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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에 8:1-8
1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3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규를 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5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더 8:1-8 / [유다인이 원수들을 죽이다.] 그리고 아하수에로왕은 바로 그날 유다인의 원수인 하만과 집과 재산을 모조리 왕후 에스더에게 선물로 주었다. 에스더가 자기와 모르드개의 관계를 왕에게 알렸기 때문에, 왕이 모르드개를 직접 자기에게 불러들였다. 2) 왕은 하만에게서 회수한 자신의 인장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어 왕의 전권을 위임해 주었고,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하만의 재산을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3) 에스더는 바사 제국의 전역에 흩어져 사는 동족을 구하기 위하여 다시 왕을 찾아갔다. 그녀는 접견실로 들어가 왕의 어좌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 아각의 후손 하만이 유다인을 몰살시키려고 계획해 놓은 그 흉악한 살인 명령을 철회시켜 달라고 울면서 호소하였다. 4) 그러자 왕이 에스더에게 더 가까이 오도록 금지팡이를 내밀었다. 에스더가 곧 일어나 왕의 앞으로 가서 5) 이렇게 아뢰었다. `만일 임금님께서 이번 일을 옳게 보시고, 제가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시며 저의 제안을 기쁘게 여기신다면, 아각의 후손으로 함므다다의 아들인 하만이 이 나라의 모든 지방에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고 쓴 조서를 취소시켜 주소서! 6) 어떻게 제가 동족에게 내리는 재앙을 보고만 있을 수가 있으며, 제 집안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가 있겠습니까?' 7) 아하수에로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대답하였다. `하만이 유다인을 말살하려고 계획하였기 때문에, 그의 모든 재산은 내가 에스더에게 선물로 주었고, 하만은 자신이 세운 교수대에 매달아서 죽였소. 8) 그러나 왕의 이름으로 작성해서 왕의 인장반지로 결재를 내어 공포한 조서는 회수될 수가 없는 것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유다인을 살려 내기 위하여 내 이름으로 새 조서를 작성하고 나의 인장반지로 결재를 내어 공포하시오! 어쨌든 그대들의 뜻대로 조서를 써 유다인들에게 보내시오!'
왕후 에스더의 건의로 하만을 대신하여 모르드개가 바사제국의 2인자인 총리로 발탁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유대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주니라(1-2) 하만이 총리직을 이용하여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는 음모를 들은 왕은 하만 처형을 명령하고 모든 재산을 에스더에게 주었습니다. 하만의 집은 그의 가옥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에스더는 큰 부자가 되었고 받은 재산을 모르드개에게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왕은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2). 왕이 준 반지는 결재도장으로 왕의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르드개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겸손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시 31:23)
왕의 발아래 엎드려 울며(3-5) 에스더는 하만이 왕의 이름으로 내린 조서를 철회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3). 이는 하만은 이미 처형되었지만 유대인 학살에 관한 왕의 조서는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왕은 왕의 지팡이를 내밀었습니다(4). 에스더가 즉시 일어나 왕에게 세 번 반복하여 간청합니다(3, 5, 6). 자신을 구원하듯이 유대 백성을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왕궁에서 왕의 사랑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부러울 것이 없었던 에스더가 동족을 살리고자 간청을 합니다.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렘 29:7).
조서를 유대인 뜻대로 쓰고(6-8) 왕의 반지로 인을 치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사제국의 역사 이래 가장 파격적인 일입니다. 당시의 법은 왕이라도 도장까지 찍어서 반포한 조서를 취소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번의 조서는 유대인에게 자위권을 주는 내용입니다. 이전의 조서를 취소하지 않고도 무력화시키는 지혜입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믿게 하십니다. 크레이크 키너(Craig Keener)박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의 역사가 없으면 기독교는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적용: 당신도 에스더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길 바랍니다.
1968년 10월,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한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 선수는 아프리카 마라톤 챔피언으로 메달권 진입이 예상되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옆 사람과 부딪혀 쓰러지면서 심하게 다치게 되었고, 의료진들은 더 이상 달리기에는 무리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응급조치만 받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스타디움에 모습을 보였을 때 관중들이 기립하여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결승점을 지났을 때는 마치 그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왜 포기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 조국 탄자니아는 나에게 출전만 하라고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보낸 것이 아니라 레이스를 끝내고 오라고 나를 보낸 것입니다. 경기 도중 다쳤지만, 완주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자 최종 목표였습니다.”
< 설 교 >
매튜 핸리 8장
부유하게 된 에스더와 모르드개 (에스더 8:1-2)
우리는 최근에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눈물과 두려움 속에 있었으나 금식하고 기도한 것을 읽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 주위의 어두움이 어떻게 밝혀졌는가를 살펴보자.
1. 에스더는 부유케 되었다. 하만은 반역자로서 달려 죽었으므로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다. 그리고 왕은 그것을 에스더에게 줌으로써 그 사악한 자로 인해 받았던 공포와 걱정에 대한 보상을 해주었다(1절). 하만의 집과 토지, 물건과 동산 그리고 그가 총리대신으로 있을 동안(우리는 그가 이보다 더 낮은 지위에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쌓아둔 모든 돈이 에스더에게 넘겨졌다. 그녀에게 이미 할당된 것 이외에 이것들이 모두 그녀의 것이 되었다. 이처럼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며 그 은은 무죄한 자가 나눠 갖게 된다" (잠 13:22; 욥 27:17, 18). 하만이 에스더에게 주려던 재앙은 복을 가져왔고 재산은 그녀의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2. 모르드개는 승진되었다. 이날 아침 성중 거리를 다닌 그의 화려한 행렬은 순간적인 영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가 얻은 더욱 크고 유익한 승진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다음과 같은 행복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1) 그는 이제서야 왕후의 사촌으로 인정받았다. 비록 에스더가 사년 동안이나 왕후로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왕도 여지껏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모르드개는 매우 겸손하고 정중한 자였다. 그리고 그는 궁중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야망은 전혀 없었으므로, 그가 왕후의 친족이라는 사실과 그녀가 후견인인 그의 은혜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녀의 권세를 결코 이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위대한 영예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자는 모르드개 이외에 누가 또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 그는 '왕 앞에' 불려나와 소개되어 우리가 말하듯이 그의 손에 입맞추었다. 왜냐하면 이제서야 드디어 "에스더가 그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는 그녀의 가까운 친족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서 그녀가 고아였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그녀가 아버지처럼 여전히 존경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왕은 왕후를 위해서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기를 기뻐한 그 이상의 영예를 부여할 의무가 있음을 알았다. 사실상 왕과 왕후의 생명을 구한 자는 얼마나 큰 공훈을 세운 것인가!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왔을 때 아말렉 사람인 하만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그는 물론 절을 함으로써 경의를 표했다.
(2) 왕은 모르드개를 옥새관으로 만들어 하만의 집에 있게 했다. 하만에게 주었던 왕의 모든 신뢰와 권세는 이제 모르드개로 옮겨지게 되었다. 즉 왕은 하만으로부터 거둔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고 그 교만하고 불성실하며 비겁한 하만에게 대했던 것 이상으로 그를 총애하는 신하로 만들었고 또 그의 깊은 친구로, 심복으로 삼았다. 모르드개가 왕의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행복한 변화이다. 그와 그의 백성은 곧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3) 왕후는 그를 그녀의 관리인으로 삼아 하만의 재산을 주관하게 했고, 그것을 소유하며 지키도록 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땅 위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이 얼마나 헛된가를 보라 "재물을 쌓는" 자는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며" (시 39:6) "그가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전 2:19) 그가 친구인지 적인지도 모른다. 만일 하만이 그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미워한 모르드개가 "그의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라" 는 것을 예지했었다면, 그리고 모르드개가 지혜로운 자임이 드러나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하만은 그의 재산을 얼마나 보잘 것 없게, 아니 얼마나 분하게 여겼을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사는 이 세상에 남겨 놓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에 함께 지니고 갈 수 있는 보물을 얻는 것이다.
스스로 방어하라는 명을 받은 유다인(에스더 8:3-14)
유다인들의 주요 적인 하만은 나무에 달려 죽었고, 그들의 주요한 친구인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잘 보호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왕이 다스리는 땅에는 유다인을 미워하여 그들이 멸망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나머지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맹렬하고 악한 공격을 받을 위험성이 컸다. 왜냐하면 그들에 대한 조서가 아직도 발효중이었고 조서에 의해 정해진 날이 오면 그 적들은 그 일을 수행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일 유다인들이 항거하고 그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든다면 그들은 왕을 향해 모반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
Ⅰ. 왕후는 매우 간절히 그리고 끈질기게 여기에서 중재를 맡았다. 그녀는 부름받지 않았지만 두 번째로 왕 앞에 나왔고(3절), 그 때 왕은 그녀에게 금홀을 내어밀음으로써 이전처럼 그녀의 소청을 말하도록 격려받았다(4절). 그녀의 소청이란 왕이 이미 하만을 처형했으니, 이제 다시 유다인을 해하려는 하만의 모함도 제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하만이 사라졌듯이 그 재앙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끼친 재앙은 그들보다 더 오래 남게 되며 그들이 고안해 낸 사악함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매우 유익하게 남거나 아니면 매우 해로운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하만의 계획을 전멸시키기 위해 그들이 왕에게 더욱 은혜를 내려줄 것을 청하는 것은 긴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5절) 하만이 고안해 냈고 왕이 직접 쓴(그녀는 "왕이 허락하고" "그 자신의 도장으로 확증해 주었다" 는 사실은 말하지 않고 그것을 그의 양심에 맡겨 두었다) 편지를 취소하기 위해 또 다른 조서를 내려 줄 것을 청했다. 만일 왕이 여기에 나타난 대로 그러한 조서를 만드는 데 관계했다면 그는 그것을 취소하는 이하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잘못 행했을 때 우리의 능력을 다하여 그것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회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 에스더는 매우 간절히 이 소청을 올렸다. 즉 그녀는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울며 구하였다" (3절). 그 눈물 방울마다 그녀를 장식하고 있는 진주만큼이나 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그 누구도 엎드리기를 싫어 할만큼 교만해지거나 울기를 거부할 만큼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기로 하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 이렇게 행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에스더는 그녀 자신은 안전했지만 그녀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엎드려 눈물로 간구했다.
2. 에스더는 왕에게 그리고 그의 지혜와 의지에 대해 매우 정중한 태도로 깊은 경의를 표하며 청을 올렸다(5절). "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다면" 그리고 다시 "만일 그 일이 왕이 보시기에 의롭고 합당하면 그리고 그것을 청하는 나를 기쁘게 보시면 조서를 내리사 취소해 주옵소서." 우리 나름대로 최고의 이성과 분별력이 있고 탄원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라도 우리는 윗사람에게 공손하고 신중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우리가 탄원할 때 요구자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단정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해서 손해되는 것은 없다. "온유한 대답이 진노를 물리치는 것" 과 같이 온유한 물음은 호의를 얻는다.
3. 그녀는 계속 감동어린 탄원을 올렸다.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차마 보겠나이까? 내가 그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면 내가 산들 무슨 낙이 있으오리까. 그들에게 화가 미칠 때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분명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오니 내가 어찌 나에게 귀중한 내 친척의 멸망을 차마 보리이까?" 왕후 에스더는 그녀의 불쌍한 친척들을 시인했으며 그들에 대해 매우 부드러운 배려와 함께 말했다. 이제 그녀는 눈물에 젖어 "울며 구하였다." 그녀가 자신의 생명을 청할 때 울었다는 것은 우리가 읽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생명이 확실케 되었을 때 그녀는 그녀의 백성들을 위해 울었다. 연민과 사랑의 눈물은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것이다. 진심으로 회중을 염려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황폐하고 그들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사느니 보다는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기를 원한다. 온유한 영을 지닌 심령은 그들의 백성과 친척들이 멸망하는 것은 결코 참을 수 없으므로 그들을 안전케 하기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Ⅱ. 여기에서 왕은 하만이 계획한 그 재앙을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하였다.
1. 왕은 바사 정부의 법령에 의하면 이미 선포된 조서를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왕후에게 알렸다(8절).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것은 어떠한 명목으로든지 취소할 수 없었다. 일단 왕의 허가를 얻어 통과된 조서나 법도는 폐기되거나 무효화될 수 없으며 판결이나 사권 상실이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의 대헌장의 기초 항목이었다(단 6:15). 이것은 메데와 바사 사람들의 지혜와 영예를 나타내기는커녕 실상 그들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표하는 것이었으므로, 결국 그들의 수치가 되었다. 그 누구든지 그들이 선포한 것의 모든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을 만큼 완전무결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판결의 결과가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그것을 변경시킬 수 없을 만큼 그들 능력의 절대권을 주장하는 것은 그 어떤 사람에게나 부당하고 해로운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파멸시킨 저 옛날의 교만 곧 "우리가 신처럼 되자" 라는 그 말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어떠한 법률도 어떤 말로나 재가를 통해서 취소할 수 없는 법률이 될 수 없으며 나아가 양도될 수 없는 재산은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한 우리 나라(영국) 헌법의 조항은 대단히 지혜로운 것이다-Cujus est instrvere, ejus est destrvere-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리란 법률을 폐지할 수 있는 권리도 의미한다. 후회함이 없고 결코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2. 그러나 그는 하만의 계획을 취소하고 그의 계략을 격파할 방법을 강구하여 또 다른 조서를 선포함으로써 유다인들에게 "세력을 세력으로 맞서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를 죽이도록" 허락을 내렸다. 이것은 그들의 안전을 효과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었다. 왕은 그가 유다 민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이미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사랑하는 신하가 "유대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달아 죽게 했었기 때문이다(8절).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보호해 주기 위해 그의 최선을 다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멸망시키도록 하만에게 그의 이름으로 권력을 사용하게 한 것과 같이 이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도록 그의 이름과 권력을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맡겼다. "우리의 법도의 존엄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너희는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써라(8절). 그 조서를 취소하지 말고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라." 왕의 서기관들은 삼월 이십 삼일에 이 조서를 작성하도록 명령받았다(9절). 이것은 이전의 조서가 선포된 지 약 두달 후이나 그 일을 집행하기 아홉달 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각 도의 방언으로 작성되어 선포되었다. 이 세상 왕의 신하들은 한 가지 언어로 선포된 조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이 그 언어가 이해되지 않아 종들에게 전달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나라의 질서를 지키는 자들과 중요한 직책을 맡은 각 도의 관원들에게 전달되어야 했다. 그것은 왕이 다스리는 모든 땅에 철저히 전달되어야 했고 조서의 초본을 속달로 각 도에 전해야 했다. 이 조서의 취지는 유다인에게 명해진 것으로써 그들을 진멸하도록 정해진 날에 함께 모여 그들 스스로의 방어를 하라는 것이었다.
(1)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생명을 노리는 자가 누구든지 간에 그것은 극히 위험스런 일이었다.
(2) 그들은 방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할" 수 있었다(11절). 그리고 이처럼 "대적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13절). 또한 그들이 원한다면 대적의 재산을 탈취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대적들도 그들을 탈취할 권한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1] 이제 이 일은 유다인에 대한 친절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것은 유다인들을 안전케 하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후에 선포된 조서는 비록 구체적 문구는 없었지만 전에 선포된 조서를 실질상 취소한다는 것으로써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왕의 조서가 취소될 수 없게 만들어진 그들의 법령의 모순이 드러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왕은 그의 나라에 있는 유다인과 그들의 적들간의 내란을 조정하기 위해 양측이 그의 명에 의해 무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결국 그의 명을 거슬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부여된 이상으로 지혜로운 체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 조서는 매우 신속히 전달되었다. 즉 왕 자신은 이 조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전에 선포된 조서로 해서 유다인에게 어떤 재앙이 행해질까 보아 매우 걱정하며 늦게 전달되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의 명이" 그리고 모르드개의 명이 "심히 급하매" (14절) 그들은 준마를 타고 달렸다(10절). 그처럼 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해있는 만큼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다인의 기쁨(에스더 8:15-17)
모르드개가 굵은 베를 입고 모든 유다인들이 슬픔에 잠긴 것을 우리가 읽은 것은 불과 몇 일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축복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모르드개는 이제 자색 옷을 입게 되고 모든 유다인은 기쁨 속에 있게 되었다(시 30:5, 11, 12 참조)
1. 모르드개는 자색 옷을 입었다(15절). 모든 유다인을 구하라는 명령이 내렸을 때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상복을 벗고 조복을 입었다. 그런데 이 조복은 그의 신분에 따른 옷이었거나 왕이 그를 충신으로 여겨 정해준 옷이었을 것이다. 그의 의복은 푸르고 흰 것이었고, 자색 가는 베로 된 훌륭한 옷이었다. 그리고 그가 쓴 면류관은 금으로 된 것이었다. 이 물건들 자체는 중히 여길 가치가 없는 것이나, 그가 이처럼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그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결실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어느 나라에서 작위의 표적이 경건을 나타내는 장식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수산성은 모르드개를 승진시킴으로 인한 이득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즐거워하고 기뻐했다. 즉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처럼 선한 자에게 권능을 맡겨 더 나은 시대가 될 것이라는 그 약속 자체를 즐거워한 것이다. 하만은 달려 죽었다. 그리고 "악인이 패망했을 때 기뻐 외쳤다" (잠 11:10). 모르드개는 승진되었다. 그리고 "의인이 형통했을 때 성읍이 즐거워하였다."
2. 유다인들은 기뻐했다(16, 17절). 얼마 전까지 어두운 그늘 아래 있어 낙담하고 수치를 겪던 유다인들이 이제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 이 있었으며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명절을 삼았다." 만일 그들이 환란 속에서 위협당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처럼 놀라운 기쁨을 체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극한 기쁨으로 거두게 하기 위해 때로 눈물로 씨뿌리게 될 것이다. 상황이 갑작스럽고 놀랍게 호전된 것은 그들의 기쁨을 더해 주었다. 그들은 "꿈꾸는 것 같았고 그 때에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시 126:1, 2). 이들이 구원을 입은 한 가지 좋은 결과는 생각이 깊으며 온건하고 선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많은 본토 백성이 유다인이 되었고 유다 교인으로 개종하여 우상 숭배를 버리고 참된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었다는 일이다. 하만은 유다인을 근절시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수효는 더욱 불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더 교회로 나오게 되었다.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한" 그 때에 "본토 백성이 유다인이 되는 자가 많았다" 는 사실을 주목하라.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의 거룩한 기쁨은 그들의 고백을 더욱 빛내줄 것이며 다른 사람들도 믿음을 가지도록 자극하고 격려해 줄 것이다. 이 때에 그 많은 사람들이 유다인으로 된 이유는 유다인을 두려워한 때문이라고 여기에 적혀 있다. 그들은 이 위기에 얼마나 놀랍게 거룩한 그들을 살피고 그들을 위해 역사하였는가를 깨닫고
(1) 그들은 유다인들은 위대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들과 함께 있는 자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가랴 8장 23절에서 예언된 바와 같이 유다인들의 편이 되었다.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 되시는(신 33:29)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그리고 보았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교회가 환난 중에 있을 때는 그곳으로 오기를 주저하던 자들이 교회가 번성하고 기뻐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이 올 것이다.
(2) 그들은 유다인들이 엄청난 힘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해하는 자들은 비참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만의 운명을 통해 유다인을 해하려는 자들은 본인들이 오히려 위험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그들은 유다인과 합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것은 어리석으므로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에스더 8장 1- 8절
- 오늘도 복되고 좋은 화요일 매우 쌀쌀한 새 날 아침이지만, 능력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 믿는 성도로써 지금 정치적으로 많은 혼란과 갈등인 상황과, 경제, 사회가 어두운 환경이라고 말하지만, 절대로 낙심하지 맙시다.
- 오직 주님의 말씀 붙들고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하며 걱정하는 사람에게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고 소망이 있음을 보여 주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제 목 ◑◑◑◑
◗◗ 유다 백성들의 기쁨
◑◑◑본문 이해와 요약 ◑◑◑
◗ 8장에서는 하만의 죽음은 그 가문의 몰락으로 이어졌으며, 그는 범죄자로 여겨져서 교수형을 당했기에 하만의 모든 재산은 몰수당했습니다.
- 그 동안 큰 권세로 기세등등했던 하만의 가문이 완전히 쓰러지게 된 것이며, 왕은 빼앗은 하만의 재산을 에스더에게 선물로 다 주었습니다.
- 왕의 은총을 입은 에스더는 왕에게 자신과 모르드개와의 관계를 밝혔으며, 이에 모르드개는 왕 앞에 나아오게 되었는데, 이제는 모르드개 역시도 왕의 면전에 설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을 부여 받게 된 것입니다.
- 왕은 모르드개에게 왕의 인장 반지를 내 주었는데, 이 반지는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전에 하만에게 주었던 것을 빼앗아 준 것입니다.
- 바로 이 반지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한 하만의 조서를 합법화시켰던 것이며, 에스더는 자신의 사촌이자 자신을 키워 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주관하는 권한도 부여했던 것입니다.
- 이제 모르드개는 그 동안 하만에게 속해 있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 등을 다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의 목숨을 빼앗고자 했던 하만은 도리어 자기의 목숨뿐 만 아니라 모든 부귀영화를 모르드개에게 모두 다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 그래서 하만은 파멸되었고, 모르드개는 승진했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아 있었는데, 유대인들을 말살시키기 위한 조서가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기에, 각 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여전히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 그래서 에스더는 다시 한 번 목숨을 걸고 왕의 허락도 없이 왕 앞에 나아서 왕후 에스더가 울면서 하만의 조서를 백지화시켜 달라고 왕에게 간곡하게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 왕이 에스더의 청원을 듣고 이전에 자신이 취했던 행동들을 다시 돌이켜 말했던 것입니다.
- 왕이 에스더의 요청대로 유대인을 구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아하수에로 왕은 이제 취소할 수는 없으나 그 효력을 중지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서를 만들도록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일임하였던 것입니다.
- 이 조서가 있으면 하만의 조서는 무용지물이 되며, 유대인들은 생명을 보전받게 됩니다. 왕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모르드개는 하만의 조서를 무효화시키는 새로운 조서를 만들었습니다.
- 이에 모르드개는 역졸들에게 각 지방에서 사용하는 말로 쓰여진 조서를 전제국에 전달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 이 조서에는 하만의 조서를 취하하는 명령을 담겨 있었고, 유대인들이 서로 힘을 모아 대적들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여 스스로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것과, 유대인들이 대적자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 단 이 모든 일들은 아달월 곧 12월 13일 하루 동안만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 바로 이날은 하만의 조서에 의하여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날이었으나 이제 사태는 역전되어 유대인의 원수들이 멸절당하는 날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 모르드개는 자신의 상승 된 신분에 걸맞게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었습니다.
- 이제 그는 하만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그 자리에 앉게 되었으며, 신실한 모르드개 라는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 수산 성의 많은 사람들은 모르드개에 대해 열광적인 환영을 보냈습니다.
- 이처럼 모르드개의 개인적인 영광은 유대인 모두에게도 기쁨이요, 영광스런 일이었던 것입니다.
- 유대인들의 사기는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 신분도 자연히 상승하게 되었고, 그러자 이방인들 중에는 자칭 유대인이라 일컬으며, 유대인들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하만의 죽음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승리요, 유대 백성들의 구원으로 이어졌습니다.
- 하지만 조서를 꾸민 하만은 파멸했어도 그 조서는 여전히 효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에스더는 다시 왕 앞에 서서 왕의 조서를 철회해 달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 왕은 순순히 에스더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새로운 왕의 조서가 제국 전역을 돌게 되었으며, 이 조서에는 유대인의 구원은 물론이거니와 유대인을 멸하고자 했던 원수들의 멸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섭리로 유대인들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 유대인의 대적이었던 하만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셨고, 하만의 조서 또한 무효화시키셨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던 모르드개를 만방에 높이시어,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계심을 제국 전역에 분명히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 특별히 하나님은 유대인 멸망의 날을 원수들을 응징하는 승리의 날로 전환시키심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최종적으로는 최후의 승리를 암시 해 주고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믿음은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는 것이다.( 에스더 8장 6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참 신앙은 자기 정체성과 소속감으로 자기 민족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동반해야 합니다.
- 6절을 살펴보면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 ” 라고 왕후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울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왕후 에스더가 자기의 생명을 걸고 아하수에로 앞에 나아간 동기가 자기의 유익이나 부귀 권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서였음을 드러내줍니다.
- 아울러 이것은 그의 신앙이 민족애나 애국심과 별개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그런데 성경을 보면, 신앙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나라사랑과 민족애가 매우 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시편137편 1절에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느헤미야 2장 3절에서 “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 대표적인 실례를 제시하여 보면 우선 구약에서는 모세를 들 수 있습니다.
- 성경에서 가장 뛰어난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출애굽의 영웅인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김으로써 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간곡하게 호소하였습니다.
- 그러면서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지 않으실 것이라면, 하나님의 기록하신 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버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 출애굽기32장 32절에서 “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지도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고 대신 모세를 통하여 새로운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자를 베풀어 용서하여 주실 것을 호소함으로써 그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민수기 14참고 ). 이 얼마나 숭고한 민족애입니까?
- 한편 민족애가 뛰어난 신약의 인물로는 바울을 들 수 있는데,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 그래서 그는 유대 땅이 아닌 이방 땅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다고 부르짖었습니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울에게 민족애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 그는 그 누구보다도 민족애가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 그는 이방 땅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우선적으로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던 것입니다.
- 그리고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도 사실은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로 이방인이 구원 받는 것을 보고 시기 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영접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 그런가 하면 그는 동족의 구원과 관련하여 로마서9장 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 이는 바울이 자기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 모세나 바울, 그들은 우리가 감히 따라가기 어려운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 그러나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자기 민족을 극진히 사랑했으니, 이것은 참 신앙은 자기 민족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동반 한다는 것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성도는 당연히 나라와 민족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 우리나라의 경우도 처음에 믿은 믿음의 선열들이 나라를 사랑하여 삼일운동에 앞장섬으로써 기독교가 민족 종교로 뿌리내리는 데에 일조를 하지 않았습니까?
-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특별히 성전 제단으로 일어나 함께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합시다.
- 무엇보다 믿는 성도들은 이 땅에 백성들과 온전히 힘을 합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닙니다.
-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개인적 여러 가지 사정들도 있겠지만, 함께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행 2장1절) 모였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행 2장44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를 힘을 ’(행 2장46절) 썼습니다.
- 빌립보1장 27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니 악한 사단의 세력이 성도들을 해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작았지만, 다 함께 하면, 악한 세력의 강력한 힘도 교회를 어찌하지 못하게 됩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누군지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무엇인지?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 됨과 육적으로 자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두 나라 국적을 가짐에 있어서 소속감을 분명히 하고 있는지? 그래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권리와 해택을 누리고 있는지? 그래서 두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무엇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지? 를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믿음은 하나님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는 것이므로 마음과 뜻을 함께하고 위하여 언제나 기도의 힘으로 감당해야 성령님의 도우심과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는 악한 세력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날로 강성하여져 가며 흥왕하였습니다.
- 진리를 막으며 사회적 위기를 만날 때에 성도들이 함께 하여 힘을 모을 때에 아무리 강력한 사단의 세력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와 고백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연합으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기에 힘쓰고 열심을 내어 봅시다.
- 개인기도가 중요합니다만, 함께 뜻을 같이 하여 섬기는 제단에서 혹은 교회 연합으로 어디든지 함께 모여 기도하는 운동이 살아야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지금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기대하기 전에 성도들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 하시고 그것을 실천 해 봅시다. 특히 민족의 위기와 영혼 구원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 해 봅시다.
- 오늘날 교회들이 무슨 연합 모임이 되느냐? 그리고 무슨 연합이 그렇게 많으냐고 불평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그것은 모임의 중요성과 비밀을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 그러므로 거룩한 무리 즉 성도들이 힘써 모이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하여, 연합으로 모이고 말씀으로 합심 기도할 때, 가로막고 어둡게 하는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을 갖게 되므로, 연합기도회 모임에 함께 열심과 열정으로 구국기도의 용사가 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만의 반지
에 8:1-8 / 푸른교회
하만의 몰락과 그가 잡으려 했던 모르드개의 회생은 그야말로 <운명의 반전>이라 할 만합니다.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1-2절).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고대 근동 국가에서는 범죄자의 모든 소유가 왕에게로 귀속됐습니다. 따라서 범죄자 하만의 모든 소유도 왕의 것이 되었으며 왕은 다시 하만의 그 전 재산을 왕후 에스더에게 하사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하만의 집과 재산을 모르드개에게 주어 관리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는 사실상 그 소유권을 모르드개에게 넘겼다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왕이 하만에게서 회수한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왕의 반지는 곧 바사 왕국의 총리대신의 지위를 뜻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 대신 모르드개를 곧 바사 왕국의 총리대신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모르드개는 졸지에 <왕에게 가까이 하며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1:14) 최고 지위의 대신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문제가 남았습니다. <에스더가 다시 ...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3절). 그렇습니다. 아직 하만에 의해 전국에 내려진 왕의 조서, 즉 유다인들을 진멸하라는 조서는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었으므로 에스더가 이를 철회해 달라며 눈물로 탄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과 은혜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민족 공동체의 구원을 이루기까지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그렇게 했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니라>(잠 21:1). 우리에게는 언제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도 이상의 효과적인 전략은 없습니다.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 엎드려 울며 하만의 악한 꾀를 제거해 달라고 탄원했습니다. 에스더의 민족에 대한 충정에 대해 당신의 느낌을 적어 보십시오.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은 원래 변덕스럽고 성격이 몹시 급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그의 마음이 심히 관대하고 너그럽게 변화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도>
주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요 실제 사건이었음에도 마치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처럼 완벽한 역전이 전개됐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잡기 위해 세운 장대에 하만 자신이 달리고 하만의 총리대신 반지는 다시 모르드개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만의 집과 재산도 결국은 다 모르드개 수중으로 들어 왔습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각본을 쓴다 해도 이토록 철저한 반전 드라마를 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을 보고 느끼며 저희들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옵소서.
에스더 8장 강해 하나님이 존귀케 하는 사람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줌)
”1.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아하수에로 왕은 그 날로 유다 사람의 원수 하만의 재산을 에스더 왕후에게 주었습니다.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 범죄자의 모든 소유는 당연히 왕에게 귀속되었습니다(왕상 21:7-16). 따라서 범죄자 하만의 모든 소유는 왕의 것이 되었습니다. 왕은 그것을 하만의 음모를 드러내는 일에 공로가 큰 에스더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만의 집은 그의 가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하만에 의해 소유됐던 재산 일체를 가리킵니다(창 39:4왕상 13:8욥 8:15). 에스더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를 자신의 사촌 오빠이자 양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임을(2:7) 왕에게 비로소 말했습니다. 사실 에스더가 모르드개와 자신의 관계를 진작 밝히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유대인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고발하는 도중 자신이 유대인임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7:3, 4), 이제 더 이상 모르드개와의 관계를 감출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르드개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과 면대(面對)할 수 있는(1:10, 147:9). 고위직의 관리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이 같은 승진은 반드시 에스더의 후광(後光) 때문만은 아닙니다. 모르드개는 이미 왕을 모살할 계획을 꾸몄던 두 내시를 적발하였습니다.(2:21, 22), 또한 금번에는 왕과 왕후에게 손해를 끼치려한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는 데 그 공로가 컸습니다. 그는 왕의 중신으로 등용될 수 있는 자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가 은밀하게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상주심을 바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십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우리를 높이십니다.
(총리에 오른 모르드개)
“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왕은 하만에게서 되찾은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서 모르드개에게 맡겼습니다. 왕이 반지를 빼어 신하에게 주는 것은, 그 신하에게 자신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가시적 행위였습니다(3:10). 이로써 모르드개는 바사 제국의 제2인자인 총리 대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가까이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들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1:14).
에스더는, 하만에게서 빼앗은 재산을 모르드개가 맡아 보게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하만의 집에 대한 소유권을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르드개에게 양도하였습니다. 사실 에스더가 하만의 엄청난 재산(3:9)을 직접 관리하기에는 힘이 부쳤을 것입니다. 결국 하만의 부귀와 지위 및 권세는 그의 원수였던 모르드개에게 고스란히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를 낮추시고 선을 행하는 자를 높이십니다.
(민족을 위하여 탄원하는 에스더)
“3.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규를 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5 .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에스더는 또다시 왕의 발 앞에 엎드려 울면서 간청하였습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탄원은, 비록 그때 하만은 이미 처형되고 없었지만(7:10) 유대인 학살에 관한 왕의 조서(3:13)는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입니다. 발 아래 엎드리는 것은 높은 사람에게 간절히 탄원할 때 취하는 일반적인 자세(삼상 25:24왕하 4:27)입니다. 에스더는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 사람을 치려고 꾸민 악한 음모를 막아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왕이 금 홀을 에스더에게 내밀었습니다. 왕이 금홀을 에스더에게 내어민 것은 에스더가 왕의 호출없이 왕에게 나아갔다가 왕으로부터 용납된(4:11)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의 탄원이 있은 직후의 일이었으므로, 금홀을 내민 것은 에스더의 청원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러자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말하였습니다. 5절에서 에스더는, 간청을 하기에 앞서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상투적 어구(1:19,3:9)를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합니다.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며 자신과 자신의 민족의 구원을 간청할 때는 두 번 반복 사용했었습니다(7:3). 에스더는 여기서 이같이 네 번이나 사용함으로써, 왕이 자신의 간청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임금님께 은혜를 입었고, 임금님께서 자신를 귀엽게 보시면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말이 임금님께서 들으시기에 옳다고 생각하시면, 자신을 구원하듯이 유대 백성을 구해달라고 합니다. 임금님께서 자신을 사랑스럽게 생각하시면, 아각 자손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임금님의 나라 여러 지방에 사는 유다 사람을 다 없애려고, 흉계를 꾸며 쓴 여러 문서가 무효가 되도록 조서를 내려 달라고 합니다.
에스더는 이전의 조서가, 하만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목적으로 해서 조작된 것이어서 마땅히 폐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는 변개되거나 취소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왕의 조서가 쉽게 변개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면 그만큼 왕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에스더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몰랐던것 같습니다. 다만 그녀는 왕의 조서를 취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청원하기에 앞서 무려 네 차례나 상투적인 어구를 반복하여 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했으며 또한 그 앞서 왕의 발 아래 엎드려 눈물의 탄원을 했던 것입니다(3절). 에스더의의 겨레가 화를 당하는 것을, 자신이 어찌 나의 눈으로 볼 수 있겠으며, 나의 가족이 망하는 것을 어찌 눈뜨고 볼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에스더는 같은 동사를 두 번 반복함으로써 동족의 환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지위나 부귀에 있어 부러울 것이 없었던 에스더가 자신의 동족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에스더는 그들에게 닥친 곤경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신앙의 힘에 근거한 이타적인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친척은 출생지, 본토 혹은 근본의 뜻(창 11:2831:13겔 16:3)으로서 앞의 민족보다 더 근원적 측면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탄원하였고 우리 예수님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에스더처럼 탄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죽이려면 나도 죽이시고 나를 살리려면 인류도 살려달라고 탄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민족을 구원하고자하는 약속)
“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 왕후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만이 유다 사람을 죽이려 하였기에, 나는 그를 장대에 매달아 죽이도록 하였소. 또한 하만의 재산을 빼앗아서 에스더 왕후에게 주었소.”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이 이미 유대인 학살 계획을 꾸몄던 하만을 처형했음을 말합니다.(7:10), 그의 집을 몰수하여 에스더에게 주었던 것(1절)도 말합니다. 왕은 이 두 가지의 호의를 유대인들에게 베풀었음을 말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위해서 그보다 더한 호의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다 사람들을 살려야 하니, 왕의 이름으로 당신네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조서를 하나 더 만들라고 합니다.
이 같은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은, 이미 하달된 조서를 취소시킬 수 없었던 페르시아 법과 잘 부합됩니다. 즉,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도장까지 찍어서 반포한 조서를 취소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와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조서를 반포케 함으로써 유대인들로 하여금 필요 적절한 방어 조처(9:1)를 취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그 조서에 왕의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으라고 합니다. 왕의 이름으로 만들고, 자신의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은 조서는, 아무도 취소하지 못합니다.
원문에는 본 문구의 초두에 왜냐하면의 뜻을 갖는 접속사 키가 있어서, 본 문구가 앞부분의 이유에 해당됨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앞 부분 어떤 내용의 이유일까요? 왕은 하만을 에스더에게 내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대적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서를 내리라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의 조서가 취소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서, 대적들의 학살 행위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 반격할 수 있게끔 조서를 내리게 한 것입니다.
(유대인이 방어하도록 조서를 내림)
“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10.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곧바로 왕의 서기관들이 소집되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왕의 조서 원본을 작성하고 그것을 필사하여 여러 개로 만들거나, 페르시아어로 기록됐을 원본을 제국 내에서 사용됐던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때는 셋째 달인 시완월 이십삼일이었습니다. 하만이 유대인 학살을 위한 조서를 반포한 것은 정월 십 삼 일이었습니다(3:12). 그리고 에스더가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폭로한 것은 정월 십 육일이었을 것입니다(5:17:1). 그렇다고 한다면 본절의 조서가 유대인들에게 반포된 것은, 하만의 음모가 폭로된 지 약 두 달 열흘 후의 일인 셈입니다.
서기관들은 모르드개가 불러 주는 대로 조서를 만들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이전 조서(3:12-14)를 취소치 않고 유대인들을 학살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끔 하는 조서를 임의로 작성하라고 모르드개에게 명령한 바 있습니다(8절). 이제 모르드개는 그 같은 대원칙 아래서 유대인을 학살로부터 보호하 위한 조서 작성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부터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에 있는 유다 사람들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각 지방 귀족들에게 조서를 보냈습니다. 여기서는 조서 반포의 두 가지 대상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만에 의해서 반포된 조서는 그 대상이 유대인임을 제외하였습니다.(3:12). 그런데 조서의 반포 대상으로서 유대인임을 지정된 것은, 그들이 자위권(自衛權) 행사의 정당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뜻에서였습니다.
대신과...관원이 조서 반포의 대상이 된 것은 지극히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모르드개에 의해 작성된 새로운 조서가 그들에게 반포되지 않는다면, 대신과...관원은 하만에 의해 반포된 이전의 조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학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신과...관원은 새로운 조서에 따라 유대인 학살을 돕는 입장에서 떠나 완전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되게끔 되었습니다. 조서는 각 지방의 글과 각 민족의 말로 썼으며, 유다 사람들의 글과 말로도 조서를 만들어서 보냈습니다. 앞의 각 도의 문자...방언이 관원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의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은 말할 나위 없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작성하고, 거기에 왕의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보발꾼들을 시켜서, 그 조서를 급히 보냈습니다. 보발꾼들이 타고 갈 말은 왕궁에서 기른 것입니다. 이 말은 왕의 종마(種馬)의 뜻입니다. 왕을 위해 양육되는 종마(NIV, fast horse especially bred for the king)로 번역함이 좋을 것입니다. 이는 다음에 나오는 준마와 동격(同格)입니다. 헤로도투스와 크세노폰의 기록에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공문서의 전달을 위해 오직 말만 사용된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말은 왕의 심부름에 쓰는 날랜 말들이었습니다. 왕의 조서가 신속하게 전국에 반포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준마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왕이 타는 말(왕상 4:28) 혹은 병거를 끄는데 사용되는 말(미 1:13)로도 언급됩니다.
(유대인 생명 보호법)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13.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모르드개에 의해서 작성된 왕의 조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요약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왕의 조서 내용은, 각 성에 사는 유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게 하였습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보다 조직적으로 대적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비결이었습니다(4:16전 4:12). 거대한 제국에서 미미한 존재였던 소수 민족, 그것도 전국에 흩어져 살았던(3:8) 그들은 모이지 아니할 경우 수많은 대적들의 공격에 속수 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비록 유대인에게 자위권(自衛權)을 보장해준 새로운 조서가 왕의 명의로 반포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만이 내린 왕의 조서는 취소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였습니다.(8절), 유대인을 미워하는 자들은 유대인들에 대해서 합법적인 살인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성읍에서든지, 다른 민족들이 유다 사람들을 공격하면, 거기에 맞서서, 공격하여 오는 자들뿐만 아니라, 공격하는 자들의 자식과 아내까지도 모두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치려 하는 자란 이방인들 중 마치 하만이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신앙적인 이유로 자신들과 같은 삶의 방식을 추종하지 않는 데 대하여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항상 혐오감을 갖고 있다가 하만의 조서가 내려지자 그것을 빌미로 하여 유대인을 학살할 계획을 하고, 무장을 한 연후 조서에 정해진 유대인 학살 날짜(3:13, 14)만을 기다리던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같은 무리들은 대개 유대인들의 유일신 신앙을 혐오 하는 우상 숭배자들이 많은 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유대인들의 대적 중에는 타민족의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중앙 정부의 정책에 호응했던 페르시아 사람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3:15 주석 참조). 추측컨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아하수에로 왕은 유대인들에 의한 제국민(帝國民)의 부분적 학살을 승인했던 것 같습니다. 대적들의 처자까지 진멸하게끔 했다는 사실을 놓고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만과 그 일당이 먼저 유대인의 어린아이나 부녀까지 살륙하려 했습니다. 더구나 자신들에게 군사적 적대 행위를 시도하는 자들과 그 가족만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조서 내용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모르드개는 조서를 작성할 때(9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 25)는 동해(同害) 복수법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하만이 유대인을 해하려고 한 범위만큼 그 하수인들을 해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재산까지 빼앗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단지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리는 모든 지방에서, 유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열두째 달인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아달월...십 삼 일은 원래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하도록 결정된 날이었습니다(3:7, 13). 그러나 이제 이 날은 바로 유대인들이 그 대적들을 진멸할 날로 결정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바로 이 날을 대적들을 진멸할 날로 결정한 것은 대적들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게끔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이날이 되어야 유대인들도 누가 자신들의 대적인지를 보다 분명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각 지방에서는 그 조서를 법령으로 공포하여 각 민족에게 알렸습니다. 조서 초본은 모르드개의 주도 아래 서기관들이 작성한 조서 원본을 그대로 베끼거나 혹은 다른 언어로 번역한 것을 말합니다.(9절) 각 도에 전하고는 페르시아 제국 전체 일백 이십 칠 도의 대신과 방백과 관원에게와 유대인들에게 보내진 것을 뜻합니다.(9절).
유다 사람들이 대적들에게 원수 갚을 날을 미리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의 예비하였다가는 유대인들의 대적들에게 사용된 준비하게 하라와 동일한 단어(3:14)입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에게는 대적들을 진멸할 준비 기간이 거의 9개월씩이나 주어졌습니다(9절). 원수를 갚게라는 단어는 상대로부터 심각한 해를 입은 후에 그에 상응하는 가해 행위로 상대에게 보복하는 것(삼상 24:12, 왕하 9:7 겔 25:12)을 말합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유대인들이 아무에게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가해 행위를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군사적 적대 행위를 하는 상대에 대해서만 반격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11절). 왕의 명령은 이처럼 빨리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보발꾼들은 왕의 심부름에 쓰는 날랜 말을 타고 급히 떠났습니다. 역졸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라고 표현된 하만의 조서 당시(3:15)에 비하여, 유대인의 대적을 진멸하라는 금번의 조서에 대해서는 시급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도성 수산에도 조서가 나붙었습니다.
(총리가 된 모르드개)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모르드개는 보라색과 흰색으로 된 궁중 예복을 입었습니다. 푸르고 흰 색은 왕실에서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즐겨 사용했던 제왕색(帝王色)이었습니다(1:6). 조복은 문자적으로 왕의 옷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왕이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기 위하여 일시 하사했던(6:11) 왕복이 아니며 다만 왕이 내린 별도의 의복일 것입니다. 모르도개는 큰 금관을 썼습니다. 여기의 면류관은 왕이 쓰는 것보다는 크기나 질에 있어서 열등한 관(冠)입니다. 그러나 크고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신하들의 것보다는 탁월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고운 모시로 짠 붉은 겉옷을 입고 어전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자색 가는 베는 왕이 베푼 야외 잔치 때에 그 곳을 아름답게 하는 데 사용된 재료였습니다(1:6). 따라서 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겉옷은 왕으로부터 하사된 것임이 분명합니다.
하만이 그랬듯이 모르드개에게도 왕의 호출없이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을 것입니다(3:8). 여호와는 하나님 한 분만을 높이는 자를 높여주십니다. 우리는 그를 높여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수산 성에서는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수산 성은 그 도시에 사는 거민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라는 조서가 내려졌을 때는 슬퍼했었지만(3:15). 그 반대로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또한 의로운 사람이 총리에 오름에 따라 이처럼 좋아했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은 하만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까닭없는 양민 학살 계획에 대해 혐오해 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즐거이 부르며는 마음이 기쁘고 흡족하여 크게 소리치는 것을 가리킵니다(사12:6렘 31:7). 기뻐하고는 어떤 이유로 특별히 즐거워하는 것을 뜻합니다(느 12:43).
(유대인들의 기쁨)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유다 사람들에게는 서광이 비치는, 기쁘고 즐겁고 자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앞 절에서는 수산에 사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의 반응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영광은 원래는 빛의 뜻(시 139:12사 26:19)이며 상징적으로 번영을 의미합니다. 즐거움은 15절의 기뻐하고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기쁨은 앞의 즐거움과 거의 같은 뜻으로서,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흔합니다(사 22:1335:10). 존귀함은 명예를 획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은 이처럼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하만이 총리로 있었던 시절의 유대인들은 극히 미미한 존재였을 뿐입니다. 지방마다 성읍마다, 왕이 내린 명령과 조서가 전달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 곳에 사는 유다 사람들이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날을 축제의 날로 삼았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 중 피고용자의 입장에 있던 자의 경우에는 이방인 고용주들이 유대인이 구원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던 나머지 그들이 즐길 수 있는 하루의 시간 여유를 자발적으로 허락했을 것입니다.
그 땅에 사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유다 사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함으로써 가능하였습니다(스 6:21). 이 같은 개종자들은 절대 권력자 하만(3:1)의 돌연한 몰락과 유대인들의 승귀(昇貴)를 목도한 결과, 여호와가 유일한 참신임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주의 백성이 높임을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들은 유대 종교를 신봉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총리에 오르고 유대인들이 승리한 것을 목도한 결과 유대인이 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콘스탄틴 대제(306-337년)가 기독교로 개종한후 기독교를 공인하자 수많은 이교도들이 참된 회심없이 교회로 몰려들어 왔던 것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유다인을 두려워한 것은 문자적으로는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 위에 떨어졌다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특별한 섭리 혹은 간섭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창 35:5출 15:16신 11:25시105:38).
에스더 8장 호크마주석
=====8:1
왕이...하만의 집을...에스더에게 주니라 -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 범죄자의 모든소유는 당연히 왕에게 귀속되었다(왕상 21:7-16). 따라서 범죄자 하만의 모든 소유는왕의 것이 되었으며, 왕은 그것을 하만의 음모를 드러내는 일에 공로가 큰 에스더에게넘겨주었던 것이다(Baldwin). '하만의 집'은 그의 가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하만'에 의해 소유됐던 재산 일체를 가리킨다(창 39:4;왕상 13:8;욥 8:15).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고한 고로 - 에스더가 모르드개를 자신의 사촌 오빠이자 양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임을(2:7) 왕에게 말했음을 가리킨다. 사실 에스더가 모르드개와 자신의 관계를 진작 밝히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유대인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고발하는 도중 자신이 유대인임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7:3, 4), 이제 더 이상 모르드개와의 관계를 감출 필요는 없게 되었다.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 모르드개가 왕과 면대(面對)할 수 있는(1:10,14;7:9). 고위직의 관리로 승진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Paton, Rawlinson). 그러나 모르드개의 이 같은 승진을 반드시 에스더의 후광(後光) 때문으로 봐서는 안된다. 모르드개는 이미 왕을 모살할 계획을 꾸몄던 두 내시를 적발하였고(2:21, 22), 또한 금번에는 왕과 왕후에게 손해를 끼치려한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는 데 그 공로가 컸었기 때문에, 왕의 중신으로 등용될 수 있는 자격의 소유자였다.
=====8:2
왕이...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 '왕이 반지를 빼어' 신하에게 주는 것은, 그 신하에게 자신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가시적 행위였다(3:10). 이로써 모르드개는 바사 제국의 제2인자인 총리 대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그는 '왕에게가까이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들 중 한 사람이된 셈이다(1:14).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 이것은 에스더가 '하만의 집'에 대한 소유권을 물론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르드개'에게 양도한 것을 의미한다(Rawlinson). 사실 에스더가 하만의 엄청난 재산(3:9)을 직접 관리하기에는 힘이 부쳤을것이다. 결국 하만의 부귀와 지위 및 권세는 그의 원수였던 모르드개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8:3
에스더가...왕의 발 아래 엎드려...울며 구하니 - 이러한 에스더의 탄원은,비록 그때 하만은 이미 처형되고 없었지만(7:10) 유대인 학살에 관한 왕의 조서(3:13)는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발 아래 엎드리는 것'은 높은 사람에게 간절히 탄원할 때 취하는 일반적인 자세(삼상 25:24;왕하 4:27)이다.
=====8:4
왕이...금홀(金笏)을 내어미는지라 - 이것은 에스더가 왕의 호출없이 왕에게 나아갔다가 왕으로부터 용납된(4:11) 것을 의미치 않는다. 왕이 금홀을 에스더에게 내어민것은 에스더의 탄원이 있은 직후의 일이었으므로, 에스더의 청원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봐야 한다.
=====8:5
본절에서 에스더는, 간청을 하기에 앞서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상투적어구(1:19;3:9)를 무려 네 번 반복 사용한다.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며 자신과 자신의민족의 구원을 간청할 때는 두 번 반복 사용했었다(7:3). 에스더는 여기서 이같이 함으로써, 왕이 자신의 간청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시하고 있다. 조서를 내리사...하만이...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는 변개되거나 취소될 수 없었다(Huey). 만일 왕의 조서가 쉽게 변개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면그만큼 왕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에스더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몰랐던것 같으며, 다만 왕의 조서를 취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청원하기에 앞서 무려 네차례나 상투적인 어구를반복하여 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했으며 또한 그 앞서 왕의 발 아래 엎드려 눈물의 탄원을 했던 것이다(3절).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 이것은 이전의 조서가, 하만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목적으로 해서 조작된 것이어서 마땅히 폐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의문구이다(Paton).
=====8:6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보리이까 - 같은 동사를 두 번 반복함으로써 에스더는 동족의 환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위나 부귀에 있어 부러울 것이 없었던 에스더가 자신의 동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에게 닥친 곤경을 제거하기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신앙의 힘에 근거한 이타적인 정신을엿보게 된다(Baldwin). 한편, '친척'(* , 몰라드티)은 '출생지', '본토'혹은 '근본'의 뜻(창 11:28;31:13;겔 16:3)으로서 앞의 '민족'보다 더 근원적 측면을강조하는 단어이다.
=====8:7
본절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이 이미 (1) 유대인 학살 계획을 꾸몄던 하만을 처형했으며(7:10), (2) 그의 집을 몰수하여 에스더에게 주었던 것(1절) 등 두 가지의 호의를 유대인들에게 베풀었음을 말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위해서 그보다 더한 호의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8:8
너희는...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 이 같은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은, 이미하달된 조서를 취소시킬 수 없었던 페르시아 법과 잘 부합된다. 즉, 아하수에로 왕은자신의 도장까지 찍어서 반포한 조서를 취소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와 동일한 효과를 얻을수 있는 또 다른 조서를 반포케 함으로써 유대인들로 하여금 필요 적절한 방어 조처(9:1)를 취할 수 있게끔 했다. 왕의 이름을 쓰고...인친 조서는...취소할 수 없음이니라 - 원문에는 본 문구의 초두에 '왜냐하면'의 뜻을 갖는 접속사 '키'(* )가 있어서, 본 문구가 앞부분의 이유에 해당됨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앞 부분 어떤 내용의 이유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1) 왕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대적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서를내리라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명령한 것이라는 견해(Paton). (2) 왕이 새로운 조서에 왕의 이름을 쓰고 반지로 인을 치라고 명령한 것이라는 견해(Schultz) 등이 있다.그러나 왕의 조서가 취소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서, 대적들의 학살 행위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 반격할 수 있게끔 조서를 내리게 했다는 내용이 본문맥의 핵심인 점을 감안한다면,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함을 알 수 있다.
=====8: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 삼 일 - 하만이 유대인 학살을 위한 조서를 반포한 것은 '정월 십 삼 일'이었다(3:12). 그리고 에스더가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폭로한 것은정월 십 육일이었을 것이다(5:1;7:1). 그렇다고 한다면 본절의 조서가 유대인들에게반포된 것은, 하만의 음모가 폭로된 지 약 두 달 열흘 후의 일인셈이다.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 '서기관들'은 왕의 조서 원본을 작성하고 그것을 필사하여 여러개로 만들거나, 페르시아어로 기록됐을 원본을 제국 내에서 사용됐던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이다(Baldwin).
모르드개의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 왕은 자신의 이전 조서(3:12-14)를 취소치않고 유대인들을 학살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끔 하는 조서를 임의로 작성하라고 '모르드개'에게 명령한 바 있다(8절). 이제 '모르드개'는 그 같은 대원칙 아래서 유대인을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서 작성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백 이십 칠 도 유다인과 대신과 관원에게 전할새 - 여기서는 조서 반포의 두 가지 대상이 언급되고 있다. 하만에 의해서 반포된 조서는 그 대상이 후자 뿐이었다(3:12). 그런데 조서의 반포 대상으로서 유대인이 지정된 것은, 그들이 자위권(自衛權) 행사의 정당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뜻에서였다. 반면에'대신과...관원'이 조서 반포의 대상이 된 은 지극히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만일 모르드개에 의해 작성된 새로운 조서가 그들에게 반포되지 않는다면, '대신과...관원'은하만에 의해 반포된 이전의 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학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대신과...관원'은 새로운 조서에 라 유대인 학살을 돕는 입장에서 떠나 완전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되게끔 되었다.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 앞의 '각 도의 문자...방언'이 '관원'등을위한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의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은 말할 나위 없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살고있던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8:10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 이에 대해서는 3:13 주석을 참조하라.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 본 문구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 , 하아하쉬테라님 베네이 하라마킴)중 '하아하쉬테라님'은 '왕국'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크샤트라'(Khshatra)에서 유래한 페르시아 기원의 외래어로서 '왕의 종마'(種馬)의 뜻(Paton, Keil)이며 '베네이'는 '새끼' 혹은 '양육'의뜻이다. 그리고 '하라마킴'은 '암말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 문구는 히브리 원문에충실하게 '왕을 위해 양육되는 종마'(NIV, fast horse especially bred for the king)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이는 다음에 나오는 '준마'와 동격(同格)으로 보면 된다.그런데 혹자는 '하아하쉬테라님'을 현대 페르시아어 '에스타르'(estar)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그것이 '종마'가 아닌 '노새'를 뜻한다고 주장한다(Rawlinson, 박윤선). 그러나 헤로도투스와 크세노폰의 기록에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공문서의 전달을 위해 오직 말만 사옹된 사실이 나타나 있음을 볼 때, '하아하쉬테라님'이 '노새'를 뜻한다는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 이는 왕의 조서가 신속하게 전국에 반포될 수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준마'(* , 레케쉬)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왕이 타는 말'(왕상 4:28) 혹은 '병거를 끄는데 사용되는 말'(미 1:13)로도 언급된다.
=====8:11
본절은 모르드개에 의해서 작성된 왕의 조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요약적으로 밝히고 있다.
저희로 함께 모여 - 이는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보다 조직적으로 대적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비결이었다(4:16;전 4:12). 거대한 제국에서 미미한 존재였던 소수 민족, 그것도 전국에 흩어져 살았던(3:8) 그들은 모이지 아니할경우 수많은 대적들의 공격에 속수 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 비록 유대인에게 자위권(自衛權)을 보장해준 새로운 조서가 왕의 명의로 반포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만이 내린 왕의 조서는 취소될 수 없었기때문에 여전히 유효하였으므로(8절), 유대인을 미워하는 자들은 유대인들에 대해서합법적인 살인을 감행할 수 있었다. 세력을 가지고...치려 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 여기서 '치려 하는 자'란 이방인들 중 마치 하만이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신앙적인 이유로 자신들과 같은 삶의 방식을 추종하지 않는 데 대하여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항상 혐오감을 갖고 있다가 하만의 조서가 내려지자 그것을 빌미로 하여 유대인을 학살할 계획을 하고, 무장을 한 연후 조서에 정해진 유대인 학살날짜(3:13, 14)만을 기다리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무리들은 대개 유대인들의유일신 신앙을 혐오 하는 우상 숭배자들이 많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이 유대인들의 대적 중에는 타민족의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중앙 정부의 정책에 호응했던 페르시아 사람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3:15 주석 참조). 추측컨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아하수에로 왕은 유대인들에 의한 제국민(帝國民)의 부분적학살을 승인했던것 같다. 한편, 대적들의 '처자'까지 진멸하게끔 했다는 사실을 놓고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1) 하만과 그 일당이먼저 유대인의 어린아이나 부녀까지 살륙하려 했다는 점에서, (2) 더구나 자신들에게군사적 적대 행위를 시도하는 자들과 그 가족만을 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서 내용은 정당한 것이었다. 아마도 모르드개는 조서를 작성할 때(9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 25)는 동해(同害) 복수법을 염두에 두고, 하만이 유대인을 해하려고 한 범위만큼 그 하수인들을 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Baldwin).
=====8:12
아달월...십 삼 일 하루 동안에 하게하였고 - '아달월...십 삼 일'은 원래 대인대학살을 자행하도록 결정된 날이었다(3:7, 13). 그러나 이제 이 날은 바로 유대인들이 그 대적들을 진멸할 날로 결정되었다. 모르드개가 바로 이 날을 대적들을 진멸할날로 결정한 것은 대적들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게끔 하기 위해서였으며 또한 이날이 되어야 유대인들도 누가 자신들의 대적인지를 보다 분명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8:13
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 '조서초본'은 모르드개의 주도 아래 서기관들이작성한 조서 원본을 그대로 베끼거나 혹은 다른 언어로 번역한 것을 가리킨다(9절 주석 참조). 한편, '각 도에 전하고'는 페르시아 제국 전체 일백 이십 칠 도의 '대신과방백과 관원'에게와 유대인들에게 보내진 것을 뜻한다(9절).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 여기의 '예비하였다가'(* , 아티우딤)는 유대인들의 대적들에게 사용된 '준비하게 하라'와 동일한 단어(3:14)이다. 아무튼 유대인들에게는 대적들을 진멸할 준비 기간이 거의 9개월씩이나 주어졌다(9절).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 '원수를 갚게'(* , 나캄)라는 단어는 상대로부터 심각한 해를 입은 후에 그에 상응하는 가해 행위로 상대에게 보복하는 것(삼상24:12;왕하 9:7;겔 25:12)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 문구는 유대인들이 아무에게나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가해행위를 하라는 뜻이 아니며 다만 군사적 적대행위를 하는 상대에 대해서만 반격하라는 것을 의미한다(11절).
=====8:14
왕의 명이 심히 급하매 - '역졸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라고 표현된 하만의 조서 당시(3:15)에 비하여, 유대인의 대적을 진멸하라는 금번의 조서에 대해서는시급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8:15
푸르고 흰 조복 - '푸르고 흰'색은 왕실에서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즐겨 사용했던 제왕색(帝王色)이었다(1:6). '조복'은 문자적으로 '왕의 옷'이다. 그러나 이것은왕이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기 위하여 일시 하사했던(6:11) '왕복'이 아니며 다만 왕이상으로 내린 별도의 의복일 것이다(Rawlinson).
큰 금면류관 - 여기의 '면류관'(* , 아테레트)은 왕이 쓰는 것 보다는 크기나 질에 있어서 열등한 관(冠)이다(Rawlinson). 그러나 크고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신하들의 것보다는 탁월했을것이 분명하다.
자색 가는 베 겉옷 - '자색 가는 베'는 왕이 베푼 야외 잔치 때에 그 곳을 아름답게 하는 데 사용된 재료였다(1:6). 따라서 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겉옷은 왕으로부터 하사된 것임이 분명하다.
왕의 앞에서 나오니 - 하만이 그랬듯이 모르드개에게도 왕의 호출없이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을 것이다(3:8).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 '수산 성'은 그 도시에 사는 거민들을 뜻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라는 조서가 내려졌을 때는 슬퍼했었지만(3:15). 그 반대로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또한 의로운 사람이 총리에 오름에 따라이처럼 좋아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은 하만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까닭없는 양민 학살 계획에 대해 혐오해 오고 있었던 것 같다(Rawlinson). 한편, '즐거이부르며'(* , 차할)는 '마음이 기쁘고 흡족하여 크게 소리치는 것'을 가리킨다(사12:6;렘 31:7). 그리고 '기뻐하고'(* , 사마흐)는 어떤 이유로 '특별히 즐거워하는 것'을 뜻한다(느 12:43).
=====8:16
앞 절에서는 수산에 사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의 반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광(* , 오라) - 원래는 '빛'의 뜻(시 139:12;사 26:19)이며 상징적으로'번영'을 의미한다(Paton, Keil).
즐거움(* , 시므하) - 15절의 '기뻐하고'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기쁨(* .
사숀) - 이것은 앞의 '즐거움'과 거의 같은 뜻으로서,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사 22:13;35:10).
존귀함(* , 예카르) - '명예를 획득하는것'을 가리킨다(Paton, Keil). 그러나하만이 총리로 있었던 시절의 유대인들은 극히 미미한 존재였을 뿐이다.
=====8:17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 중 피고용자의 입장에 있던 자의경우에는 이방인 고용주들이 유대인이 구원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던 나머지그들이 즐길수 있는 하루의 시간 여유를 자발적으로 허락했을 것이다(Baldwin). 본토 백성이...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 이것은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함으로써 가능하였다(스 6:21).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개종자를 (1) 절대 권력자 하만(3:1)의 돌연한 몰락과 유대인들의 승귀(昇貴)를 목도한 결과, 여호와가 유일한 참신임을 깨달음으로써 유대 종교를 신봉하기로 결단한 자, (2) 모르드개가 총리에 오르고유대인들이 승리한 것을 목도한 결과 유대인이 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유대교에 입교한 자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유형중 (2)의 경우는 콘스탄틴 대제(306-337년)가 기독교로 개종한후 기독교를 공인하자수많은 이교도들이 참된 회심없이 교회로 몰려들어 왔던것과 대단히 유사하다.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 문자적으로는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위에 떨어졌다'의 뜻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특별한 섭리 혹은 간섭의 한 형태로 볼 수있다(창 35:5;출 15:16;신 11:25;시105:38).
본장은 유대인들과 모르드개의 지위가 반전(反轉)되어 높아진 장면을 중점적으로 다룬 부분이다(15-17절). 즉, 앞장에서 유대인들의 원수 하만이 에스더의 활약으로 처형 당한 사실을 언급한 데 이어 본장에서는 에스더가 자신의 동족(同族)을 적대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왕에게 자위권(自衛權)을 받아내는 기사를 그 핵으로 해서 기술하고 있다(11절).
이러한 본장을 사건의 전개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1)에스더가 왕에게 유대인의 구원을 간청하는 장면(1-6절), (2)왕의 명의(名義)로 내려진 조서의 내용과 전달 과정(7-14절), (3)유대인들의 기쁨과 백성들의 반응(15-17절) 등으로 구분된다. 이는 결국 본장의 강조점이 (1)하만이 죽었지만 유대인 학살 명령(3:7)은 여전히 유효하였다는 사실(5절)과, (2)이 일을 직시한 에스더가 왕으로 하여금 유대인을 위한 새로운 조서를 내리도록 했다는 사실에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당시의 페르시아 상황은 유대인을 진멸하라는 하만의 조서가 제국 전체에 반포되어 그에 대해서 많은 무리들이 기뻐 날뛰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결코 유대인들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은 자들이 아니었다. 다만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모든 우상 숭배를 배격하고 무언가 구별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데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쉽게 동화하지 않는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중 하만의 조서를 보게 되자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달 월 1일(3:13) 하루 동안 주어진 합법적 기회를 이용하여 그동안 자신들에게 눈의 가시와도 같았던 유대인들을 몰살시킬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와같이 유대인을 학살하려고 준비하던 자들에게 있어서 하만의 죽음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과 관계없이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왕의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하만의 조서에 왕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기 때문에(3:12) 결코 취소될 수 없음도 알고 있었다(8절; 1:19).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더욱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기도(企圖)를 방관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의 위기를 모른 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여종 에스더를 움직이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학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셨다. 만약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적 역사가 아니었다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창칼에 무참히 학살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유대인들이 원수들을 진멸할 수 있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에 일말의 착오도 없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내용의 본장을 통하여 (1)하나님께서는 이방 원수의 목전에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주심으로써 결국 이방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게 하시며(시 37:20; 사 25:9), (2)이런 사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세상의 횡포에 고통하고 신음하지만 종국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다(요16:33)는 것을 깨닫게 된다.
1.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에스더의 간청(8:1-6)
본문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고자 했던 나무에 달려 죽은 후(7:10) 모르드개가 하만의 지위에 오르게 된 사실과(2절)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에스더가 간청하는 장면을 기록한 부분이다. 즉, 이미 내려진 하마늬 조서를 취하(取下)하기 위한 에스더의 노력을 언급한 본문은 (1)총리 대신의 지위에 오른 모르드개(1, 2절), (2)유대인을 위해 하만이 내린 조서의 취소를 구하는 에스더(3-6절) 등의 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하만이 유대인을 도륙하기 위해 왕에게 간청하는 모습과 비교해 볼 때(3:8,9) 본장의 에스더의 간청은 더 애절하고 호소력 있는 애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3, 6절). 이는 에스더의 신앙과 애국심을 강조하여 드러내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로 사료된다.
한편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 처형됨으로써 모든 상황이 끝았다고 보았을 것이다.
또한 사실 그는 유다 민족을 생각할 만한 도량 있는 군주가 아니었기에 모든 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처형한 가장 큰 이유도 왕비 에스더의 간청과 아울러 그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려고 함으로써 왕에게 무엇인가 손실을 입히려고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7:4). 그러므로 왕은 하만이 유다민족을 몰살시키려고 했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를 처형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처형과 함께 자신에게 손해될 일은 모두 제거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왕에게 유대인들이 여전히 학살의 위험 아래 있다는 사실은 물론 생각밖의 일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을 모해하려던 무리를 적발했던 모르드개(2;21, 22)를 높음 자리에 앉히고, 하만의 재산을 에스더에게 넘겨줌으로써, 모르드개와 에스더에 대한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본문에 나타난 간청은 유대인의 구원을 호소하는 에스더의 간절한 심정과 신앙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간청의 방법에서 드러난 에스더의 심정이다. 왕후 에스더는 다른 획기적 조치가 없을 경우 자기 동족이 원수들에 의해 대량 학살되리라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사실 에스더가 안일한 자였다면 하만의 처형과 함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사실 에스더가 안일한 자였다면 하만의 처형과 함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왕후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부귀 영화를 누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부르심으 받은 사실을 분명히 안식했기 때문에(4:14-16)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완수를 위하여 왕에게 간청한 것이다. 이처럼 에스더는 수고스럽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 백성의 중보자가 되어 눈물로써 백성들의 구원을 왕에게 간구하였다(3절).
이러한 에스더의 심정에는 자신이 유대인들과 같은 신앙을 가진 공동체라는 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신국(神國) 백성의 예표이기 때문에 에스더가 갖고 있던 동포애나 애국심은 하나의 신앙 공동체에서 발휘되는 당연한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소명 의식과 신앙적 용기가 에드서의 심정에 서려 있었고 결국에는 조서를 취하하도록 간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에스더가 구한 간청의 내용이다. 그녀는 하만이 내린 조서가(3:12, 13) 여전히 효력이 있음과 또 그 왕이 인친 조서는 누구도 최소할 수 없음을 알았던 듯하다(8절). 그래서 왕이 조서를 내려 이전 조서를 취소시켜 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5절). 그뿐만 아니라 당시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던 땅에 유대인을 미워하는 자들이 하만 외에도 많이 있었고 유대인들은 공격의 위기 앞에 직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에스더는 다시 민족의 생명을 위해 호소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1)성도들은 같은 신앙의 공동체인 형제들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며(마 22:39), (2)에스더가 간절함으로 왕에게 간청한 것과 같이 우리도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최선을 다해 요청해야 한다(눅18;1-8)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최선을 다하는 삶. 신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는 보편적 원리를 믿는 한편, 대개의 경우는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를 알지 못해 근심하는 나머지 일의 추진을 게을리한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될 경우 자신에게 막대한 손실이 온다고 한다면 그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아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교의 행동 원리는 그 결과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우리 신자들에게 당위성 중심의 행동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즉, 만일 내가 '갑'(甲)이라는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있다고 한다면, 그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반드시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이다. 또한 '갑'이라는 일이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 아무리 멋진 결과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투철함으로 그 일을 숭행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거나 또한 자신에게 손해가 필연적으로 있을지라고 도직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절대적 영역이요, 하나님께서는 그 경우 결과를 결코 중요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고전3: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만 당신의 자녀가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얼마나 성실하게 임했는지(고전 4:2)를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들은 결과야 어찌되건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기쁨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여야 한다. 만일 결과에 대해서 염려한다면, 그것은 불신앙인 것이다.
2.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조서 하달(8:7-14)
에스더의 조서 취소를 위한 간청의 내용을 언급한 전 단락(1-6절)에 이어 본문은 왕의 허락으로 모르드개가 유대인을 위해 조서를 내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즉, 분문은 왕의 명의(名義)로 유대인에게 내려질 조서의 내용과 그 조서의 공포 과정을기록한 부분으로 내용상 (1)에스더의 간처에 대한 왕의 허락(7, 8절), (2)모르따개에 의해 작성되고 인쳐진 조서의 내용(9-12절), 그리고 (3)각 민족에게 반포되는 조서(13, 14절)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본문을 기록할 때 하만의 조서가 전달되는 과정을 묘사했던 부분(3:10-15)과 같은 표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기사를 비교해 보면 본문의 조서에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1)본문의 조서는 특별히 유대인의 문자와 방언으로도 기록되었다(9절; 3: 12). 이는 모르드개의 조서가 특별히 유대인을 위해 내려진 것으로 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기된 사실을 보여 준다. (2)하만의 조서에는 대적들이 명시된 날에(3:13) 유대인들을 죽일 수 있도록 명하고 있으나, 본문의 조서에는 오히려 유대인이 그 날에 예비하였다가 대적에게 복수하도록 명하였다. 이러한 사실 역시 본문의 조서가 하만의 계획과 의도를 그대로 유대인에게 허락하여 복수하도록 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에스더는 왕에게 유대인을 학살해도 좋다는 내용의 조서(3:13)를 무효화시켜 달라고 간청하였지만(5절),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국법(國法)이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는 결코 취소되거나 변개(變改)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8절; 1:19; 단 6: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왕이 자신이 내린 조서를 무효화시키거나 취소한다면 그 왕은 당대와 후대 사람들에게 나쁜 왕, 혹은 어리석은 왕 등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었다. 뿐망 아니라 조서를 무효화시키거나 변개하는 그 과정에 있어서 많은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였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동족을 구해 달라는 에스더의 눈물어린 간청으로 인하여 심히 난감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난처한 처지에 놓인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나 유다 민족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중요시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켰다. 그럴 경우 유다 민족은 할 수 없이 진멸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섭리의 손길을 멈추지 않으시고, 결국 아하수에로 왕에게 지헤를 주셔서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할 한 계책을 알게끔 하셨다. 그것은 곧 12월 13일에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도록 유대인들에게 자위권을 허락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하면 왕은 첫 번의 조서(3:13)를 무효화하거나 변개하지 않으면서도 에스더의 간청대로 유대인들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진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에게 까닭없이 아무나 죽일 권한이 부여됴 것은 아니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아하수에로의 강팍한 마음까지도 감동시키심으로써 그가 유대인을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할 지혜로운 조처를 시행할 수 있게끔 하신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이 원수들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위험을 방관치 않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당신의 놀라운 섭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세상의 그 어더한 상황이나 형편에도 얽매이는 분이 아니시며(마 19:23-30), (2)신자는 자신의 인간적인 시각에 따라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의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막 9:23), (3)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믿음을 갖고 담대히 나아가야 함(수 1:6, 7;히 11:30)을 깨닫게 된다.
*페르시아 왕들의 임의적(任意的) 성품. 사실 아하수에로 왕이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자위권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린 것은 합법을 가장한 일종의 편법(便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호 모순되는 두개의 법령이 어떻게 동시에 효력이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이미 아하수에로 왕은 내려진 조서(3:13)를 취소할 수 없다는 법칙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하만의 조사와 모순되는 또 다른 조서를 하당하였던 거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에 대하여 그 누구도 이의(異意)를 제기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이 국법(國法)에 얽매여 있었던 것은 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신들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초법적(超法的)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서 실증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 중 캄비세스에게는 여러 명의 친누이가 있었는데, 그는 그중 한 명을 사랑하여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국법은 캄비세스의 소망을 이루어 줄 수 없었다. 즉, 페르시아의 법은 왕이 자신의 누이를 왕후로 맞이하는 일을 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캄비세스는 자신의 이러한 소원을 버리지 못함으로 자기의 휘하에 있던 모사(模士)들에게 누이와 결혼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이 없겠는지를 질문하였다. 그러자 모사들은 왕에게 아첨하기 위하여 국법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사들은 왕이 자신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할 수 없음을 규정하는 법이 있지만 왕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법률에 따라 누이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이 이미 자신이 하달했던 조서와 모순되는 다른 조서를 또다시 공포했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세속 국가의 불의(不義)를 밝히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는 오직 공의와 평강이 있을 뿐이다(히 7:2).
3. 조소로 인한 반응(8:15-17)
본문은 유대인에게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자위권이 주어진 사실(11절)과 모르드개가 지극히 높은 자로 승격한 사실(2, 15절)로 인하여 페르시아 제국 백성들이 각기 다른 세 가지 반응을 보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본문에 나타나는 반응은 호의적인 반응들만을 포함한다. 그러나 분명히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새로운 조서로 인하여 낙심하며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 나타나는 유대인의 반응과 하만의 조서에 의한 유대인의 반응은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3:15-4;3). 당시 하만이 조서를 내리자 수산 성이 어수선하였고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재를 무릅쓰고 금식하며 애통하였으나 본문에서는 모르드개가 영광스런 모습으로 등장하여(15절) 수산 성과 유대인들은 즐거워하고 본토 백성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16, 17절). 이는 결국 자자가 본문을 유대인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증거로서 유대인들을 통해 이방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섭히하심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사료된다.
이러한 내용에서 볼 때 본문에 나타난 반응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산 성의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었다(15절). 수산 성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은 유대인들의 경건하고 성실한 태도를 직접 목도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들이 고통을 당할 때 함께 가슴 아파했으며(3:15).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자 이제 다시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유대인들 또한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었다(16, 17절). 그들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을 고비에서 벗어난 그들이 크게 즐거워하며 잔치를 베풀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찬송하며 이웃과 교제를 나누는 일은 필요 적적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극도의 해방감과 자유함을 맛보며, 친히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하여 더욱 기뻐하였을 것이다.
셋째, 반면에 본토 백성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17절).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부리하던 상황이 갑자기 역전되자 유대인들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느끼고 경외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유대인으로 개종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론 그들의 개종이 참된 것이엇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대인들의 지위가 높아진 것만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본서 저자는 조서에 대한 세 가지의 반응을 본문에 기술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닌들이 이방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화제의 주인공이자 또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참신 그리고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들로 인정받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가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께 금식하며 기도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였던 것이다(4:3). 죽,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겠다던 약속(시 81:7)을 굳게 믿고 그대로 한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연단을 주셨음(잠 17:3)도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시련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신자들은 하늘 나라 시민의 의무뿐만 아니라세상 나라 시민의 의무에도 충실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며(마 5:16), (2)현세적 기쁨보다 영원한 기쁨을 더 사모하는 신자들은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도 긍정적 시야를 갖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롬 12:1, 2)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급하고 빠르게 전하라!
찬송 512장 십자가 군병들아
본문 에스더 8:1-17
하만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워둔 23m나 되는 높은나무에 자신이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원수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기분 좋게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만은 에스더나 모르드개만의 대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하만이 모르드개만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다면 아마 에스더서는 여기서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만은 모르드개나 에스더만의 원수가 아닙니다. 그는 유다인의 대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은 우리에게 이것을 상기 시키고자 하만을 향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에스더에게는 한 가지의 숙제가 더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만이 저질러 놓은 악한 음모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 악한 꾀가 무엇입니까? 모든 유다인을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의 재산을 탈취하라는 조서와 명령을 철회시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왕은 유다인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만이 유다인을 죽이고자 할 때에도 그저 왕의 반지를 빼 주면서 “그 백성”(3:11)을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두 번째 이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작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왕의 조서는 철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왕의 반지로 인을 친 조서는 그 누구도 무를 수가 없다는 것이죠. 하만이 죽었다 할지라도 하만의 음모로 쓰여진 그 조서는 여전히 효력이 있고, 없앨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는 왕에게 아주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하만의 조서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아하수에로 왕이 어떻게 합니까?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좋을 대로 조서를 쓰라고 합니다. 허락은 하지만 여전히 유다인의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왕의 인장 반지로 인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8절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왕의 조서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전달 되었던 조서도 철회될 수 없고, 앞으로 쓸 조서도 철회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만의 조서도 그대로 효력이 있고,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쓰는 조서도 그대로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상황은 조서로 조서를 덮어야 합니다. 하만의 조서가 효력이 없도록 더 큰 효력이 있는 조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모르드개는 왕의 서기관을 통하여 조서는 제작했습니다. 조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1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두 조서가 충돌을 하니까 스스로 목숨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라고 조서를 쓴 것입니다.
이어서 14절에 보니까, 왕의 어명. 그러니까 쓰여진 조서는 매우 급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 그 조서를 전달하였습니다.
지금 유다인들은 죽을 날짜를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12월 13일이 되면 그들은 모두 죽고, 자신들의 재산은 다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구원의 소식입니다. 죽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물론 이 조서는 시완월. 그러니까 3월 23일에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만이 제비를 뽑아 받아놓은 아달월인 12월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 전까지 유다인은 안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원의 소식은 유다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했고, 가장 급했습니다. 그래서 역졸들은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 그 조서를 전달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말세지말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실지 모르지만 오늘 오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말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주를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급한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구원의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이야기가 가장 급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복음의 소식을 듣고,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죠.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무슨 말씀입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들을 수가 없고, 듣지 못하고는 믿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군가가 전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역졸들이 급하게 달려나가 유다인이 다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여 유다인들이 그 기쁨의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전하는 자가 있어야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전해야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로 교회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보내심을 받은 자이며, 우리가 바로 전해야 하는 자입니다. 선교사만이 복음을 전하고, 사역자만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의 제자가 된 자들은 모두 전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전해야 하는 자들. 사역지에서 전해야 하는 자들. 회사에서 전해야 하는 자들. 무엇보다 가정에서 전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Circuit Breaker로 인해 저 역시 재택근무를 하는 중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일을 한다?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말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그렇다보니 힘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녀와 24시간 함께 있지만 말씀을 가르치고, 신앙을 전수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못합니다. 매일은 하지 못하더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딸아이와 함께 큐티를 하고, 하나님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이 조금이나마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정에만 있으면 신앙을 더 많이 전수하고, 말씀을 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가정이 이렇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 영상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신앙의 전수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자녀들의 e-learning과 남편이나 자신의 재택근무에 쫓기다 보니 정작 가정에서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지 않으십니까?
Circuit Breaker는 참 힘든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가정에 오랫동안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보냄을 받은 자로서 가족에게,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자녀에게. 그리고 믿지 않는 가족에게 전달해야 할 가장 급하고, 가장 귀중한 일. 그것은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기도제목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자로써 가족과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내 삶이 되게 하소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주께서 주시는 기쁨의 소식이 이들에게 들려지게 하소서.
하만의 몰락과 모르드개의 승리
에스더 8:1-10
인생은 역전의 묘미가 있는 법입니다. 박태환 선수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부정 출발로 실격당하며 큰 낙인을 찍혔습니다. 이 충격으로 한 달 동안 외부와 단절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아픔을 극복하고 4년 뒤 북경 올림픽에서 화려하게 재기하며 ‘마린보이’라는 별명으로 국민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만이 내린 조서는 모든 유다인을 큰 혼란과 두려움에 빠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새로운 모르드개의 조서는 모든 유다인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만의 조서를 역전하는 모르드개의 새로운 조서로 유다인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영광스러운 반전(1-3)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방식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묵과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공의에 따라 모든 악행을 심판하십니다. 이와 같은 정의의 실현은 신실한 자에게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신실한 자의 노력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보상하십니다.
1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2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3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1-3)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하만은 죽고 하만이 그토록 자랑하던 많은 재산은 하루아침에 에스더의 것이 되었습니다. 왕은 하만에게 주었던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는데 이것은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를 대신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 에스더에게 속하게 된 하만의 집(1)
그날 왕은 하만의 전 재산을 에스더에게 줍니다. 페르시아에서는 반역자의 재산을 국가가 몰수했습니다. 하만의 몰수된 재산이 반역 행위의 일차적 희생자라 할 수 있는 에스더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만은 유다인의 대적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하만을 비롯한 아말렉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그러했고, 그때까지도 유다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려 했습니다(3:13; 출 17:8-16). 그러나 유다 민족인 에스더가 하만의 집 곧 그가 소유했던 모든 재산을 소유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와 사촌 관계임을 왕에게 밝히자 왕은 모르드개를 자신 앞에 나아오게 합니다. 이는 하만과 같이 왕의 어떤 부름을 받지 않고서도 왕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신분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모르드개는 나라의 첫 자리에 앉는 일곱 신하들(1:14)처럼 왕 가까이 갈 수 있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2) 하만의 지위와 집을 물려받은 모르드개(2)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3:10) 모르드개에게 왕의 반지를 줍니다. 왕의 이름을 사용해 서명하고 날인할 수 있는 왕적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또한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소유하게 된 하만의 집을 위임받아 관리하게 됩니다.
(3) 울며 간청하는 에스더(3)
에스더가 다시 왕의 발아래 엎드려 하만이 유다인들을 죽이려 한악한 꾀를 제거해달라고 울며 간청합니다. ‘꾀’(마하샤바)는 계획과 음모를 의미합니다. 에스더는 모든 유다인을 죽이려는 하만의 악한 음모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지혜롭게 에스더는 ‘아각 사람 하만의 악한 꾀’만을 언급함으로써 이 사건과 관련되었던 왕을 이 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면제시켜주고 있습니다.
에스더의 간구와 새로운 조서의 선포(4-8)
우리는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기다리며, 우리의 기도가 그분의 뜻에 맞게 이루어질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귀 기울여 들으시고, 그분의 때에 맞춰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실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따라 실질적인 응답을 주시며, 우리의 삶에서 변화를 이루어가시는 분이십니다.
4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규를 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5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6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7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4-8)
하만은 죽었지만 하만이 내린 왕의 조서는 여전히 효력을 지니고 있어서 유다인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에스더는 동족을 살리기 위해 왕에게 조서를 취소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한번 선포된 조서는 왕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1) 왕의 호의와 에스더의 간청(4-6)
울며 간청하는 에스더에게 왕은 왕의 규(지휘봉)를 내밉니다. 처음에 왕의 부름 없이 에스더가 나아갔을 때 왕이 내민 규는 왕 앞에 오는 것을 허락하는 행위였습니다(5:2). 여기서의 규는 에스더의 청원을 자세히 들어주겠다는 왕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에스더는 일어서서 왕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예의를 갖춘 후에 왕의 관심과 환심을 사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들을 진멸하려고 모든 지방에 보낸 조서가 무효화 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과 친척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처음 요청 때 자신과 유다 민족을 동일시했던 것처럼(7:4) 에스더는 여기서도 자신의 친척과 민족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왕에게 간구합니다.
(2) 왕이 행한 일들(7)
에스더의 간청에 대해 왕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유다인들을 죽이려 했던 하만을 나무에 매달았으며 그의 집을 에스더에게 준 것에 대해 먼저 언급합니다. 왕은 자신이 유다인들의 대적하만을 죽임으로써 유다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을 제거했음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에스더와모르드개에게 큰 호의를 베풀었음도 강조합니다. 왕이 자신이 행한 일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으니 나머지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왕은 자신의 명예와 능력 밖의 일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3) 왕의 구체적인 대안(8)
왕은 에스더가 간청한 하만의 조서와 관련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반포된 하만의 조서는 무효화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유다인들을 살리기 위한 조서를 왕의 이름으로 새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인 구원의 계획(9-10)
하나님의 사역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실행하십니다. 그 계획은 체계적이고 신중하게 진행됩니다. 이와 같은 체계적인 실행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어떻게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시며,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9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10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9-10)
왕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새로운 조서를 작성하도록 명령합니다. 이 조서를 통해 유대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대적들의 공격에 맞설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얻게 됩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1) 조서의 작성(9)
하만이 유다인들을 죽이기 위한 조서를 작성할 때처럼(3:12) 서기관들이 소집됩니다. 페르시아 127개 지방의 유다인들과 관리들에게 보낼 조서가 하만이 아닌 모르드개의 지시를 따라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작성됩니다. 하만의 조서와 달리 유다인들이 모르드개의 조서를 전달받을 대상으로 언급됩니다.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유다인들에게 살길이 열렸다는 기쁨의 조서가 전달될 것입니다. 약간만 변형되었을뿐 모르드개의 조서가 하만의 조서와 유사한 형식임을 알림으로써 하만의 조서가 무효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만의 조서는 히브리식 종교력으로 니산월(양력 4월) 곧 정월 13일에 작성되었는데 모르드개의 조서는 시완월(양력 6월) 곧 3월 23일에 작성되었습니다. 2개월 10일 곧 70일 만에 유다인들을 살리기 위한 조서가 작성된 것입니다. 이 70일은 70년의 포로기간처럼 유다인들의 운명이 반전되고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것과 같이 회복을 상징하는 완전 수일 수 있습니다.
(2) 조서의 반포(10)
모르드개는 작성된 조서에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칩니다. 이렇게 한 후 왕의 준마를 타는 역졸들을 통해서 각 지방에 전달하게 합니다. 곧 빨리 전달하기 위해 왕실의 파발마를 동원한 것입니다. 페르시아는 고레스왕 때부터 말한 필이 하루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에 맞춰 마구간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마구간에서 말과 마부를 교체함으로써 급한 사항이 중단됨 없이 빠르게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묵과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정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분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세밀하게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실하게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구할 때, 우리의 기도에 실질적인 응답을 주시고, 우리의 삶에 변화와 구원의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