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이다. 리조트 넓은 방 벽도 천정도 하얗다. 시계 바늘만 재칵재칵 돌아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신 새벽. 지나간 어제를 회고한다.
겨울의 초입. 아직 계절이 일러 동백꽃이 피지 않은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던길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피어난 차꽃을 따서 나누어 주고 강진만 바다를 보며 걸었던 바다가 보이던 산길. 천일각에서 다산과 혜장스님을 떠올리고 이윽고 도착한 다산초당. 아무도 없는 초당엔 다산 선생이 어둔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는 세상이 마음에 안드시는지 근엄하게,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눈빛. 그래! 세상은 언제나 태평스럽지 않고 난세다.
강진을 벗어나서 해남에 닿았는데 입장료내고 들어간 녹우당은 주인이 거쳐하며 집을 개방 않는다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고 지하실에서 두눈 부릎뜬 공재 윤두서 공의 자화상만 보았다.
허전한 마음을 안고 도착한 대흥사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글씨와 천불전의 꽃 문살, 그리고 휴정 .유정. 뇌묵의 영정들이 겨울 두륜산의 품안에서 사위어 가고 있었다.
오랜 만에 해남 땅끝에서 오래 전에 작고한 김남주 시인읕 떠올리고 원주에 계시는 김지하 시인을 추억하고 그러다 보니 내 슬픈 추억이 산재한 제주도가 지척이다. 제주 해협 건너면 제주 화북포 조천포가 바로 눈앞인데. 어둠 속에 달빛속에 히끄무레하게 보일듯 말듯한 추억들을 떠올리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