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를 받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수능은 보름 전 지나갔을 십이월 초순이다. 예년 이즈음은 수능 이후 고3들은 대학 입학설명회에 참석하거나 교양 강좌나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기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당초 계획 일정에서 두 주간 미루어 내일 수능을 치르게 된다. 코로나 방역 관계로 전 고등학교는 지난 주중부터 원격수업으로 전환해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는다.
수능 수험생 예비소집일인 십이월 첫 수요일이다. 예년 같으면 고사장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은 시험실을 정리하고 고3은 수험표를 교부 받아 시험 치를 고사장을 확인하여야 한다. 오후엔 재학생들도 하교한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 주중 원격 수업에 들기 전 학생들이 있을 때 시험실을 정리해 두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수능을 관리하는 교무부에선 여러 가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코로나 방역 관련 담당자 회의가 거듭 열리고 방역 물품을 배치하는 일이 늘었다. 그와 함께 외부 용역업체에서 시험실 책상마다 반투명 아크릴판을 설치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시험실 쓰레기통엔 ‘일반쓰레기’와 가래침 휴지와 마스크를 버리는 ‘방역 쓰레기’를 구분한 라벨도 붙여 놓았다. 수능 전날 저녁 심야까지 청소업체 직원이 파견 나와 시험실 책걸상을 닦고 소독을 한단다.
전날 교문에는 수능 고사장이라는 펼침 안내가 걸려 있었다. 수요일도 교사들은 정상 출근이라 남들보다 이른 시각에 교정으로 들었다. 수험생은 오전에 등교해 교실로 들지 않고 운동장에서 수험표를 받아 고사장을 확인하러 간다. 교사들은 오전 근무 후 세 부류로 나뉜다. 본교에서 감독관을 맡은 분이 있는가 하면 타교로 파견해 감독으로 가는 분이 있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니다.
수능일 나와 같은 신분은 세 명이란다. 자택에 머물다 감독관이 유고가 생기면 투입되는 대기 교사다.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감독관 여유 인원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수능 감독 관리 지침에 따라서다. 나는 지난해부터 고령 교사라는 딱지인지, 예우인지 수능 감독관에서 열외를 받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내 말고 둘 더 있는데 그들이 누군지 알려고 않는다.
수능을 앞두고 여러 곳에서 코로나 확산이 심상치 않았다. 수험생은 물론 교사들도 코로나 감염원에 노출될까 봐 전전긍긍이다. 경남에서도 하동과 창원에 이어 진주에 감염자가 속출했다. 셋째 주말에 이어 넷째 주말도 연사 와실에 머물렀다. 창원과 진주와 하동에서는 코로나가 계속 번져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른 곳보다 강화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거제는 형편이 좀 나은 듯했다.
지난 십일월 중순 거제로 건너와 연속해서 두 주 주말을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창원으로 건너가지 않은지가 스무날이 넘는다. 두 차례 지나간 주말에는 거제의 몇 곳 산을 올라 고개에 서린 전설을 음미했다. 해안선 따라 걸으며 역사 고적을 답사하기도 했다. 수능 당일에도 대기 교사라 어차피 거제에 머물러야해 해안선 트레킹을 나서볼까 마음 두었는데 생각이 바뀌어졌다.
수험생 예비소집일이면 당사자는 수험표에 적힌 내일 시험을 치를 고사장을 확인하러 떠난다. 교사들 대부분은 시험 감독관 회의에 참석한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일 수도 있고 인근 다른 학교일 수도 있다. 나는 감독관이 아닌지라 남은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점심나절까지만 교내에 머물다 감독관 회의가 진행될 시간이면 조퇴 복무를 신청해 슬그머니 학교를 빠져나갈까 한다.
수능일 대기교사는 복무규정에 따라 자가연수다. 연사 와실에 머물러야 함이 원칙이나 창원에서 지내련다. 주말로 이어지는 금요일은 연가를 신청했다. 목금토일, 나흘을 창원에서 보내려니 코로나로 바깥나들이에 길이 막히려나. 강둑을 걸어보거나 낮은 산자락을 오르고 싶은데 제약이 따르지 싶다. 퇴직 후 북면에서 전업농부가 된 지인 텃밭도 찾아가보고 싶다만 머뭇거려진다. 20.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