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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3) 예수 이름으로 사는 사람 (행3:1~10)
이름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최초의 선물일 뿐 아니라 평생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자체를 대표합니다. 그 주인이 대단하면 그 이름도 대단합니다. 그 주인이 하찮으면 그 이름도 하찮은 겁니다. 주인의 능력이 그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겁니다.
우리의 이름과 우리 자신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 자신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이런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활용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빌2:11 예수의 이름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이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그 주인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그 이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후313년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했습니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교황청의 부름을 받아 교황 이노센트 4세(Innocent Ⅳ, 1243-1254년 재위)를 만났습니다. 마침 세계 각국에서 금은보화를 실은 마차가 교황청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아퀴나스! 초대교황 베드로 사도는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 ’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금과 은이 이렇게 풍성하오. 금은보화를 보시오. 놀라운 건물과 장식을 보시오.” 그때 아퀴나스가 말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 대신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금 기둥을 세우고, 대리석 바닥을 꾸몄습니다. 실로 엄청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많은 땅과 건물도 있고,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능력이 없습니다.” 정말 교훈하는바가 큽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무엇이고, 그 이름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는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보다 풍성한 신앙생활, 승리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본문은 1세기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기록입니다. 선천적으로 걷지못하는 사람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이라 불리던 성전 문 앞에서 앉은뱅이 걸인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합니다. 마침 그들 수중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금보다 더 좋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를 걷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까요? 6절“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 ”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주었던 것입니다. 행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 권세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권세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기도하면 예수님의 권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어머니 배에서 태어나서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던 앉은뱅이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일어나라고 명령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킬 때 힘이 솟았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뛸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합니다.(7절~8절). 그는 40년 동안 그저 매일 남에게 의존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남의 도움으로 매일 구걸하러 나왔습니다. 육신적으로 불구요 물질적으로 궁핍한 인생입니다. 한 마디로 ‘죽지 못해 사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더 비참한 것은 그는 다 들어가는 곳인 성전에 한번도 들어가 예배드리고 찬송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성전에는 장애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어나 걷고 뜁니다. 성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가 얼마나 감격했을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 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일로 인하여 주위에서 구경하던 백성들도 엄청 놀랐습니다. 10절 보면 “백성들이 기이히 여겼다”고 했는데, 이 말은 충격을 받았음의 의미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충격을 받고 황홀경에 빠질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습니까? 베드로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을 댔을 때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그렇게 큰일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는 예수님의 함께 하십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예수님은 그 이름을 부르는 곳에 임재하십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동일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출20:24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그 이름을 부르고 예배할 때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 임재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 보면, 예수님이 70인의 제자들을 두 명씩 짝지어 전도 여행을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여행에서 돌아와 자랑하며 보고하는 내용이 눅10:17 말씀입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직접 동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를 때 영적으로 임재하셔서 친히 역사하심으로 귀신들이 쫓겨 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육신적으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부활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보내신 성령을 통해 함께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름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놀라운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그 주인인 예수님 자신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살아 역사하십니다. 승천 직전에 하신 말씀을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 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19~20). 승천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함께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이라도 살아 있어야 진짜 능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죽은 권력은 소용없고 ‘살아 있는 권력’이 중요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있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곧 우리의 ‘능력’입니다.
둘째, 예수 이름의 권세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 / 예수님의 이름은 인간이 지은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그 이름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까지 해주셨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 즉 그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대속하심을 구주가 되셨음을 믿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래서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반면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고 부르지 않으면 심판받고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 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여러분 !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2)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힘입고 죄사함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그럴 때 분명히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이 친히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6: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또, 요14: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구할 때 예수님이 역사하십니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병든 사람을 고치는 권세가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16:15~8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베드로와 요한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6~7) 명령하고 선포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선포함으로 병자를 고쳤습니다. 우리의 상식이나 과학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명령하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셋째, 예수 이름의 권세는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아무리 놀라운 권세가 있다 해도 아무나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 이름 사용할 수 있는 면허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이름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 가지를 꼭 명심해야 합니다. 같은 하나님 자녀라도 자신의 신앙 상태에 따라 예수 이름의 권세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소유한자의 경건의 상태에 따라 그 권세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합니다
본문 1절 보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 ” 베드로는 경건한 기도의 습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그렇게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고,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기도하되 우리는 규칙적인, 지속적인 기도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런 능력의 역사가 크게 나타납니다. 또한 죄를 품고 기도하면 큰 능력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사59:1~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그러므로 늘 말씀에 비추어 악한 것들은 다 회개하고 늘 정결한 마음을 갖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게 무엇입니까? 예수의 이름에는 엄청난 권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의 능력을 경험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은과 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름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 이름에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믿고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교회를 얼마 동안 다녔고,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았고, 봉사를 얼마나 했는가 하는 것들이 그리스도인이 내세울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예수는 나의 구주시다.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너도 예수를 믿어야 산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요 예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