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나 [동승]처럼 우리를 감동시키고, 때로는 [올드보이]처럼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기도 하는, 혹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폭력교사들을 볼 때처럼 피를 끓게 하는 분노와 울분을 안겨주기도 하는, 영화 속의 이야기들은 전부 거짓말이다. [실미도]나 혹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처럼 현실 속에서 소재를 가져온 영화들도, 그것이 영화적 내러티브 안에서 재탄생되면, 그것은 허구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렇게 허구적 진실을 갖고 관객들의 자기동일화 욕망을 부추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보고난 뒤 자기반성 혹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영화들이 좋은 영화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사는 어떤 사람이 전도연이나 전지현을 모른다면 분명 간첩일 것이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 즉 그만큼 그녀는 유명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온 김정화 공유 주연의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에서 그녀, 즉 김정화는 정말 간첩이다. 우리는 그 간첩을 보면서 자기동일화의 욕망을 일으킬 것인가?
얼짱은 얼굴 짱의 줄임말이다. 얼짱에 이어서 몸짱 등의 파생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5대 얼짱, 박한별 구혜선 남상미 박설미 이주연은 네티즌들이 키운 사이버 시대의 스타들이다. 얼짱 신드롬의 이면에는, 기획사나 방송사에서 만들어낸 스타가 아니라, 우리의 지지로 스타를 탄생시키겠다는 네티즌들의 민중의식이 담겨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굴하고 지지를 보낸 스타들이 기존 체제 속으로 진입하는 는 순간, 그리고 주류 질서 안에서 당당하게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더욱 열광한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트랜드 [얼짱 신드롬]을 영화화 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트랜드 영화답게 현재적 감수성에 충실하다. 이 영화는 실제로 한양대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하다가 순식간에 얼짱으로 뜨면서 연예계에 진출한 남상미의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한양대 앞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그녀가 얼짱으로 뜬 것은 지난해 3월. 불과 1년만에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굉장한 속도감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사건의 주인공인 남상미가 영화 속의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주인공 주변 인물로 등장한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인으로 주인공을 밀어 붙이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은 영화사의 의지 때문이다. 얼짱 신드롬에 편승한 영화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한 걸음 나아가,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관용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그녀는 영하 속에서 정말 간첩이 된다. 누구나 그녀를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는 진짜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한 마디로 넌센스 코미디이다.
그녀는 이름부터 이북적이다. 림계순(김정화 분), 마치 [쉬리]의 여전사 이방희의 이름처럼, 그녀는 이름만으로는 정말 북에서 내려온 선수같다. 그녀가 비오는 날 임진강을 내려온 이유는, 거액의 공작금을 갖고 사라진 간첩 김영광(이광기 분)을 잡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고첩 박무순(백일섭 분) 오미자(김애경 분) 부부와 접선하여 신용카드 빚에 몰려 사라진 그들 부부의 딸 효순(자두 분)으로 위장해서 패스트푸드점에 취직한다.
그녀를 간첩으로 이렇게 설정한 것 자체가, 이 영화가 넌센스 코미디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상식 수준으로 이 영화를 봐서는 안된다. 그냥 웃자고 만든 얘기다. 골치 아프게 따지고 들면 안되는 것이다. 북에서 온 그녀가 어떻게 저렇게 남한생활에 적응을 잘하는지, 자신도 모르게 얼짱이 되었다고 디카로 자신의 모습을 몰래 찍어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 삼수생 최고봉(공유 분)에게 접근해서 그와 사랑에 빠지는지, 하나 하나 따지려고 하지 말자.
영화는 기술적으로도 엉성하다. 모니터 시사회 공개시, 버거킹 안에서 놀라운 무술을 펼치는 그녀의 모습이 버드 아이즈 샷에 가까운 부감 샷으로 잡혀 있는 컷에는, 아직 지우지 못한 와이어가 김정화의 등에 선명하게 매달려 있다. 또, 숲속 서바이벌 게임 씬에서는 상대를 단숨에 제압하는 그녀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데, 최후에 적 진지를 공격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쌓아둔 통나무에 은폐해 있다가 적들에게 사격을 해서 섬멸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녀의 오른쪽 배가 적들이 쏜 보랏빛 총탄에 맞는다. 총을 맞아서는 적의 진지로 들어가서 깃발을 뺏을 수 없는데, 깃발을 뽑는 그녀의 옷에는 어느새 총탄이 지워져 있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지나가는 일회성 영화이다. 트랜드에 기댄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소모적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고첩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박무순 오미자 부부들들 씬이다.
백일섭 김애경이라는 중견 연기자들의 탁월한 연기에 힘입은 바 크지만, [간첩 리철진]에서 택시강도 당하는 얼빵한 간첩들을 등장시켜 고정관념을 뒤집은 것처럼, 돈만 밝히는 고첩 박인환을 등장시켜 살벌한 이데올로기의 최정예 전사로서의 고정간첩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인 고첩을 보여준 것처럼, [그녀를 모르면 간첩]에서는 고첩 박무순의 추억의 불량식품들, 쫀드기나 달고나를 팔아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진솔한 일상성의 드러냄은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재미다.
또 하나, 굳이 이 영화의 장점을 찾자면,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어떤 인물도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고통받거나 신음하지 않는다. 공작금을 갖고 튀어버린 간첩, 그를 찾기 위해 남파된 여간첩, 그녀를 받아들인 고정간첩, 그 누구도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을 지탱하는 확실한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즉 그런 것들은 그냥, 영화적 장치라는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넌센스 코미디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무 생각없이, 오직 통통 튀는 탁구공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만으로 영화를 보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이 칭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는 넌센스 코미디에 가깝다. 관객들 누구도 영화를 보는 동안 김정화가 정말 간첩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허구적 구조물인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는, 그들의 자기동일화 욕망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스크린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면서 웃어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국민 여러분, 많이 웃으셨습니까? 영화보기 조금 좋아졌습니까? 그러나 난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는 걸 고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