 일자리가
많았다는 걸 뜻합니다. 상공계열 고등학교 출신자들
중 성적 우수자들은 은행이나 대기업 공장으로
쉽게 취직이 됐습니다.
실제로 제 아는 상고 출신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력 은행에서 중견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지요.
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자리 없어 취직
못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지방 국립대 출신들도 서울로 상당히 많이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 추천을 받으면 웬만한 곳은 다 들어갔지요.
꼭 들어가고 싶은 데를 못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취업 자체가 막히진 않았습니다.
특히 이른바 ‘메이저’로 불리던 대학들은
골라서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가 급팽창하던 시기인지라, ‘잘 나가는’
대학교 출신이라면 무조건 OK였었죠..
이수만이 서울대 농대 이죠....
농대...?여도...서울대...?
어떤과든 과사무실 한 켠에 수북이 쌓여 있던
대기업 원서들이 기억나는군요.
기업에서 대학으로 신입사원 유치하러
다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가끔씩 ‘대학에서 실전에 써먹지도 못할 교육을
한다’는 소릴 들을 때마다 좀 우습습니다.
실전은 커녕 학점도 제대로 못 딴 학생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인 과거를 잊은 게지요.
물론 학과나 전공 같은 것도 가리지 않았지요.
하지만....
여기서 여학생들은 예외였다는 점을 짚어두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독립하기 쉬운 조건이 있었죠..
김어준이가 책으로도 강연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니멋대로 해라! 하면서 졸나 카리스마 있게
자신의 모친과의 에피소드를 예를 들어 가면서
부모로 부터 독림을 하라고 하는데...
본인이 책속에서 예를 든것 같이 정주영이 처럼
소한마리 끌고 지금 서울 가면..비정규직 이라고
했듯이...지금 젊은이들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
시대에 부모로부터의 독립...?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죠..김어준이도 그냥 말잘하는 ''꼰대''중에
하나 일뿐 이죠...(4년 후배지만..같은80년대의..)
80년대는..
국립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립대라 하더라도
가계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방도..
소 팔아 자식 서울 보내는 부담을 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집안을 말아먹을 정도는 아니었지요.
당시를 보면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보내는 경우가 많지도
않았지만요.
시장에서 장사 하면서..또는 서울가서 누나가
버스차장 해서 보내준돈..뭐 그정도로 동생
하나둘 대학 까지 보낸 엄마들,누나들,오빠를 위해서
여동생들....(단골 소재로 등장 하는 드라마
를 보면은 당시에...동생 졸업할때 까지만....하는...)
지방에서 올라온 얘들도
값싼 등록금에 하숙비나 자취방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아 어렵지 않게 독립할 수
있었죠.(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은 먼친척 이라
하고..몰래 바이트(과외선생)침식제공? 바이트)
도 많이 있었구요(서울,연고대생들 주로...)
저만 하더라도 집에 손 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나
과외 같은 걸 해서 용돈 벌고..술밥 잘사주는 선배들..
도 많이 있었고...
특히...
이 과외는 ‘메이저’ 대학생들의 특권 중의
특권이었죠. 80년대 후반까지 여전히 과외는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단속이 느슨해지면서
‘몰래바이트’라는 이름을 달고 성행했었죠.
한 달에 20~30만원, 서너 개씩 하는 친구들은
80만원 이상 벌었지요. 당시 지방에서온 학생들
하숙비가 12~15만원이었으니 얼마나
풍족했는지 짐작할 만하지요.
왕성한 학생운동을 할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죠..
80년대 그 왕성했던 학생운동은 지금 까지 말한
물질적 조건에 덕을 크게 본것도 같습니다.
좀 쪼들리더라도 독립할 수 있고,
과외만으로도 학비 댈 수 있고(하다못해 방학 때
‘노가다’ 판만 뛰어도 학비는 마련할 수 있었죠),
학점에 신경 쓰지 않고도 취업이 그리 어렵지 않고
하니 먹고사는 것 아닌 가치 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도 있었던 거죠.
나같이 개폼 잡는거 좋아하는 부류는 뭘 전공해도
취직 하려면 되고 먹고는 살수 있다 라는 배짱이
있을수 있었죠 지방도 아니고...서울에서 뒤빽 좋은
군인 아버지와 고등학교 교사(공무원)어머니를
둔 나같은 친구들은...맘놓고 데모를 할수 있었죠...
운동하다가 구속, 수배되고 고문당하고 까딱하다가
죽는 것도 각오해야 했을지는 몰라도,
여하튼 운동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 하죠.
왜?
당시 학생운동을 ‘잘 나가는’ 대학 출신들이
주도했을까 하는 의문에 답해 줍니다.
저 위에서 말한 조건들은 딱 ‘메이저’ 대학생을
위한 거니까요. 수업 출석 아예 않고 일주일에 두 시간씩
두 번만 과외 뛰면 돈 문제도 해결되니 맘껏 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죠.
내색은 않아도 정 안 되면 기업에 취직하면 되지,
하는 생각도 든든한 베이스가 됐을 겁니다.
(지금 현제,실제로 대기업에 들어가서 잘먹고 잘살고 있는
같이 운동 했던 동창들이 있음)
그러니 얼마나 화려했겠습니까.
열린 미래를 반납하고 구속을 각오하고 독재와
맞서 싸우지, 게다가 또 사회과학 서적들에
달통해서 얼마나 똑똑했던지요.
거기에 80년대 중반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말 잘하고 똑똑한
잘난 영웅들이 캠퍼스마다 우후죽순 등장합니다.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요.
(대게 초,중고때 반장은 기본 이고 전교회장등
감투를 좋아 했던 친구들....다 부모욕심 이었지만...)
구속은 필수 코스였지요.
‘재수 좋게’ 국가보안법에라도 걸리면
1년도 채 안 살고 군대까지 면제되니
금상첨화입니다.
그러고 나면 노동현장으로 가고 조직
활동을 합니다. 물론 안 하던 짓을 하려니
고달프고 힘들지요.
아버님이 직업군이었던 나는 어차피 원하면
소면으로 병역을 마칠수 있어서 외국
(지금 살고 있는 일본)으로 1년간 가있는 조건으로
(사실상 1년간 추방...?유배..?)
그러다...그냥 한국가서 취직 하고 살기 쪽팔려서
그냥 일본에서 눌러 살게 되었지만....
그러나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복학할 수도,
기업으로 취직할 수도, 아니면 사법시험 쳐서
입신양명까지도 노릴 수 있으니 여유롭지요.
실제로 절대다수의 ‘빵잡이’나 ‘위장취업자’들,
‘수배자’들이 각계각층에서 맹활약 중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이
잘 살고 있지요.
그리고...지속되는 황금기가....
여자동창들 선배들 후배들...
같은 80년대 학번이라도 여성들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운동권이라고 봉건적인 풍토가 없어진 건
아니었지요.
(사실은 운동권에는 파벌도 있었습니다...불편한
펙트 이죠...그것도 아주 강하게...)
겉으로는 남녀 구별 없이 ‘동지’로 뒤섞이지만,
오빠가 아니고 ''형''이라고 불렀죠..
실제로는 언제나 여성은 종속적인 존재였습니다.
대부분 여성들은 남성들의 뒤치다꺼리하기 바빴죠.
연애나 결혼을 하게 되면 경제적인 책임은
물론 가사와 육아는 당연한 듯이 여성 몫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여성들은 조용히 운동판에서
은퇴하게 되죠..
90년대 이후 학번들도 비슷하죠..
특히 90년대 후반 학번으로 운동권은 처절하죠.
이미 ‘민주화’가 됐는데 뭔 운동?
이건 겉보기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진로가 탁탁 가로막힌 상태에서
모든 학생들의 관심사가 먹고사는 데
치우친 땝니다.
이런 판국에 ‘한가하게’ 운동이나 하고 있으니
좋게 보일 턱이 없지요.
머리로는 80년대 학번들의 영웅을 꿈꾸면서
몸은 90년대판 잉여인간, 딱 이 짝이지요.
“80년대 운동하는 오빠는 시대를 고민하는
지사적 폼이 났지만, 내 시절부터 찌질한 루저였고,
이걸 모르고 이미 조기 빨갱이가 되버린
난 조뙨거였다…..이게 다 좋은건 다 해처먹고
부채만 남겨준 80년대 학번들, 부채를 유산인
줄 알고 물고 빨다가 세월 보낸 90년대 학번들...
줄을 잘서야지요.....?
하지만..
80년대 학번은 다릅니다.
이들은 어디서든지 주인공입니다.
70년대 학번들이 원체 적어서기도 하겠지만,
현장이든 시민단체든 진보정당이든 모든
핵심은 이들이 차지합니다.
심지어는 대우 같은 대기업에서 운동권 출신들을
따로 공채하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이 볼 때도 이들의 왕성한 활동력과 순발력,
물불 가리지 않는 모험심이 탐이 난 게지요.
그리고 세기가 바뀐 지금도 여전합니다.
꼭 운동권 출신 아니더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 시기 대학 다니면서 데모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주변에 운동권 출신이거나 여전히 운동하고 있는
친구 없는 사람 없을 겁니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데다,
민주화를 이룬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죠.
(나처럼....니들이 민주화를 알아...하면서...)
이건 참으로 (바람직한)기이한 현상입니다.
(뭐 우리 입장에서는 바람직..좋지...)
어떻게 한 세대가 30년 가까이 황금기를
누릴 수 있을까요...
그러나 화려한 영광 뒤에는 언제나 이들
주인공들을 떠받들어야 하는 희생자들이
있기 마련이죠. 원래 제 자리여야 할 것을
빼앗긴 존재들이죠.
적절한 시기에 잘 태어나서
다른 이들이 누려야 할 것을 몽땅 다
차지해버린 거죠.
(몽땅은 아니고 그냥 조금 많이..)
술이라도 한 잔 할라치면 이런 영웅들의
삼국지 저리 가라는 무용담이 펼쳐지죠...
‘빵’ 살던 이야기, 각종 무용담, 수배 일지,
현장 체험담 같은 고색창연한 곰팡이들이
장미꽃인 양 둔갑해서 술판을 어지러이
수놓습니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에서 이얘기를 피하고
않하려고 합니다..뭐 다들 했자나요 그정도는..)
지금 대학생들은 아버지 세대의 삶을 도대체
살아낼 수가 없습니다.
아르바이트에 학점에 스펙에 취업시험 준비까지
몽땅 홀로 해결해야 하는 판국에 어디 딴 데
신경 쓸 여력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살인적인 등록금은 자식들을
몽땅 불효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 사생결단으로 매달리는 거죠.
사회과학 책 안 읽는 게 아니고,
못 읽는 거지요.
그런데도 이 세대더러 함부로 ‘요즘 아이들은
정의감이 없다’는 식의 얘기를 합니다.
그건 말 그대로 언어폭력입니다.
말로는 다 데모 해봤고, 나름 민주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나도 다 안다’는 식이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식이죠.
김어준 처럼(이친구를 비하 하는것은 아님)
(귀여운 발상으로 잘하고 있음)
그러나 그건 공염불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말로만 그렇지 실생활은 개판인 부모가
위선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 부모 세대 입에서 나오는 ‘지당하신 말씀’이
어디 귀에나 들어오겠습니까.
그냥 아이들 사는 대로 맡겨 놓는 것이 어쩌면
최상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내 하는 얘기가 아이들 실상을 모르면서
떠드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기라도 했으면 싶습니다.
이런 말이 유행한다더군요. ‘40대들이 자리 꿰 차고
앉아서 2,30대가 누려야 할 단물을 쪽쪽 다 빨아먹고
있다’고요. 맞는 말입니다.
전공도 아니면서 스펙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영어 회화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부하들
부려먹으면서 자리 보전한다는 거지요.
자라나는 아이들 키우기 팍팍할 테니
그건 봐주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좀 지켜야겠습니다.
제발 입이라도 쳐닫고 있어라!!!
386세대...83학번 꼰대의 반성문 입니다.
2030 젊은 친구들이여....정말 미안해...
궁가
귀거래사....는 아니지만...
그냥 땅이나 파고 닭모이도 주면서...
귀향해서 삽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NUI4BYkmBI&ab_channel=%EB%AF%B8%EB%9E%98%ED%85%8C%EB%A0%88%EB%B9%84
첫댓글
아쉽네요. 宮家님 글을 여기서는 볼 수 없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