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언 기자 정순우 기자 이준우 기자 입력 2021.07.29 03:00 홍남기 경제부총리,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등 4개 정부 부처 수장이 28일 부동산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집값이 큰 폭으로 내릴 수 있으니 추격 매수를 자제하라”고 밝혔다. 정부는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국민들의 막연한 기대 심리와 투기 수요, 부정 거래를 꼽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 급등에 대한 사과도, 구체적인 정책 대안도 없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불안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 재정비촉진지구를 현장방문한 뒤 재개발사업추진위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07.28. 뉴시스 홍 부총리는 이날 “4월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전셋값이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며 “주택 수급 요인보다는 막연한 상승 기대 심리와 투기 수요, 불법 거래가 비중 있게 집값을 끌어올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서울 집값이 큰 폭으로 내린 것을 언급하면서 “최근 집값은 최고 수준에 근접했거나 이미 넘어섰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과 가계 부채 관리도 강화된다”며 지금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도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 공급이 차질 없이 이뤄지면 주택 시장의 하향 안정세가 시장 예측보다 큰 폭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부동산 담화문이 공개되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선 “별별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안 잡히니 이젠 집 사지 말라고 협박하느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값이 지나치게 많이 올랐고, 수요자 입장에선 추격 매수에 신중해야 하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집 사지 말라’는 정부 하소연으로 집값이 잡힌다고 기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코로나 방역에서도 국민 옥죄기를 강화할 전망이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의 파고(波高)가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코로나 확진자는 27일 1896명으로 21일의 1842명을 넘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확진자 수는 28일에도 오후 9시 현재 1500명에 육박하는 등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2일부터 수도권은 거리 두기 4단계를 적용하고, 비수도권도 27일부터 3단계를 시행 중이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더 강력한 방역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날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좀 더 강한 방역 조치가 필요한지 검토해야 한다”며 “사적 모임이 문제인지 시설 집단감염이 문제인지 평가해서 약한 부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국민 향해 “투기” 20번 언급… 경찰청장은 “구속” 겁박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의 부동산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 현장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4명의 정부 부처 수장(首長)이 등장했다. 최근 집값 급등에 대해 “관계 장관 모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홍 부총리의 발언을 시작으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거쳐 김창룡 경찰청장까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4개 부처 수장들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은성수 금융위원장, 홍 부총리,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 /뉴시스 하지만 4명 중 누구도 집값·전셋값 급등을 불러온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에 대한 사과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후속 대책을 말하지 않았다. 홍 부총리는 “막연한 기대심리와 투기 수요, 불법 거래가 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상황에서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없으니 주택 매수에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 시장 안정은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집값 급등의 책임을 국민에게 지웠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부정 청약이나 기획 부동산 투기는 구속까지 될 수 있는 범죄임을 유념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20분가량 진행된 담화문 발표에서 ‘투기’라는 단어만 스무 번 넘게 등장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집값 조정이 이뤄질 수 있고, 추격 매수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면서도 “집값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명백한 정부 책임인데도 시장 불안을 ‘국민 탓’으로 돌리는 건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했다. ◇반복된 ‘고점 경고’에도 집값 안 잡혀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와 집권 여당의 고위 인사들이 부동산 시장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을 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하더니 작년 1월 신년 기자회견 때는 “서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급격한 가격 상승은 원상 회복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 아파트값은 작년 한 해에만 9.7% 올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작년 8월 국회에서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30대 중심으로 ‘영끌’(대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금을 마련한다는 뜻) 매수가 급증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그 발언 후 이달까지 전국 아파트값은 12.2%, 서울은 16.6% 급등했다. 뒤늦게나마 집을 산 30~40대들은 “영끌이 정답이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정부 말을 믿고 집을 사지 않아 부동산 폭등 사태를 지켜만 봐야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벼락 거지’라 자조할 지경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전문가들은 4년 내내 ‘주택 공급 부족’을 경고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투기 수요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는 ‘프레임’을 버리지 못했다”며 “얼마 전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를 백지화한 것처럼 집값 불안을 가져온 잘못된 정책은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성 떨어지는 ‘장밋빛’ 공급 대책 이날 4개 부처 합동 부동산 담화에는 대국민 협박과 읍소 말고도, 일부 공급 대책도 언급됐다. 하지만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기존에 발표한 정책을 반복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이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전국 56만 가구, 수도권 31만 가구, 서울 10만 가구씩 공급하겠다”고 한 장기 주택 공급 계획이 대표적이다. 최근 10년 연평균 주택 건설(완공 기준) 실적이 전국 47만 가구인데 매년 그보다 10만 가구씩을 더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서울의 경우 전체 주택(374만 가구·2019년 기준)의 26.5%에 달하는 100만 가구가 10년 안에 지어져야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민간 재건축·재개발은 규제하면서 서울에 매년 10만 가구씩 공급하는 건 난센스”라고 말했다. 이미 발표한 공급 정책들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작년 ‘8·4 대책’에서 나온 서울 태릉골프장 등 공공 유휴부지 개발은 지방자치단체 반발에 부딪혀 1년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다. 올해 ‘2·4 대책’을 통해 밝힌 13만 가구 규모의 수도권 2차 신규 택지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로 6개월 가까이 밀리고 있다. 이날 사전 청약을 시작한 3기 신도시는 보상 문제로 반발하는 토지주가 많아 본청약과 입주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입주 가능한 주택으로 수요자들에게 공급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