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대사관에서의 즉흥연주
재개의 결정적 계기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2023년 6월 5일, 배프라 할 프랑스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게 되어 삼청동 독일대사관 공관에서 송별회를 했다. 30~40명쯤 모인 식사 자리였다. 친구를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갑자기 센티해지면서, "송별의 피아노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연습은 당연히 없었고, 그때는 피아노도 거의 안 치던 시기였다.
그저 독일과 한국이 만나는 자리니 어울리게 치자는 정도의 즉흥적인 구상만 갖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맨 앞은 "Bridge Over Troubled Water", 브람스의 자장가, 그리고 독일 대사관이라는 자리에 맞춰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곡들로 도입부를 열었다. 이어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Tonight" 같은 팝 스탠다드로 넘어가다가, 맨 마지막은 아리랑으로 맺었다. 전혀 계획 없이 즉흥으로 이어붙인 것인데도, 듣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처럼 들렸을 거다. 와인 한 잔의 기운을 조금 빌리기도 했다.
식사가 끝난 로비에서 갑자기 연주를 시작하니 다들 놀랐다. 그렇게 한 20분쯤 쳤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과 동료들 — 프랑스 친구는 물론 한국인 동료들도 — 대부분 내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터라 다들 놀라며 귀 기울여 들었고, 많은 이들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해줬다. 나에게도 뜻깊은 자리였다. 이 경험을 통해 "공식 공연공간이 아닌 일상 생활공간에서의 음악 활동이 중요함”울 확신하게 되었고 내가 이에 기여할수 있다는 자신감도 같게 되었다. 이 자신감이 바로 이어지는 계룡문화예술의전당 이야기의 밑바탕이 됐다.
계룡문화예술의전당 — 사실상의 데뷔
2023년 8월 11일, 후배뻘인 홍선미 교수(한국 창작무용극 분야의 선도적 인물)가 제작한 창작무용극 "비너스의 외출"에 피아노 우정출연으로 참여했다. 공연을 딱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반주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왔다. 재정여건상 별도 전문 반주자를 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속편한 뗌방으로서 나를 접촉한 것인데, 곡이 뭐냐 물으니 "Love Affairs"(영화 주제곡)와 "Flower Dance" —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다 꽤 유명한 곡이었지만, 나는 둘 다 몰랐다. 악보를 보고 익힐 시간도 없어서, 그냥 곡을 듣고 곡의 구조와 주 선율만 익히고 나머지는 즉흥 변주로 하기로 했다.
리허설도 제대로 못 하고 무대에 들어갔는데, 원래 두 곡 합쳐 7분 정도(3~4분씩) 예상했던 것이 실제로는 거의 30분 가까이 늘어났다. 입장 장면에서 "Love Affairs"를 이런저런 변주를 붙여가며 계속 늘려 치다 보니 그것만 20분 가까이 됐고, 무대에서는 슈베르트의 곡도 즉흥으로 살짝 얹었다. 뒤에 군무 장면에서도 더 연주했다. 급조된 무대였지만 강렬하게 남았다. 이 경험으로 즉흥연주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https://youtu.be/jzAKtdOmQSg?si=1CY9OA5bb0KSZfHI
메타45, 그리고 건강
곧이어 세종의 랜드마크 빌딩 45층에 있는 레스토랑 '메타45'에서 색소폰 두 분과 트리오를 꾸려 키보드를 맡았다. 같은 시기, 그 피아노로 외국 손님이 오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미니 콘서트도 열었다. 이때 생활 속에서 음악을 나누는 것에 대한 애정과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지금 내가 지향하는 '생활음악'의 초기 실천이었던 셈이다. 메타45의 넓은 테라스는 이른 저녁 야외 공연의 파라다이스였다. 별다른 무대설치도 없었지만, 45층의 하늘로 열린 공간, 특히 저무는 석양에 멀리 울려퍼지는 색스폰 소리는 낭만의 극치였다. 팬클럽도 생기는 등 점차 관객도 늘어나고 공연 빈도도 늘어났지만, 그 무렵의 여건상 더 이상 밀고 나가기는 어려웠고, 메타45가 문을 닫으면서 활동도 자연스럽게 끝났다.
그 뒤로 세 가지 기저질환이 겹치면서 건강에 장애가 생겼다. 거의 40여년을 이어온 경제학자로서의 활동도 본의 아니게 쉬게 됐다. 지난 3년간 투병하며 건강은 점차 좋아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과정에서 음악에 대한 애착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쇼펜하우어, 그리고 생활음악
요즘 와서 유독 공감이 가는 말이 있다. 쇼펜하우어가 남겼다는 말인데,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그로부터의 유일한 구원은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음악을 문학 같은 다른 예술 장르와 구분해 특별한 자리를 줬다고 한다. 나도 음악의 그 신비로움을 종종 느낀다.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생각하다 보면, 음 하나가 수직으로 확장되어 화성이 되고, 수평으로 확장되어 선율이 되고, 서로 짝을 이루며 대위법적 구조로 발전해가는 과정이 매번 신비롭다.
병을 앓고 나서 음악이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해졌다. 투병 중에는 하루 네 시간 가까이 누워 있어야 하는 날들이 많았는데, 그 고통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이 음악이었다. 병상에서 음악은 나에게 구원이었다. 도피가 아니라, 유일한 구원이었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었던 걸 이제라도 해보고 싶어서다. 어릴 적 피아노를 아홉 달밖에 안 배워서 정통 클래식 기초가 얇으니, 바흐·쇼팽·슈베르트 같은 레퍼토리에 도전하며 악보 보는 법부터 다시 다지고 싶다. 지금 C키에 익숙한 손을 모든 키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전조 능력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목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작곡에도 집중하고 싶다 — 언젠가 지인이 내 즉흥연주의 자유로운 리듬과 곡조가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한국에도 거의 매년 와서 연주하는 분 )와 비슷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정서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5년이든 10년이든 그 안에, 내가 만든 곡을 포함한 독주회를 한번 열어보고 싶다. 연주와 작곡을 넘어 대중가요부터 클래식까지 아우르는 음악 평론도 써보고 싶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향점이 하나 있다. '생활음악'이다. 전통적인 공연 음악은 무대와 객석, 전문 연주자와 소비자가 분리된 양식이다. 나는 음악이 원래 생활 속에서 나온 것이듯, 다시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음악. 한국은 뛰어난 전문 연주자를 많이 배출하지만, 정작 생활 속에서 음악을 즐기는 수요 기반이 약해서 그 훌륭한 음악가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입시나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마을처럼 지역과 일상 속에서 음악인이 함께 자라나는 그런 토양을 키우고 싶다. 독일대사관에서의 즉흥연주도, 메타45의 미니 콘서트도, 결국은 그런 지향의 작은 실천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되고 싶은 음악인의 모습은 소박하다. 피아노, 기타, 노래 — 이 삼박자를 갖춘 사람. 프로가 될 필요는 없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나눌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삶은 연구가 늘 최우선이어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었다. 그런 삶이 병을 얻으면서 비로소 정리되고 끝나게 되었다. 음악이 부차적이었던 그 삶과는 달리, 2막에서는 음악이 내 삶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 그런 예감을 따라가 보려 한다.
이 글은 개인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입니다. 나중에 음악적으로 더 이룬 게 있으면, 그때는 책 한 권으로 풀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