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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이발사(女理髮師)
나 도 향
입던 네마끼(자리옷)를 전당국으로 들고 가서 돈 오십 전을 받아들었다. 깔죽깔죽하고 묵직하며 더구나 만든 지 가 얼마되지 않은 은화 한 개를 손에다 쥐일 때 얼굴에 왕거미줄같이 거북하고 끈끈하게 엉켰던 우울이 갑자기 벗어지는 듯하였다.
오다노미스(希茶の水) 다리를 건너 고등여학교를 지나 순천당(須川堂) 병원 옆길로 본향(本鄕)을 향하여 걸어가면서 길 거리에 있는 집들의 유리창이라는 유리창은 남기지 않고 들여다보았다. 그 유리창을 들여다볼 때마다 햇볕에 누렇게 익은 맥고모자 밑으로 유대의 예언자 요한을 연상시키는 더부룩하게 기른 머리털이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진데다가 그것이 땀에 젖어서 장마 때 뛰어다니는 개구리처럼 된 것이 그 속에 비칠 때,
“깎기는 깎아야 하겠구나.”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고서는 다시 모자를 벗고서 코 밑으로 거북하게 기어내리는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은 후에 다시 땀내나는 모자를 썼다.
그러자 그는 어떠한 고둥이발관이라는 간판 붙은 집 앞에 섰다. 그러나 머 리를 깎으리라 하고서도 그 고등이발관에는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곳 이발요금은 자기가 가진 재산 전부와 상등하다. 몇 시간을 두고 별러서 네마끼를 전당국에 넣어서야 겨우 얻어가진 단돈 50전이나마 그렇게 쉽게 손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못 되어서 송두리째 내주기는 싫었다. 그리고 다만 10전이라도 남겨서 주머니 귀퉁이에 쟁그렁거리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 얼마간 빈 마음 귀퉁이를 채워주는지 모르는 듯하였다.
전기풍선이 자랑스럽고 위엄있게 돌아가며 제 빛에 번쩍거리는 소독기 놓인 고등이발관을 지내놓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얼마쯤 걸어갔다. 동경 만에서 불어오는 태평양 바람이 훈훈하게 이마를 스쳐가고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이 마치 짐승 튀해내는 가마 속에 들어앉은 듯하게 한다. 옆으로 살수차(撒水車) 가 지나가기는 하나 물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에 흙덩이는 지렁이 똥처럼 말라버린다.
어디 3등이발소가 없나 하고 찾아보았다. 3등상옥(床屋 : 고도야)에를 들어가면 20전이면 깎는다. 학생 머리 하나 깎는 데 20전이면 족하다. 그러면 30전이 남는다.
30전. 지출하고도 잔여가 지출액보다 많다. 그것을 생각할 때 얼마간 든든한 생각이 났다. 그래도 주머니 속에 30전이 들어 있을 것을 생각하매 앞길에 할 일이 또 있는 듯하였다.
교의가 단 둘이 놓이고 함석으로 세면대를 만들어 놓은 3등상옥에 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
주인이 신문을 든 채로 졸고 앉아 가끔가끔 물마른 물방아 모양으로 끄덕끄덕 끄덕거리머 부채로 파리를 쫓는다.
용기가 났다. 의기양양하게 썩 들어섰다. 그리고 주인의 잠이 번쩍 깨이도록,
“곤니치와(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였다. 주인은 잠잔 것이 황송한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굽실굽실하면서 방에서 끄는 짚세기를 꺼내놓으면서,
“어서 오십시오.”
인사를 하고서 저쪽 교의 뒤에 가 등대나 하고 있는 듯이 서 있다. 모자를 벗어 걸었다. 그리고 양복 윗옷을 벗은 후 교의에 나가 앉으면서 그래도 못 믿어서 정가표에 써붙인 것을 곁눈으로 보았다. 생각한 바와 마찬가지로 20전이다.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또 없는 사람은 튼튼한 것이 제일이다. 전차를 타려고 전차표 한 장 넣어둔 것을 전차에 올라서기 전에 미리 손에다 꺼내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래도 튼튼히 하리라 하고 번연히 바지주머니에 아까 전당표하고 얼려받으면서 그대로 받는 대로 집어넣은 50전 은화를 상고해보고 전당표를 보이며는 창피하니까 돈만 따로 한 귀퉁이에다 단단히 눌러 넣은 후에 머리 깎을 준비로 떡 기대앉았다.
머리 깎는 기계가 머리 표면에서 이리 가고 저리 갈 때 그 머릿 속에로 여러 가지 궁리를 한다. 물론 돈 쓸 일은 많다. 그러나 30전이라는 적은 돈을 가지고서 최대한도까지 이익 있게 활용해야할 것이다. 하숙에서는 밥값을 석 달치나 못 내었으니까 오늘 낼로 내쫓긴다고 재촉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돈 부쳐줄 만하지는 못하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어디 가서 거짓말을 해
서 단돈 10원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시부야[澁谷]에 있는 제일 절친한 친구 하나가 살그럭대그럭 돌아가는 머리 깎는 기계 소리와 함께 눈앞에 보인다. 그러나 그놈에게 가서 우선 저녁을 뺏아먹고 돈 몇십 원 얻어와야겠다. 그놈의 할아버지는 그믐날이면 꼭꼭 전보로 돈을 부쳐주니까 오늘은 꼭 돈이 왔을 터이지 ! 나는 며칠 있다가 우리 외가에서 돈올 부쳐주마 하였다 하고 우선 거짓
말이라도 해서 갖다 쓰고 볼 일이지. 그렇다. 그러면 여기서 거기까지 걸어갈 수는 없으니까 전차 왕복에 10전이다. 10전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20전이 남지! 그것은 이렇게 더운데 얼음 10전어치만 먹고 10전은 내일 아침이나 이따 저녁에 목욕을 갈 터이다. 그래 동전 몇 푼이 남는다 할 때 기계가 머리 끝을 따끔하게 찝는다. 화가 났다. 재미있게 예산을 치는데 갑자기 따끔함을 당하니까 그 꿈같이 놓은 예산은 다 달아나고 저는 여전히 교의 위에 앉아 있다.
분풀이가 하고 싶어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러나 어떻게 분풀이를 하랴? 일어나서 때려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책망할 수도 없다. 다만,
“이쿠 아퍼.”
하고 상을 찌푸렸다. 놈은 퍽 미안한 모양이다. 허리를 깝쭉깜쭉하며,
“안되었습니다. 안되었습니다.”
할 뿐이다. 석경 속으로 들여다보니까 미안한 표정이라고는 허리 깝죽깝죽하는 것뿐이다. 허리는 그만 깝죽거리고 입 끝으로 잘못했습니다 소리는 하지 않더라도 다만 눈 가장자리에 참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웬일인지 그놈의 허리만 깝죽깝죽하는 꼴이 아주 마음에 차지 않아서 당장에 무슨 짓을 해서든지 나의 머리 끝을 집어뜯던 보복이 하고 싶어 못 견디었다.
그럴 때 마침 놈이 나의 머리를 조금 바른편으로 틀라는 듯이 두 손으로 지그시 건드렸다. 나도 옳다 하고 일부러 왼편으로 틀었다. 고개를 들라 하면 수그리고 수그리라 하면 들었다. 그리고 일부러 몸짓을 하고 고갯짓을 하였다. 그러면서 석경 속으로 그 놈의 얼굴을 보니까 이마에 내천자(川)를 그리고 눈썹과 눈썹 사이는 말라붙은 듯이 쭈글쭈글하다. 화가 나는 것을 약 먹듯 참는 모양이다.
기계를 갖다놓고 몸을 탁탁 털 적에 긴 한숨 쉬는 소리가 돌린다. 그리고는 솔로 머리를 털면서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본다. 어떤 놈인가 자세히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럴 때,
“진지 잡수셔요.”
하는 은령(銀鈴)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 하나만 가져도 미인 노릇 할 듯한 여성의 소리이다. 깜깜한 난취(亂醉)한 세상에서 가인(佳人)의 노래를 듣는 듯이 피가 돌고 가슴이 뛰고 마음이 공중에 뜬다.
“밥?”
놈은 기계를 솔로 쓸면서 오만스럽게 대답을 한다. 그것으로써 내외인 것을 짐작하였다.
“이리 와서 이 손님 면도를 좀 해드려.”
하는 소리가 분명치 못하게 들리었다. 나는 그 소리를 분명히 이해할 때까지 적어도 2분은 걸렸다. 왜 그런고 하니 여편네더러 그렇게 손님의 면도를 하라고 할 리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할 리가 있기는 있다. 동경서 여자가 머리를 깎는 이발관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마는 자기의 머리를 여자가 깎아준다는 것까지는 아주 예상 밖인 까닭이다.
놈이 들어가더니 년이 나온다. 석경 속으로 우선 그 여자의 얼굴부터 상고하자. 그 상고하려는 머릿속이야말로 좋은 기대와 또는 불안이 엉키었다 풀렸다 한다. 남의 여편네 어여쁘거나 곰보딱지거나 무슨 관계가 있으랴마는 그래도 잘못 생겼으면 낙담이 되고 잘생겼으면 마음이 기쁘고 부질없는 기대가 있다.
석경 속으로 비추었다. 에구머니, 나이는 스물셋 아니면 넷인데 무엇보다도 그 눈이 좋고 힙이 좋고 그 코가 좋고 그 뺨이 좋다. 머리는 흉업다 좋다 할 수가 없고 허리는 흐리호리한데다 잠깐 굽은 듯한데 전신의 윤곽이 기름칠한 것같이 흐른다. 어떻든 놈에게는 분에 과한 미인이요, 만일 날더러 데리고 살겠느냐 하면 한 번은 생각해보아야 할 만한 여자이다.
손이 면도칼을 집는다. 손도 그렇게 어여쁜 줄은 몰랐다. 갓잡아 놓은 뱅어 〔白魚〕가 입에다 칼을 물고 꼼지락거리는 듯이 위태하고도 진기하다. 이제는 저 손이 나의 얼굴에 닿으렷다. 할 때 나는 눈을 감았다. 사람이 경이(驚異)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 통성(通性)일 것이다. 나는 그 칼을 들은 어여쁜 손이 이 뺨 위에 오는 것을 보는 것보다 눈 딱 감고 있다가 갑자기 와 닿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 경이스러운 쾌감을 줄까 하고서 눈을 감았다. 비누칠을 할 적에는 어쩐지 불쾌하였다. 그러더니 잔등에 젖내 같은 여성의 냄새와 따뜻한 기운이 돌더니 내가 그 여자의 손이 와서 닿으리라 한 곳에 참으로 그 여자의 따뜻한 손가락이 살며시 지그시 늘리인다. 그리고는 나의 얼굴 위에는 감은 눈을 통하여 그 여자의 얼굴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뺨을 쓰다듬는다. 비단결 같은 손이 나의 얼굴을 시들도록 문지르고 잘라진 꽁지가 발딱발딱 뛰는 도마뱀 같은 손가락이 나의 얼굴 전면에서 제멋대로 댄스를 한다. 그리고는 몰약(沒藥)을 사르는 듯한 입김이 나의 콧속으로 스쳐들어오고 가끔가끔 가다가 그의 몽실몽실한 무릎이 나의 무릎을 스치기도 하고 어떤 때 나의 눈썹을 지울 때에는 거의 나의 무릎 위에 올라앉을 듯이 가까이 왔다. 눈이 뜨고 싶어 못 견디었다. 그의 정성을 다하여 나의 털구명과 귓구멍을 들여다보는 눈이 얼마나 영롱하여 나의 영혼을 맑은 샘물로 씻는 듯하랴. 그리고 나의 입에서 몇 치가 못 되는 거리에 있는 그의 붉은 입술이 얼마나 나의 시들은 피를 꿇게 하고 타게 하는 듯하랴. 그러나 나는 눈을 뜨지 못하였다. 칼 들은 여성 앞에서 이렇게 쾌감을 느끼고 넘치는 희열을 맛보기는 처음이다. 면도질이 거의 끝나간다. 그것이 말할 수 없이 싫었다. 그리고 놈이 밥을 먹고 나오면 어찌 하나 공연히 불안하였다.
면도가 끝나고 세수를 하고 다시 얼굴에 분을 바른다. 검은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는 것이 우습든지 그 여자는 쌩긋 웃다가 그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이로 깨무는 것은 가슴을 깨무는 듯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프게 좋다. 한 번 따라서 빙긋 웃어주었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아주 특 터져버리었다. 그러고도,
“왜 웃으셔요?”
하고서 은근히 조롱 비슷하게 나의 어깨에서 수건을 벗기면서 묻는다. 나도 일어서면서,
“다 되었소?”
하고서 그 여자를 보니까 또 보고 웃는다.
“왜 웃어요?”
하는 마음은 공연히 허둥지둥해지고 싱승생승해진다. 그래도 대답이 없이 웃기만 한다. 나는 속으로 ‘미친년.’ 하고서 돈을 내리라 하였다. 그러나 그대로 나가는 것은 무미하다. 웃는 것이 이상하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그래서 어디 말할 시간이나 늘여보려고 술이 있으면 술이라도 청해 보고 싶지마는 물을 한 그릇 청했다. 들어가더니 물을 떠가지고 나왔다. 나는 그것을 마시면서,
“무엇이 그리 우스워요.”
하고 그 여자를 지근거리는 듯이 웃어보았다.
“아냐요. 아무것 도 아니야요.”
그 여자는 웃음을 참고 얼굴을 새침하면서 그래도 터질 듯 터질 듯한 웃음이 그의 두 눈으로 들락날락한다. 그 꼴을 보고서, 그의 손을 잡고서 손등을 쓰다듬으며 ‘손이 매우 어여쁘구려.’ 하고 싶을 만치 시룽시릉 하는 생각이 그 여자에게서 감염 되는 듯하였으나 그래도 참고서 요다음으로 좋은 기회를 물릴 작정하고,
“얼마요?”
뻔히 아는 요금을 물어보았다. 구 여자는,
“이십 전.”
하고 고개를 구부린다. 나는 50전 은화를 쑥 내밀었다. 그 고운 손 위에 그것이 떨어지며 나는 모자를 쓰고 나오려 하면서,
“또 봅시다.”
하였다. 그 여자는 쫓아 나오며
“거스른 것을 가지고 가십시오.”
하고서 나를 부른다. 어떻게 그것을 받을 수가 있으랴. 그때에는 시부야[澁谷] 친구도 없고 빙수도 없고 목욕도 없고 하숙에서 졸리는 것도 없다. 나는 호기있게,
“좋소.”
하고 그대로 오다가 다시 돌아다보니까 그 여자가 그대로 서서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기막히게 좋다. 나는 활개를 치고 걸어온다. 그리고는 그 여자가 자기와 그 여자 사이에 무슨 낙인(烙印)이나 쳐놓은 것처럼 다시는 변통할 수 없이 그 무엇이 연결되어진 듯하였다. 그리고는 말할 수 없는 만족이 어깻짓 나게 하며 활갯짓이 나게 한다. 얼른얼른 가서 같은 하숙에 있는 K군에게 자랑을 하리라 하고서 겅정겅정 걸어온다.
오다가 더워서 모자를 벗었다. 벗고서 뒤통수에서부터 앞이마까지 두어 번 쓰다듬다가,
“응?! ”
하고서 얼굴 갑자기 쓴 것을 깨문 것처럼 하고 문득 섰다가,
“이런, 제기.”
하고서 주먹을 쥐고 들었던 모자를 내던질 듯이 휙 뿌렸다.
“그러면 그렇지, 삼십 전만 내버렸구나.”
하고서 다시 한 번 어렸을 적에 간기를 앓으므로 쑥으로 뜬 자죽만 둘째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았다.
〈1923년〉
2016년 12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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