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 이야기
“지난날 명지여고와 인연이 닿은 선생님들께! 그간 평안하신지 여쭈기 어색합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사태로 온 세상이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선생님과 가족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번 여름에 모임을 갖지 못한다는 연락을 드리면서,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와도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작금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군요.”
십일월이 가는 마지막 날이다. 위 단락은 월요일 아침 출근해 한 학기 한 차례 내가 주선하는 어느 모임에서 손 글씨를 대신해 쓰는 워드로 입력한 편지의 일부다. 편지를 쓰기 전 세 군데 전화를 먼저 나누었다. 한 분은 오래 전 교장으로 퇴직한 팔순 노인이고, 다른 한 분은 일흔 중반으로 역시 교장으로 퇴직했는데 재직 중 두 차례나 암 수술을 극복하고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내가 연령대가 각기 다른 분들과 만남을 주선함에는 한 가지 공통 인자가 있다. 이십여 년 전 새 천년을 맞던 무렵 같은 학교 근무한 인연이 닿아서다. 그 당시 교장이 퇴직할 때 근무지를 옮겨간 동료들과 우연히 저녁을 한 끼 나눔이 계기가 되어 해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 들어가기 전 얼굴을 뵙고 안부를 나누고 있다. 지금은 퇴직자가 대부분이고 현직에 있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서신 보내는 분이 스무남은 명 된다. 정년퇴직 후 자녀 따라 수도권으로 거주를 옮긴 한 분은 갑자기 작고했다는 부음을 접했고 진해에 사는 분은 아주 활달했는데 지금은 암 투병 중이라 안타깝기도 하다. 텃밭을 일구며 소일하고 등산이나 둘레길을 걸으면서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행정실 실장으로 퇴직한 분은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개설해 이모작 인생을 살고 있다.
여교사들은 정년까지 가지 않고 명예퇴직한 분이 더러 있다. 연락이 닿는 분들 가운데 현직은 내 말고 몇 되지 않는다. 모임에 참석에 대한 의무감이나 강제성이 없기에 조직의 결속이 느슨하다. 회비도 일정액을 모으지 않고 그때그때 식대 정도 추렴해 한 끼 저녁과 반주를 들고 헤어졌다. 자녀들의 혼사가 있을 때는 없는 틈을 만들어서라도 식장에 나가 얼굴을 뵙고 축하해주었다.
모임 시작이 내가 마흔이 넘어서던 무렵이었으니 세월이 어언 이십 년 흘렀다. 나는 그간 시내 지역 만기가 되어 김해로 나갔다가 창원으로 복귀했다. 다시 지역 연한이 되어 남은 기간은 명예퇴직을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더니 임지가 거제로 정해져 멀리 떠나왔다. 그럼에도 작년 한 해는 여름과 겨울 방학을 앞두고 모임 자리를 주선해 창원으로 건너가 반가운 얼굴들을 뵈었다.
방학을 앞두면 이분들께 연 두 차례 손 편지 버금가는 서신을 띄운다. 올해 여름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상황이 달라졌다. 몇 분과 의논해 일자를 정하고 장소를 물색해 얼굴을 한 번 뵙자는 연락이다. 그런데 지나간 여름에 이어 겨울에도 코로나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아 만남은 후일로 미룬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예감은 지우지 못했다.
“님께서는 경남 중등 수학교육에 몸담은 40년 헌신과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영예로운 정년을 맞음에 축하를 보냅니다. 이제 고향 마을을 찾아 텃밭도 일구시고 자연과 벗하고 지내면서 가족들과 함께 안락한 여생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인용부호 속 두 문장은 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창원 시내 어느 고등학교에서 내년 2월로 정년을 맞는 동료에게 보낼 도자기에 새길 문안이다.
초기에서는 밀양의 박 노인에게 도자기 제작을 의뢰했다. 그 영감은 반죽 고령토를 물레에 돌려 항아리를 빚어 초벌구이에다 그림과 글씨를 써서 유약을 발라 다시 구워냈다. 이분이 지병으로 타계하셔 멀리 여주까지 기념 도자기를 주문하고 있다. 경기도 여주 도공은 밀양 박 영감 수제 도자기는 못 미쳐도 명성이 자자하다. 빚은 항아리에 컴퓨터로 출력한 전사지를 붙여 굽는단다. 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