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의문의 마음 / 성타 스님
'의문' 과 '의심' 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어떨 때 의문을 사용하고, 어느 경우에 의심을 사용할까요?
우리가 마음공부를 할 때 필요한 세 가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奮心), 대의심(大疑心)입니다.
이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큰 믿음의 마음을 내고,
크게 한곳에 집중하여 흐트러지지 않으며, 큰 의심을 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할 내용은 대의심입니다.
의문과 의심은 언뜻 보면 같은 말인 듯싶지만 참으로 다른 의미이며,
우리가 공부를 하는 데 반드시 구별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의심은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저 사람이 안 그랬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랬을 것 같아', '아니라고 하지만 그럴 것 같아',
이렇게 상대가 한 행동이나 말에 대해 믿지 못하는 마음을 의심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마음공부의 세 가지 요소 중
대의심과 대신심은 반대의 뜻이 되고 서로 맞지 않는 말이 됩니다.
처음에는 크게 믿으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크게 믿지 말라고 하니
앞뒤 말이 맞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하라는 말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의심은 의문의 마음입니다.
여기에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의심의 마음은 그 의심되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놓는 일입니다
《금강경(金剛經)》이란 불경이 있습니다.
깊은 내용이 이해는 잘 안 될지 모르지만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대화입니다.
수보리는 끊임없이 부처님께 여쭤봅니다.
이것은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과 저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보리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 답을 해주시는 형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보리가 부처님을 의심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못해서 질문했을까요? 아닙니다.
수보리는 의심을 한 것이 아니라 의문을 가진 것입니다.
마음속에 가지고 내 나름으로 재단하고 만들어서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큰 신심, 더욱 견고한 신심을 내기 위해
궁금하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부처님께 여쭈었던 것입니다.
마음공부의 세 가지 마음 중에서
대의심은 우리가 말하는 의심이 아니라
바로 수보리와 같은 큰 신심을 갖기 위한 '큰 의문의 마음' 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큰 의문의 마음이 있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이것이 정말일까',
'과연 그럴까' 라는 의심이 아니라 '이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라는 큰 의문의 마음을 내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큰 의문의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큰 믿음, 즉 대신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심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갖고 묻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입니다.
의문 없이 생긴 신심은 뿌리가 약해서 작은 의심에도 흔들리고 꺽입니다.
여러분 모두 수보리처럼 부처님께서 귀찮으실 정도로
의문의 마음으로 여쭤야 합니다.
큰 의문을 내는 것, 그것이 바로 '큰 신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멈춘 곳이 행복이라
[출처]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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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타 스님
성타스님은 1952년 불국사에서 월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8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재심호계위원, 포교원장,
불국사 주지 및 회주 등을 지냈고 2017년 4월부터
조계원 원로의원으로 활동했다.
2018년 5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로 품서됐다.
불국사 회주로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성타스님은 경주경실련 공동대표, 경주생명의 숲 공동대표,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역임
첫댓글 금강바리밀다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