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여 , 존경받기를 원하는가.
마태복음 5장 43절과 44절에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聖人 예수님의 말씀이다.
참으로 좋은 말씀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세상이 유토피아일지 모른다. 그런 세상은 전쟁도 없고 다툼도 것이다. 가진 자를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해 가진 것을 베풀면 모두가 잘 사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있은 지 2,0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기독교인들에는 이 말씀이 금과옥조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그러하지 못하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 위에 군림하고 원수는 언제든지 응징하려고 한다.
이를 실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종이다. 그런데 숱한 사람 중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萬人 중에 몇 명이나 될까.
여러 사람의 목자 중에는 입으로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 말을 하지만 지위와 돈과 권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숱하게 봐왔다. 성범죄자들과는 같은 지역에서 살 수 없다고 아우성치는 群像, 지역적 님비주의에 빠진 群像, 무리 지어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를 향해 적대감을 표하는 群像 등에 우리는 포함되어 있다.
오늘 어떤 정치인(정치에서 떠났다고는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사람과 만나 덕담을 나누고 있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정도라면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치인은 자신과 관련되거나 불의의 무리와 싸우다 죽거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외면했다. 무려 그 시간이 6년 이상 이어졌다. 인간이라면, 인간의 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래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도 인간적인 사랑이 동반되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행동은 가식에 불과하다. 이런 모습은 이웃에 대한 사랑도 없고 원수에 굴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인간의 모습을 해도 인간이라고 할 수 없고,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실천하는 욕된 자일 것이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