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2003년의 마지막 날이 오고, 2003년은 과거의 연대기에 수록되는 숫자에 불과해질 것이다. 일상의 삶 속에서 그냥 스치던 ‘마지막’이라는 말―마지막 날, 마지막 기회, 마지막 말, 마지막 편지, 마지막 차편―이 어쩐지 더욱 매몰차고 허망하게 들리고 어떻게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붙잡고 늘어져 보고 싶은 심정이다.
‘마지막’(last)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문학작품 중에 얼핏 떠오르는 것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족의 최후’, 헐버트 셀비 Jr의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를 쓴 피츠제럴드의 부인 젤다 피츠제럴드의 자서전적 소설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은 아마 오 헨리(본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1862~1910)의 ‘마지막 잎새’일 것이다.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사는 화가 지망생 존시는 폐렴에 걸려 나날이 병세가 악화해 가지만 삶을 포기한 채 창 밖 담쟁이의 잎만 세며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때 자신도 함께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 친구 수우는 존시의 살려는 의지를 돋워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들의 아래층에 사는 화가 베어만 노인은 필생의 걸작을 꿈꿔보지만 싸구려 광고물이나 그리며 근근이 살아간다.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불던 다음날 아침 수우가 창문을 열어보니,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 있다. 이틀째 마지막 잎새가 여전히 붙어 있자 존시는 생명을 포기하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살려는 의지를 가진다. 의사가 존시의 완쾌를 알려주던 날 수우는 그 마지막 잎새는 베어먼 노인이 비바람 몰아치던 밤 담장에 그려놓은 것이었으며, 노인은 그날 밤 얻은 폐렴으로 죽었다고 말해준다.
단 한 권의 소설도 쓰지 않은 채 300여편의 단편만 남긴 오 헨리의 작품은 예외 없이 기발한 착상과 페이소스로 알려져 있지만 그중 압권은 ‘놀라운 결말’, 즉 마지막에 스토리가 반전을 이루면서 예기치 않은 귀결을 맺는 구성의 묘미이다. 그의 단편들은 무엇보다도 삶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는데, 긴 머리를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산 아내와 아끼던 시계를 팔아 사랑하는 아내의 머리 핀을 산 가난한 남편 이야기인 ‘크리스마스 선물’(원제: 동방박사의 선물)이 그렇고 20년 후에 한 명은 형사로, 또 한 명은 수배돼 도망 다니는 범죄자로 만나는 두 친구의 이야기인 ‘20년 후’라는 이야기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자주 인용되지는 않지만 오 헨리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경찰관과 찬송가’라는 단편이 있다. 뉴욕의 부랑자 소피는 겨울이 되어 날씨가 노숙하기에 부적합해지자 사생활을 간섭하는 자선기관에 의탁하기보다는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서 숙식이 보장되는 교도소에 들어가 겨울을 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가게의 창을 깨도, 일부러 여성을 희롱해도, 난동을 부려도, 물건을 훔쳐도 도무지 체포되지 않는다. 소피는 우울해진 마음으로 노숙을 하던 공원으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길모퉁이의 한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어린 시절 들었던 찬송가를 듣게 된다. 비로소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 타락해버린 현재의 자신을 깨닫고 소피는 앞으로 직업도 구해보고 진실된 삶을 살아보겠다고 새롭게 마음먹는데, 순간 경관이 나타나 그를 부랑자라고 체포하고 그는 금고 3개월을 선고받는다.
이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지도 한참 되고 오 헨리의 작품들에 담긴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자꾸 우리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곳으로 줄달음치는 아이러니로 가득찼던 2003년을 보내고 있다. 전기작가 로버트 데이비드는 “오 헨리는 미국 단편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었다(humanize)… 나는 우울할 때마다 오 헨리를 읽는다”면서 그의 작품에는 늘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고, 슬프고 우울해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물어가는 2003년 어느 회색빛 우울한 날,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으로 좀더 나은 새해를 꿈꿔 본다.
11월에 들어서면서 폐렴으로 앓고 있는 존즈는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창 밖의 잎만 세고 있었다. 그
리고 간호해 주는 친구 수우에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
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말을 한다. 그들의 밑층에 사는
화가인 베어만 노인은 40년 동안을 그림을 그리며 살았
지만 아직 걸작을 그려보지 못했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
즈의 망상을 이야기하고 정말로 잎새와 함께 떠나가면 어
쩌나 하고 걱정한다. 다음 날 아침 수우가 창문의 휘장을
올려보니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
로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지나도 잎새는 여전히
붙어 있었다. 존즈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리고 의사는 베어만 노인도 폐렴으로 앓고 있다는 말을 해
준다. 그날 오후에 수우는 존즈에게 베어만 노인이 죽었다
는것을 알리며 담장에 잎새를 그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마지막 잎새를 읽고
나는 지금까지 이런 슬픈 책을 본적이 없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마지막 잎새라는 책은 꼭 희망과 죽음을 의미하는듯하다.
난 종종 책의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데 그래서 다시 읽을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아마 책을 자주 읽지 않아서 일거다.
난 베르만 할아버지께 큰 감동을 받았다 담장에 있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죽을꺼라는 존시를 위해 비바람치는 밤에 넝쿨을 그려놓고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까지 희생하면서 존시에게 주려고했던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희망일거다.
곧 떨어질 잎새가 안떨어지는걸 보고 자신도 열심히 살려는 그런 희망을 일깨워 준거다.
점점 꺼져가는 존시의 생각과 마음을 되살린 할아버지에 대해 존시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소년소녀가장,장애인,노인등 존시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있다면 친구 수잔과 베르만 할아버지처럼 따스한 사랑과 용기를 심어주는건 어떨까?
아마도 그건 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것이니까 나는 더더욱 그 일을 실천할것이다
*본문요약*
'마지막 잎새'의 저가 오 헨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버러 출생. 아버지는 지방의 유명한 의사였고, 어머니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부인이었다. 그러나 어려서 양친을 잃어 거의 학교교육도 받지 못한 채 숙부의 약방을 거들고 있다가, 1882년 텍사스주로 가서 카우보이 ·점원 ·직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다. 1887년 25세에 17세의 소녀와 결혼하였고, 1891년 오스틴 은행에 근무하는 한편, 아내의 내조를 얻어 주간지를 창간하였으며, 지방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문필생활을 시작하였다. 1896년 2년 전 그만둔 은행에서의 공금횡령 혐의로 고소당하자 남미로 도망갔으나 아내의 중태로 돌아와 체포되었다. 3년간 감옥생활을 하는 사이에 얻은 풍부한 체험을 소재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결국 이 복역이 한 저널리스트가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방 후 뉴욕으로 나와 본격적인 작가생활에 들어갔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을 다룬 처녀작 《캐비지와 왕 Cabbages and Kings》(1904)을 제외하고는 《서부의 마음 Heart of the West》(1907) 《4백만 The Four Million》(1906) 등 계속 단편집을 발표하여 인기작가로서 지위를 굳혀, 불과 10년 남짓한 작가활동 기간 동안 300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썼다. 그는 순수한 단편작가로, 따뜻한 유머와 깊은 페이소스를 작품에 풍기게 하여 모파상이나 체호프에도 비교된다. 미국 남부나 뉴욕 뒷골목에 사는 가난한 서민과 빈민들의 애환을 다채로운 표현과 교묘한 화술로 그려 놓았다. 특히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줄거리의 결말은 기교적으로 뛰어나다. 문학사적으로 비중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대표적 단편 《경찰관과 찬송가》
나는 이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서 의지에 살아가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깨달 았다. 이 이야기에 주인공을 통해서 말이다.
그 소녀는 몹시 않 좋은 병에 걸렸다.
희망만 있으면 살수 있을 거란 의사에 말도 무시한 채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자기 침대 옆에 창가에 있는 담쟁이 넝쿨만을 의지한 채 기다렸다.
담쟁이 넝쿨의 잎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고 마지막 하나, 마지막 잎새만이 남았다.
이 소식을 들은 옆집 늙은 할아버지는 화가는 그 잎대신 그곳에다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 소녀는 그 담쟁이 넝쿨이 않 떨어지자 희망을 갖고 용기를 갖고 살 마음을 먹었고, 열심히 생활해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담쟁이 넝쿨을 돌봐 주로 갔는데, 그것이 그림인 것을 알고 ´내가 바보였구나, 그 넝쿨에 의지해 산 내가 바보였구나!´하며 그 이웃집 화가 할아버지를 보러 간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그때 비을 마지면서 그렸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고 만 것 이였다.
거기다가 그땐 그 할아버지가 늙고, 거기다가 그 소녀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비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세상에 희망을 갖지 못한 것인 한 소녀 때문에 한사람이 희생대었다.
그 늙은 할아버지는 자신은 젊은 소녀에게 목숨을 걸고, 자신은 늙었지만 소녀는 죽지 않기를 생각하며 그 그림을 그린 것 같다.
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