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을 앞둔 18대 국회를 향해 국민적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다.
일은 안 하고 제 밥그릇만 챙기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고질병을
지켜보던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선 모양새다.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위(위원장 이경재 의원)는 선거구 획정
작업을 하면서 지역구 통폐합이라는 헌법의 권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지역구 수를 늘리는 후안무치의 행태를 보였다.
작년에 세비를 인상하고 각종 수당을 신설한 18대 국회 앞에는
미처리 법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이미 선거전에 뛰어든
국회의원들이 언제 이 숙제를 할지는 불투명하다.
이 와중에 날아든 일본 국회의 세비 삭감과 의원 수 감축 추진
뉴스는 국민 감정에 불을 질렀다. 현재 인터넷과 트위터에는
“이참에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이자”는 제안이 나오고
이에 대한 뜨거운 호응이 쏟아지고 있다.
‘6590’.
2월 1일 현재 18대 국회 앞에 쌓여 있는 미처리 법안의 수다.
18대 국회에서 의원 발의나 정부 제출로 접수된 전체 법률안
(1만3765건)의 47.9%에 이르는 숫자다. 의원 발의 법안만
따지면 1만2077건의 법률안 중 절반이 넘는
6170건이 서랍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정부 제출 법안은 전체 1688건 중 24.9%인 420건이 미처리)
잠자고 있는 법안 중에는 최근 논란이 된 대학 기성회비 문제를
해결할 ‘국립대학 재정 회계법’ 같은 긴급한 것들도 있다.
이 법안은 정부가 2008년 제출했는데 제대로 심의도
되지 않은 채 4년간 방치돼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세금 먹는 하마
국정의 발목을 잡는 우리 국회의 이런 한심한 생산성은 국회의원의
존재 자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일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도대체 왜 필요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의원한테 들어가는 엄청난 세금을 생각하면 더욱
분통이 터진다. 국회의원들의 한 해 세비는 1억2439만7420원.
억대 연봉자다. 한 달에 1036만6443원씩 받는다.
2010년까지만 해도 국회의원 세비는 986만9733원이었지만
작년에 5.1%를 인상하면서 억대 연봉자가 됐다.
세비와는 별도로 작년에 가족수당(매달 배우자 4만원,
20살 이하 자녀 1인당 2만원)과 자녀학비보조수당
(분기당 고등학생 44만6700원,
중학생 6만2400원)도 신설했다.
한 번이라도 국회의원을 하면 65세부터 죽을 때까지
매달 120만원의 노후보장 연금도 받는다.
연간 1억5000만원, 선거 때는 3억원까지 정치
후원금도 걷을 수 있다.
국회의원 한 사람당 딸린 식구에 들어가는 돈도 엄청나다.
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 각 2명, 6급·7급·
9급 비서 각 1명 등 모두 7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5급 비서관은 원래 1명이었는데 2010년 의원들이
법을 고쳐 1명 더 늘렸다. 이들에게 드는 인건비는
연간 3억8000여만원이다.
국회의원 299명 전체로 치면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이다.
의원들은 월급 120만원의 인턴도 2명씩 채용할 수 있다.
이런저런 비용을 다 합하면 의원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이 매년 5억원을 훌쩍 넘는다.
여기다 200가지에 이르는 특권과 국회의원을 뽑느라
국고에서 투여되는 선거비용(약 3000억원)까지 고려하면
국회의원 유지비용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 ‘세금 먹는 하마’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민주당 정부가 국회의원 세비를 8% 이상 깎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본에서도 월 129만4000엔
(약 1940만원)의 세비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어 왔는데,
이번 세비 삭감은 소비세 인상에 따른 서민들의 아픔을
고려한 조치라고 한다.
세비 인상만 봐온 우리로서는 무척이나 신선한 소식이다.
세비를 깎는 일본의 국회는 우리보다 생산성이 높다.
인구 대비 의원 수부터 적기 때문이다.
일본의 중의원 지역구 의원은 300명으로 우리의 지역구 의원
(245명)보다 많지만 일본은 인구가 1억3000만명이고
우리는 5000만명이다. 국회의원1명이 대표하는 국민 수가
일본은 26만명인 데 반해 우리는 16만2000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만 비교하면 우리의 국회의원 수가 일본보다
60% 정도 많은 셈이다.
미국은 일본이나 우리보다 인구대비 의원 수가 더 적다.
하원 1명당 약 70만명의 국민을 대표한다. 인구 3억1000만명의
미국은 이 하원의원 수 자체를 435명 이내라고 못 박아 놓고 있다.
미국은 1911년 이후 하원의원 수에 변화가 없다. 이밖에 인구가
1억9000만명인 브라질과 1억5000만명인 멕시코의 의원
1인당 대표성도 각각 37만명, 21만명에 이른다.
분명 우리는 인구 대비 최다 의원 국가군에
속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100명으로 줄이자”
우리도 인터넷, 트위터 등에는 지역구를 소폭 조정할 게 아니라 국회의원 수를
대폭적으로 줄이자는 의견이 제시돼 호응을 얻고 있다. 예병일 코리아
인터넷닷컴 대표이사는 최근 트위터에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줄이자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는 급속도로 리트윗되며 트위터를 달구고 있다.
예병일 대표는 “국민이 나서서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원에게 맡길 경우 지역구 조정이 합리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지역구 조정 권한을 국회의원의 손에서 빼앗아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 이현출 정치의회팀장은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상설화하고 권한을 강화해 예측가능한 정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며
“정치인에게 맡기면 답이 쉽게 안 나오는 것인 만큼 선거구 획정작업을
민간 등 외부에 위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박명호 교수(정치학)는 “통일 등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현재 우리의 국회의원 수가 그렇게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직능 대표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현실을 감안해 지역구는 줄이고
비례대표는 늘리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계명대 김관옥 교수(정치학)는 “IMF 때 국회의원 수를 20명 줄였지만
곧 원상회복 되고 말았다”며 “결국 지역구 조정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고 하면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를 줄여 오히려 개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