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
이현자
햇살 가득한 뒤란 장독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항아리 두어개를 내어
놓고 어머니는 윤이 나도록 안팎을 닦으신다. 작년엔 양지에 묻었던 김장
이 일찍 시어져 올해는 음지에 묻는다고 아버지는 그림자 드는곳을 가늠
하며 삽으로 흙을 떠내신다 김치 냉장고가 부엌에서 자리를 잡고 있지만
매년 해오던 일이라 쉽게 손을 떼지 못하고 올해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
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손발을 맞춘다. 용기에 정성들인 김치를 담
아 넣고 스위치를 누르면 끝나는 김장의 마무리가
영 마뜩찮은 모양이다. 도시처녀처럼 깔끔한 모양으로 부엌 한켠에 새초
롬이 앉아 있는 김치 냉장고에 괜시리 내가 다 미안해진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스스로 이름을 풀이 하시는 도예가 이용강 선생님
이 계시는 공방을 찾은 적이 있다 동치미나 총각김치를 수북이 담아 냄직
한 그릇들이 사방을 차지하고 김치깡 같은 아늑함으로 둘러 쳐진 것이 안
방에 군불을 지피는 부엌으로 들어선 듯 했다 영롱한 빛을 내는 청자나 소
박한 듯 하면서 기품 있는 멋을 내는 백자와는 달리 숭늉 한 그릇 퍼줄 것
같은 구수한 멋을 지닌 분청사기여서 친근함이 더했다 일찌기 ‘국선생전’을
쓴 이규보는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하나를 얻었네'라고 할
만큼 좋은 자기를 얻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비취옥의 색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비색이라고 하며 청자는 귀히 여겨졌다 귀족들의 생활 도구였고
사치와 향락을 좋아했던 고려 의종 때는 음각 양각, 투각의 기법을 쓴 화
려한 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청자에 이어 천진난만한 분청
사기가 생겨 난 것은 조선이 세워 지기 전 왜구의 침략이 많아 도공들이
내륙지방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의 흙으로 청자를 구우려고 했지만 흙이 달
라 겉면도 거칠고 색도 조잡해졌다. 도공들은 여러 방법 끝에 청자와는 다
르게 분을 발라 단장한 회청색의사기 그릇인 분장회청사기를 탄생 시켰다.
비교적 손이 덜 가 많이 만들게 되어 분청사기는 일반 백성들도 사용하게
되었다 청자가 능숙하고 세련된 화가의 솜씨라면 모진 역사가 녹아있는 분
청사기는 아이들이 도화지에 쓱쓱 그려 낸듯한 천진난만한 자유로움이 있
다. 여러 기법 중에 귀얄이라는 기법은 돼지털이나 말총으로 넓적하게 묶어
만든 솔로 백토를 묻혀 그릇 겉면을 바르면 귀얄 지나는 자국이 남아 그대
로 무늬가 되는데 아직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항아리 닦는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이 귀얄 지나간 자국 같아서이다. 수묵화의 여백의 미처럼 평온하고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푸근한 어머니 얼굴 같은 귀얄로 멋 낸 분청사기를
흉내 내볼 요량으로 물레를 돌리고 흙을 치대어 본다. 열중에 하나를 얻는
옛 도공들의 마음은 고사하고 構? 금이 가지 않게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흙을
다듬는데 여념이 없어 모양? ? 정하지 못하였다. 그런대로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단지 모양이 드러났다. 어머니가 아끼는 장독대에 놓을 수 있는
크기도 아니고 양념 단지나 어울림직 하다.
지금으로 치자면 내 가슴께 까지 오던 항아리에 예닐곱살 때 빠진 적이
있었다. 광 한 켠 에 있던 그 항아리 속은 컴컴한 것이 늘 궁금증의 대상
이었다. 말을 엎어놓고 되를 얹고 들여다본다는 것이 그만 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묵은 보리쌀이 깔려있던 항아리 밑바닥의 궁금증이야 풀
렸지만 나갈 수 없어 앉아 있자니 둥그런 달처럼 보이는 입구를 따라 쥐
가 도는 것을 보고 잔뜩 겁에 질려 묵은 보리쌀에 오줌을 쌌다. 그 뜨듯
한 기운에 들일 나간 어머니가 돌아 올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항아리 품
속이 엄마 품처럼 아늑했던 친근한 기억이 없더라도 배가 두둑한 항아리
나 수더분한 분청사기는 누구라도 마음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쓰
하면 흙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와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숨 쉬는 흙을 파고 항아리를 模倣? 부모님은 자연에 순응하는
질그릇 같은 도공의 마음 일 것이다. 김치냉장고를 마다하고 수고로움을
더 하더라도 은근한 맛을 뵈 줄 모양을 보면.
구수한 분청사기를 보는 것이나 김장 담은 항아리를 묻는 것에 흐뭇함
이 생기는 것은 대물림하듯 도공의 마음이 벌써 내게도 흘러드는 탓 인지
도 모르겠다.
05.12.01
첫댓글 36세 쯤 쓴 글을 여기서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감추고 싶기도 하고....(중간에 끊기는 문장은 원본에서 다시 고쳐보겠습니다)
수필반 학생들을 이용강 도예가님 공방에 데리고 가서 그릇 한 점씩 만들라 하시고 글 한 편씩 쓰시라 하셨던 열정의 교수님과
지금 다시 만나 공부하게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왔네요. 수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인생공부 더 하겠노라 젊은 나이 탓 만하고 수필반을 떠났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꾸벅
앞에 올려주신 '내 마음속의 도자기, 송윤호 선생님과 같이 공방을 찾고 각자 제출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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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만 보고는 도자기 공방 이야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앞의 글 '내 마음 속의 도자기' 글과 같이 공방에 다녀오고 쓴 글이라니 오랜 내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글 쓰기 하신게 참 부럽습니다.
현자 샘 보다 20년 늦은 이제 다 늙어서 시작하려니 마음만 앞섭니다.
많은 지도 바랍니다.
그때 그 시절이 어느덧 20 여 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며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