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사흘 간 내가 읽은 책들
히가시노 게이고 - 브루투스의 심장
호시 신이치 - 어떤 이의 악몽
이갑재 - 로맨틱한 초상
알베르트 산체스 파뇰 - 차가운 피부
미시마 유키오 - 금각사 외 3편
2. 솔직함에 관하여
언젠가부터 우리들 마음속에는 오직 솔직함만이 진리이다 하는 알 듯 모를 듯한 명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분해하고 해체하여 핵심으로 생각되는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조리 벗겨버릴 것―대부분의 현대 사조는 이러한 미니멀리즘(혹은 솔직함)을 그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아마도 효율이라는 관념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아, 그러나 비효율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추고 포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행위인가. 나는 소위 개방과 자유라는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파온다. 성을 함부로 말함으로써 획득하는 자유란 얼마만큼의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강조함으로써 느끼는 현실 직시란 과연 냉철한 자기 분석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화장과 수식은 비인간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이다. 인간은 먹고 배설하는 동물이며, 경제-포식 논리는 우리 근원을 지배하는 그야말로 선험적인 인간 기전이다. 본질이 아닌 것에 함몰된 인간은 그저 현실 도피를 꿈꾸는 부적응자일 뿐이다. 무한 반복되는 미분 끝에 남는 정수만이 진실이고 진리이다……. 참혹한 몸의 논리들.
돈과 여자를 너무나도 밝히는 친구가 있다. 나는 그의 의견을 반박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솔직(또는 솔직한 척)했고, 내가 말하는 것들은 대체로 현학이나 도피의 성향으로 비웃음 사곤 했다. 나는 그 앞에서 입만 살아 고집 부리는 애늙은이에 불과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현실을 가지지 못한 자의 고상한 대리 만족의 대상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여성과 여체에 대한 험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솔직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돈 생길 일 있으면 앞뒤 따지지 말고 뛰어들어야 바람직한 현대인으로 박수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여자 이야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 음담패설도 되도록 피하는 축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혼자 가만히 생각해도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걸 굳이 드러내고 소리 올려 외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싸구려 솔직함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한다. 넌 여자가 싫냐고, 좋으면서 왜 빼냐고. 너도 돈 생기면 좋잖아, 왜 좋으면서 안 좋은 척을 하냐. 그렇게 착한 척, 고상한 척 하면 마음이 즐겁냐. 솔직한 사람들을 뒷짐 지고 비웃고 싶냐. 넌 뭐 그렇게 대단해서 혼자 꼬장꼬장 도 튼 사람처럼 구느냐.
아, 그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겁한 냉소가가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그 동물적인 즐거움, 나도 모르는 것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감추고 싶다. 그들이 그토록 파괴하고 싶어 하는 그 금기들을 나는 조용히 혼자 지키고 싶다. 금기의 아름다운 비효율과 비인간성을 간직하고 싶다.
나는 책을 읽는다. 돈과 여자, 좋지만 부러 덜 좋은 척을 해본다. 그들이 말하는 거짓―예술과 문화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껍데기―들을 사랑하고 싶다. 비록 약은 눈가림이나 근엄한 가면놀이일지도 모를 인류의 고귀한 가짜들을 그들의 진짜보다 더 사랑해보고 싶다. 귀족 시대의 쓸데없는 예의들, 전혀 효용 없는 언어적 수사들, 내 몸에 조금도 득될 것 없는 막연한 관념들, 나는 그런 것들을 한번 사랑해보고 싶다. 달콤한 금기와 억압에 빠져 살아보고 싶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오직 인간만 할 수 있는 고급한 행위이므로. 그리고 그 거짓말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인류를 두루 눈멀게 한 것도 있으므로.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자꾸만 내게 솔직해지라고 명령한다. 그만 고집부리고 진실에 몸을 맡기라고 차갑게 웃는다. |
첫댓글 금각사를 읽었다더니 별로 효용이 없구먼.... 위선을 떨 바에는 차라리 위악을 떨어라... 자신 안의 금각사를 불질러라. 그게 문학이다. ............ (하긴 이따위 번지르르한 말만 해대는 나도 아직 위선을 떨고 있지만....--;;;;;)
형님이 제게 위악을 얘기하시니... 좀 의왼데요... ^^ 요즘 마음 같아서는 책 읽고 사색하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현실 사는 사람들에게 위악으로 느껴지진 않을까 싶어요....
뭐에든 다 써서 그 바닥을 드러내기보담..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사치가 아닌가 싶다.
몸을 맡기라고 비웃는, 그 진실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군요. 전 아예 그런 친구들과 가까이 하지 않거나, 혹시라도 그들과 말할 일이 생긴다면 그저 듣고만 있지요. 세상이 어떠한 것을 요구한다고 하여 그에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것에 자기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이끌린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아, 어려운 문제로군요.
사람이라면 성인이 되면서 다들 느끼는 감정 같군요. 남자든 여자든 말이죠.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는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