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1002고지에서 폭설을
만난 진안 구봉산을 다녀와서!
진안군(鎭安郡)의 역사(歷史)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굴된 바 없으며, 삼한시대
에는 마한의 영토로서 어느 정도 부족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인 난진아현(難珍阿縣)으로 완산주(完山州) 99현
가운데 하나였으며, 월랑(月浪, 또는 越浪)이라고 불리
었다. 백제와 신라가 이곳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공방전
을 벌였는데, 주민들이 살 수가 없어 한 신동(神童)으로
하여금 백일기도를 드리게 하자, 산신령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짓고 탑을 세우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시를 내려, 이 때 세운탑이 상전면 주평리
의 삼층석탑(檜寺洞石塔)이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설화는 이 지역이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로 빈번한
전란에 시달렸던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후 757년(경덕왕 16)에
진안(鎭安)으로 개칭되었고 장계군(長溪郡)의
속현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무염선사
(無染禪師)가 천황사(天皇寺)를, 혜감대사
(慧鑑大師)가 금당사(金塘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초에 진안현은 전주의 속현으로 감무
(監務)를 두었으며, 1391년(공양왕 3)에는 마령현
(馬靈縣)을 겸무하였다.
한편 용담현은 원래 청거현(淸渠縣)으로 진례현
(進禮縣)의 속현이었다. 1313년(충선왕 5)에
용담으로 개칭되어 현령이 파견되었다. 1391년
(공양왕 3)에 현령인 최자비(崔自卑)가 용담
향교를 건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마령현이 통합되어 진안현
으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진안향교가 창건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진안현의 호구수는
169호 772인이었고, 용담현은 86호 274인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복남(李福男)을 비롯한 의병이
웅치(熊峙)에서 용담·진안을 거쳐 전주를 공략하려던
왜병을 격퇴하였다. 진안읍 죽산리 어은동(魚隱洞)
골짜기에서도 왜병과 혈전을 벌였는데, 후에
이 골짜기를 ‘왜너더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589년(선조 22)에 전주사람인 정여립(鄭汝立)이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가 실패
하여 죽도(竹島)에서 자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지방은
청자도요지로 유명했는데, 특히 성수면 도통리 도요지는
초기 청자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어은동성당은 천주교에 대한 거듭된 박해를 견디어내고
이 지방에 천주교를 전파하며 그 명맥을 이어온 성지이다.
1894년(고종 31)에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진안의 동학접주
인 문계팔(文季八)과 이사명(李士明)·전화삼(全和三)·김택선
(金澤善) 등이 봉기하여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1895년에는
남원부 진안군으로, 1896년에는 전라북도 진안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담군이 병합되어 11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24일 장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참가
하였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공공기관 및 학교·
주택 등이 파괴되었으나 산간지대였기 때문에 많은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비밀경비대를 조직
하여 북한군 511명을 사살하고 1,065명을 생포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또한 9·28수복 후에는 주천으로
도주해온 공비들의 약탈이 심해지자 애국청년들이
의용전투대를 조직하여 이들과 대항하다가 33명이
전사하였다. 그 때 전사한 영혼을 위로 하기 위해
대한의백비(大韓義魄碑)가 건립되었다.
1979년 5월 1일에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2월 15 일에 마령면 연장리가 진안읍에,
정천면 구룡리가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에 상전면 설산리가 진안읍에, 정천면 용평리가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1994년 12월 26일에는
동향면의 신송리 일부가 장수군에 편입되었다.
두메산골(1966)
반야월:작사
김광빈:작곡
배호 : 노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
너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
도라지 꽃피던 그날 맹세를 걸고 떠났지
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도
두번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
풀피리 불며 불며 노래 하면서 너와 살련다.
산을 넘어 재를 넘어 옛집을 찾아
물방아 찾아왔네 달뜨는 고향
새소리 정다운 그날 울면서 홀로 떠났지
구름은 흘러 흘러 떠나가도
두번다시 타향에 아니 떠나리
수수밭 감자밭에 씨를 부리며 너와 살련다
2019-03-31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