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입니다. 제 페이스북 친구분들이 공유를 해 주시면 김재현 산림청장님이 실제 읽어 주실 것 같습니다.
김재현 산림청장께 드리는 공개편지
김재현 청장님 안녕하십니까? 최근 산림청이 고시한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를 둘러싸고 임업, 목재, 바이오매스 등의 산업계가 저마다 시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산림청 수장이신 청장께서 여러가지 면을 염두에 두고 고민이 깊으실 줄 압니다. 저는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장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각계의 여러 의견들도 있겠으나 산림청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다른 부처와는 달리 우직하게 나무를 심고 가꾼 공공기관이라는 신뢰가 있다는 점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남알프스’를 가꾼 독일사람들 저는 이 십년 가량을 독일에 살면서 독일과 유럽의 잘 가꾸어진 숲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게 독일의 숲과 임업에 대해 들려 준 분 중에는 35년 전 긴 시간 동안 우리나라 숲에서 일을 했던 은퇴한 독일 임업사도 한 분 계십니다. 독일 중부 헤쎈주 임업사였던 키네크루스씨입니다. 그는 1974년 한국과 독일이 ‘임업경영협력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 독일 헤쎈주가 한국에 공식적으로 파견한 임업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독일로선 지금 우리나라가 해외 저개발국가에서 벌이는 ‘해외 개발원조’사업 같은 것이 한독임업경영협력사업이었고 키네크루스씨는 국토개발사업이 한창이던 70년대 후반, 흙먼지 날리는 한국에 도착해 경남 울주군의 산골 마을에 배치되어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을 하루 종일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쌀밥이 아니라 딱딱한 빵이 필요했고, 습관이 안되어 온돌엔 앉지도 못하는 이들이 74년부터 무려 20년 간 진행된 사업에 참여하여 우리숲을 함께 가꾸었습니다. 이 사업이 우리나라 임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제가 잘 모르지만, 사업에 참여했던 임업계의 원로 마상규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열악한 조건에서 독일인과 함께 했던 도전과 실험은 우리 임업에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공공재인 나무는 효율높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키네크루스씨와 마주 앉아 산림바이오매스산업에 대해서도 긴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수 십 년간 임업사로 일 해 온 그는 2000년대 이후 가파르게 성장해 온 독일의 산림바이오매스 산업에 대해 ‘걱정도 많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공공재인 나무를 효율높게 사용할 기술적 방법’이 필수이고 ‘목재산업에 쓰일 나무가 버려지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염려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의 산림바이오매스 산업은 목재산업 부산물과 임업부산물을 사용하는 산업입니다. 독일 펠릿산업협회 발표에 따르면 독일에서 생산되는 펠릿의 90% 가 제재소에서 나오는 톱밥을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200만톤의 펠릿이 거의 전량 독일의 가정용 난방에 사용됩니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지난 2000년 들어서면서 나무를 사용하는 보일러들의 효율이 95%를 넘어섰습니다. 영국은 2015년 한 해 만 우드칩 소형 열병합발전이 150여기 이상이 설치 되었고 스위스는 지금 가정용 나무 보일러에도 전기집진기를 사용하게 하여 더 깨끗한 난방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분산형 에너지공급으로 에너지를 자립하는 산촌마을 뿐만 아닙니다. 독일이 매년 발표하는 바이오에너지마을은 2017년까지 총 147개가 인증을 받았습니다.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야 바이오에너지마을이 되는데, 이때 가장 핵심적인 설비가 ‘나무에너지 마을중앙난방 Holzenergie Waremenetz’입니다. 실제 독일남부 검은숲의 St.Peter 마을에 가보면 반경 50km 이내의 산주들이 스스로 조합을 결성해 연료를 공급하고 주민들이 에너지조합을 만들어 마을공용보일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수익률이 낮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기름값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1년 내내 온수를 공급받습니다. 화목보일러로 인한 사고도 사라지고 집집마다 겨울철 보일러 관리에 애를 먹을 일도 없습니다. 굴뚝없는 마을은 그 자체로도 부가가치가 높은 친환경주거지가 됩니다.
2010년부터는 소형열병합발전도 여기 가세 했습니다. 나무를 써서 전기도 생산하는 겁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발전시설은 200kW 이하의 매우 적은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지만 열병합발전이므로 마을이 여름철에 필요한 열 수요에 맞추어 전기를 생산합니다. 연간 마을의 최저온수부하는 열병합발전시설이 담당하고 동절기에는 우드칩보일러를 함께 가동시켜 출력을 높이는 겁니다. 정부도 이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설비에 대한 지원은 마을 에너지조합을 결성하면 국가재건은행 KfW 에서 낮은 이자로 가져다 쓸 수 있고 열배관과 열교환기 등 수요자가 부담하는 시설의 80% 이상도 정부가 지원합니다. 열병합발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독일 신재생에너지 법 EEG에 따라 발전시설의 규모별로 차등해서 발전차액을 지원합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주어 작은 마을들이 사업에 도전하도록 하고 20MW 이상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우리나라 나무에너지 산업 올 초 산림청은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활용안을 고시했습니다. 산에 버려지는 나무를 에너지로 쓰겠다는 이 선언은 우리나라 임업과 바이오매스 산업에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짐작됩니다. 벌채나 간벌을 통해 발생하는 임지잔재의 양이 워낙 많고 그간 바이오매스 산업계가 연료 조달에 문제를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간 ‘임업폐기물’취급을 받았던 미이용목을 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산림청의 인식전환은 어찌 보면 ‘임업강국’으로 진입하는 대한민국 산림청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만 합니다. 그러나 숲의 나무를 ‘적재적소’에 쓰려면 그 방법과 제도를 잘 정리해야 합니다. 지난 시기 우리는 해외에서 대규모로 펠릿을 수입해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에 섞어 사용했습니다. ‘펠릿을 해외로부터 구입하는데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감사원의 지적도 있었지만 발전효율이 35% 수준인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무를 사용해 발전하게 되면 나무 3그루를 써서 2그루는 대기중에 버리는 일에 정부가 지원한 셈이라 시민사회의 호응을 받을 수 없는 일임은 자명했습니다. 연료의 장거리 운송과 저장시의 탄소배출, 더 값싼 연료를 찾게 되면서 비약적으로 늘어난 폐기물사용 등으로 신재생에너지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애초의 RPS 도입 목적마저 퇴색해 버려 이제 대규모 수술은 불가피 해졌다고 보입니다.
존경하는 산림청장님 앞서 말씀드린 은퇴한 독일임업사 키네크루스씨를 찾아가면 그의 부인은 긴 한국체류 동안 익힌김치를 담가 지금도 쌀밥과 함께 내 줍니다. 한 번은 그의 장작피운 거실에서 울산 울주 일대의 숲을 담은 헬리캠 영상을 함께 본 적이 있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가 “영남알프스라고 불릴 만 하다”고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우리숲이 독일의 알프스와 식생이 같을 순 없지만 숲을 가꾸는 마음과 나무 사용의 원칙은 지구상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지켜져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무를 에너지로 사용할 때도 지속가능성이 유지 되어야하고 나무자원의 단계적 사용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산림청이 고심끝에 내 놓은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는 마을단위 열공급사업과 소규모 열병합발전에 우선적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가까운 숲에서 연료를 조달하면 운송과 저장에 따른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고 지역마다 에너지를 생산하면 에너지생산과 운영을 통한 부가가치가 지역에 머뭅니다. 작은 규모의 열병합발전으로 80% 이상의 에너지를 전기와 열로 전환할 수 있으며 굴뚝없는 마을들은 화재사고도 없고 생태마을로 조성되므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산림청이 원칙을 지켜주세요 70년대 우리의 숲을 가꾸는 일에 힘을 보탰던 키네크루스씨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면 이제 우리나라의 나무사용에 대해 설명을 해 줄 차례입니다. 그들의 도움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나라가 임업강국에 도전하고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과 한국이 공들여 심은 나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원칙’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확인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산림청이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로 나무 에너지 산업의 원칙을 다시 정리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018년 3월 20일 주식회사 나무와에너지 대표 이승재 드림
사진- 1979년 산림녹화에 동원된 사람들의 휴식 / 임업사 개르트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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