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젓가락만 있으면>
올해에는 정말로 이상한 한 해였다.
나는 바깥에 나가지 않고는 아파트 안에서 머문 시각이 훨씬 많았다.
고향집에 볼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몇 차례 다녀왔으나 정말로 잠깐씩만 일을 보았을 뿐이다. 자동차 여행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중국 우환에서 발생한 코로나.
우리나라 대구 신천지 기독교인들이 중국 우환에 다녀온 직후부터, 올 1월말부터 대구 경북에서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올 12월이 다 끝나가는 지금은 또다시 코로나가 크게 확산되어서 확진자도 많이 생겼고, 죽은 사람이 많이 생겼다.
- 2020. 12. 20.현재 전 세계 확진자 7,670만 명, 사망자 169만 명
우리 정부는 집단감염을 우려해서 대중이 모이는 장소를 제한하고 있다.
나들이를 자제하게 되니 일상적인 생활필수품조차도 '사재기' 하는 현상이 일렁인다. 쌀, 라면 등 식자재들이다.
1949년 1월 태생인 나로서는 '뭐 별 것도 아닌데 왜 사재기를 해? 하는 의문이 먼저이다.
어린시절부터 궁핍한 산골에서 태어나서 어렵게 자랐고, 또 당시의 형편없는 의료시설을 경험했기에 어지간한 것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정년퇴직을 한 뒤에는 시골로 내려가서 그때까지 혼자서 살던 아흔 살 먹은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었으나 어머니는 자꾸만 치매기가 진행 중이었고, 여든일곱 살 때부터 한쪽 팔을 잘 쓰지 못하는 장애가 진행 중이었기에, 얼마 뒤에는 내가 국밥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서 둘이서 겸상을 해야 했다.
어머니의 이빨(치아)이 극도로 부실하니 나는 밥을 지을 때에는 물을 많이 부어서 멀건 죽처럼 질뻑하게 지었다. 자연스럽게 누른밥 위주로 밥을 먹었다. 국거리? 나한테는 별것도 아니다. 국거리 재료는 텃밭에 가서 아무 채소나 풀이나 뜯어서 끓이면 되었기에. 내 눈에는 못 먹을 풀이 하나도 없었기에.
나는 '숟가락, 젓가락이 있으면 밥 먹는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지녔다.
정확하게 말하면 '숟가락, 젓가락'이 없어도 밥을 먹을 수 있다.
수십 년 전이었다. 군대에 입대해서 야외훈련에 나갔을 때에는 군용 숟가락, 젓가락조차도 부족했다.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껍질을 벗겨낸 뒤에 젓가락처럼 사용했고, 배가 고프면 px에서 빵을 산 뒤에 똥수깐(가마니를 둘러쳐서 임시로 만든 변소)에 들어가서 빵을 먹었다. 빵 먹는 것조차도 감시를 받았기에 숨어서 급하게 먹어야 했다.
나는 그 어떤 물건이라도 본래의 용도를 변경해서 새롭게, 다양하게 재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녔다.
생각을 더 하면 어떤 해결책이 보이기에.
최근의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에 겁을 내서, 정부의 3단계 정책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생활필수품'을 미리 사재기하는 듯한 인터넷 뉴스에는 고개를 흔든다.
나한테는 '모든 게 다 먹을거리이다'. 시장에 나가면 식자재가 엄청나게 많다. 값싼 식자재를 사서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밥 한끼 해결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게다. 단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거나 그렇게 할 줄을 모른다는 것뿐일 게다.
나한테는 숱한 방법이 떠오를 것 같다. 조금 더 방법을 생각해 내면...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 60여 년 전의 시대상을 떠올린다.
그 당시에는 밥을 얻어먹는 동냥아치가 정말로 많았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가뭄으로 흉년이 몇 해 지속되었다고 한다. 내 고향은 산골마을이기에 뱀몸뚱이처럼 길게 뒤틀리면서 이어지는 다랑이논이다. 이런 천수답이 가물면? 벼농사는 전혀 지을 수가 없을 터. 비를 기다리다가 때를 놓치면 어쩔 수 없이 대체작물인 밭곡식인 <메밀>이나 심어야 했다.
내 시골집 텃밭 하단에도 '삿갓을 덮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작은 다랑이논'이 있다. 별 수 없이 메밀을 심었다.
내 어린시절에는 배가 고팠을까? 봄철에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기를 먹었으며, 송순(소나무 새순)을 꺾어서 먹었으며, 찔레줄기 등도 꺾어서 먹었다.
<삐비>라는 띠풀의 씨앗이 맺는 부위를 길게 뽑아서 먹었고, 이른 봄에는 산에서 진달래꽃잎을 땄고, 칡순을 꺾어 겉껍질 벗겨낸 뒤에 시푸뎅뎅한 속살을 먹었다.
이처럼 눈에 띄이는 것 모두가 먹을거리였다.
그 당시의 시골아이들의 배는 맹꽁이배처럼 불룩했다.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영양가가 별로 없는 잡것들을 잔뜩 먹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2020년 12월. 먹을거리가 정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이에 대한 긴급조치로서 집단모임 등을 제한하고, 판매 영업시간을 줄인다고 해서 '생활필수품'까지를 제한하지는 않을 게다.
그런데도 가짜뉴스에 현혹되어서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인 쌀, 라면, 생수병, 채소, 과자, 과일, 상온밥, 육류와 소비품인화장지 등을 다량구입하는 구매자가 늘었다고 보도한다.
60여 년 전의 시대상을 떠올린다.
왜 생수병을 미리 사야 돼?
상수도 꼭지를 틀면 맑은 물이 쏟아진다.
'그거 받아서 먹으면 안 돼? 불안하면 뜨겁게 끓여서 사용하면 되는데...'
나는 오래 전에 군대에 갔고, 야외훈련을 나가면 수통에 물을 잔뜩 채웠으나 얼마 뒤에는 빈 수통.
훈련받다가 잠깐 쉬는 휴식시간이면 훈련병들은 냇가로 내려가서 냇물에 입을 담고는 그 물을 마셨다. 나도 그랬다.
또 하나의 기억이다.
1960년대 후반... 여름방학 때 멀리 산간지방으로 봉사활동 나갔다. 봉사대원들이 먹고 난 뒤의 설거지는... 우물 물을 길러서 물을 떠올려야 하는데도 물이 부족하면... 그냥 논으로 설거지통을 떼미고 가서는 논물로 설거지를 했다.
모든 게 없거나 부족했던 시대의 경험이다.
쌀, 라면, 과자, 과일, 생수병, 계란, 두부, 대파, 냉동삼겹살, 냉동동태, 냉동갈치 등의 먹을거리를 미리서부터 사재기하지 말자.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나 좋아할 터.
가짜뉴스를 퍼뜨려서 불안감을 조장하는 듯한 사이비 기자의 술수에 말려들지 말자.
기사꺼리를 억지로 만드는 엉터리-기자를 탓한다.
나중에 보탠다.
첫댓글 지금은 걱정 할것 없는 걱정 들 하니'
댓글 고맙습니다.
5인 이상은 모임을 갖지 말라는 행정지침이 있나 봅니다.
가진 게 없는 사람, 덜 가진 사람들이 더욱 힘이 들겠지요.
할 말은 많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