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연휴. 장지국 형 부부와 2박 3일 연휴 휴가를 함께 보내기로 하고 3일 오후 5시경 늦게 대구를 떴다.
고속도로는 하행선이 많이 밀렸으나 평택까지의 상행선은 순조로웠다.
서해대교를 거쳐 목포까지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목포에서 다시 남해안고속도로를 거쳐 귀향하는 코스를 정하고는 숙박지나 방문할 곳은 별도로 정하지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하기로 하고 무작정 떠났다.
첫 기착지가 평택, 밤 10경 시가지를 찾아 들어가다가 네온사인이 보이는 호텔을 찾아 들어가서 방 두개를 정하고는 하룻밤 신세를 졌다. 십만원짜리 방을 팔만원에 흥정을 했으니 신세라기보다는 정당한(?) 값을 치른 셈이다.
이틑날 호텔부근의 우거지 해장국으로 아침을 떼우고 서해대교에 이르니 차량의 행렬이 대단하다. 무슨 섬에 자리잡은 휴게소의 규모에 눈이 어벙벙하였다.
다리의 규모야 뉴스를 보고 알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안개에 가리어 실감을 못했지만 휴게소에 밀려드는 차량에서 쏟아내는 사람을 보고 놀랐다.
서해안 시대를 구상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한 노태우 대통령의 업적이 가시화된 서해안 고속도로는 황해안 시대를 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역사임을 확인했다.
안면도의 꽃박람회를 관람할려고 태안에서 안면도로 길을 잡았으나 차량의 행렬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안면도 박람회장 12km를 앞에두고 차를 돌렸다. 아쉽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같아 만리포 해수욕장과 천리포 수목원 관람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해수욕철이 아닌데도 만리포 해수욕장 입구는 차량행렬도 붐벼서 천리포를 찾느데 애를 먹었다.
목적지인 천리포 수목원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회원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회원이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는 안내원의 말한마디에 돌아설 수밖에---
수목원 관람을 위해서 대구서 여기까지 왔다는 사정도, 청하에 있는 기청산 수목원의 이삼우 원장(경고, 대학 선배)의 소개도 막무가내다.
고인이 된 칼 밀러씨의 수목원 설립취지는 이런게 아니었을텐데, 이렇게 융통성없이 운영을 하다니--- 일반인에게도 입장료를 받고 입장을 시키는 아량은 있어야지, 대구 사람이 몇번 볼거라고 회비 6만원을 내고 회원이 될 수는 없지 않는가?
괘씸하지만 주인도 아닌 고용인들과 시비를 할 수도 없어 욕만 걸러붓고는 수덕사로 향했다.
꼭 찾아보고 싶은 수도처인 덕숭산 수덕사는 첫 나들이다.
정돈되지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인파에 휩쓸려 새로이 단장을 한다고 파헤쳐진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다가 초가집인 수덕여관으로 찾아들었다. 이응로 화백이 15년간 기거하면서 작품활동을 한 집이다. 지금도 미망인의 소유라고 한다. 마루처럼 넙적한 바위에는 화백의 작품이 암각화로 새겨져 있다.
드높은 툇마루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주문하니 40분은 넉넉히 기다려서야 차려온 밥상은 밀려드는 손님에 지친 찬모들의 무성의가 그대로 차려져 있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대로 맛있게 먹고는 절구경에 나섰다.
경허 스님의 제자인 만해스님이 문중을 일으키고. 일엽 스님이 세상을 등지고 고난의 길을 걸은 수도처, 아담하고 고즈넉한 산사로만 생각하였던 수덕사의 모습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을 들어서니 금강역사의 우람한 모습에 감히 나쁜 마음을 가지고는 그 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사천문을 지키는 대왕들도 잡귀가 범접할 수없는 위엄이 서려있다.
단아하면서도 규모가 웅장한 누각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올라서니 정갈하게 가꾼 마당 한가운데에는 근래에 건립한 5층 석탑에 금색 보주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초팔일 등을 달 줄들이 질서정연하게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은 단청을 하지않아 더욱 검소하고 단아하여 목조건물의 특성을 잘 들어내고 있다.
부처님에게 삼배를 하고 천정을 올려다 보니 기둥과 대들보의 결구가 단순하면서도 튼튼하게 서로 잡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의 고유한 미를 만끽할 수 있다. 특히 기둥의 베흘림은 부석사의 그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부처님의 온화한 모습에 취하고 절집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마치 극락에 서 있는 것 같다.
수덕사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산지 가람이면서 절집의 배치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누각, 대웅전의 순으로 제대로 갗춘 대표족인 사찰이다. 요사체나 공부방과 같은 부속건물은 어디에 배치해 두었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공간을 받치고 있는 돌로 쌓은 축대도 튼튼할 뿐만 아니라 그 쌓은 솜씨가 보통 장인의 손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수덕사만 참배하러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목포가는 길로 나섰다.
첫댓글 몇년전,소제가 갔을때도 어수선한 주위환경에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머리 속에 있던 ,수덕사,와는 상당한거리가...유원지인지 참배지인지 도무지...큰키 뒀다가 어디 쓸려하오? 긴팔로 쇠북을 좀 두들겨 패고 오지않고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