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한화갑, 김경재, 한광옥의 老醜(노추)
김지하, 김경재, 한광옥, 한화갑의 노추를 말 한다.
한화갑이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나는 한 친구와 커피를 나눠 마시며 그들을 화제로 개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 친구는 이런 말을 하였다.
“맨털리티는 인간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야. 육신은 인간정신의 예속물에 불과해. 그러니 우리가 인간을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은 결국 맨털리티의 문제인데, 인간의 맨털리티를 그렇게 만든 신의 책임 이라고도 할 수 있지.”
나는 이렇게 반문 하였다.
“우리가 이제 겨우(?)환갑인데, 우리가 너무 오래 살았나? 내가 나이 60에 이런 꼴을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친구의 말이 이어졌다.
“그들은 고희가 넘은 자들이야. 인생 칠십 고래회라고 하지 않던가. 그들이 아무리 가는 젊은이 아쉬워, 별로 남아 있지도 않은 머리칼에 염색을 하고 비대한 몸집을 고급 양복으로 감싸고 다녀도 그들은 너무도 늙은 인간들에 불과해. 한화갑만 해도 나이 일흔 네 살이야. 노인 중에 노인이지. 그들의 사물에 대한 판별력은 시나브로 혼란스러워 지는 거야. 나는 그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너무도 존경하지. 그는 나이 일흔 네 살에 그 힘든 선거를 치루고 대통령이 되어 수구세력들이 말아먹은 대한민국 경제를 살려 낸 초인과도 같은 인물이야. 그 나이에 그렇게 명석한 판단력과 총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인간이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까워. 박정희의 경우를 보라고. 그는 불과 나이 예순 세 살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이 어디서 있었나? 말하자면 관급요정인 궁정동 안가에서 있었다고. 그 옆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처녀들이 시중을 들었지. 그렇다고 걔들이 유흥업소 아이들도 아니었어. 어염집 처녀들이었지. 나이 어린 어염 집 처녀들을 데리고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겼다는 것 자체가 그의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
내가 맞장구를 쳤다.
“김대중선생이 초인적인 위대한 인물이라는 데 나는 동의하네. 이 나라 건국 63년사에 아직 그만한 정치인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고. 박정희, 전두환은 그를 말살해서 바보를 만들려고 작정을 했었지. 하지만 그는 빠삐용처럼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아서 결국 인간승리를 이루고 이 나라를 구제한 것이지. 김지하 시인은 이제 나이 칠순인데 그는 사물에 대한 분별력을 잃었어. 그가 어떻게 수구세력들 앞에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인식의 프레임이 망가진 것이지. 그를 늘그막에 망가지게 만든 것은 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책임이야. 사실 그는 인문학의 천재적 인물인데 그는 지금 멘붕 상태에 이르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위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될 정도이네. 그나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심한 정신적 고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되는 것이지. 인문학적 교양이 망가져 가는 이즈음, 그만한 지식인이 퇴화 되어 간다는 것은 국가적인 불행일세."
나는 내친 김에 말을 이어 나갔다.
"예전에 박정희는 김대중을 확실히 제압 했다고 생각 했겠지만, 그는 형안이 없는 인물이었어. 일 년 후는 고사하고 한치 앞도 못 내다본 인물이었지. 박정희 자료라면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그는 불과 몇년 앞을 못 내다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출세 때문에 만주군관학교로 간 인물이 아닌가. 해방후 국가는 그의 친일행적을 용서하고 그에게 국군의 명예를 부여 했지. 그렇다면 국가의 은혜를 잊지 말고 나라에 충성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당시 남노당의 득세를 예견하고 남노당으로 붙었지. 그는 적발되서 재기 불능의 처지에 몰렸지만, 김일성 남침전쟁이 나자 국가는 또 그에게 기회를 주었어. 군에 복귀 시키지 않았나? 하지만 그는 십년 후에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확실하게 국가를 배신하고 반역을 한거야. 그거 뿐이겠나? 그는 또 십년 후에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 정체성을 더 확실하게 배반했지. 그는 국가에 반역을 밥 먹듯이 한 인물이야. 그러면서 당시 반독재 투쟁을 하던 학생이나 지식인들을 반역죄로 몰았지. 이 세상이 오늘날 본말전도의 세상이 되어 간다면, 박정희가 확실히 선도적 역활을 했다고나 할까? 정치가 사회를 만들어가는 거야. 결국 그는 부하의 손에 단명 했고 김대중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세계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살다가 그만하면 천수를 누린 셈이지. 아쉬운 것은. 독재자들이 그를 못살게 굴지 않았다면 그의 타고난 건강으로 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김 대통령이 좀 더 살았다면 오늘날 한광옥, 김경재, 한화갑의 사태는 없었을지 몰라.“
친구는 김대중의 미망인 이회호 여사의 걱정을 늘어 놓았다.
“나는 고령인 이여사의 건강이 더 걱정일세. 그분은 벌써 천수를 다 누린 연세인데, 그 정도 되면 아무리 총기가 센 여인이라도 약해지기 마련이거든. 이여사가 얼마나 상심하고 있을지 내 가슴이 아프네. 독재정권 하에서 어려운 시절에 이여사는 그들의 밥을 해 먹이면서 거두지 않았겠는가? 나는 최소한 그들이 박근혜 지지로 돌아서기 전에 이여사께 말씀은 드렸어야 한다고 보네. 돌아가신 어른을 본들 그들이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
내가 이렇게 덧 붙였다.
“그래도 그者들은 전라도에 가서 김대중 어른을 앞세우는 연설을 한다더군. 참, 파렴치한 인간들이지. 인간이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존재야. 나는 이 나이에 끼니가 없어 굶어 죽는다 해도 자신의 신념과 전력은 버릴 수 없을 것 같은데....”
친구는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내 말 끝에 덧 붙였다.
“자네는 원래 부러지는 성격 아닌가? 최소한 대나무 같은 맨털리티는 아니지. 자네라면 산에 가서 나물을 뜯어 먹다가 굶어 죽은 백이 숙제 같은 처신을 할 사람이지”
나도 푸념 같은 말을 덧 붙였다.
“사실, 나도 평생을 고지식하게 살아온 것 같은 생각은 드네. 군에서 제대하고 대학 갈 형편은 못 되고 공무원으로 취직이나 할까 해서 나름대로 밥벌이를 하는 중에 열심히 공부 했지만, 도저히 유신독재정권 밑에서 밥 벌어 먹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더군. 그런 와중에 동사무소에서 공무원 아이하고 싸움이 대판 붙었지. 박정희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던 앞에서 그랬다고. 그러니 내가 박정희 정부에서 어떻게 벌어먹고 살 수 있었겠나? 나는 그날로 수험서적 전부를 싸서 불태워 버렸었다네. 자네도 이미 알고 있던 일화이지. 목구멍이 포도청 인지, 그 후에 나는 어느 국영기업에서 몇 년 동안 밥벌이를 했었는데, 박정희의 치적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회사이지. 나는 그 시절을 수치로 여기고 있네. 하기는 엄격히 따져서 내가 박정희 덕으로 밥 벌어 먹은 것은 아니야. 선조들이 일본X들에게 수탈당한 대가를 받아서 지은 회사니 나는 선조들 덕분에 몇 년이나마 밥벌이를 한 것으로 여긴다네.”
친구는 내 말 끝에 이런 말을 덧 붙였다.
“이성과 우상이라는 이영희 선생의 글이 있었지? 이성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우상이 판을 친다는 말인데, 나는 요즘 시나브로 인간들의 이성(理性)이 망가져 간다고 생각 한다네. 가끔 무서운 생각도 드는데, 종교 쪽에서도 무서운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고, 현실 생활에서도 그렇다네. 경상도 어딘가에는 박정희 동상이 커다랗게 서 있다는 것인데, 그를 추앙하는 자들은 시나브로 늘어나면서 이제는 박정희 동상 앞에 엎드려 절까지 하는 상황이 됐는데, 그들의 이성을 탓하기 전에 이 나라 정치가 국민의 의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되는군. 몇 몇 사람들은 제하고 나면 나는 이 나라 정치인들을 정치건달로 여기고 있다네. 개개인이 헌법기관 이라는 것은 헌법에서나 있는 말이지 그들은 헌법기관을 자처할 자격이 없다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늦었다. 나는 대화를 마무리 하고 커피점을 나서면서 그의 의견을 구했다.
“김경재, 한화갑 등 이자들이 과연 이번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 할까?”
그 친구는 대답 대신 깊은 주름을 지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자정도 안 된 시각에 겨울밤은 깊은 어둠에 잠겼다. 그런데 저 멀리 하늘에 드리운 헐레이션(halation)은 무슨 까닭인가. 아직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첫댓글 염병할 자식들...그런 놈들이었다니 부끄럽군 안단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