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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소설, 미술, 역사가 부교재가 되는 기독교교육서
교회의 미래는 트렌드가 아니라 브랜드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브뢰헬, 홀바인, 카라바조, 존 번연, 톨스토이,
그림 형제, 바흐, 헨델, 비발디는 어떻게 종교개혁을 도왔을까?
오늘날 다음 세대 교육의 가장 큰 화두는 스마트폰이라는 문명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문명의 이기는 교육을 발전하게 하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고력 저하의 문제가 심화되는 형편이다. 사고와 가치가 제거된 교육은 인간성은 물론 하나님의 자리마저 없애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했다면 지금까지의 교육이 아닌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종교개혁자들은 ‘번역’을 통해 말씀을 가르쳤다. 사고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입식 혹은 백과사전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탐구하고 성찰하도록 돕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중세 교회 성채처럼 막힌 교육이 아닌, 종교개혁의 교육을 해야 한다. 번역은 아이들의 사고력을 촉진하여 새로운 콘텐츠로 말씀을 해석 적용하게 한다. 이렇게 관점이 바뀌면 새로운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콘텐츠로 말씀을 번역했다. 그는 찬송가로 그리고 그림과 교리로 말씀을 번역하여 가르쳤다. 오늘날 우리도 그 시대처럼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 등을 동일하게 배우지만, 그들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았고 또 살아있는 콘텐츠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번역이라는 형태는 문화, 예술, 교육으로 확대되었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브뢰헬, 홀바인, 카라바조, 존 번연, 톨스토이, 그림 형제, 바흐, 헨델, 비발디 등 그들은 성경을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했다. 그렇게 번역된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깊은 감동을 주며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며 번역했던 도전들은 역사 속에서 이어졌다. 시대마다 ‘얼굴’은 달랐지만 ‘오직 성경’을 번역하는 의미에서 본질은 같다.
이제 우리의 차례이다. 우리 시대에 우리의 자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번역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말로만 종교개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과 인식을 통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만들어 나갈 때 종교개혁의 정신은 계승된다. 그리고 어두워진 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해하고, 새롭게 ‘번역’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믿음의 선배들이 나아갔던 걸음을 다시금 살펴보며, 오늘 우리가 어떻게 접목하고 배울 수 있을지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알았다면, 다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고민하게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박양규
박양규 목사는 문학·예술·역사의 토대 위에 성경 교육을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죽은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재와 대화를 나누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동 대학원M.Div.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헬레니즘을 전공했다M.A.. 영국 애버딘 대학교에서 요세푸스의 문헌을 중심으로 신구약 중간사를 연구하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4~2015년에는 소명중고등학교에서 인문 고전과 성경을 접목한 교리 교육에 전념했으며, 삼일교회(송태근 목사 시무)에서는 교회학교를 총괄했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 소속 목회자로서 저자의 오랜 고민은 목회와 교육 현장에서 왜 성경이 현실에 와닿지 않는가, 왜 성경은 격리된 언어로 존재하는가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경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을 명확하게 포착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결정적인 동기가 되어 코로나 시대에 대형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교회 교육 콘텐츠를 제시하는 시대적 사역을 개척하고 있다. 저서로는 『유럽비전트립』 1, 2권(두란노),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 2권(새물결플러스), 『중세교회의 뒷골목 풍경』(예책), 『동화 속 성경이야기』(큐리북),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샘솟는기쁨)가 있다. 현재 다음 세대를 위하여 다양한 교회 교육 콘텐츠를 계발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교회교육연구소〉와 〈큐리랜드TV〉를 운영하고 있으며, 소명중·고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 목차
서문
프롤로그
Part I. 16세기와 21세기의 대화; 메타인지, 메타버스, 메타메시지
1장. 메타인지, 종교개혁의 현장에서 루터를 만나다
1. 세상을 바꾼 수도사, 그 시대를 회고하.
2. 루터의 빈자리
3. 루터, 로마 교회에 저항하다
4. 루터의 킬러 콘텐츠, 게임체인저가 되다
5. 루터와 공감의 창문 만들기
2장. 메타버스, 16세기 콘텐츠 전장(戰場)에서 틴데일을 만나다
1. 윌리엄 틴데일을 체포하라.
2. 콘텐츠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3. 콘텐츠 전쟁의 승자, 역사의 승자가 되다.
4. 플랫폼과 콘텐츠,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5. 윌리엄 틴데일과 공감의 창문 만들기
3장. 메타메시지, 16세기와 21세기의 대화에서 조지 오웰을 만나다
1. 윈스턴과 텔레스크린, 그리고 빅데이터
2. 포노 사피엔스, 그리고 〈1984〉
3. 번역에 목숨을 걸어라
4. 번역되지 않은 곳, ‘동물농장’
5. 조지 오웰과 공감의 창문 만들기
6. 한 걸음 더, 칼 비테가 제시하는 메타메시지 만들기
Part II. 죽음의 위협 속에서 만들어진 콘텐츠
4장. ‘오직 성경’을 꿈꿨던 화가 한스 홀바인을 만나다
1. 교회의 양심, 양심의 교회
2. 한스 홀바인이 제시하는 ‘교회’
3. 예수 그리스도란 누구인가?
4. ‘오직 성경’을 외치다
5.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보여주다
5장. ‘하나님 나라’를 보여준 화가, 피테르 브뢰헬을 만나다
1. 교수대가 세워지던 시대
2. 바벨탑을 쌓는 세상에서
3. 참된 교회는 무엇인가?
4.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5.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소서
6장. 목숨을 걸고 고백한 ‘사도신경’, 미켈란젤로를 만나다
1. 젊은 날에 찾아온 변화
2. 〈피에타〉는 ‘피에타’가 아니다?
3. 미켈란젤로, 창조주를 고백하다
4. 미켈란젤로의 ‘신앙고백’, 〈최후의 심판〉
5. 미켈란젤로의 후일담
7장.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던 화가, 카라바조를 만나다
1. 혜성처럼 등장한 화가 카라바조
2. 카라바조가 그린 하나님 나라
3.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는 주기도문
4. 일상을 견디게 하는 주기도문
8장. 눈에 보이는 ‘십계명’, 렘브란트를 만나다
1. 왕관 대신 터번을 쓴 바빌론의 왕
2. 십계명을 박살 내는 모세
3.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십계명
4. 하나님과 이웃을 연결하는 십계명
Part III. 위대한 역사, 위대한 도전, 위대한 세대
9장. 스토리텔링,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라.
1. 얼어붙은 ‘믿음’을 깬 땜장이의 이야기, 존 번연
2. 얼어붙은 ‘소망’을 깬 두 형제의 이야기, 그림 동화집
3. 얼어붙은 ‘사랑’을 깬 기자의 이야기, 찰스 디킨스
4. 공감의 창문, 스토리텔링에 도전하자.
10장. 예술, 오감으로 전하는 말씀
1. 얼어붙은 십자가. 뭉크
2. 살아서 움직이는 십자가. 살바도르 달리와 반 고흐
3. 십자가를 노래하라. 바로크 음악의 삼총사, 바흐, 헨델, 비발디
4. 공감의 창문, 고립과 소통의 기로에 선 교회
11장. 종교개혁으로 저항하라
1. 혁명의 성채에 맞서라, 〈레미제라블〉
2. 시대의 성채에 맞서라, 〈찰리의 초콜릿 공장〉
3. 관념의 성채에 맞서라, 톨스토이
4. 광기의 성채에 맞서라, 바르멘 선언
에필로그. ‘두 나라’ 이야기
📖 책 속으로
지금 우리가 예배 시간에 외우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종교개혁 시대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는 ‘다르게 교육’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가르쳤을까?
--- p.18
교회의 미래는 트렌드가 아니라 브랜드다.
--- p.31
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해 루터가 제안하는 핵심은 번역이다. 그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콘텐츠로 번역했다. 찬송가로 번역했고, 그림과 교리로 번역했다.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을 이런 방법으로 가르쳤다.
--- p.55
하나의 콘텐츠를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법칙이 있다. 콘텐츠를 채택하는 출발점은 교회의 필요성이다. 왜 필요한지, 그 ‘목적’을 설정해야 한다(why). 목적이 정해지면 ‘무엇’으로 가르칠지를 정한다(what).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소통할지가 콘텐츠의 완성이며, 번역이다(how). 이와 같은 과정으로 번역한다.
--- p.68
조지 오웰은 사고력이 인간성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단순한 작문이 아니라 사고를 표현하는 숭고한 행위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번역하는 구체적인 행위다. 이 번역을 가리켜 하워드 가드너는 ‘학습전이’라고 한다. 학습전이란, 한 분야에서 배운 것을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학습전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회수’를 할 수 역량이 있어야 한다. 회수란 우리 뇌 속에 들어오는 Input을 우리의 생각과 언어로 Output 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글쓰기는 회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회수한다는 것은 학습전이의 중요한 과정이며, 생각을 명확하게 만드는 요소다.
--- p.89~90
종교개혁 화가들이 ‘오직 성경’을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종교개혁은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홀바인을 통해 이 시대에 진정한 종교개혁이 일어나도록 하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종교개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과 인식을 통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만들어 나갈 때 종교개혁이 형성되어 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p.120~121
브뢰헬의 행동에는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어린이, 농민,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그림을 주문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그들을 마음에 품지 않았다면 결코 그들의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 계급 사회에서 소작농들에게 마음에 품었다는 것은 분명 화가의 개인 취향이 아니라 인격이다. (중략) ‘오직 믿음’은 종파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격과 성품이 반영된 결과라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열매’라고 표현했다. 그 열매가 브뢰헬에게 ‘농민의 화가’라는 별명으로 붙여진 것은 아닐까!
--- p.134
카라바조는 그림으로 선과 악의 통념을 뒤집는다. 경건하고 웅장한 것이 더 이상 선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해 환대를 베푸는 것이 선임을 보여준다. 초라하고 궁핍한 것이 악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업신여기는 것이 위선이고 악이다.
--- p.194
번역은 아이들의 사고력을 촉진시킨다. 지금까지 교육 현장에서 경험한 학생들과 교사들은 이런 접근을 어색하게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탁월하게 반응한다. 삶의 맥락을 사고력을 통해서 말씀으로 채워간다. 관점이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
--- p.206
종교개혁의 교육은 16세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번역이라는 형태로 문화, 예술, 교육으로 확대되었다. 나아가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가 되었다. 예술은 역사와 무관한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얼굴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며 번역했던 도전들은 역사 속에서 이어졌다. 시대마다 ‘얼굴’은 달랐지만 ‘오직 성경’을 번역하는 의미에서 본질은 같다. 같은 본질의 다른 얼굴을 이해한다면 우리 시대에도 다른 얼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럴 때 위대한 세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p.236
세대를 아우르는 열쇠는 콘텐츠에 달렸다. 온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통해 마음이 통합된다. 콘텐츠는 모든 세대가 쉽게 이해하고 소통하는 문학, 예술 속에 들어있다.
--- p.263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성채는 스마트폰이라는 문명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사고를 빼앗고, 인공지능은 우리의 가치를 제거한다. 사고와 가치를 제거하며 우리 속에 하나님의 자리마저 없애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작가 조지 오웰은 사고력 회복을 강조하였고, 종교개혁자들은 번역을 통해 말씀을 가르쳤다.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빼앗고, 빅데이터를 차단하면 될까?
--- p.270
🖋 출판사 서평
종교개혁을 도운 예술의 힘
미술과 문학은 어떻게 성경을 번역했을까?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
종교개혁이 지금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종교개혁을 신앙의 뿌리로 두고 있기에 그러리라. 그렇지만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나라는 말인지 모호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썩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한국교회’라는 허상을 들이대며, 그 익명성 뒤에서 던지는 일종의 ‘타자화’는 아닐까.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저 교회는 저래서 안 되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들이 외치는 종교개혁의 실체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것은 아닐까. 루터가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는데, 그것이 저절로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프로테스탄트’ 무리들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 1555년이 되어서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통해 신교도들이 정식 종교로 인정받았다. 장로교의 뿌리가 되는 칼뱅파는 1648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루터와 칼뱅이 살았을 때, 종교개혁은 이단의 불길이었다. 어떻게 종교개혁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유튜브나 언론에서 매일 쏟아지는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는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없다. 종교개혁이 당대와 다음 세대들에게 전수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개혁자들은 성경을 그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게 글로 번역했고, 콘텐츠로 번역했다. 그것이 쌓여서 결국 종교개혁을 이루어 낸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쳤던 콘텐츠를 생각해 보자. 기독교 강요, 루터의 대교리-소교리 문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그리고 최고의 교리로 평가받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에 이르기까지 교육 내용은 성경,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종교개혁을 계승한다는 것은 이런 교육의 내용까지 이어받는 것이다. 그들은 이 내용을 교육하기 위해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의 내용을 가르쳤다. 과연 다음 세대는 위의 내용을 어떻게 접하고 이해하는가? 암기와 주입으로 외는 것 외에 제대로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예배 시간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은 주문처럼 변했고, 주기도문은 행사를 마무리하는 절차이며, 십계명은 ‘은혜’라는 이름 뒤에 밀려나 버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종교개혁’을 외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명확하다.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은 16~17세기의 예술이 되었고, 그것들이 쌓여서 시대의 문화가 되었다. 이 책은 종교개혁 콘텐츠와 시대의 예술을 접목해서 종교개혁 교육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아울러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는 방식을 현실에 접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이드와 방법을 제공한다. 이제 종교개혁을 향해 구체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되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제시해 본다.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