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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스타들의 소소한 과거 이야기’ 6편 – 바 입니다.
* 평어체 양해 부탁 드립니다.
* 동영상은 유투브 펌
바 – 버스트(Bust)
드래프트 픽이나 FA 영입에 실패하는 것을 뜻하는 ‘버스트(Bust)’는 조금 더 풀어서 풀이해 보면 큰 기대를 갖고 거액 혹은 높은 픽 순번으로 선수를 데려왔으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결국 구단의 그 선택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겠다. 매해 드래프트 때마다 버스트 후보를 각 매체마다 선정하고 있을 정도로 드래프트를 보는 묘미이자 구단에서는 아주 싫어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NBA 드래프트에서 대표적인 버스트는 누가 있었을까.
대학무대 챔피언
(1) 크리스찬 레이트너(1988-1992, 듀크)
NCAA 커리어 기록 : 148경기 16.6점 7.8리바운드 1.8어시스트 야투 57.4% 3점 48.5%
우승 : 1991, 1992(2회) / 1991 토너먼트 MOP
NBA 커리어 기록 : 868경기 12.8점 6.7리바운드 2.6어시스트 야투 48.0% 3점 26.1%
드래프트 픽 순위 : 1992년 전체 3번
여기 나올 나머지 선수들에 비하면 크리스찬 레이트너는 ‘버스트’로 불리기에는 다소 가혹할 수 있다. 미네소타에 1992년 전체 3번으로 지명되어서 루키 시즌부터 18.2점 8.7리바운드 2.8어시스트에 야투 성공률 47.4%를 기록하였고 드래프트 동기가 샤킬 오닐과 알론조 모닝이라는 말도 안 되는 괴물 빅맨들(이 둘은 나란히 루키 시즌에 20-10 + 3.5블락 기록, ROY는 샤킬 오닐)이라 그렇지 드래프트 풀이 약한 시즌이었다면 ROY도 충분히 노릴 수 있는 기록을 루키 때부터 보여줬으며 96-97시즌에는 애틀랜타 소속으로 올스타까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찬 레이트너의 NCAA 커리어가 워낙 독보적이면서도 센세이션했기 때문에 NBA에서의 활약이 많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듀크의 2년 연속 우승 당시 독보적인 에이스가 레이트너였으며 1991년에는 토너먼트 MOP(MVP 개념), 1992년에는 켄터키와의 8강에서 역전 위닝 버저비터를 터뜨리는 등 대학교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레이트너의 버저비터는 지금도 NCAA를 상징하는 장면에서 빠지지 않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결국 레이트너는 이때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1992년 ‘드림팀’으로 불리던 미국 국가대표에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 이름을 올리고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등과 금메달도 목에 건다. 그리고 전체 3번 픽으로 당시 창단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던 최약체 팀, 미네소타에 지명되었고 괜찮은 활약을 이어가지만 네 번째 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로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애틀랜타에서 맞은 두 번째 시즌에 올스타까지 선정되지만 애틀랜타 생활도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그 후로 디트로이트, 댈러스, 워싱턴 등을 전전하며 저니맨에 가까운 커리어를 보냈던 레이트너. 버스트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커리어이며 정교한 외곽슛과 평균 3~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을 정도의 센스 있는 패싱을 감안할 때 개인적으로 90년대보다 현대농구에 훨씬 더 걸맞는 빅맨이었다고 보기에 시대를 조금은 잘못 타고난 선수(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이 드래프트 동기인 것만으로도..)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찬 레이트너 위닝 역전 버저비터 vs 켄터키, 1992년 NCAA 토너먼트 8강]
(2) 타일러 핸스브로(2005-2009, UNC)
NCAA 커리어 기록 : 142경기 20.2점 8.6리바운드 1.1어시스트 야투 53.6% 3점 31.6%
NCAA 우승 : 2009
NBA 커리어 기록 : 428경기 6.7점 4.2리바운드 0.4어시스트 야투 43.9% 3점 13.6%
드래프트 픽 순위 : 2009년 전체 13번
타일러 핸스브로가 뛰었던 2000년대 중후반은 고교 스타들의 직행이 금지되면서 대학교를 1년만 뛰고 프로로 가는 ‘원앤던’이 득세하기 시작했던 시절이다. 그리고 대학 농구 특유의 선후배 문화와 끈적함, 팀플레이를 좋아하던 팬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우승을 안겨준 것이 2009년 UNC였으며 3~4학년 고학년들이었던 타일러 핸스브로, 웨인 엘링턴, 타이 로슨, 대니 그린 4인방에 1학년인 에드 데이비스가 벤치에서 뒤를 받치는 이상적인 대학 농구 라인업 구성을 했던 팀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에이스는 핸스브로로, 이 시즌 평균 20.7점 8.1리바운드 야투 51.4%에 경기당 평균 8.7개의 자유투를 시도할 정도로 골밑을 씹어먹은 빅맨이었다.
핸스브로의 활약은 1학년 때부터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2005년 3월, 우승을 차지한 UNC는 당시 주축이었던 레이몬드 펠튼, 션 메이, 라샤드 맥칸츠 등은 물론 1학년이었던 마빈 윌리엄스까지 프로로 진출하면서 05-06시즌 프리시즌 랭킹에도 들지 못했지만 시즌이 끝날 때는 10위까지 올랐으며 무려 3번 시드로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이 중심에는 당시 신입생이었던 핸스브로의 맹활약이 있었다.(18.9점 7.8리바운드) 특히, 대학농구 최대 라이벌인 듀크 원정에서 27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끈 경기는 핸스브로의 강인한 멘탈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경기였다.
2009년, 우승 직후에 로터리 픽인 13번 픽으로 화려하게 NBA에 입성한 핸스브로는 그러나 NBA에서의 커리어는 짧고 가늘었다. 2년차 시즌이었던 10-11시즌, 11.0점과 5.2리바운드가 커리어 하이였으며 7시즌, 428경기만 코트를 밟은 채 NBA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타일러 핸스브로 27점 10리바운드 vs 듀크]
(3)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2011-2012, 켄터키)
NCAA 커리어 기록 : 40경기 11.9점 7.4리바운드 1.9어시스트 야투 49.1% 3점 25.5%
NCAA 우승 : 2012
NBA 커리어 기록 : 446경기 8.4점 5.4리바운드 1.2어시스트 야투 47.4% 3점 27.2%
드래프트 픽 순위 : 2012년 전체 2번
NCAA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우승 가운데 하나이며 심지어 주축이 1~2학년으로 구성되어서 더욱더 충격을 안겨줬던 11-12시즌의 켄터키. 특히 신입생 듀오로 내/외곽에서 상대 공격수를 그야말로 탈탈 터는 압도적인 수비력을 보여준 앤써니 데이비스와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이하 MKG) 듀오는 상대팀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수비수들이었으며 이 둘은 나란히 2012년 드래프트 1,2번 픽으로 NBA에 입성한다.
MKG는 입단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케빈 듀란트의 스몰포워드 빅3를 필두로 윙맨 전성시대였던 NBA에서 포인트가드와 센터 정도를 제외하면 어떤 포지션의 선수도 막아낼 수 있는 피지컬과 수비력이 있다는 점에서 포텐셜을 크게 인정받았다. 6-6으로 키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105kg이라는 탄탄한 체구, 그리고 7-0으로 신장 대비 15cm 가량이 긴 윙스팬, 거기에 괴물 같은 운동능력은 스카우터들이 MKG를 그냥 지나치치 못하는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불안요소로 지적받았던 공격력에서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결국 MKG의 2번 픽은 샬럿 호네츠(당시는 밥캐츠) 입장에서 완전히 실패한 픽이 되고 말았다. 446경기를 뛰는 동안 3점슛 시도 103개, 성공 28개라는 처참한 수치의 외곽슛이 이를 대변해주는 스탯이며 상대 수비는 MKG의 외곽을 완전히 버려두는 수비 전략을 구사했고 오픈 상황에서 메이드는커녕 시도조차 망설일 수밖에 없는 MKG를 코트 위에서 오래 세워두는 것은 자멸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샬럿은 2015년 8월에 MKG에게 4년 52밀이라는 실력 대비 엄청나게 높은 연장계약까지 체결하면서 아주 오랜 기간 그에게 기회를 줬다. MKG가 샬럿에서 뛴 기간은 무려 7시즌 이상이며 19-20시즌 이후로 MKG를 NBA에서 찾아볼 수는 없게 되었다.
드래프트 동기가 3번 픽의 브래들리 빌, 6번 픽의 데미안 릴라드, 거기에 2라운더로 크리스 미들턴과 드레이몬드 그린까지 있는 가운데 무려 2번 픽으로 MKG를 픽한 샬럿은 그 대가로 MKG Era에서 플레이오프 2회(모두 1라운드 탈락)에 2016년 이후 현재까지도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MKG 대학무대 Mix 하이라이트]
(4) 자릴 오카포(2014-2015, 듀크)
NCAA 커리어 기록 : 38경기 17.3점 8.5리바운드 1.3어시스트 야투 66.4%
NCAA 우승 : 2015
NBA 커리어 기록 : 247경기 10.4점 4.7리바운드 0.9어시스트 야투 54.2% 3점 22.2%
드래프트 픽 순위 : 2015년 전체 3번
1학년 주축 우승으로 바로 위에서 언급한 2012년 켄터키와 함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2015년 듀크, 그 중에서도 에이스는 단연 자릴 오카포였다. 오카포는 팀 내 최다 득점, 최다 리바운드, 최다 블록을 기록하면서 야투 성공률 66.4%를 기록, 야투 3개 던지면 2개 이상은 넣어주는 최고의 효율성까지 갖춘 빅맨이었다.
ACC 올해의 선수, All-아메리칸 퍼스트팀 선정 등 1학년이라고는 믿기 힘든 맹활약을 펼치며 듀크를 NCAA 우승까지 시킨 오카포는 포스트업 위주의 공격 스킬과 부족한 수비력, 그리고 포스트에 공이 한 번 투입되면 나오지 않는 블랙홀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3번 픽으로 드래프트에 지명된다. 그 정도로 NBA 스카우터들은 대학 무대에서 오카포의 포스트 공격력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루키 시즌, 17.5점에 7.0리바운드 1.2블락 야투 50.8%로 준수한 기록을 남긴 오카포는 그러나 2년차 시즌부터 조엘 엠비드라는 괴물 빅맨과 포지션 경쟁을 해야 했고 오카포보다 더 좋은 사이즈와 훨씬 더 좋은 수비력, 훨씬 더 넓은 범위의 다재다능한 공격 스킬을 자랑하는 엠비드와 오카포는 경쟁이 될 수 없는 티어의 선수였다. 결국 2017년 12월, 두 시즌만 뛴 채 브루클린으로 트레이드된 오카포는 그 이후 단 한 시즌도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채 20-21시즌을 끝으로 NBA 무대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듀크 동기로 우승 당시에는 평균 4.4득점으로 오카포와 위상이 하늘과 땅 차이였던 그레이슨 알렌이 4학년을 꽉 채우고 오카포보다 3년이나 늦게 NBA 무대에 데뷔해서 준수한 활약을 5시즌째 이어나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오카포가 이렇게 NBA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아쉽다. 물론, 본인 노력의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오카포는 너무나 올드 스쿨 타입의 선수였고 현 트렌드와 전혀 맞지 않는 타입의 빅맨이었다. 만약 오카포가 20년 전에 데뷔했다면? 오카포와 크리스찬 레이트너가 시대를 맞바꿔서 데뷔했다면? 가정은 의미없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었다면 둘 모두 조금은 더 화려하고 행복한 NBA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자릴 오카포 26득점 vs 보스턴 셀틱스(NBA 데뷔 경기!)]
압도적인 개인 퍼포먼스
(5) 애덤 모리슨(2003-2006, 곤자가)
NCAA 커리어 기록 : 95경기 19.7점 5.1리바운드 2.0어시스트 야투 50.3% 3점 36.8%
주요 업적 : 05-06시즌 전미 평균 득점 1위(28.1), 2006 NCAA 16강
NBA 커리어 기록 : 161경기 7.5점 2.1리바운드 1.4어시스트 야투 37.3% 3점 33.1%
드래프트 픽 순위 : 2006년 전체 3번
아담 모리슨만큼이나 롤러코스터가 심한 기구한 농구 커리어가 또 있을까. 농구 코치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 전역을 떠돌면서 살던 모리슨은 아버지가 농구 코치 커리어를 그만두고 난 이후에 곤자가 대학이 위치한 워싱턴 주의 스포케인에 정착했고 어린 소년일 때부터 곤자가의 볼 보이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농구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할 무렵, 청천벽력처럼 당뇨병 판정을 받고 몸무게가 30파운드(약 14kg)나 빠지는 등 고초를 겪지만 강인한 멘탈로 모두 이겨내고 곤자가 대학에 입학한다. 고교 시절, 랭킹 Top 100에 들지 못하는 등 전도유망한 유망주는 아니었지만 모리슨은 1학년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벤치에서 출전, 평균 20분 정도만 뛰었음에도 11.4점을 득점하면서 천부적인 득점 감각을 신입생 때부터 드러냈고 3학년 시즌인 05-06, 전미에서 가장 높은 평균 28.1점을 기록하며 NBA 스카우터들에게 명확한 눈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이 시즌, NCAA 토너먼트 16강에서 UCLA에게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면서 탈락하고 말지만 모리슨의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했고 샬럿 밥캐츠에게 전체 3번 픽으로 지명을 받게 되는 모리슨은 마이클 조던이 샬럿 구단주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픽한 선수라는 타이틀도 붙게 된다.
하지만 부족한 운동능력 탓에 수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대학 시절 본인을 Top으로 만들어준 슈팅력은 NBA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루키 시즌에 효율은 좋지 못했지만 평균 11.8점을 기록하면서 그래도 가능성은 보였지만 무릎 부상으로 2년차 시즌은 통으로 날렸고 3년차 시즌부터는 가비지 멤버로 전락하고 말았다. 09-10시즌, 레이커스 소속으로 반지를 하나 챙겼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모리슨은 10-11시즌부터는 해외 리그를 전전하다가 30세도 되지 않은 2012년, 선수 은퇴를 결정하고 말았다.
비록 NBA에서는 너무나도 초라한 선수 생활을 보냈지만 곤자가 대학에서 모리슨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하며 모리슨이 입학한 후부터 곤자가가 전미 최고의 강호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 그렉 오든(2006-2007, 오하이오 스테잇)
NCAA 커리어 기록 : 32경기 15.7점 9.6리바운드 3.3블락 야투 61.6%
주요 업적 : 06-07시즌 Big Ten 블락 1위, 전미 8위(3.3), 2006 NCAA 준우승
NBA 커리어 기록 : 105경기 8.0점 6.2리바운드 1.2블락 야투 57.4%
드래프트 픽 순위 : 2007년 전체 1번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비운의 1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 그렉 오든은 오하이오 스테잇에서 딱 1년만 뛰고 프로로 나갔지만 그 1년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동기생인 1학년 포인트 가드, 마이크 콘리와 그렉 오든의 인 앤 아웃 콤비는 공수에서 상대팀을 압도했으며 오하이오 스테잇은 전미에서 가장 빡세다는 Big Ten 컨퍼런스 컨퍼런스 일정을 무려 15승 1패로 마치며 당당히 토너먼트 1번 시드를 따냈다.
결승전에서 당시 3학년(조아킴 노아, 알 호포드, 코리 브루어 등)들이 주축이었던 플로리다 대학교에 9점차로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호포드와 노아, 베테랑 트윈 타워이자 미래 NBA 디펜시브 팀에 들 정도(노아는 DPOY)로 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하던 빅맨 듀오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그렉 오든은 무려 25점 12리바운드 4블락을 기록, ‘공격력이 업그레이드 된 빌 러셀’이라는 엄청난 찬사까지 받게 된다.
(케빈 듀란트라는 또다른 괴물이 있었음에도) 전체 1번 픽이 확정적이었던 오든을 가져간 팀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였고 오든의 NBA 커리어는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 것이다. 루키 시즌을 무릎 부상으로 통으로 날리고 08-09시즌에 데뷔한 오든은 61경기에 출전, 21.5분만을 뛰면서 8.9점 7.0리바운드 1.1블락으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 다음 시즌 21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 다음 세 시즌은 부상으로 단 1초도 코트를 밟지 못했다. 13-14시즌, 당시 2연패 팀이었던 빅3(르브론, 웨이드, 보쉬)의 마이애미 히트로 합류했지만 사실상 가비지 멤버에 불과했고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오든의 농구선수로써의 커리어는 암울하고 참담하게 끝이 나고 만다.
[그렉 오든 25점 12리바운드 4블락 vs 플로리다, 2007년 NCAA 결승전]
(7) 마이클 비즐리(2007-2008, 캔자스 스테잇)
NCAA 커리어 기록 : 33경기 26.2점 12.4리바운드 1.2어시스트 1.3스틸 1.6블락 야투 53.2% 3점 37.9%
주요 업적 : 07-08시즌 득점 전미 3위(26.2), 리바운드 전미 1위(12.4)
NBA 커리어 기록 : 609경기 12.4점 4.7리바운드 1.3어시스트 야투 46.5% 3점 34.9%
드래프트 픽 순위 : 2008년 전체 2번
비즐리처럼 빅맨의 사이즈로 내, 외곽을 모두 폭격하는 전천후 스코어러라는 공통점이 있던 케빈 듀란트가 루키 시즌부터 평균 20점을 넘는 대성공을 보여주면서 정확히 1년이 지난 후에 같은 2번 픽으로 NBA에 입성한 마이클 비즐리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도 그럴 것이, 듀란트와 비즐리는 같은 Big 12 컨퍼런스에서 1년을 뛰었으며 대학에서 기록한 스탯도 놀랍도록 비슷했다.(듀란트 : 25.8점 11.1리바운드 1.3어시스트 1.9스틸 1.9블락 기록) 차이가 있다면 듀란트가 조금 더 외곽 지향적이었고 비즐리는 포스트 플레이의 비중이 높다는 점 정도였지만 둘 모두 내, 외곽에서 자유자재로 공격이 가능하고 3점슛 정확도가 높으며 파울도 아주 많이 얻어내는 전형적인 전천후 스코어러 타입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실제로 비즐리의 첫 세 시즌은 듀란트만큼은 아니라도 올스타 레벨까지는 충분히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마이애미 히트에서 루키 시즌 13.9점, 2년차에 14.8점을 기록한 비즐리는 빅3를 영입할 샐러리를 비우기 위한 용도로 3년차 시즌은 미네소타에서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즌에 비즐리느 19.2점 5.6리바운드 2.2어시스트로 득점 뿐만 아니라 농구 전체에 눈을 뜬 느낌이었으며 이때 비즐리의 나이가 고작 22세였음을 감안하면 올스타까지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비즐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코트 밖에서의 이슈였고 마리화나 소지, 과다 복용 등의 자기 관리 실패로 결국 비즐리는 두 번 다시 3년차 시즌 정도의 퍼포먼스도 보여주지 못한 채 NBA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이클 비즐리 39점 11리바운드 3블락 vs 캔자스]
비록 팀은 크게 패했으나 라이벌인 캔자스 원정에서 보여준 이 퍼포먼스는 실로 대단했다.
(8) 짐머 프레뎃(2007-2011, BYU)
NCAA 커리어 기록 : 139경기 18.7점 2.6리바운드 3.7어시스트 야투 45.5% 3점 39.4%
주요 업적 : 10-11시즌 득점 전미 1위(28.9), 3점슛 성공 개수 전미 3위(124개)
NBA 커리어 기록 : 241경기 6.0점 1.0리바운드 1.4어시스트 야투 40.9% 3점 37.2%
드래프트 픽 순위 : 2011년 전체 10번
짐머 프레뎃의 NCAA 활약은 그야말로 ‘언터쳐블’이었다. 존재감 없는 왜소한 백인 가드로 1학년 시즌만 해도 벤치에서 나오면서 평균 7.0점으로 그저 그런 활약에 그쳤던 프레뎃은 2학년 때 16.2점, 3학년 때 22.1점, 4학년 때는 무려 28.9점으로 전미 평균 득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커리어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88.2%였을 정도로 슈팅 기계에 가까웠던 프레뎃은 그러나 (이미지와 달리) 캐치 & 슛에 국한된 선수가 아니었으며 야투 시도 중 2점슛 시도 개수가 3점슛보다 많은, 내 외곽을 넘나들면서 상대 림을 폭격하는 전천후 스코어러에 가까웠다.
프레뎃이 뛴 4년 동안, BYU는 4년 모두 토너먼트에 그것도 한 자리수 시드를 받으면서 진출했으며 4학년 시즌에는 3번 시드를 받았으며 32강인 2라운드에서 곤자가를 상대로 보여준 프레뎃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34점 6어시스트 3점슛 7개) 닥치는 대로 풀업으로 쏘는 3점과 거기서 파생되는 돌파, 패스에 곤자가 수비는 정신을 못 차리고 당했으며 무려 22점차로 대패했다. 비록 다음 라운드인 16강에서 플로리다에 패하면서 프레뎃의 NCAA 여정은 끝이 났지만 10-11시즌의 짐머 프레뎃은 NCAA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역대급 퍼포먼스를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세로 NBA에서도 무려 10번 픽으로 지명을 받은 프레뎃은 그러나 NBA에서 확연한 피지컬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폭망’한다. 장기였던 3점슛은 성공률은 2,3년차에 40%를 넘으면서 준수한 수치를 보였으나 운동능력과 피지컬의 한계로 슈팅 기회 자체를 많이 잡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돌파나 패스로 NBA 수비수들을 뚫을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레벨이 낮은 리그에서는 커리 부럽지 않은 프레뎃이었지만 최상위 레벨의 하드웨어를 지닌 가드들이 즐비한 NBA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며 결국 15-16시즌, 27세에 불과한 나이에 NBA를 떠났다. 18-19시즌에 피닉스에서 아주 잠깐 6경기 뛴 이력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NBA 무대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짐머 프레뎃 34득점 vs 곤자가, 2011 NCAA 토너먼트 3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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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 ㅋ 옆동네 댓글 달고 왔는데ㅋ 아주아주 재미난 글이라 스압없이 정독 했습니다. 재미난게 추억의 선수들 같은데.. 레이트너 말고는 다 릅 후배 아닌가요?ㅎㅎ 핸스브로 참 좋아했습니다. 허슬 그차체!
와 감사합니다!!
랄이 2픽으로 오카포 뽑고 필리가 3픽으로 디러셀을 뽑았다면 어땠을까 전지적 필리 시점에서 가끔 요게 궁금합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
저 당시 듀크는 진짜 엄청 났죠.
그랜트 힐의 저 패스는 진짜…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