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삶, 거친 환경이 명약(名藥)
세계에서 가장 거친 환경에서 살아온 민족은 유대인이다.
서기 70년 7월 9일에 나라를 빼앗기고,
1948년 5월 14일 독립할 때까지 1900년 동안 이곳저곳 쫓겨 다니며 나라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유대인을 잡아서 사격장 표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총알 하나로 몇 명을 죽일 수 있는지, 일렬로 세워 놓고 유효 학살 실험을 하였다.
이렇게 히틀러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였다.
유대인들을 반기는 곳은 지구상에는 아무 곳도 없었다.
가장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
온 세계가 유대인을 박해 할 때 유대인을 품어 준 나라가 미국이었다.
2차 대전 후 몰려드는 유대인들에게 미국은 허드슨 강변을 내주었다.
험악하고 최악의 조건을 갖춘 거친 환경의 땅이었다.
유대인들은 옹벽을 쌓아 허드슨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금융업을 시작하였다. 지금 온 세계의 금융의 중심지가 된 월 스트리트 이야기다.
그래서 New York을 Jew York이라 부르기도 하며, 세계 유일의 유대 박물관이 이곳에 세워졌다.
세계 문명을 꽃 피운 민족이 유대인이 되었다.
0.3% 밖에 안 되는 민족이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긴 세월 동안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긍정적 신념을 공유하고 살아오는 동안
거친 환경을 이길 수 있는 DNA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한 부자(富者)가 있었다. 그 부자는 무인도(無人島) 하나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나무를 잘 심고 꽃도 여기저기 심어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토끼를 풀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끼들은 눈빛이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털에 윤기가 사라지면서 병든 토끼같이 보였다. 드디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부자는 탄식을 하였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병이 나다니' 수의사를 불렀지만 고개를 저으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가 그 이유를 물었다. 현자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늑대를 같이 기르라!”
부자는 놀라서 물었다.
"토끼를 다 잡아먹으면 어떻게 하느냐?”
랍비가 말했다.
“토끼의 병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긴 병이다. 늑대와 함께 기르면 늑대에 안 잡혀 먹히려고 힘차게 도망 다닐 것이다.
눈빛이 빛나게 될 것이다. 다리에 힘이 생기고 털에 윤기가 흐를 것이다.”
그렇게 하였다. 토끼들은 몇 마리 잡혀 먹히기는 하였지만 모두가 건강하였다.
우리 인간도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온 사람이 보다 알찬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沙工)을 만드는 것입니다. ♧♧♧
<옮긴 글>
첫댓글 유대인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여러 차례의 박해와 추방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강한 공동체 의식
가족과 지역 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서로를 돕는 자선과 상호부조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글을 읽고 배우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여겼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려서부터 읽기와 토론을 배웠고, 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뒤에도 종교 의식, 안식일, 명절, 식사 규범 등을 통해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공통의 전통이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을 연결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동시에 자신의 전통도 유지했습니다.
다양한 직업과 경제 활동에 참여하며 환경 변화에 대응했습니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상업, 학문, 친족 관계를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받았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추방, 차별, 학살을 반복해서 겪었습니다.
특히 홀로코스트에서는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지만, 전쟁 이후에도 공동체를 재건하고 교육과 문화 보존에 힘썼습니다.
헬렌 켈러 님이 그러셨지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 고통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J. W 괴테는 " 이 세상에는 아무것이나 참을 수 있으나 행복한 날의 연속 만은 참을 수 없다" 하였지요.
즉 인생의 삶은 '시련과 극복'의 삶이 아닐까요?
시련을 시련으로 보는 사람은 언제나 시련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러나 시련을 발판으로 삼는 사람은 언제나 성공과 희망의 삶을 살게 되지요.
죽을 만큼 어렵지만 죽는 것보다 극복하는 것이 쉬운 것이 시련이라 하였습니다.
유대인이 그런 마음의 자세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이 러시아에서 저 불모지 땅으로 강제 이주 당하고도 끈질긴 인내심으로 개척하여
살아온 역사도 바로 그런 극복의 삶이었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