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이 없다면,
망 : 망연자실한 충격 속에 머물러
각 : 각성만 하고 산다면
이 : 이 삶은 끝내 버틸 수 있었을까
없 : 없어져 버린 사람을 가슴에 묻고도
다 :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시간을 붙든 채
면 :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기억 속을 살아가야 한다면
아마도 그때의 인간은 온전하게 살 수 있을까?
내게 버찌는 단순한 열매가 아니었다.
벚나무에 작은 열매가 붉게 익은 추억
아직 자아 세계가 채 완성되지 않은 시기였다.
버찌가 거처 간 손과 입술이 함께 벌겋게 물들던 시절,
그것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먹거리이자 즐거움이었고
철부지 적 삶이 아직 영글기 전의 어린 시절이었다.
시간이 갉아먹은 세월이 흩고 지나면서
버찌는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울컥한 기억으로 남았다.
비루하고 가난했던 옛 시절,
어머니는 시장에서 과일을 보고 망설였던 분이셨다.
달콤함에 흔들린 손을 뻗었다가 거두실 때는
빈 주머니가 가족의 몫을 먼저 떠오게 했다.
그래서 빈곤의 시대를 지나와 마주한 버찌는
먹는 것이 아니라 어머님을 떠올리는 열매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오롯이 간직한
어머님의 희생이 담긴 기억의 열매.
엄마 저 후딱 산에 다녀올게요. 했을 때
의아해하신 듯, 아니, 애야 어디 가냐는 말씀에
저 앞산에 있는 버찌가 익었으면 따오려고요,
하는 내게 공부해야지 버찌는 뭐 하러 그러냐,
엄마가 버찌를 좋아하시는 걸 제가 알잖아요,
저 앞산 벚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린 것을 봤거든요,
그 대답은 핑계도 거짓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뒤 가장이란 올무는
생업에 쫓겨 어머님 뵙기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연로하신 부모는 자식을 하염없이 기다려 주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가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는 날과 마주한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항상 늦는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자리에서만 후회한다.
잠시 머문 소풍처럼 떠났다는 말은
남겨진 사람을 위해 포장한 언어다.
그러나 그 소풍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떠난 이를 잊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잊히는 힘 덕분에 겨우 살아낸다.
망각이 없다면
모든 죽음은 현재형으로 남는다.
상실은 반복되고 하루는 무너진다.
그러므로 망각은 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기억이 윤리라면 망각은 생존을 위한 생리다.
그 둘 사이에서 인간은 흔들리며 살아간다.
등산로에 있는 버찌의 기억은 다르게 작동한다.
걷는 리듬 속에서 잊혔던 장면들이 불쑥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흐려지던 기억은 순간 떠올림과 동시에
지긋이 사라지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그래서 인간은 기억을 붙잡는 존재가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잊지 않기 위한 메모의 습관은 그래서 남는다.
세월이 좀먹은 기억을 잠시 붙잡기 위한
유일한 수단의 부산물 잉크의 흔적.
어떤 말은 단어로 끝나지 않는다.
그 뒤에 겹친 시간이 함께 되살아난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문장처럼
언어는 사건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다시 호출하는 장치가 된다.
그래서 같은 문장도
어떤 이에게는 상술이 될 수도 있고
잊지 못할 상처를 품은 사람에게는 고통을 소환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기나긴 아픔을 품은 역사도 된다.
기억은 균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는 하나의 시간 위에 서 있는 것에도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 있다.
일상의 특정 단어나 상징은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낸다.
어떤 상업적 문구는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디자인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질곡의 삶 잔향이 된다.
그 순간 갈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밀도가 충돌하는 백해무익한 것일 수도 있다.
슬픈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다.
다만 엉뚱한 방식으로 되살아난다.
기억은 개인에 머무는 동시에 사회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기억을 갖고 살 수는 없다.
기억은 도착과 동시에 사라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견디기 버거운 기억은 억지로 잊으려 몸부림치고
어떤 기억은 퇴색된 듯했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또 다른 기억은 잊지 못하는 불사불멸의 진행형이다.
그래서 사회는 늘 어긋난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다른 시간의 가치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망각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하다.
기억을 살리고 또 지우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기억과 망각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 위에서
외줄을 탄 듯 비틀거리는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버찌는 열매가 아니었다.
어버이날은 날짜가 아니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도 아니다.
망각은 결함이 아닌 살기 위한 생리적 현상이다.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기억들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 만들어진
하나의 살아 있는 구조 속 모순의 극치다.
그리고 그 구조의 틀 위에서
우리는 오늘도 같은 말을 하며
전혀 다른 기억의 시간을 각기 다른 쓰임새를 매겨
서로가 옳다고 우기며 살아가느라 사회가 시끄러운 것이다.
인간은 왜 완전한 기억으로 살 수 없을까
혹시 인간이 완전한 기억 속에 산다면 붕괴할까,
그래서 망각은 결핍이 아닌 방어기제가 되었을까,
그러나 망각은 동시에
삶의 소거에 위험성도 있는 양가성을 품고 있다.
시간은 기억이 오롯이 침전된 바닥이며,
순식간에 켜지는 트라우마의 스위치이자,
사회적 이해 당사자들 기억의 촉발 장치가 아닐까.
그러나 망각은 동시에
삶의 소거에 위험성도 있는 양가성을 품고 있다.
시간은 기억이 여과 없이 침전된 심연이라서,
각인된 사안 앞에서 순식간에 켜지는 트라우마의 스위치이자,
사회적 이해당사자들의 기억을 점화시키는 불쏘시개가 아닐까.
그런 까닭에 망각은 윤리와 도덕의 붕괴라기보다,
한 인간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불완전한 내면이 스스로를 완충하며
버텨내는 시스템은 아닐까. 끝.
덧붙인 글 :
빈곤했던 시절부터 켜켜이 쌓인
한 생을 관통한 어린 시절의 결핍과
가족을 위한 한 어머니의 헌신적 희생,
생업에 쫒겨 차일피일 미루다 보낸 세월
자식을 기다리다 보고 싶었다 말도 못한 체
소풍을 마쳤다는 부고 기별을 받고
돌이킬 수 없어 뒤 늦은 자책과 후회,
버찌는 한 계절에 흔하지만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그 위에 퇴적된 시간의 층을 통과하며 살아낸 기억이다.
똑같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각기 다른 기억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간극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