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9,30-37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하늘이 이쁘죠? 구름도 예쁘고. 여기는 정말 구름이 예뻐요.
또 저녁이 되어 석양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면 천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이 볼 때 제가 터를 잘 잡은 것 같습니까?
기가 막히죠. 성모님이 주신 땅 같아요.
그리고 느티나무 신부로 한평생 불리고 살았는데 500년 된 느티나무 있는 대로 데려다주셨죠.
그 대신 이 정원을 가꾸려면 힘은 들죠.
진 꽃은 잘라내야 하고 또 잡초도 뽑아야 해요.
그런데 나는 잡초를 뽑을 때마다 늘 미안하다고 그래요.
잡초냐 꽃이냐 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에요. 그죠?
잡초들도 보면 꽃이 피거든요. 잡초도 이뻐요.
그 대신 저는 새카매져 갑니다. 손이고 뭐고.
매일 나와서 땡볕에서 일해야 하니까.
그런데 일을 안 하면 그냥 잡초밭이에요. 어쩔 수가 없어요, 계속 일해야 해요.
또 나무 전지도 다 해야 하고.
그런데 사실 배티부터 늘 해왔던 일이고, 천성이 부지런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누구한테 물어볼까? 난 강론할 때 묻는 재미 때문에 강론해요.
토마스 눈에 딱 띄네. ‘저한테 물어봐 주세요’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네.
토마스는 어떤 욕심이 있어요?
살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내려다봤을 때 어떤 욕심이 있어요?
서울 방장은 어떤 욕심이 있어요?
(대답)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 그렇죠. 또 존경받고도 싶고.
지금 난 여러분한테 다 물어본 거예요. 모두 대답했죠?
그런데 아무튼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철학적으로 인간의 4대 욕심이라는 게 있어요.
첫 번째는 생명에 대한 욕심, 두 번째로는 물질에 대한 욕심, 세 번째로는 권력에 대한 욕심,
네 번째는 자기 종족 보존의 욕심이 있다 그래요.
그런데 난 이걸 보면서 나는 아무 관계가 없네.
그래도 한번 나한테 물어봐 주실래요, ‘신부님 무슨 욕심이 있으세요?’
강론 준비하면서 교우들이 나한테 물을 때 내가 어떻게 솔직히 대답해야 할까, 내가 무슨 욕심이 있을까 생각했더니,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내가 갖고 있는 욕심은 딱 하나, 늘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요.
어젯밤에도 가든에 나와 예수님 보며 기도했고, 하루에도 이분 앞을 지날 때마다 기도 해요.
‘주님 옛날 2천 년 전 주님 그 능력 좀 저한테 좀 주세요.
물론 지금껏 40년 동안도 주님이 능력 주셔서 사제의 손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치유 받고 구원받았지만, 좀 더 많이 주세요.
너무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제 유튜브 강론만 들어도 암 환자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낫게 해주세요.
저한테 그런 능력 주셔도 교만하지 않을게요’.
늘 그 기도해요.
‘은퇴 사제의 삶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저한테 그런 능력 주세요.
예수님 쫓아다녔던 사람들이 옷자락만 잡아도 낫지 않았습니까? 사제의 옷자락만 잡아도 좀 낫게 해주세요.
이제껏 주신 은혜도 한도 끝도 없이 많지만 조금 더 욕심 좀 부리고 싶어요.
그리고 절대 저 교만하지 않을게요. 맹세할게요.’
저는 그런 욕심이 있어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연결된 욕심이지만 두 번째 욕심은 ‘어떻게 하면 신자들을 좀 행복하게 해줄까?’
그래서 저는 본당 신부로 있었든 아니면 특수 사목 성지 신부로 있든 간에,
그 자리에 머무는 동안 늘 제 머릿속은 ‘신자들이 이곳에 와서 행복을 느끼고 가야 한다.’
영적 행복.
저는 늘 신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랬어요.
‘사목은 경영이다.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굉장히 체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지건 본당이건 교우들이 차에서 내리면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리게 해놨어요.
그리고 잘 정돈된 정원 그리고 깨끗한 성모님상 앞에서 기도하고 마음의 준비 후 성당에 들어가서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사를 봉헌하고, 또 잘 준비된 강론을 통해서 신자들이 성체를 영 할 준비를 시켜야 한다.
그렇게 준비된 강론을 듣고 성체를 영 할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 성체의 힘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듭나겠는가.
그래서 일주일 동안 정말 마음고생하다가 옮겨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억지로 ‘내가 죽어도 성당에서 죽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주일 미사를 와서 이 일련의 치유 과정을 통해 미사 끝나고 돌아갈 때는 전혀 다른 환한 얼굴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이
사목자들의 이건 의무요 책임이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한평생을 어느 위치에 있든지 간에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은 '예수님 닮은 사제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힘을 저한테 좀 주십시오.
너무너무 아픈 사람들이 사방에 많습니다. 그냥 전화만 해도 치유되게끔 힘주십시오.
카톡을 통해서도 치유의 힘이 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그 얘기를 꼭 했어요.
‘그거 주신다고 나 건방 떨지 않겠습니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져요.
사제의 카리스마를 통해서 신자들은 오게 돼 있어요.
주님이 주신 카리스마를 통해서 신자들은 목자들을 보러 와요.
그렇지만 일단 오고 난 다음에 사제는 비켜줘야 해요.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줘야 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예수님 앞에 떡 버텨서 가지고 그게 바로 뭐야?
교주예요. 교주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세례 줄 때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로 알았죠.
그런데 참 메시아가 나타났을 때 세례자 요한은 뭐라 그랬어요?
‘나는 저분의 신발 끈도 풀어드릴 자격이 없다. 저분을 갈수록 커져야 하나 나는 갈수록 작아져야 한다.’ 하면서 비켜줬잖아요.
늘 내가 묵상하는 화두는 그거예요.
‘내가 혹시라도 예수님 앞을 가로막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저는 늘 신자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한 발 뒤로 물러서요.
그래서 난 기찻길을 좋아해요. 항상 그 선을 유지 시켜요.
아마 그것이 내 42년 동안 사제 생활의 어떤 비결이라면 비결이에요.
본인이 알아채게 만들죠. ‘신부님한테는 여기까지, 더 접근하면 안 되는구나.’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을 모시고 3년 동안 살았던, 또 예수님의 업적을 눈으로 보고 그 숨결을 느꼈던 열두 제자들이
자리 다툼하다 예수님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인간이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의지는 본능적이라 그럽니다.
역사를 볼 때 짧은 권세를 위해서 독재자들이 얼마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죽이고 합니까?
우리 주변, 직장, 또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어떤 작은 기득권을 얻으려는 권력 싸움이 눈에 보이지 않게 치열할 때가 있어요.
본당에서도 액션 단체장으로 있다 그 직책에서 물러난 후 평단원으로 더 겸손히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나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라는 그것 때문에,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감투싸움을 하는 교우들을 보면 마음이 몹시 아프죠.
저 자리가 무슨 자리길래?
어느 본당에 부임해 단체장들을 쭉 둘러보니 꾸리아 단장을 혼자서 12년 동안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사람이 없나, 그 자매를 불러 너무 오래 십자가를 지고 계셨다고 좋게 얘기했어요.
그래서 공로패도 하나 주고.
그런데 이 자매는 그 자리를 놓기 싫었던 거예요.
돌아다니면서 내 욕을 하고 레지오 단원들을 다 분열시키고 있었죠.
12년 레지오 단장 물러나는 것이 싫어서.
제가 피정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본당의 간부나 봉사자들은
‘내가 마땅히 그 자리에 있을 만하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라기에
주님께서 사람 만들어 주려고, 신앙인 만들어 주려고 그 자리에 앉혀 놓으신 것이라는 생각을 겸손하게 하고 살아야 한다.’
유세 떨지 말라고 그랬죠.
성모 회장 자격이 있어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본당 총회장 자격이 있어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라도 안 앉혀 놓으면 개판으로 살까 그 자리에 앉혀 놓는 것이니 건방 떨지 마라.
여러분들.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제일 비싼 땅이 어디예요?
명동? 소공로 어디라 하던데, 아무튼 비싼 땅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죠.
첫 번째 인간들이 많이 밟고 다녀야 하죠. 그런 땅일수록 비싸겠죠.
저 산골짜기 햇빛도 안 드는 그런 땅은 몇백 원 가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왕래가 잦고 번잡하고 많아, 많이 밟힐수록 비싼 땅이죠. 맞죠?
그리고 또 아주 달고 단 열매가 맺어지려면 그 조건이 뭐예요?
더러운 것을 많이 끌어안아야 해요.
영적으로 주님 보시기에 비싼 영혼이 되려면, 교우들한테 많이 밟힐 각오를 해야 해요.
교회에 봉사자로 일하면서 밟힐 생각하지 않고 봉사자로 일한다면, 자격이 없는 사람이죠.
교회 일 하다 보면 참 별것도 아닌 게 나를 우습게 아네, 자존심 팍팍 상할 때 있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정 못 받고.
요셉피나, 인정받고 싶다고 했죠?
사람한테 인정 안 받아도 돼요. 저분한테만 인정받으면 돼요.
일하다 누가 밟으려고 하면 안 밟히려고 버둥대지 말고 그냥 엎드려, 나 밟고 지나가라고.
‘나 밟아서 네 속이 시원해지면 실컷 밟아, 내가 많이 밟힐수록 주님은 나를 비싼 영혼으로 만들어 주신다.’라는 마음을 갖고
밟으라 하세요.
또 나를 통해서 귀한 영적 열매가 맺어지려면 우리 신자로 살아가면서 봉사자로 살아가면서 더러운 거 끌어안을 각오 해야죠.
레지오 주회 갔는데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꼭 그 말 끊고 톡톡 쏘아붙이는 여자가 있어.
아주 꼴도 보기 싫어.
우리 사실 살다 보면 내 얼굴에 ‘퉤’하고 침만 안 뱉었을 뿐, 정말 모욕적일 때가 있어요.
실컷 침 뱉으라고 하세요.
‘네가 뱉는 그 더러운 거 내가 다 받아들인다. 그래야 주님은 나를 통해서 귀한 열매 맺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비싼 땅이 되려면 밟혀야 하고, 귀한 열매가 맺어지려면 더러운 것 끌어안을 각오를 해야 해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 모습이야.
그런데 오늘 12사도들은 누가 높은 자리에 가느냐고 싸우고 난리가 났었잖아요.
주님 볼 때 얼마나 한심스러웠겠어.
세상에 3년을 그렇게 떠들었건만, 아이고.
그래서 오늘 예수님이 뭐라 그래요?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하고 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한다.’
밟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 더러운 것을 다 끌어안을 각오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해되시죠?
꼴찌가 되고 귀한 땅이 되고, 비싼 열매를 맺으려면 중요한 3대 봉사를 꼭 해야 해요.
첫 번째 기도 봉사를 해야 해요.
두 번째 몸 봉사를 해야 해요.
세 번째 물질 봉사를 해야 해요.
이 3대 봉사를 해야 말찌가 될 수 있고, 밟힐 힘이 생기고, 더러운 것 끌어안을 용기가 생겨요.
이 3개 중에서 ‘기도 봉사’가 안 되면 두 번째 세 번째도 안 돼요.
기도 봉사가 안 되면 몸 봉사도 안 나오고 물질 봉사도 안 돼요.
동의하시죠? 기도 먼저 해야 해요.
기도해야만, 몸으로 하는 봉사라든지 또 교회를 위해서 내 물질을 나눠야 할 때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내놓을 수 있어요.
어떤 이들은 기도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열매가 없어.
그것은 자기 혼자 기도하는 척한 거지, 기도가 아니었던 거죠.
참다운 기도 봉사를 해야 해요.
겉치레의 기도가 아니라, 마지못해 안 하면 손해 볼 것 같으니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가슴 절절한 기도를 해야 해요.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한테는 자연적으로 내 몸 움직여서 봉사할 곳을 찾아다녀요.
시키지 않아도 성당 가면 빗자루 들고 화장실 청소 먼저 해요.
굴러다니는 휴지 조각 쫓아다니면서 줍고 들어가요.
‘신부님, 저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행동이 안 따라요.’
그러면 기도가 잘못된 기도겠죠?
참다운 기도를 하면 반드시 몸으로 하는 봉사, 또 정성 어린 물질 봉헌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 봉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너무 가진 게 없어.
그럴 때는 몸 봉사라도 해야죠, 몸은 건강하니까.
기도 봉사라도 해야죠.
‘신부님 집에서도 매일 일하는데 성당에 와서도 또 일해야 해요?’
하느님 계신 집을 내 집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그런 몸 봉사를 해야죠.
여러분 성당에 가서 화장실 청소하신 적 몇 번이나 되세요?
더러우면 불평이나 하고 나왔죠. ‘아휴, 성당 화장실이 뭐야?’
아니, 성당 화장실은 닦는 사람이 정해져 있나요?
더러우면 물 떠다가 수세미로 자기가 박박 닦고, 지가 팍팍 닦아야지요.
그것이 바로 걸레의 삶이잖아요, 그것이 바로 밟히는 삶, 받아들이는 삶이잖아요.
이 세 가지 봉사를 성실히 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들어 올려주신다는 진리를 우리는 잊어버리면 안 될 겁니다.
낮아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신앙은 높아지려고 하는 자기의 본능을 이기는 것, 그 싸우는 과정이 바로 신앙이죠.
신앙은 본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갑옷을 입고
이 미사 중에 내리는 은총의 샘물을 마음껏 마시고 또 한 주일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