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휘 _ 최 희 준
지휘자 최희준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지휘과에서 디플롬과 최고연주자 과정(Konzertexamen)을 졸업하고,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개교 이래 최초로 지휘과 최고연주자 과정(Meisterklasse)을 졸업하였다. 그는 2003년 독일 전 음대 지휘 콩쿠르(Deutsche Hochschulwettbewerb)에서 심사위원 전원만장일치로 1위, 2005년 바트 홈부르크(Bad Homburg)지휘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최희준은 그간 베를린 심포니(Berliner Sinfonie Orchester), 예나 필하모니(Jena Philharmonie), 카셀 (Staatsorchester Kassel),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isches Staastsorchester), 라인란트 팔츠(Staatsorchester Rheinland-Pfalz) 등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으며 뮌헨 국립 가극장, 하이델베르크 오페라 하우스, 안나베르크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한 다수의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였고 라인스베르크 궁 가극장에서 Joern Arnecke의 Drei Helden (세 영웅)을 초연하며 베를린의 주요 일간지인 Berliner Morgenpost로부터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지휘”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오더-슈프레(Oder-Spree)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의 총감독 및 지휘를 맡았으며, 작센 주립극장의 카펠마이스터로서 다수의 오페라와 발레를 지휘하였다. 국내에서는 서울, 부천, 대전, 광주, 대구시립교향악단 등을 객원지휘하였고, 제41회 난파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양대학교 지휘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 2월 전주시립교향악단 제7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
플 룻 _ 윤 혜 리
“가장 이상적인 소리”
- 장 피에르 랑팔 -
플루티스트 윤혜리는 1992년,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에서 관악부문 한국인 최초 입상을 하며 유달리 관악부문에 취약했던 당시 한국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뉴욕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등 메이저 교향악단의 단원 배출구로 유명한 뉴월드심포니 오케스트라 오디션 우승을 통해 한국 관악 연주자로는 드물게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신예 플루티스트로 촉망 받던 시절 거장 장 피에르 랑팔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소리'라는 격찬을 받았다. 서울 예원,예고에서 고순자 ,김대원 에게,커티스 음악원에서 줄리어스 베이커를, 파리국립음악원 대학원 과정에서 알랭 마리옹, 그리고 바젤 아카데미에서 피터 루카스 그라프를, 맨해튼음대에서 지니 백스트레서를 사사하였다. 파리 음악원 재학당시 스위스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3위에 오른 윤혜리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 아티스트 콩쿠르 ,뉴욕 플루트 콩쿠르, 올가 쿠세비스키 콩쿠르 우승을 하여 당당히 한국 플룻의 기량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윤혜리는 유럽에서 활동 이후 다시 미국 뉴욕 필하모닉 수석이였던 지니 백스트레서의 권유로 맨해튼 음대 Professional Studies 클래스에 입학하여 오케스트라 공부를 집중적으로 했다. 그후 뉴욕 필하모닉, 페이 드 라 로와르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단원 으로 활동했고 뉴 월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아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를 역임했으며, 스페인 테네리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7년 동안 수석 플룻티스트로 활동하면서 폭넓은 음악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솔리스트로써 윤혜리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NHK심포니 오케스트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등 다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고 뉴욕 카네기홀,필라델피아 아카데미 홀, 파리 Salle Gaveau,중국 상하이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 유명 연주무대에서 협연과 독주회를 가졌다. 국내에서도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부천시향, 수원시향, 부산시향, 대전시향, 광주시향 등 국내 최정상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또한 실내악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실내악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일본 후지 실내악 페스티벌, 라디오 프랑스 "jeune interprete"시리즈, parc de sceaux 페스티발,독일 Rolandseck 페스티벌에서 초청되어 연주 하였다. 국내에서도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에서 연주하였으며,현재 국내최초의 상주 실내악단인 금호아트홀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창단 멤버이고 아울로스 목관5중주의 멤버로서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실내악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동료 연주자들과 프랑스 낭트 근교 "Musicales a Prefailles " 페스티벌을 창단하여 매해 현지 연주자와 한국 연주자들의 음악적인 교류를 통해 한국의 음악수준 선보이며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첫 음반으로 1996년 삼성클래식스의 "Elegia” 출시하였고 2013년 금호 체임버 소사이어티 음반 "Poulenc"을 발매하였다. 2005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임명 되면서 적극적으로 후배 양성에 기울이고 있으며, 국제 플룻 콩크레스 한국대표, 국제 콩쿨 심사위원등 한국을 대표하는 플루티스트로 국내,국외을 오가며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program
W. A. Mozart / Overture to Le nozze di Figaro K. 492
모차르트 / 서곡 “피가로의 결혼” K. 492
W. A. Mozart / Flute Concerto No. 1 in G Major, K. 313
모차르트 / 플룻 협주곡 1번 사장조, K. 313
Ⅰ. Allegro maestoso
Ⅱ. Adagio non troppo
Ⅲ. Rondo. tempo di menuetto
P. I. Tchaikovsky /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4번 바단조, 작품. 36
Ⅰ. Andante sostenuto ? Moderato con anima
Ⅱ. Andantino in modo di canzona
Ⅲ. Scherzo ? Pizzicato ostinato Allegro
Ⅳ. Finale, Allegro con fuoco
Program note
W. A. Mozart / Overture to Le nozze di Figaro K. 492
모차르트 / 서곡 “피가로의 결혼” K. 492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1784년 보마르셰가 발표한 희극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을 번안한 폰테(Lorenzo Da Ponte)의 대본으로 모차르트가 1786년에 작곡한 코믹 오페라이다. 원작자인 보마르셰의 희극은 상류 계층에 대한 조롱 때문에 빈에서 곧바로 금지되었지만,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다. 매우 빠르게 연주하라는 단 한마디의 악상 기호만 적혀 있는 이 오페라의 서곡은 가장 빠르고 경쾌한 클래식 곡 중의 하나이다. (연주시간 : 약 5분)
W. A. Mozart / Flute Concerto No. 1 in G Major, K. 313
모차르트 / 플룻 협주곡 1번 사장조, K. 313
만하임에서 모차르트는 네덜란드의 부유한 음악애호가인 드장의 의뢰로 ‘플루트 협주곡’을 두 곡, ‘플루트 4중주곡’을 세 곡 썼다. 그 중 플루트 협주곡 제1번 G장조는 플루트 4중주곡 제1번 D장조와 더불어 플루트의 매력을 가장 잘 살려낸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특별히 비르투오소적인 기교가 구사된 것은 아니지만, 플루트의 음역 전체를 골고루 활용했으며 선율과 리듬의 형태도 악기의 특성과 잘 어울린다. 사실상 이 곡은 모차르트의 유일한 ‘오리지널’ 플루트 협주곡인데, 두 번째 플루트 협주곡은 그 자신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를 편곡한 것이기 때문이다. 알레그로 마에스토소(빠르고 당당하게)의 제1악장은 처음의 리토르넬로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제시된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제1주제는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이고, 제2주제는 우아하고 경묘하다. 아다지오 논 트로포(아주 느리되 지나치지 않게)의 제2악장은 약음기를 낀 현과 호른의 유니즌으로 시작되며 시종 환상적인 미감을 자아낸다. 특히 이 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오보에가 플루트로 대체되어 사뭇 신비로운 음률을 빚어낸다. 제3악장은 미뉴에트 템포의 경묘한 론도 악장이다. 이 재기와 기품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피날레에 대해서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세련된 영혼과 신선한 창의가 깃들인 진실의 샘”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연주시간 : 약 20분)
P. I. Tchaikovsky /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4번 바단조, 작품. 36
1876년 말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36세의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마음에 내재되어있는 동성애적인 기질에서 벗어나고자 한 오페라 여가수에 사랑에 빠지지만 매몰찬 거절을 당한다. 그리고 나서 1877년 한 음악원 제자의 권유로 28세의 안토니아 이바노브나 미류코바라는 음악원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폭풍 같은 정열은 그를 당황하게 하였고 결국 7월 18일에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여자였고 차이코프스키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내적인 동성애의 본능이 정신적 문제를 일으켜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 강에 투신자살까지 시도하였으나 사람들의 극적인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한 일화까지 일으키고 말았다. 정신적 재충전을 위해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나 Clarence에서 Venice로, 다시 San Remo에서 Florence로 옮겨 다니면서 그의 걸작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과 4번 교향곡의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의 실패한 결혼 2달 전인 1877년 5월에 착수한 4번 교향곡은 1878년 요양 여행 중이던 1878년 1월 7일에 이탈리아 북서부의 해안 산모레에서 이 교향곡의 관현악 편성을 완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다시 작곡에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데에는 또 다른 여인의 힘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철도 갑부의 미망인인 나데지나 피라레토브나 폰 메크부인이었다. 폰 메크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고 연간 6천루불 이라는 막대한 연금을 제공하여 차이코프스키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후원을 하였다. 이러한 후원은 무려 15년 동안 (1876년부터 1890년까지)이나 계속되었다. 이 두 사람은 편지의 왕래만으로 끝까지 서로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편지는 무척 장황한 내용이었으며 그들의 편지에서 '우리의 교향곡'이라고 표현한 4번 교향곡의 자세한 설명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초연은 1878년 모스크바의 러시아 음악협회 연주회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행해졌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때 이탈리아 여행 중이어서 피렌체에 체재하고 있었고 그에게 전보로 이 초연의 성공이 전해졌다.
(연주시간 : 약 4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